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12호

sarang0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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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선교교회 소식지 공감 12호 입니다

ㅣOMC Old & Newㅣ스티브 임 장로

스티브 임 장로는 지난 66년 미국 장교로 생사를 넘나들던

월남전에서 주님을 영접했다. 임장로의 신앙에 가장 중요

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故 임동선 목사였다. 그가 임목사를

처음 본 것은 53년 여의도 미 공군 교회 예배시간이었다.

미군 하우스 보이로 토마스 하이트 장군을 따라 공군 본부

예배에 참석했던 스티브 임 소년은 이승만 대통령도 있는

자리에서 자유당의 부패를 지적하고, 위정자들의 회개를

촉구한 임동선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소년은 절대권력자

앞에서 그의 실정을 질책하는 젊은 군목의 기개에 깊은 감

동을 받았다.

임장로는 미군 특수부대 지휘관신분으로 복무하던 68년

월남 전선으로 귀임하는 길에 들른 LA 한식당에서 이천영

목사와 오봉운목사과 함께 있던 임목사를 조우한다. 임장

로는 이 자리에서 공부가 끝나면 한국에 돌아가 상도동 성

결교회를 담임할 계획이라는 임목사에게 63년 이민법 개

정으로 71년부터 크게 늘어날 한인 이민사회를 위해 교회

개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임장로의 조언과 이천영

목사의 권유로 임동선 목사는 신앙의 처녀지였던 LA에,

자신의 비전인 선교, 이목사의 신념인 교육, 오목사가 꿈

꾸던 봉사를 사명으로 한 초교파 교회를 개척하기로 뜻을

세운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70년 정작 동양선교교회가 창립될 당시 워싱톤

DC에서 공직 생활을 하던 임장로는 창립예배를 함께 드리

지는 못했다. 그러나 LA에도 사무실이 있던 그는 이곳에

올 때 마다 동양선교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임장로가 가정을 이루고, 공직에서 사임해 LA에 정착한

72년부터 본격적으로 임동선목사 옆에서 교회를 섬겼다.

초창기 동양선교교회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그러나 어려

움도 많았다. 임목사의 목회 방침에 불만을 갖고 있던 장

로 한 사람이 교인을 데리고 나가는 바람에 교인수가 절반

으로 줄기도 했다. 더 큰 위기는 구입한 교회 건물의 모기

지를 갚지 못해, 은행론이 밀린 것이었다. 모기지 감당이

안되니, 교회를 팔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임장로가 강단있

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성전 매각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수면밑으로 들어갔다. 위기 타개에 앞장 선 임장로는

베버리 힐스에 있는 영화제작자 지인등 몇 가정에서 소프

라노 이귀임집사의 실내음악회를 주선했다. 첫번째 실내

음악회에서 집주인이 헌금 10만달러를 한 것을 비롯, 실내

음악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헌금 35만달러를 교회에 보내

주셨다. 여기에 성도들의 헌신적 기도로 모기지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동양선교교회는 70년대 말 크게 부흥했다. 임장로는 대학

등 젊은이선교, 유치원과 교육부 활성화, 모국 선교를 교

회 부흥의 이유로 꼽았다. “당시 젊은 이민자가정들이 자

녀 신앙 교육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 교회를 찾았는데,

당시 우리 교회 교육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어서, 젊은 가

족들이 우리 교회에서 많이 등록했다”고 반추했다. 공직을

떠나 사업을 시작한 임장로는 OMC 역사에서 여러번 중

요한 역할을 했다. 임장로는 1984년 필란 인근에 있는 라

이트 우드에 수양관건물을 매입, 교회에 내놓았다. 이 수

양관 건물은 교회에서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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