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s
1 week ago

Cummins Magazine 2015 Summer Vol 83

Cummins

Cummins Lounge Culture 앞치마를 두른 TV, 세상을 요리하다! 월요일에는 ‘냉장고를 부탁해’로 냉장고를 정리하고, 화요일엔 ‘집밥, 백선생’으로 집밥을 만들고, 수요일은 ‘수요미식회’로 외식을, 목요일은 ‘한식대첩’에서 전국 팔도의 맛을 여행하고, 금요일에는 ‘삼시세끼’로 유기농 슬로라이프의 여유를 만끽한다. 토요일에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주부와 함께 요리한 후, 마침내 일요일에는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면 일주일이 훌쩍 지나간다. 그야말로 현재 대한민국은 쿡방과 사랑에 빠져있다. 글. 이명아 일러스트. 하고고 웃음 한 컵, 소통 두 스푼으로 만드는 쿡방 ‘쿡방’이란 요리한다는 뜻의 ‘쿡(Cook)’과 ‘방송’의 합성어로 출연자들이 직접 요리하는 방송을 뜻한다. 돌이켜보면 ‘쿡방’ 이전에는 ‘먹방(먹는 방송)’이 있었다. 배우 하정우의 ‘먹방’을 시작으로 육아예능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아이들이 먹는 모습은 수많은 누나, 이모 팬들을 흐뭇하게 했다. ‘먹방’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도 선보였다. 1인 가구의 식사를 주제로 한 ‘식샤를 합시다’는 음식의 다채로운 색감과 맛깔스러운 소리를 담아 주인공의 먹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하지만 대중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고 ‘먹방’은 직접 요리하는 과정을 보고, 배우고, 즐기는 ‘쿡방’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종편과 케이블TV를 중심으로 시작된 쿡방 열풍으로 방송에 출연한 셰프들이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으면서 ‘셰프’와 ‘엔터테이너’가 결합한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쿡방의 인기는 지상파 방송을 위협하고 있다.

과거에도 요리하는 프로그램은 있었다. 1980년대 MBC ‘오늘의 요리’와 KBS ‘가정요리’는 요즘의 일일드라마 시청률만큼 보장된 시청률을 자랑하는 인기프로그램이었다. 실제로 매일 오전 30분씩 생방송으로 진행된 ‘오늘의 요리’는 한때 최고 시청률 50%를 넘겼고, 요리연구가 이종임 씨와 한복선 씨는 모든 주부의 ‘선생님’이었다. 물론 요리프로그램의 전형적인 방송 화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정형화된 요리프로그램을 쿡방이라 부르지 않는다. 기존의 요리프로그램이 ‘정보’에 집중한다면 쿡방은 ‘예능’에 정보를 더한 형식이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방송 초기부터 폭발적인 화제를 얻었던 것은 ‘스타의 냉장고’라는 사생활과 셰프의 대결이라는 예능적 양념이 더해진 덕분이다. 또한 ‘백주부’ ‘슈거보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세로 자리 잡은 백종원 씨가 출연한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인터넷 방송 형식을 접목했다. 또, 쿡방은 굳이 전문가의 완벽한 요리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삼시세끼’의 경우 농촌과 어촌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더 해 현장에서 직접 재료를 채취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다룬다. 프로그램 속 출연진은 시골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요리를 망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실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비록 어눌하고, 느리지만 힘들게 세끼를 해 먹는 과정에서 대중은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충만함을 얻는다. 즉, 쿡방은 ‘요리’라는 재료를 이용한 소소한 즐거움과 일상의 작은 행복을 ‘방송’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다. 나의 일상에게 보내는 힐링 레시피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며 ‘셰프인 듯, 셰프 아닌, 셰프 같은’ 솜씨로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가 김풍은 방송에서 자신의 인기를 ‘추석까지’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를 했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는 금세 가라앉는다는 과거의 자아성찰(?)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먹고, 요리하고 있다’는 말이 슬슬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말은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하지만 방송의 경계를 넘어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일상까지 변화시키는 쿡방의 파급력은 아직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실제로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집밥, 백선생’에서 설탕을 애용하는 백종원의 레시피 덕분에 전체 조미료 중 설탕은 올 상반기 판매량 1위를 차지했으며 한 온라인쇼핑몰은 설탕 판매량이 전월보다 최대 4배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요리 관련 서적은 전월 대비 35% 증가했고, 가정・생활・요리 도서 분야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열풍이 이어져 지난 7월에는 제1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가 열렸다. 영화제는 세계 각국 31편의 영화 상영과 다양한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는 이벤트, 음식 전문가와의 토크 등의 행사를 준비해 인기 상영작과 야외 행사는 예매 오픈 즉시 매진을 기록했다. 의식주는 언제나 우리의 삶과 평행선을 이루며 발전해 왔지만 최근처럼 ‘식( 食 )’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고, 문화 전반을 이끈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한 끼 때우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쿡방을 ‘작은 성취’로 설명한다. 불안한 일자리와 치열한 취업에 지친 삼포세대가 사회적 성취 대신 일상에서의 작은 성공을 얻는 방법으로 ‘요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1인 가구의 증가는 ‘집밥’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조건을 만들었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식재료와 까다롭지 않은 조리 방식, 그럼에도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지는 맛과 모양을 추구하는 쿡방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그대로 투영한다. 그리고 쿡방 열풍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은 부와 명예, 권력과 같은 사회적 성공보다 요리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충만함을 나누고,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며 피곤한 일상을 치유하고픈 것이다. 물론 쿡방이 현실의 모든 시름을 잊게 해주거나, 해법을 제시해 줄 수는 없다. 어쩌면 영화 ‘매트리스’의 세계처럼 환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름의 후텁지근한 날씨만큼이나 답답한 현실에서 한숨 돌리고, 직접 요리한 따뜻한 음식 한 그릇으로 자신을 삶을 격려하며,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일상이 조금 더 즐거워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쿡방의 존재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30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