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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준 - 한국브레히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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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br />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br />

- 환상과 실제<br />

<strong>이정준</strong> (성균관대)<br />

전쟁 담론을 역사학이나 정치철학적 담론을 바탕으로 전개하면 전쟁은 권력 쟁취<br />

와 그 유지를 위한 하나의 정치행위로서 당연시 되거나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게 된<br />

다. 제일차세계대전의 경우 대다수의 역사학자가 “일차대전은 의미가 없는 것은 아<br />

니었다” 1)고 생각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일차대전은 피할 수 없는 것이<br />

었다” 2)고 믿는다. 실제로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윌슨 W. Wilson(1856~1924)는 전쟁<br />

의 원인을 “국제 시스템의 오류”에서 찾고 있으며, 3) 레닌은 “자본주의의 이해 때문<br />

에 유럽 노동자에게 강요된 경제적 경쟁의 결과” 4)라고 말한다. 또 “전쟁의 목적은<br />

평화와 승리” 5)라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정치학적 담론을 전제로 한다.<br />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문학에서도 전쟁을 중요한 소재로 다루면서 다양한 주제군<br />

(群)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전쟁에 대한 여러 생각들, 그 유사함과 상이함,<br />

그것들이 주는 메시지 등을 살펴, 문학에서의 전쟁 담론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문학<br />

의 관점은 역사학이나 정치학에서와는 다를 것이며, 그들의 전쟁관보다 다양하고 심<br />

각하고 핵심적일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은 그간의 독일 문학에 대한 앎에 기반한 생<br />

각이다. 이러한 생각이 편견인지 그렇지 아닌지 실제로 확인하는 과정이 본 연구라<br />

* 이 논문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해 연구되었음(KRF-2003-074-AM0011).<br />

1) N. Ferguson. Der falsche Krieg. Der Erste Weltkrieg und das 20 Jahrhundert. 3. Auflage. München:<br />

DTV, 2006. S. 20.<br />

2) Ebd. S. 23f.<br />

3) Ebd. S. 25.<br />

4) Ebd.<br />

5)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폭력의 세기(On Violence. 1970). 김정한 옮김. 서울 1999. 84쪽.


41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하겠다. 이러한 생각을 고무해 준 일이 자료 수집 과정에서 있었는데, 위에서 인용한<br />

니알 퍼거슨 Niall Ferguson의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17<br />

신세대는 기존의 모든 것을 부패한 것으로 여기어 부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완전히<br />

다른 어떤 것, 완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갖게 된다. “부정”과 “새출발<br />

Aufbruch” 9)은 표현주의를 특징짓는 핵심 개념이라고 하겠다. 표현주의자들이 궁극적<br />

으로 추구했던 것은 새 인간, 새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것을 위해 무정<br />

부와 혁명에 의한 구시대의 척결을 꿈꾸는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고모라의 멸망하는<br />

모습을 빌려와 참혹한 전쟁 이미지를 창출해냄으로써 세상의 종말을 그리고 있는<br />

Georg Heym(1887~1912)의 시 「전쟁 Der Krieg I」은 1911년이라는 그 시가 쓰인 해<br />

를 고려하기 전에는 자칫 전쟁 체험의 시적 변용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을 정도로 생<br />

생한 표현이 돋보인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전쟁”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야 하는 해<br />

석의 필연성이 발생한다는 말이다.<br />

전쟁 I<br />

일어섰다, 오랫동안 잠자던 그가<br />

일어섰다, 저 아래 깊은 구렁에서.<br />

노을 아래 커다랗게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얼굴로 서서,<br />

그리고는 검은 손으로 달을 짓이긴다.<br />

낯선 어둠의 냉기와 그늘이<br />

도시들의 저녁 소음 속으로 내려온다, 드넓게,<br />

그리고 시장의 회오리바람은 얼음으로 굳어버린다.<br />

고요해진다. 그들은 서로 휘돌아본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br />

골목길에서 그들의 어깨를 가볍게 잡는다.<br />

물음은 있으나 대답은 없다. 한 얼굴이 창백해진다.<br />

멀리 소리 하나 가냘프게 <br />

그리고 뾰족한 턱 주위에서 수염이 바르르 떤다.<br />

산 속에서 그는 이미 춤추기 시작했고<br />

그리고 그는 소리친다: 너희 모든 전사들아, 일어나 나아가라.<br />

9) Ebd.


41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그리고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검은 머리를 잡아 흔들 때마다,<br />

빙 두른 수천 개 해골로 시끄러운 목걸이가 걸려있으니.<br />

마치 탑처럼 우뚝 서 마지막 타오르는 불길을 밟아 끈다,<br />

낮이 도망칠 때 쯤, 강물은 이미 피로 가득하다.<br />

수없이 시체들이 이미 갈대밭에 늘어져 있고,<br />

죽음의 억센 새들로 하얗게 덮여 있다.<br />

둥근 성벽의 파란 불덩이 세례 위쪽에<br />

그는 서있다, 컴컴한 골목 포탄 소리 위로.<br />

경비병들이 저항하고 있는 성문들 위로,<br />

산처럼 쌓인 주검으로 무거워진 다리들 위로.<br />

들판을 가로질러 불꽃을 밤의 어둠 속으로 내몰아 간다<br />

사나운 주둥이로 울부짖는 빨간 개 한 마리를.<br />

암흑으로부터 밤의 검은 세상이 튀어 나오고,<br />

화산으로 무섭게 그 세상 변두리가 비추어진다.<br />

수천의 뾰족한 빨간 모자들로 멀리<br />

칠흑의 평야들은 여기 저기 너울대며 불타오르고,<br />

저 아래 길 위 여기저기서 떼 지어 움직이는 것,<br />

그가 화염더미 속으로 쓸어 담으니 불길이 더욱 피어오른다.<br />

불길은 타오르며 숲에서 숲을 먹어 들고,<br />

노란 박쥐들은 날카롭게 나뭇잎 속으로 달라붙는다.<br />

그의 작대기를 석탄공 마냥 나무들 속으로<br />

휘저어 치니, 불은 제대로 소리 내 탄다.<br />

큰 도시 하나가 노란 연기 속으로 가라앉으며,<br />

소리 없이 심연의 복부로 몸을 내던졌다.<br />

그런데 거인처럼 작열하는 폐허 위에 서서<br />

그가 무섭게 격동하는 하늘로 그의 횃불을 세 번 휘두른다,


폭풍에 짓찢기고 불빛 반사하는 구름 위로,<br />

죽은 듯 고요한 어둠의 차가운 황야에서,<br />

그렇게 그는 불 질러 저 멀리 밤을 바싹 태웠다,<br />

곤궁과 화염이 저 아래 고모라 위로 방울져 떨어진다. 10)<br />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19<br />

이 시는 내용으로 보아 어떤 특정 전쟁이 아니라, “세상의 멸망” 혹은 “종말”을 무<br />

서운 파괴와 파멸의 장면을 통해 그리고 있다. 이 시의 전반부는 마치 고야 Francisoc<br />

José de Goya의 작품 「거인 Der Koloß」(1810년 경)에서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으로<br />

그려진 거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11) 하임은 시간과 장소도 제시되지 않은 신화적<br />

파괴의 모습과 신적 파괴자를 통하여 세상의 “전쟁”을 암시한다. 니이체 F.W.<br />

Nietzsche는 “회의와 동경이 짝을 이룰 때, 신화가 탄생한다 Wenn Skepsis und<br />

Sehnsucht sich begatten, entsteht die Mystik.”고 했다. 12) 신적인 존재에 의한 도시들<br />

의 파괴는 13) 분명 일반 의미로의 “전쟁”은 아니다. 하임은 또 다른 의미의 전쟁을 말<br />

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에는 숨겨진 하임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 파괴의 이유에 대해<br />

서 전혀 언급이 없던 43행까지의 시행은 마지막 44행에서 “고모라”라는 성서의 도<br />

시 14)를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의 타락에 의하여 자초한 세상의 종말을 그리고<br />

10) 1911년9월. G. Heym. Dichtungen. Stuttgart 1969. S. 11-13. (이하 모든 시의 원문 인용은 지면의<br />

제한으로 생략한다.)<br />

11) 실제로 B.W. Seiler는 Goya의 영향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Vgl. Bernd W. Seiler. Die historischen<br />

Dichtungen Georg Heyms, Analyse und Kommentar, München 1972. S. 32. Zitat nach: G. Lemke.<br />

Georg Heyms Gedicht


42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가 주는 내용과 분위기는 성서의 “묵시록”의 그것<br />

과 다르지 않다. 15) 하임은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통하여 이 타락한 세상의 파괴와 파<br />

멸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16) 이러한 맥락에서 14행의 “너희 모든 전사들아, 일어나<br />

나아가라.”라는 파괴자의 외침이 갖는 목표도 비로소 분명해진다. 또한 이러한 맥락<br />

에서 4행 “검은 손으로 달을 짓이긴다.”의 의미도 드러난다. 성경의 묵시록에 “달은<br />

온통 핏빛으로 변하였습니다.” 17)라는 종말적 징후가 있거니와, 하임은 이 시에서 낭<br />

만주의 시대 이후로 숭앙 받던 달을 짓이김으로써 자신이 서있는 계승된 이 세상을<br />

짓부수어 멸망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묵시록에서 끔찍한 종말 뒤에<br />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진 “천년 왕국” 예루살렘이 도래하듯, 세상의 단 한 요소도<br />

남기지 않고 완전하게 존재를 지우는 이 시는 사실은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의 열렬<br />

한 표현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18) 이 시보다 1년 전인 1910년에 쓴 “전<br />

투 후 Nach der Schlacht”에서는 전쟁 묘사와 전쟁터에 새벽이 도래하는 장면을 그리<br />

고 있다.<br />

전투 후<br />

오월의 모판에 시체가 빽빽이 널려 있고,<br />

푸른 논두렁에, 꽃 위에, 꽃밭 위에,<br />

버려진 무기, 살 없는 바퀴들,<br />

그리고 쇠로 된 포가(砲架)가 거꾸로 박혀있다.<br />

기에 있는 도시들과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 버리셨다.”)이 이 시의 광경과<br />

비교해 볼만하다.<br />

15) Vgl. 성서. 요한묵시록 5-18장. 특히 “큰 도시”의 멸망에 대해서도 이 요한 묵시록(16장 19절, 17<br />

장, 18장)에서 언급되고 있다. 다만 도시가 “고모라”가 아니라, “큰 도성 바빌론 die große Stadt<br />

Babylon”이다. 그러나 이 멸망의 의미는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br />

16) 하임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가진 또 다른 시 “Der Krieg II” (191x)에서도 인간의 처참한 파멸과<br />

죽음은 인간끼리의 전쟁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적인 파괴자 “그”에 의한 것이다. 이 시에는 몸뚱<br />

이가 잘리어 즐비하게 널려 있는 황야, 피와 불 그리고 죽음만이 있고, 비온 축축한 땅에 안개가<br />

감도는 영혼만이 떠도는 냉랭한 가을 숲 등 처참한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br />

17) 요한묵시록, 6장12절.<br />

18) 물론 그의 시에 보이는 종말적 분위기를 “세계전쟁의 위협적인 전조들” 속에서 “불안과 전율과<br />

공포”의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Vgl. 김숙희. “표현주의 시(詩)에 나타난 도시와 현대성”, 독일문<br />

학 71(2000). 32쪽 이하.


수많은 웅덩이에서 피의 안개가 피어난다,<br />

갈색 들판 길을 검고 붉게 덮은 웅덩이에서.<br />

그리고 죽은 말들의 배는 히뜩 히뜩 부풀어 있고,<br />

다리는 새벽을 향해 쭉 뻗어 있다.<br />

죽어가는 자들의 끊이지 않는 신음 소리는<br />

써늘한 바람 속에 얼어붙고, 동쪽 성문으로<br />

창백한 광채 하나 나타난다, 푸른 색 희미한 빛,<br />

잠깐 스쳐가는 여명의 가느다란 띠. 19)<br />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21<br />

이 시의 전투가 끝난 전쟁터에 대한 묘사는 안드레아스 그뤼피우스 A. Gryphius의<br />

전쟁 묘사를 연상케 하는 20)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 그러나 전쟁의 체험이 없는 하<br />

임이기에 이 시에서도 환상으로 변화되고 있다. 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5월 봄의 전<br />

원과 대조를 이루는 전쟁터의 장면은 더욱 처참함을 더한다. 도처에 시체와 무기의<br />

잔해가 널려 있고, 새벽의 서늘함 속으로 피 웅덩이마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뻣뻣하게<br />

굳은 말의 시체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을 타고 들리는 죽어가는 신음 소리, 이 처참<br />

한 장면을 뒤로 하고 그래도 동쪽 하늘에서 희미한 빛과 함께 시작하는 새 아침, 이것<br />

이 하임에게 절실한 새 세상의 서곡이라 하겠다. 바로 이러한 희망을 부르는 이 시는<br />

그래서 그뤼피우스의 30년전쟁이나 레마르크의 처참한 전쟁, 또는 같은 표현주의 작<br />

가이지만 현대전의 공포와 참혹함을 겪은 게오르크 트라클 Georg Trakl(1887~1914)<br />

의 전쟁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300년 전의 그뤼피우스나 같은 시대의 트라클이나 레<br />

마르크에게 전쟁은 경악, 공포, 충격 그 자체로서 인간의 정신과 물질을 피폐케 하는<br />

가장 잔혹한 폭력이었고, 재앙이었다.<br />

자연주의나 인상주의의 “외부에 의해 규정된 인간이라는 테제 These des vom<br />

19) 1910년 9월 8일. G. Heym. Gedichte. München 1986, S. 28.<br />

20) 그뤼피우스의 「조국의 눈물 Thränen des Vaterlandes / Anno 1636


42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Draußen bestimmten Menschen”와는 달리 “인간에 의해서 규정되는 외부 These des<br />

vom Menschen bestimmten Draußen”가 문제인 표현주의자들은 “현실에 대하여 반명<br />

제적 입장 antithetische Stellung zur Realität”을 취했고, “이러한 태도를 근간으로 발<br />

생한 유토피아 이상론은 현실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현실을 해체함으로써 초경험<br />

적인 것으로 발전했다”. 21) 전쟁은 표현주의자들로 하여금 전쟁을 통한 파괴 속에서<br />

“모든 유토피아의 실현에 대한 믿음” 22)을 키워가도록 한 도구적 기능을 했다고 하겠<br />

다. 전쟁을 겪지 못한 표현주의 초기 작가, 20대 초반의 청년 하임은 성서와 다른 예<br />

술작품에서 전쟁의 장면과 모티브를 원용하여 전쟁을 자신의 모든 불만과 불안, 공포<br />

를 씻어 주고, 새 세상의 도래를 가능케 하는 계기로 꿈꾸는 것이다. 전쟁은 자신이<br />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을 완전히 “부정 Negation”하는 것에 대한 은유이며, 나아가 그<br />

것은 “대변화 ganz große Veränderung”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23) 하임에게 전쟁은<br />

새 삶을 가능케 할 희망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세상 종말의 참혹한 이미지 뒤에는 새<br />

세상이라는 절실한 희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아직은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하임<br />

을 비롯한 그 시대 젊은 작가들이 전쟁을 통해서 바랬던 바가 ‘시대 청산’과 ‘새 시<br />

대’에 대한 열망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현대 과학 기술이 동원된 현대<br />

전이었으며, 그 현대전이 보여준 처참한 결과를 생각해볼 때 그들의 “전쟁에 대한 집<br />

단적 꿈 Der kollektive Traum vom Krieg”은 24)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낭만적’인 것이<br />

었다라고 할 만하다.<br />

그러나 전쟁을 직접 체험한 후의 표현주의 작가에게 전쟁이라는 테제는 확연히 달<br />

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전쟁을 낭만적 도구로 여<br />

겼던 환상이 참혹하게 깨졌기 때문이다. 1914년 7월28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br />

세르비아에게 전쟁을 선포하면서 8월초에 전 유럽으로 전쟁이 확산되었을 때, 황제<br />

21) A. Viviani. Das Drama des Expressionismus. Kommentar zu einer Epoche. München 1981. S. 16.<br />

22) Ebd. S. 14.<br />

23) K. Eibl. “Expressionismun”. S. 428.<br />

24) W. Falk는 자연주의와 표현주의 작가들의 전쟁 열광에 대하여 이렇게 명명하며 그의 책 제목으<br />

로 내걸고, Th, Fontane, G. Hauptmann, F. Wedekind, S. George, H.v. Hofmannsthal, Th. Mann,<br />

A. Holz, R.M. Rilke, R. Musil, G. Heym, E. Stadler 등의 전쟁관에 대하여 파헤친다. W. Falk.<br />

Der kollektive Traum vom Krieg: epochale Strukturen der deutschen Literatur zwischen<br />

“Naturalismus” und “Expressionismus”. Heidelberg: 1977.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23<br />

에게 충성스런 애국적 가정에서 자란 트라클은 온 나라에 들끓고 있던 전쟁 열광에<br />

동조하고 있던 상태였다. 8월말 위생병으로 입대한 그는 곧장 러시아군과 대치한 동<br />

부전선 갈리시아 Galizien 지방으로 배치된다. 25) 그리고 입대한 지 보름 남짓 만에<br />

“검붉은 파도로 물결치는 전투 Die purpurne Woge der Schlacht” 26)를 통해 전쟁의 혹<br />

독한 현실을 맛보게 된다. 충격으로 정신에 이상이 오고, 10월말에 이미 정신 상태를<br />

관찰하기 위해 점령군 위수병원에 입원을 한다. 27) 위생병으로서 처음으로 투입된 그<br />

로덱 Grodek에서의 전투 때 100여명의 부상병을 의사도 없이 헛간에서 그들의 고통<br />

스러운 신음 소리를 들으며 꼬박 이틀간 밤을 새우며 보살펴야 했는데, 한 부상병이<br />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하는 처참한 사고를 목격하게 되는<br />

데, 그 충격으로 환영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입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11월2일<br />

코카인 과다 복용의 방법으로 자살을 기도하여 그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28) 이때 그<br />

가 남긴 마지막 시가 그 곳의 지명을 딴 「그로덱 Grodek」이다.<br />

그로덱<br />

저녁녘 가을 숲들이 죽음의 무기들에 의해<br />

소리 가득하다, 황금 빛 평야와<br />

파란 호수들, 그 위로 태양은<br />

희미하게 굴러 간다; 밤이 감싸 안는다<br />

죽어가는 전사들, 거친 비탄의 소리를<br />

그들의 뭉개진 입의.<br />

그런데 소리 없이 초원에 모여 드는<br />

적색 빛 구름, 그 안엔 성난 신이 살고 있다,<br />

흘러넘친 피, 달 빛 써늘함;<br />

모든 길거리가 검게 썩기 시작한다.<br />

밤의 황금 빛 가지 그리고 별빛 아래<br />

누이의 그림자가 침묵 속의 작은 숲을 지나 흔들거린다,<br />

25) O. Basil. Georg Trakl. Reinbek bei Hamburg 1965. S. 145ff.<br />

26) 트라클의 시 「동부전선에서 Im Osten」 (1914년9월)의 한 구절이다. Ebd. S. 147.<br />

27) Ebd. S. 149.<br />

28) Ebd. S. 150-156.


42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영웅들의 영령, 머리에 피 흘리는 자들에 인사하려고;<br />

그리고 갈대숲에선 나지막이 가을의 어두운 피리 소리 가득하다.<br />

당당한 슬픔이여! 너희 청동의 제단이여,<br />

정신의 뜨거운 불꽃이 오늘 엄청난 고통을 키운다,<br />

태어나지 않은 손자들. 29)<br />

전투는 저녁이 되어도 끝나지 않고, 가을의 아름다운 숲, 파란 호수, 태양 모두를<br />

참혹하게 죽음의 장소로 만든다. 밤이 되어 죽음을 눈앞에 둔 부상병들의 신음 소리<br />

만 밤의 적막을 깬다. 신의 분노가 스며있는 그들의 피가 흘러 모이고 달빛에 비친<br />

싸늘한 분위기.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이 검게 썩기 시작한다. 세상의 종말이 온 것이<br />

다. 이제 모든 것은 때를 잃었다. 어두운 그림자 드리워진 작은 숲은 죽음의 적막만<br />

이 흐르고 갈대숲 바람 소리만 들린다. 자랑스러운 죽음, 명예로운 죽음이 다 무슨<br />

소용 있겠는가, 이 비극을 쳐다보니 고통만 커진다. 인간의 다툼으로 모두가 죽고 참<br />

혹한 세상, 세상의 종말을 만들었으니 손자의 세대는 오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이고 종<br />

말론적인 결론을 내린다. 전쟁에 열광했던 세대가 전쟁에 직면하여 그 충격이 좌절로<br />

변했음을 읽을 수 있다. 트라클의 자살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앞서 하임의<br />

경우는 종말론적 전쟁 상을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대한 희망으로 이용했다면, 트라클<br />

의 이 시는 실제로 세상의 종말을 눈으로 목격한 후의 비탄의 표현이라고 하겠다.<br />

3. 시민사회의 붕괴<br />

전쟁을 환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들에 있어서, 시의 발생사를 알지 못하면, 그<br />

시적 형상화의 뛰어남에 가리어 전쟁의 참혹상이 얼른 전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br />

나 레마르크(1898~1970)의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25<br />

에 대하여 숙고하도록 이끈다. 제일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10년이 지난 1929년에 출<br />

간된 이 장편소설은 참호와 전장(戰場)에서의 체험, 즉, 자동소총과 포탄 세례, 독가<br />

스, 근접전,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히 무시된 무가치한 죽음의 장면 31) 등의 사실적이<br />

고 정제된 묘사가 돋보인다. 전장은 병사들에게 말 그대로 지옥이었음은 이 외에도<br />

많은 저술에서 발견된다. 에른스트 융어 Ernst Jünger는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이러<br />

한 전장을 “쇳덩이 폭풍우 Stahlgewitter”라고 했다. 32) 그러나 소설의 주된 테마는 전<br />

쟁의 무의미함에 대한 작가의 증언이다. 이 소설은 전쟁터의 “포탄세례를 피했다 할<br />

지라도 전쟁에 의해 파괴된 한 세대에 대한 보고” 33)라고 레마르크는 이 소설의 권두<br />

언에서 말한다.<br />

교사의 애국적 세뇌에 떠밀려 한 반의 학생 전체가 전쟁터로 나가 결국 그곳에서<br />

거의 모두가 죽게 되는 생생한 과정을 한 보통 가정의 평범한 학생이었던 평범한 사<br />

병 파울 보이머 Paul Bäumer의 눈을 통해 전해준다. 이 작품 곳곳에 전쟁과 평화, 전<br />

쟁터와 후방 시민사회, 병사와 시민 사이의 괴리를 성찰케 하며 나아가 삶과 죽음의<br />

의미에 대하여 보다 다른 각도에서 생각게 해보는 작품이다. 전쟁터에 나가 죽음과<br />

처절하게 대면하게 되고, 그럼에도 처음에는 미래에 대하여 꿈꾸어 보지만, 전쟁은<br />

그를 결국에는 사회와 가족, 즉 일상의 삶에서 소외시키고 죽음의 주변을 서성거리게<br />

만든다. 전쟁이 인간의 삶과 사회 모든 것을 황폐화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br />

에게 남은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과 불안이다. 34) 전쟁에 동원<br />

된 자신들은 자기 자신들에게조차 “불필요한” 존재라고 좌절한다. 35) 그래서 그의 죽<br />

31) 이 소설에는 소총과 포탄에 의해 두개골이 파괴되는 장면, 팔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 포탄에 맞아<br />

살점이 벽에 튀어 붙는 장면, 내장이 흘러나와 밟히는 장면 등등 무수한 장면에서 전쟁에 의하여<br />

인간의 존엄성이 처참하게 손상당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br />

32) 제일차세계대전을 자원하여 참전한 Ernst Jünger(1895~1998)는 전쟁의 체험을 장식이 없는 건조<br />

체로 써내려간


42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음은 어쩌면 스스로 준비한 것이 아닌지 추측해본다. 주인공 파울 하이머가 시체로<br />

발견되었을 때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의 얼굴은 그렇게 된 것에 거의 만족이<br />

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 표정이었다. sein Gesicht hatte einen so gefaßten Ausdruck,<br />

als wäre er beinahe zufrieden damit, daß es so gekommen war.” 36) 전쟁은 파울 하이<br />

머와 그의 동료들의 삶과 죽음에 있어 무의미한 것이었다.<br />

레마르크는 ‘왜 전쟁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단순한 사람들의 생각과 입을<br />

통해 찾아낸다. 갑자기 보급품이 고급품으로 바뀌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황제<br />

가 방문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병사들이 황제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 이<br />

야기하게 되고, 37) 전쟁의 원인을 추적해보는 데까지 이르는 그들의 대화는 그로테스<br />

크하기까지 하지만, 그러나 간단하고 명료하다.<br />

“일반적으로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심하게 모욕했을 때 그렇지.”<br />

“한 나라라고? 이해할 수 없는데. 대체 어떻게 독일의 산 하나가 프랑스의 산 하나를 모욕<br />

할 수 있다는 것인지. […]”<br />

“[…]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을 모욕한 거라는 거지-”<br />

“그렇다면 난 이곳에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거잖아. […] 나는 모욕당한 것 같은 기분<br />

이 들지 않는데.”<br />

“민족이라는 것은 전체야. 따라서 국가-”<br />

“국가, 국가. […] 헌병, 경찰, 세금, 이런 것이 너희들 국가지. […]<br />

[…]<br />

한번 생각해보라, 우린 거의 모두가 단순한 사람들이야. 그리고 프랑스에도 대부분의 사람<br />

들이 역시 노동자, 수공예자 또는 하급 관리들이 있지. 그런데 뭣 때문에 프랑스 철물공 아<br />

니면 구두장이가 우리를 공격하려 한단 말이냐? 아니야, 그런 것 하는 놈들은 오로지 정부<br />

야. 여기 오기 전에 난 프랑스 사람을 결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 38)<br />

전쟁은 자신들과 무관하게 일어난 것인데도 왜 자신들이 이 참혹한 상황에 처해있<br />

는지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이 대화를 통해서 결국 전쟁의 배후는 일반 백성<br />

들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br />

36) Ebd. S. 197.<br />

37) Ebd. Kap.9. S. 138ff.<br />

38) Ebd. S. 140.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27<br />

브레히트나 크라우스 같은 작가는 전쟁을 부패된 시민 사회의 단면으로 본다. 브<br />

레히트는 그의 시 「죽은 병사의 전설 Die Legende vom toten Soldaten」(1918)에서 전<br />

쟁 영웅과 그 영웅에 대한 조작된 찬양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br />

던 1918년 브레히트는 뮌헨대학의 의과생으로서 고향 아우크스부르크의 야전병원에<br />

서 위생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39) 병사가 부족했던 당시 “죽은 사람까지 파낸다”는<br />

항간의 소문에 착안하여 지었다는 시가 이 「죽은 병사의 전설」이다. 황제의 명령으로<br />

죽은 병사를 무덤에서 꺼내어 “전쟁수행능력” 판정과 함께 다시 한 번 영웅적 죽음<br />

을 강요한다는 내용이다. 그 죽은 병사의 본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국기로 가리<br />

고, 향로를 흔들어 시체의 냄새를 가리는 등 온갖 조작을 서슴지 않는 황제 추종자들<br />

이 풍자된다. 찬양의 인파는 그들 서로 스스로에 가리어 죽은 병사를 보지 못하면서<br />

도 환호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전쟁 수행을 위해 온 국민을 속이고, 또 국민은<br />

자신들이 속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집단적 전쟁 열광에 빠진 세태를 그로테스크하게<br />

풍자하는 시다.<br />

브레히트와 비슷한 시기에 칼 크라우스 Karl Kraus(1874~1936)는 그의 저작 활동<br />

을 통하여 “문화와 인간애를 위협하는 것” 40)을 고발하고 패퇴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br />

고 있었는데, 그의 우려는 제일차세계대전의 발발로 현실화 된다. 저널리스트로서 활<br />

동했던 그는 누구보다도 “자본주의 언론”의 부패를 알고 있었기에 전쟁이 발생하고<br />

확대되는 데에 언론의 허위와 조작이 큰 역할을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앞에서<br />

언급했던 1915년에서 17년 사이에 쓰인 그의


42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이 가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민족에 대한 폭력에 국민의 지지를 동원하는 것<br />

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을 선동하는 수밖에 없다. 전쟁은 따라서 국민에게 선전<br />

과 선동을 획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크라우스의 희곡 작품의 각 장은 항상 호<br />

외 신문을 판매하는 장면과 그 주변에서의 대화로 시작한다. 이것으로 전쟁에 있어<br />

언론의 역할 즉, 언론에 의한 조작과 선동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또 교회에서 그<br />

리고 학교에서 전쟁에 대한 미화와 명분 찾기에 바쁜 모습과 그 분위기를 보여준다.<br />

여기에 전쟁을 기회로 사업의 번창을 누리는 자들의 획책이 가세한다. 이러한 모든<br />

것은 언어에 의한 현실 왜곡, 즉 언어 날조 Sprachverfälschung에 의하여 전쟁을 일으<br />

킨다는 그의 비판적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마지막 장면으로 전쟁 체<br />

험들, 전쟁이 저지른 살인, 총살, 잔인함 등을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그리고 「마지<br />

막 밤 Die letzte Nacht」라는 제목을 가진 에필로그에서는 이 마지막 밤에 대한 환영<br />

을 본다. 전쟁터 멀리 불기둥이 펼쳐있고,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며, 별이 없는 밤<br />

인데, 시체가 널려있고, 죽어가는 사람들, 가스마스크를 한 남녀들, 종군기자들, 부상<br />

당한 사람들, 눈이 먼 사람들이 등장하여 도망치는 장군과 전쟁의 “하이에나들<br />

Hyänen”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별이 하늘에서 무너져 쏟아지고, 모든 인간은 최후를<br />

맞이한다. 그 순간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그걸 원하지 않았노라 Ich habe es<br />

nicht gewollt.” 인류의 멸망은 인간 스스로에 의한 재앙이라는 말이다. 타락하고 부패<br />

한 시민 사회와 문화에 대한 그의 관점은 “종말론적인 차원 apokalyptische Dimension”<br />

에 뿌리내리고 있기 42) 때문에 그는 참혹한 이 전쟁도 시민 사회의 부패와 타락에서<br />

그 원인을 찾고 있으며, 시민 사회의 종말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br />

면의 마지막 대사는 트라클의 시 「그로덱」의 마지막 구절과 같은 의미의 “태어나지<br />

않은 아들”이 등장한다.<br />

우리, 범행에 대한 미래의 증인들이,<br />

당신들에게 청하노니, 예방 조치를 해주십시오.<br />

절대로 우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말입니다!<br />

당신들의 치욕을 고발하는 배신자일 겁니다.<br />

42) Apokalyse. Weltuntergangsvisionen in der Literatur des 20. Jahrhunderts. Hrsg. v. G. E. Grimm, W.<br />

Faulstich u. P. Kuon. Frankfurt a.M. 1986. S. 36.


그러한 영웅 아비들을 원치 않습니다.<br />

무명으로 우리는 소멸하고 싶습니다. 43)<br />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29<br />

희망이 없는 미래를 암시하는 “태어나지 않은 손자들”이나 “태어나지 않은 아들”<br />

이라는 모티브의 유사성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트라클과 크라우제는 서로 교분이 있었<br />

고, 트라클이 죽기 직전의 한 군사 우편 엽서에 크라우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할 정도<br />

의 관계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영향 관계에 의한 것임은 짐작해볼 수 있다. 44)<br />

4. 휴머니즘으로의 변증법<br />

브레히트의 작품에서 ‘전쟁’은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br />

그의


43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그때 세상의 한 끝에서 커지는 소리 있었다<br />

드높은 하늘에 부서지는 울부짖는 소리가,<br />

미쳐 날뛰는 입들에서 흘러나와<br />

광기를 머금고 하늘을 향해 커져 가는 울부짖음이.<br />

수천의 입술이 저주하며 창백해졌고<br />

수천의 손이 증오 속에서 사납게 쥐어졌다.<br />

그리고 세상의 다른 끝에선<br />

드높은 하늘에 부서지는 환호 소리,<br />

환성을 지르는 소리, 미쳐 날뛰는 소리, 기뻐 광란하는 소리,<br />

안도의 숨소리 그리고 가슴 펴는 소리.<br />

수천의 입술이 옛 기도로 간절히 웅얼대었다<br />

수천의 손이 포개어졌다 경건하게 그리고 끊임없이.<br />

깊은 밤인데도<br />

전보 전신줄은 노래했다<br />

전쟁터에 남겨진 죽은 이들에 대해 …<br />

보라, 적막해졌다 우리 진영도 적 진영도.<br />

……<br />

오로지 어머니들만 눈물을 흘렸다<br />

이쪽에서도-그리고 저쪽에서도 45)<br />

1914년11월에 쓰인 이 시는 이미 같은 시기에 쓰인 여러 시들의 반전적 테제를 하<br />

나로 통합한 시인데, 46) 그가 이미 문학에 있어 그의 전형적인 변증법적 설정을 터득<br />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br />

긴 전투는 저녁이 되어서야 승리로 끝나고 승전보는 당시로서는 초현대 기술인 전<br />

45) Brecht, Bertolt. Große kommentierte Berliner und Frankfurter Ausgabe. Hrsg. v. W. Hecht u.a.<br />

Band13. Gedichte 3. Berlin u.a.1993. S. 73f.<br />

46) 브레히트는 이미 1914년 8월부터 그해 가을 사이에 「감사 미사 Dankgottedienst」, 「성스런 소득<br />

Der heilige Gewinn」, 「제3연대의 사상자 Die Toten vom 3. Regiment」, 「어머니란…Mutter sein…」,<br />

「전쟁 구제 사업 Kriegsfürsorge」 등의 시를 지었다. 그런데, 이 시들의 내용이 이 「현대 전설」 속<br />

에 반영되고 있다. 지면상 이 시들의 자세한 소개는 생략한다. Vgl. Ebd. S. 71ff.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31<br />

보를 타고 후방으로 알려진다. 위에서 소개한 하임의 「전투 후」와 마찬가지로 전투가<br />

끝난 후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시적 자아가 훨씬 더 높은 곳에서 두 쪽 난 세상의 두<br />

끝이 만나는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어, 아군과 적군 진영 모두를 들여다보고 있다. 제<br />

1연은 바쁘게 승전보를 띄우는 광경이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울부짖음”, “증<br />

오”, “저주”가 한 덩이 된 “세상의 한 끝 ein Ende der Welt”의 처절한 모습과 중첩되<br />

어 대비된다. 그리고 이 제2연은 제3연의 “환호”, “광란”, “안도” 그리고 “감사기도”<br />

의 모습으로 축제의 한 마당을 이루고 있는 “세상의 다른 한 끝”과 강렬하게 대조되<br />

며, 제4연에서 그러한 축제 분위기는 가라앉고 죽은 병사를 애도라도 하는 것처럼 전<br />

보전신줄의 처량한 소리가 시의 분위기를 다시 반전시킨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장면<br />

전환이 일어나는 마지막 연에 등장한다. 패배건 승리건 두 진영은 진정되어 적막 속<br />

으로 잠길 것이나, 멀리 고향에서는 그 두 진영의 어머니들이 흐느끼고 있을 것이라<br />

는 것이다. 승리와 패배의 야단법석이 이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는 무의미해지는 것이<br />

다. 1연에서 마지막 직전의 4연까지는 청각과 시각에 의한 인지, 즉 “구체적 진실을<br />

서술” 47)의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는 이제 구체적 인지보다는 마음으로 읽<br />

도록 강제하여 심부(心府)에 묻혀있던 정서를 일으켜 세우는 문장 이 마지막 연의 문<br />

구인 것이다.<br />

1연과 2연이 승전과 패배의 대비이고, 2연과 3연은 패배와 승리의 대비이며, 3연<br />

과 4연 역시 살아남음의 환희와 죽음의 대비이다. 즉, 승리와 패배, 승리자와 패배자,<br />

적과 친구,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삶과 죽음이라는 상이한 테제들이 이렇게 1연에<br />

서 4연까지 대조법에 의하여 서로 얽혀 있는데, 결국은 명제와 반명제에 의한 사고의<br />

유도를 의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변증법적 논리의 흐림 속에 고정된 正과 反이 존재<br />

하는 것이 아니라, 反이 곧바로 正으로 작용하고, 또 그에 대한 反이 등장하는 등 지<br />

속적으로 상황 대비가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의 흐름 속에서 승전과 패전, 아군과 적<br />

군, 나와 너 중 어느 것도 선(善)으로서의 양자택일도 아니며, 여기에 도덕적, 윤리적<br />

우월성을 논할 수 없다. 이렇게 전쟁의 결과물인 ‘승리’와 ‘패배’라는 두 등가물은 48)<br />

47) 브레히트의


43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어머니’라는 모티브 안으로 즉, 어머니라는 모티브가 갖는 휴머니즘의 깊이와 폭 안<br />

으로 포용되어 녹아 합(合)을 이룬다. 브레히트의 이 시는 전쟁이 갖는 비인도적 두<br />

얼굴로부터 오히려 휴머니즘을 창출해내고 있다.<br />

5. 나가는 말<br />

위에서 전쟁은 먼저 창조적 파괴에 대한 메타포로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br />

다. 또한 세상의 종말로서,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파멸로서 그려지고 있음도 알 수<br />

있었다. 폭력을 “창조적 광기”로 보거나, 폭력이 그 “창조성에 기반하여 정당화 되”<br />

기도 하지만, 49)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무의미하게 앗아간다는 이유 외에도<br />

인류가 쌓아온 문화를 파괴하고 역사의 지속성을 단절시키는 등 그 자체가 반인류적<br />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표현주의 젊은 작가들이 바랐던 새 세상도 폭력을 그 기반<br />

으로 하여 꿈꾸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비극을 배태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려낸 전쟁상<br />

은 새 세상을 염원하는 것만큼이나 처절하고 처참한 이미지였다. 1914년 이후 전쟁<br />

을 체험한 작가에게서도 이러한 주관적 형상화는 여전히 그들의 특징으로 남아 있다.<br />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전쟁의 환상이 전쟁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서 나온 것이든, 새<br />

시대의 도래에 대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든 상상을 초월한 현재전의 위력 앞에선 세<br />

상의 종말이라는 절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표현주의 작가 이 외의 작가들도 전쟁<br />

은 시민 사회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 경고하며 타락한 시민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br />

하고 나선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였다.<br />

그러나 독일 작가들의 전쟁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가 인간과 세상의 파멸에 대한<br />

절망감을 표현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전쟁의 무의미함을 계몽함으로써 황폐화된 인<br />

간 사회에 휴머니즘을 불어넣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독일 문학이 계<br />

몽주의적 휴머니즘의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시<br />

48) 승리자와 패배자의 등가성은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33<br />

민사회에 대한 좌절과 절망과 분노는 인류가 이제 막 열려고 하는 판도라 상자를 열<br />

지 않도록 경고하는 메시지, 그래서 남은 인류의 마지막 보물인 희망을 보존하고자<br />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br />

참고 문헌<br />

1차 문헌<br />

Brecht, Bertolt. Große kommentierte Berliner und Frankfurter Ausgabe. Hrsg. v. W.<br />

Hecht u.a. Band13. Gedichte 3. Berlin u.a.: Suhrkamp Verlag, 1993.<br />

Gryphius, Andreas. Gedichte. Eine Auswahl. Texte nach der Ausgabe letzter Hand von<br />

1663. Hrsg.v. A. Elschenbroich. Stuttgart: Reclam, 1987.<br />

Heym, Georg. Dichtungen. Stuttgart: Reclam, 1969.<br />

Derselbe. Gedichte. München: Piper, 1986.<br />

Jünger, Ernst. In Stahlgewittern. 44. Auflage. Stuttgart: Klett-Cotta, 2006.<br />

Kraus, Karl. Die letzten Tage der Menschheit. Tragödie in fünf Akten mit Vorspiel und<br />

Epilog. Frankfurt a.M.: Suhrkamp, 1986.<br />

Pinthus, Kurt (Hg.). Menschheitsdämmerung. Ein Dokument des Expressionismus.<br />

Hamburg: Rowohlt, 1959 (Berlin: Ernst Rowohlt, 1920).<br />

Remarque, Erich Maria. Im Westen nichts Neues. 25. Auflage. Köln: Kiepenheuer &<br />

Witsch, 2005.<br />

Trakl, Georg. Werke, Entwürfe, Briefe. Hrsg. v. H.-G. Kemper / F.R. Max. Stuttgart:<br />

Reclam, 1984.<br />

2차 문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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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당”, 브레히트와 현대 연극 2(1996). 132~164쪽.<br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폭력의 세기 (On Violence. 1970). 김정한 옮김. 서울: 이<br />

후, 1999.<br />

Apokalyse. Weltuntergangsvisionen in der Literatur des 20. Jahrhunderts. Hrsg. v. G. E.<br />

Grimm, W. Faulstich u. P. Kuon. Frankfurt a.M.: Suhrkamp, 1986<br />

Basil, Otto. Georg Trakl. In Selbstzeugnissen und Bilddokumenten. Reinbek bei<br />

Hamburg: Rowohlt, 1965.<br />

Berger, K. H. u.a. Schauspielführer in zwei Bänden. 1.Bd. Berlin 1986.<br />

Eibl, Karl. “Expressionismus”. In: Geschichte der deutschen Lyrik vom Mittelalter bis<br />

zur Gegenwart. Hrsg.v. W. Hinderer. Stuttgart: Reclam, 1983. S. 420-438.<br />

Falk, Walter. Der kollektive Traum vom Krieg: epochale Strukturen der deutschen<br />

Literatur zwischen “Naturalismus” und “Expressionismus”. Heidelberg: Winter,<br />

1977.<br />

Ferguson, Niall. Der falsche Krieg. Der Erste Weltkrieg und das 20 Jahrhundert. 3.<br />

Auflage. München: DTV, 2006. [1. Auflage: 2001].<br />

Kesting, Marianne. Bertolt Brecht. Mit Selbstzeugnissen und Bilddokumenten. Hamburg:<br />

Rowohlt, 1985.<br />

Lemke, Gerhard. Georg Heyms Gedicht


Zusammenfassung<br />

Der Erste Weltkrieg im Spiegel der Literatur<br />

- Visionen und Realität<br />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35<br />

Lee, Jeong-Jun (Sungkyunkwan Univ.)<br />

Vorstellungen über den Krieg sind je nach Autor so verschieden, wie das Spektrum<br />

der Kriegsbilder breit ist, angefangen von Kriegsbegeisterung bis hin zum Pazifismus.<br />

In der vorliegenden Abhandlung werden Kriegsbilder von G. Heym, G. Trakl, E.M.<br />

Remarque, K. Kraus und vom jungen B. Brecht vorgestellt und miteinander verglichen.<br />

Dabei soll versucht werden, Unterschiede und Gemeinsamkeiten zwischen ihnen heraus<br />

zuarbeiten.<br />

In seinem Gedicht “Der Krieg I” gestaltet G. Heym durch Szenen der Zerstörung<br />

nicht einen bestimmten Krieg, sondern die Vision des Endes der Welt. Der<br />

Vierundzwanzigjährige, der noch keinen Krieg erlebt hatte, greift dabei auf Bilder der<br />

Bibel und auf andere Kunstwerke zurück. Für ihn ist der Krieg eine Metapher für die<br />

“große Negation” des Raums, in dem er existiert. Überdies sieht er den Krieg als<br />

Metapher für die “ganz große Veränderung”. In diesem Sinn ist der Krieg für ihn eine<br />

Metapher für die Hoffnung auf ein neues Leben.<br />

G. Trakl, der 1914 am Kriegsgeschehen selbst teilgenommen hat, hatte vor dem<br />

Ausbruch des Krieges in die allgemeine Kriegsbegeisterung eingestimmt. Doch sollte<br />

sich diese Einstellung bald ändern. In seinem letzten Gedicht “Grodek” (1914) herrscht<br />

eine tief pessimistische, apokalyptische Stimmung. Dieses Gedicht ist eine Klage über<br />

den Krieg, der in den totalen Untergang führt. Ein Vers des Gedichts heißt: “Alle<br />

Straße münden in schwarze Verwesung.”<br />

Der Roman “Im Westen nichts Neues” von E. M. Remarque ist ein Bericht “über<br />

eine Generation, die vom Kriege zerstört wurde”, wie der Autor selbst in einer


43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Vorbemerkung aussagt. Er schildert den Krieg realistisch und ist spürbar um Objektivität<br />

bemüht. Hauptfigur des Romans ist der Ich-Erzähler Paul Bäumer, ein Soldat, der zu<br />

Beginn ein einfacher Junge unter anderen war. Der Krieg entfremdet ihn jedoch der<br />

Familie, der Gesellschaft und schließlich seines eigenen Lebens. Was ihm letztlich<br />

übrig bleibt, ist die Angst vor der Ungewissheit der Zukunft. Schließlich begibt er sich<br />

in tödlicher Gefahr, vermutlich freiwillig.<br />

K. Kraus war der Ansicht, der Krieg beginne vor allem mit Manipulationen und<br />

Provokationen. Jeder Akt des Dramas “Die letzten Tage der Menschheit” beginnt<br />

anfangs mit dem Ruf des Zeitungsausrufers, der eine Extraausgbe anbietet. Damit<br />

verweist K. Kraus auf die Rolle der Presse, auf ihre Manipulationen und<br />

Provokationen. Ziel seiner Kritik ist die allgemeine Sprachverfälschung, die tiefe Kluft<br />

zwischen Sprache und Wirklichkeit. In sachlicher Hinsicht kritisiert er Kommerz und<br />

Militärs.<br />

Die These vom “ungeborenen Sohn” oder “Enkel”, die G. Trakl und K. Kraus nicht<br />

zufällig zugleich behandelten, ist der Ausdruck einer tief pessimistischen<br />

Endzeitstimmung.<br />

Das Gedicht “Moderne Legende” (1914) von B. Brecht ist ein thematischer<br />

Zusammenschluss seiner zuvor geschriebenen Kriegsgedichte. In diesem Gedicht hat er<br />

verschiedene Thesen dialektisch aufeinander bezogen: Sieg und Niederlage, Sieger und<br />

Besiegte, Überlebende und Tote, Feinde und Freunde. Dabei funktionieren sie als<br />

These und Antithese, die aber nicht als Alternativen aufeinander folgen. Die eine<br />

davon, z.B. der Sieg, ist der anderen, z.B. der Niederlage, geistig und moralisch nicht<br />

überlegen. Das heißt, These und Antithese tragen Äqivalenzen, sie schließen sich nicht<br />

vollständig gegenseitig aus. Sie führen schließlich zu dem Bild der weinenden Mütter.<br />

Damit schafft der erst sechzehnjährige Brecht ein humanes Bild, das aus dem<br />

dialektischen Streben von Kräften und Gegenkräften hervorgeht.<br />

Die Literatur spiegelt den Krieg zunächst metaphorisch als eine Art von<br />

schöpferischer Zerstörung, darüber hinaus aber auch als Untergang des einzelnen<br />

Menschen, schließlich als allumfassende Vernichtung der Menschheit. Die Literatur


Keyword<br />

(한글/독일어)<br />

전쟁<br />

Krieg<br />

종말론<br />

Apokalypse<br />

표현주의<br />

Expressionismus<br />

문학 속에 비추어진 제일차세계대전 437<br />

versucht dabei, den allgemeinen Zerstörungstendenzen der Zeit Bilder der Humanität<br />

entgegenzuhalten.<br />

브레히트<br />

Brecht<br />

∙필자 E-Mail: skkjjl@skku.ac.kr (<strong>이정준</strong>)<br />

∙투고일: 2006년 12월 27일/ 심사일: 2007년 1월 25일/ 심사완료일: 2007년 1월 31일<br />

제일차세계대전<br />

Der Erste Weltkri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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