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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관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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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왕의 사망(기원전 4년) 이후 10년이 지났을 때 유대는 로마의 직접 지배 하에 들어갔다.<br />

유대적 생활양식에 대한 로마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늘어난 유대인들의 분노는 산발적인<br />

폭력행위로 나타나다가 서기 66년에 전면적인 반란으로 확대되었다. 티투스가 이끈 우세한<br />

전투력의 로마군이 결국 승리를 차지했으며, 이들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잿더미로<br />

만들고(서기 70년) 유대인들의 마지막 요새였던 마사다를 함락시켰다(73년).<br />

예루살렘과 제 2 성전의 파괴는 유대 민족에게 큰 재앙과도 같았다. 당대의 유대 역사가<br />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에 의하면, 예루살렘과 그 외 다른 지역의 포위 공격 속에 유대인 수십<br />

만 명이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노예로 팔려갔다.<br />

시몬 바르 코크바의 반란(서기 132년) 직후 짧은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마지막으로<br />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며 예루살렘과 유대를 탈환했다. 그러나 로마의 막강한 힘 앞에<br />

이어질 결과는 너무도 자명했다. 3년이 지난 후 예루살렘은 로마 관습에 따라 “황소의<br />

멍에로 갈아 엎어”졌으며, 유대는 팔레스티나, 예루살렘은 아엘리아 카피톨리나 라는<br />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br />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은 모두 불타버렸지만 유대민족과 유대교만은 로마와의 충돌 속에<br />

서도 살아남았다. 입법과 사법을 총괄하는 최고 기구 산헤드린(크네세트 하그돌라의 후신)이<br />

서기 70년에는 야브네에서, 후에는 티베리야에서 재소집 되었다. 국가와 성전의 통합된 체<br />

계 없이 존속된 소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점차 복구되는 한편 때때로 고향으로 돌아온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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