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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 - 한국브레히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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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br />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br />

-오동식의 <br />

<strong>정민영</strong>(한국외대)<br />

카를 발렌틴 Karl Valentin(1882-1948)은 20세기 전반기, 뮌헨을 중심으로 독일 대<br />

중예술 분야의 중심에 위치했으나, 그의 예술 활동은 국내 학계나 연극계에서 아직<br />

본격적인 소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발렌틴은 극장식 식당의 무대에서 노<br />

래하는 민중가수로 출발하여 희극배우, 카바레티스트, 극작가, 영화제작자로서 대중<br />

오락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의 코믹 텍스트들은 전통적인 극형식에서 탈<br />

피한 열린 텍스트로서 소극, 카바레트 텍스트, 단막희극 등 장르의 경계를 넘는 다양<br />

한 형식적 특징과 함께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공연텍스트라 할 수 있다. 무<br />

엇보다 그의 텍스트는 대중예술의 현장과 연결되어 있고, 민중의 삶에 밀착된 독특함<br />

을 지녀 연극인들이 주목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1년에 그의<br />

텍스트가 가진 희극성 전반을 논한 첫 논문과 국내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보편성을<br />

지닌 22편의 텍스트를 묶은 번역서가 거의 동시에 나와 그의 예술 세계가 한국에 처<br />

음 소개되었다. 1)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바로 발렌틴에 주목<br />

했다. 연희단거리패는 발렌틴의 변두리극장 Theater in der Vorstadt(1910/1941)을<br />

중심으로 다른 다섯 편의 텍스트를 붙여 각색한 을 무대에 올린다. 2) 작<br />

위적 웃음이 아닌 공감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수준 높은 희극을 만나기 어려운 국내<br />

* 이 논문은 2012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내 학술연구비지원에 의하여 작성된 것임.<br />

1) <strong>정민영</strong>: 예술로서의 대중오락 - 칼 발렌틴의 희극성, 실린 곳: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24집, 2011,<br />

239-261쪽. 카를 발렌틴, <strong>정민영</strong> 옮김: 변두리 극장, 지만지, 2011.<br />

2) <strong>정민영</strong> 번역, 오동식 각색, 연출. 2011년 12월 24일 - 2012년 1월 22일. 게릴라 극장. 이 작품은 본<br />

격적인 서울 게릴라극장 공연에 앞서 2011년 12월 17일 김해 도요가족극장에서 초연되었고, 2012<br />

년 2월 18일, 김해 도요가족극장에서 재공연 되었다.


12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연극계의 상황에서 오동식 연출의 은 우리 희극 무대의 폭을 확대하고<br />

질을 높이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연으로 평가할 수 있다. 표현<br />

형식에 있어서도 은 카바레트 양식을 수용한 공연으로서 한국에 존재<br />

하지 않는 공연양식인 카바레트의 수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은 독일 희곡을 수용하는 우리 연극계의 현장 기록에 일부가 될 가치가 있다고<br />

판단된다. 이 논문은 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자 기록으로서 한국의 독일<br />

희곡 수용사를 위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하며, 향후 카를 발렌틴 작품의 또 다른 공연<br />

을 위한 자료로서 생산적인 기능을 하리라 기대한다.<br />

2. 카바레트 드라마<br />

오동식 연출의 은 국내 관객들에겐 생소한 “카바레트 드라마”를 표<br />

방한다. 공연 프로그램은 이 형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br />

카바레트 드라마는 오늘날 엔터테인먼트적 개그나 말장난과 구별되는 민중소극 양식이다.<br />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인간의 삶 전반에 대한 비판적 유머이며 획일적 사회를 거부하는<br />

깽판의 미학이다. [...] 카바레트 드라마는 철학적 심미적 주제와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위트<br />

와 유머로 표현하는 게릴라식 막간극, 혹은 촌극 양식이다. 3)<br />

이 같은 소개로 보자면 은 고급 희극으로서 요즘 대학로나 TV에서<br />

인기를 끌고 있는 단순한 개그 무대와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시민 사회의 여러 가지<br />

문제를 고차원의 비판적 웃음으로 풀어내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연<br />

이 차용하고 있는 카바레트는 본래 음식과 함께 공연도 즐기는 프랑스 카페 문화에<br />

서 출발한 것으로 독일어권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에 문학작품의 패러디, 성<br />

적인 소재를 다루는 노래와 춤, 그리고 정치와 사회의 여러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br />

는 시대 풍자가 섞인 오락극으로 그 기틀이 마련되었다. 4) 무엇보다 카바레트의 가장<br />

3) 공연프로그램, 11쪽.<br />

4) Vgl. Klaus Budzinski: Das Kabarett, Düsseldorf 1985, S. 119.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29<br />

중요한 구성요소는 현시대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공격이다. 공격의 대상은 정치, 사<br />

회의 현안 문제를 비롯하여 시민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결함, 부당함 등 개혁<br />

과 변화를 요구하는 제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격의 대상이 되는 문제가 누구나<br />

알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며 카바레티스트는 이를 풍자와 패러디, 위트, 유머,<br />

희화화의 양식으로 전달해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관객과의 직접적인<br />

소통, 관객의 빠른 문제인식으로 이루어지는 무대와 객석의 살아있는 상호작용은 무<br />

대예술로서 카바레트가 지닌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5) 프로그람 Programm이란<br />

명칭으로 불리는 카바레트 공연은 대부분 ‘Nummer’라고 하는 독립된 짧은 장면들의<br />

조합으로 구성된다. 병렬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이 짧은 장면들은 공연의 주제에 따라<br />

서로 연관된 내용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내용이기도 한 에피소드의 성격을 갖는다.<br />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플롯이나 줄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br />

카를 발렌틴의 변두리극장은 장르로 볼 때 카바레트 텍스트가 아니라 연극 텍스<br />

트이다. 6) 그러나 변두리극장은 줄거리 없이 한 악단의 연습과정에서 일어나는 여<br />

러 가지 에피소드들의 느슨한 연결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여가수의 노래, 바리에<br />

테 Varieté 7) 형식의 쇼 장면이 삽입되어 형식 상 카바레트 식의 공연이 가능하다. 작<br />

품 전체를 지탱하는 축은 지휘자와 악단원 중 하나인 발렌틴의 끊임없는 논쟁으로,<br />

이를 통해 지휘자로 상징되는 권위와 획일적 질서에 대한 발렌틴의 저항이 전면에<br />

드러난다. 공연 은 이 같은 원작의 중심 틀을 그대로 살리고 일상의 삶<br />

과 사회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카를 발렌틴의 다른 텍스트 다섯 편을 삽입하<br />

여 에피소드의 병렬 구성을 강화하고 장면과 내용을 다양화한다.<br />

카바레트의 핵심은 모든 권위에 대한 부정이며 현안 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논의이<br />

다. 다시 말해 카바레트의 매력은 비판의 자유로움과 현재성이라 할 수 있다. 전통<br />

5) 카바레트의 구체적인 형식적 특징에 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strong>정민영</strong>: 독일어권 카바레 연<br />

구(2) - 카바레의 구성과 기능, 실린 곳: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13집, 2005, 219-237쪽.<br />

6) 변두리극장은 부제로 “2막 희극 Komödie in zwei Akten”이라 명기되어 있다. Karl Valentin:<br />

Theater in der Vorstadt, in: ders.: Sämtliche Werke in 9 Bänden, Bd. 5. Stücke, hrsg. v. Manfred<br />

Faust u. a., München 2007, S. 11. (이후 발렌틴의 텍스트 인용은 이 전집에 의거하며 SW로 축약<br />

표기함.)<br />

7) 곡예와 춤, 노래 등으로 이루어지는 쇼 형식의 오락 공연. Vgl. Brockhaus Wahrig Deutsches<br />

Wörterbuch in 6 Bänden, Bd. 6, Stuttgart 1984, S. 459.


13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연극이나 오페라 등 격식을 차려야 하는 소위 고급 공연예술의 권위적인 극장 분위<br />

기와 달리 카바레트는 맥주나 와인 등을 마시며 관람할 수 있고 극장 로비에서는 흡<br />

연도 가능하다. 공연장 자체부터 카바레트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추구한다. 카바레<br />

티스트의 연기는 관객을 향한다. 카바레티스트의 대화 상대는 관객이기 때문이다. 그<br />

렇기 때문에 관객과의 직접적인 접촉, 그리고 웃음과 박수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관객<br />

의 적극적인 피드백 반응과 참여가 카바레트 공연을 완성한다. 8) 은 일<br />

단 이 같은 카바레트 극장의 자유로움에 가까이 가 있다.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br />

배우들은 무대에 나와 있고, 간단한 마술로 관객과 바로 접촉하며 직접적인 소통을<br />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배우와 직접 만나는 극장의 분위기에 쉽게<br />

익숙해질 수 있다. 이어서 한 배우가 신문을 읽고 그 내용에 관해 관객과 대화를 나<br />

눈다.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대화는 신문 기사의 내용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잘<br />

알려진 현안 문제를 다루는 카바레트의 본질, 즉 시의성과 현재성에 관객을 끌어들이<br />

는 효과를 낳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삶의 현재를 인식하게 되며 본 공연에서 다루어<br />

지는 일상과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것이 현재의 문제임을 인식하는 자세를 계속<br />

유지하게 된다. 또한 원작의 지문, “무대 안의 무대 Bühne auf Bühne” 9)에 따라 무대<br />

뒤편에 따로 만든 무대는 붉은 커튼의 막과 테두리의 반짝이 조명, 그리고 기본조명<br />

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필수적인 기본 장치만 설치하는 카바레트 무대를 실현한다. 10)<br />

은 공연프로그램의 작품소개에서 밝혔듯이 카바레트 형식에 더하여<br />

“민중소극의 양식”을 활용하고 공연자체를 “광대극” 11)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세부터<br />

발전한 소극 Farce은 본래 짧은 막간극의 형태로 기득권층이나 지배세력을 풍자로<br />

비판하는 민중의 저항 정신을 담고 있다. 더불어 서민의 일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br />

수 있는 전형적인 성격, 예를 들면 사기꾼이나 구두쇠 같은 인물들을 과장과 과격한<br />

언어로 공격하여 조롱하고 웃음의 희생자로 삼는다. 12) 배우들은 가면을 착용하거나<br />

8) Vgl. Michael Fleischer: Eine Theorie des Kabaretts, Bochum 1989, S. 122.<br />

9) SW, Bd, 5, S. 11.<br />

10) 카바레트는 환상을 필요로 하는 일반적인 연극과 달리 현시대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말 중<br />

심의 예술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무대나 사실적 무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strong>정민영</strong>: 독일어권 카바<br />

레 연구(2), 앞의 논문, 220쪽 참조.<br />

11) 공연프로그램 표지.<br />

12) 유기환 외: 웃음과 소극(笑劇)의 시학, 실린 곳: 한국프랑스학논집, 제 46집, 2004, 223, 226쪽 참조.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31<br />

신체를 기형적으로 과장 표현하는 분장과 의상을 이용하여 관객의 즉각적인 관심을<br />

유도하고 관객의 즐거움과 웃음을 끌어내는 데 그 첫 번째 목적을 둔다. 소극은 관객<br />

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오락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교화 보다는<br />

웃음 자체에 목적을 둔, 민중의 삶에 밀착된 공연 장르라 할 수 있다. 13)<br />

의 배우들은 공연프로그램에 모두 “광대”로 명시되어 있고 얼굴에<br />

흰 분칠 분장을 하여 처음부터 이들이 광대임을 알 수 있다. 연기는 사실적인 세밀한<br />

연기가 아니라 과장되고 거친 연기로 웃음을 유발한다. 무대를 돌아다니며, 또는 지<br />

휘석 안에 설치한 스프링 신발을 이용해 몸의 움직임을 극대화한 지휘자(지휘하는<br />

광대, 이승헌 분)의 지휘 연기, 망가져 올라가지 않는 막 뒤에서 막에 대고 발길질하<br />

는 여가수(김아라나 분)의 과장된 행동, 여가수의 노래 공연 중 떨어져 버리는 샹드<br />

리에 등은 웃음을 목표로 한 시끌벅적한 소극의 양식을 보여준다. 연출자 오동식은<br />

여기에 전형적인 코미디 형식인 슬랩스틱을 더하여 희극성을 강화한다. 이를 위해 연<br />

출자가 이용하는 원작 변두리극장의 장면은 지휘자의 아내가 등장하는 장면이다.<br />

지휘자의 아내는 남편과 여가수의 연애관계를 눈치 채고 공연장에 들이닥친다. 이 에<br />

피소드 장면은 마누라에게 얻어맞을 정도로 꼼짝 못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남편이<br />

라는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소재를 이용해 지휘자를 바보로 만들어 권위를 아무 것도<br />

아닌 것으로 추락시키는 동시에 재미를 높이는 기능을 갖고 있다. 원작은 여가수와<br />

아내의 말싸움, 그리고 지문을 통해 지휘자가 밖에서 아내에게 따귀를 맞는 상황이<br />

소리만 들리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공연은 맞고 넘어지는 행위를 무대 위에서<br />

직접 연출한다.<br />

배미향(여가수 역 - 필자) 이승헌의 따귀를 때린다.<br />

[...]<br />

배미향과 김아라나(지휘자의 아내 역 - 필자)는 싸우기 시작한다.<br />

[...]<br />

김아라나와 배미향이 싸우다가 결정타를 날리는 김아라나. 배미향 쓰러진다. 14)<br />

13) 앞의 논문, 233쪽 참조.<br />

14) 오동식 각색, 공연대본(미출간), 20쪽.


13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이어서 끼어드는 남자 악단원 세 명에게 지휘자의 아내가 각각 차례로 주먹을 날<br />

리고 악단원들이 바닥에 길게 누워버려 무대는 난장판으로 변한다. 이 같은 연출을<br />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카바레트의 특질이기도 한, 변두리극장 본래의 특질, 즉 말<br />

을 중심으로 한 놀이와 소극의 중요한 표현 요소인 직접적인 행위, 몸의 놀이가 결합<br />

된 무대이다. 다음과 같은 연출의 글은 이 - 번역을 통한 것이기에 한계<br />

가 있을 수밖에 없으나 - 발렌틴의 언어에 한국 배우의 몸을 결합한 의미 있는 수용<br />

의 결과물임을 확인하게 해 준다.<br />

이 작업을 시작하기에는 광대라는 단어보다는 카바레트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br />

광대극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말들이 꽤 무거운 의미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br />

우리가 알던 광대나 삐에로들은 말이 없다. 그들은 행위를 통해 말을 하고 때로는 말이 필<br />

요 없는 명확한 의미를 던져준다. 말의 의미성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카바레트 드라마의 광<br />

대는 현학적이며 고유의 언어유희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때로는 말의 의미를 전복시킨<br />

다. 이러한 이유로 말의 놀이에 중점을 두자 꽉 막혔다. 설정과 구성만 있지 광대극의 재미<br />

가 없어졌다. 그래서 다시 몸으로 돌아간다. 뛰고 구르고 자빠지니 말이 명확해졌다. 15)<br />

이 표방한, 사실 존재하지 않는 생소한 장르명칭, “카바레트 드라마”<br />

는 결국 카바레트가 지닌 비판과 저항의 정신, 언어 중심 놀이에 행위가 중심인 연극<br />

본연의 특질을 더한 공연 양식을 의미한다. 언어와 몸이 결합하여 언어가 더욱 살아<br />

나고, 그로 인해 단순한 소극의 웃음이 고차원의 비판적 웃음으로 상승한 무대라는<br />

의미에서 은 카를 발렌틴의 연극 텍스트가 가진 희극성의 가치를 재인<br />

식하도록 만든다.<br />

3. 공연 텍스트의 구성<br />

공연 은 변두리극장을 중심 텍스트로 놓고 발렌틴의 다른 다섯 편<br />

의 텍스트를 처음과 중간에 배치하여 재구성한 공연텍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사용된<br />

15) 오동식: 연출의 글. 변두리극장, 실린 곳: 공연프로그램, 10쪽.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33<br />

원작 텍스트들은 각색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장면이 삭제되거나 변형되었으나 원작을<br />

크게 벗어나는 것은 없다. 덧붙인 각색 장면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다시<br />

일어설 수 있는 조화의 힘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공연텍스트는 기본적<br />

으로 원작에 충실한 텍스트이며 변두리극장 외에 작가의 다른 텍스트를 사용함으<br />

로써 결과적으로 발렌틴의 작품 소개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본래 변두리극장<br />

은 2막 구조로 되어 있으나 특정한 플롯이 없이 에피소드 형태의 장면이 연결된 병<br />

렬구조이기 때문에 막 구분의 의미가 없으며 장면 순서의 변경이나 즉흥 연기의 가<br />

능성이 크게 열려있다. 이 같은 변두리극장의 열린 구조는 여러 다른 장면을 더하<br />

거나 빼어 자유롭게 극을 구성할 공간을 제공한다. 작품의 재구성에 이용된 발렌틴의<br />

다른 텍스트는 극장에 갈 때 Theaterbesuch (1933), 웃기는 연애편지 Ein komischer<br />

Liebesbrief (1907/1908), 전쟁에 관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Vater und Sohn über<br />

den Krieg (1947), 예쁜 말로 싸우기 Streit mit schönen Worten (1940), 그리고 제본<br />

공 바닝거 Buchbinder Wanninger (1940)이다.<br />

주 텍스트인 변두리극장은 텍스트 대부분이 공연텍스트에 모두 사용되고 있으<br />

나 비교적 부피가 큰 독립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자전거곡예 장면과 우연에 관한 지<br />

휘자와 악단원 발렌틴 간의 논쟁 장면이 빠져있다. 자전거곡예 장면은 통속적인 바리<br />

에테의 쇼 형식을 활용해 관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오락의 기능을 강화한다. 또한<br />

이 장면은 묘기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는 소개와 달리 곡예가 엉터리임이 드러<br />

나면서 당시 의미 없는 속임수와 같은 대중오락 무대의 현실을 풍자하는 발렌틴의<br />

의도가 담긴 장면이다. 이 장면의 삭제는 우선 의 공연장인 게릴라 극<br />

장이 소극장인 관계로 충분한 무대 공간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해<br />

가 가는 부분이다. 삭제된 우연에 관한 논쟁 장면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br />

극 중 악단원인 발렌틴은 산보 중 자전거 타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자전거<br />

타는 사람이 나타난 게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자전거 타는 사람을<br />

본 장소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곳이다. 지휘자는 당연히 그 같은 장소를<br />

이유로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흔하지 않은 예로 비행사 얘기 중 비행기가 지나<br />

가면 우연일 수도 있다고 반박한다. 발렌틴은 내일 다시 산보를 가서 비행사 얘기를<br />

해 보고 그런데도 자전거 타는 사람이 나타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대든다. 상식과<br />

거리가 먼 발렌틴의 논리는 웃음을 야기하며, 여기에 이용된 우연은 경직성이나 획일


13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성으로부터의 탈출, 또는 완고한 규범이나 규칙과 같은 고착된 틀에 대한 저항이라는<br />

의미를 담고 있다. 16) 카를 발렌틴은 철저하게 계산된 우연을 이용해 예상치 못한 상<br />

황을 만들어내고 그 혼란의 상황이 웃음의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우연은 그의<br />

텍스트에서 희극성의 차원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br />

연에 관한 논쟁 장면 삭제는 아쉬운 부분이다.<br />

공연텍스트와의 비교를 위해 변두리극장의 장면 구성을 상황 중심으로 정리해<br />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행위의 주체는 연주자 발렌틴이다.<br />

1) 지휘자에 대한 험담. 험담을 들키고도 엉뚱한 행위와 말장난으로 지휘자를 더<br />

욱 골탕 먹이기.<br />

2) 망가진 막. 막을 수리할 사람을 찾는 일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br />

3) 소프라노의 노래 . 노래 중 막을 수리하고 무대까지 올라간 발<br />

렌틴이 바이올린 활로 소프라노의 가발을 벗기고 프롬프터의 손을 밟아 난장판이 되<br />

는 무대.<br />

방해.<br />

4) 예의와 핸드백을 도둑맞은 여자에 관한 발렌틴과 지휘자의 논쟁.<br />

5) 자전거 곡예. 엉터리 쇼에 대한 발렌틴의 비판.<br />

6) 지휘자의 자작곡 연주. 도돌이표를 빌미로 반복 연주하여 공연 방해.<br />

7) 여가수의 노래 . 가사를 잊은 여가수 모욕 주기.<br />

8) 지휘자의 아내 등장. 여가수와 바람피운 지휘자에 대한 아내의 응징.<br />

9) “리듬”을 사람 이름이라 하고 밑으로 쳐진 지휘자의 넥타이를 트집 잡아 진행<br />

10) 눕혀진 악보에 따라 누워 연주하기, 휘파람 불기, 멜빵이 끊어졌다고 중단시키<br />

기, 지휘자의 말꼬리 잡기 등 엉뚱한 행위로 연주 방해.<br />

11) 팀파니 옮기기. 안더를과 함께 팀파니를 드는 방향을 놓고 지휘자와 논쟁하기.<br />

12) 우연에 관한 지휘자와의 논쟁.<br />

이처럼 어느 극장 악단의 연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엮어 놓은<br />

16) Vgl. Klaus Zeyringer: Die Komik Karl Valentins, Frankfurt am Main 1984, S. 139.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35<br />

변두리극장은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중심 구조는 각 상황 마다 부딪히는 지휘자<br />

와 연주자 발렌틴 간의 대립구조이며, 거의 모든 장면은 이 두 인물의 충돌로 이루어<br />

지는 2인극 형식이다. 이 대립관계는 일반적인 질서와 상식의 범주에서 이루어지는<br />

지휘자의 언어,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질서와 규칙, 상식의 경계를 파괴하<br />

고 예기치 못한 비정상과 비상식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발렌틴의 언어가 충돌하여 빚<br />

어지는 논쟁의 순환구조로 유지된다. 17) 변두리극장은 이 같은 형식을 통해 지휘자<br />

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의 권위주의와 경직성, 획일화된 사고, 그리고 “제도에 저항하<br />

는 끈질긴 싸움 zäher Kampf gegen die Institution” 18)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다른<br />

한편으로 이 작품은 당시 대중무대의 문제점이던 열악한 환경과 비생산적인 경영구<br />

조, 획일화되고 전형화된 안이한 공연, 예술가라기보다는 의식 없는 단순한 직업인에<br />

머물러 있던 배우 등에 대한 비판적 패러디이기도 하다. 19)<br />

연출자 오동식이 각색한 공연텍스트는 변두리극장을 중심으로 앞<br />

서 언급한 발렌틴의 다른 텍스트 다섯 편이 처음과 중간에 배치되어 있고 마지막에<br />

각색자의 창작 텍스트로 마무리된다. 인물은 모두 8명으로 배우 자신의 이름을 따르<br />

며 각 장면에 따라 1인 다역의 역할을 담당한다. 원전 텍스트의 장면 배치를 기준으<br />

로 공연텍스트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br />

1) 극장에 갈 때<br />

2) 웃기는 연애편지<br />

3) 변두리극장, 장면 1~4, 6.<br />

4) 전쟁에 관한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br />

5) 예쁜 말로 싸우기<br />

6) 제본공 바닝거<br />

17) Vgl. Babara Damm: „Es ist schon alles gesagt! Nur noch nicht von allen!“ Die Wortakrobatik des<br />

Karl Valentin, in: Im Prozeß der Kultur, hrsg. v. Frank Madro u. Alexander Schutz, Hamburg 2008,<br />

S. 26.<br />

18) Ursula Renate Riedner: „Theater in der Vorstadt“ von Karl Valentin und Liesl Karlstadt. Überlegung<br />

zur Analyse von Komik vor dem Hintergrund ihrer interkulturellen Vermittlung. in: Materialien<br />

Deutsch als Fremdsprache, H. 70, Regensburg 2003, S. 145.<br />

19) Vgl. Axel Hauff: Die Katastrophen des Karl Valentin, Berlin 1978, S. 260f.


13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7) 변두리극장, 장면 11, 7~8, 10.<br />

8) 무너지는 무대 - 각색자의 창작 지문<br />

이처럼 중심 텍스트인 변두리극장의 장면은 공연텍스트에서 그 본래의 순서가<br />

바뀌고 극장에 갈 때 와 웃기는 연애편지 는 프롤로그의 형식으로, 그리고 발렌틴<br />

의 다른 세 텍스트는 막간극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각 원전 텍스트들은 부분적으로<br />

삭제되거나 변형되어 있다. 발렌틴의 다른 텍스트를 결합함으로써 공연텍스트는 발<br />

렌틴의 언어적 재치와 언어의 희극적 특질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획일적인<br />

사회에 대한 바보의 저항이며 삐딱이의 깽판” 20)이라는 공연 주제를 더욱 강화하고<br />

심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나타낸다. 또한 발렌틴의 다른 텍스트 사용은 변두리극장<br />

이 지휘자와 악단원 발렌틴 간의 2인극 중심인 관계로 자칫 드러날 수 있는 단조로<br />

움을 다양한 장면의 확대로 보완하여 연극적 재미를 확보하기 위한 각색 의도로 평<br />

가할 수 있다.<br />

4. 광대놀이의 유쾌한 저항<br />

카를 발렌틴의 텍스트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서민의 세계이다. 고단한 삶의 무게<br />

를 잠시 털어내고 다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오락 장소인 극장식 주점 무대에서<br />

노래하고 연기하는 민중가수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발렌틴은 당시 민중가수들 대<br />

부분이 그러했듯 민중의 소리로 소시민의 삶을 대변했다. 시민의 세계는 그에게 대변<br />

과 비판의 표현대상인 동시에 인간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기<br />

때문에 그의 모든 텍스트는 민중의 삶에 밀착되어 있었고, 텍스트로 재구성되는 소시<br />

민의 수많은 삶의 상황들은 그들의 시각, 즉 아래로부터의 관점으로 이루어진다. 21)<br />

20) 공연프로그램, 11쪽.<br />

21) 카를 발렌틴의 텍스트에 드러나는 중요한 표현 대상은 빈곤함, 노동, 권위에 대한 경멸, 반부르주<br />

아, 반군국주의, 반관료주의, 사고의 경직성, 주변세계에 고착된 태도 등이다. Vgl. Klaus Pemsel:<br />

Karl Valentin. Volksverbunden - falsch verbunden? (Triumph des Unwillens), in: Karl Valentin:<br />

Volkssänger? Dadaist? Ausstellungskatalog, München 1982, S. 63ff.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37<br />

관객이 진정 공감하고 마음껏 편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은<br />

바로 그의 이야기가 관객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br />

은 인물들을 모두 광대로 설정함으로써 카를 발렌틴의 텍스트가 가<br />

진 이 같은 특성을 극대화한다. 광대극은 근본적으로 민중의 삶을 바탕으로 하기 때<br />

문이다. 또한 본 공연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술과 신문기사 읽기를 통해 관객들과 직<br />

접 접촉하고 함께 호흡하는 연기자들의 즉흥연기는 이 공연이 민중연극의 형식을 따<br />

르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제도적 장치에 대한 저항, 그리고 사고와 표현의 자유 공<br />

간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즉흥성은 민중의 시각을 중심으로 하는 연극에 중요한 특징<br />

이 되는 요소이다. 22) 은 공연 초반, 배우들의 즉흥연기로 무대와 객석<br />

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 관객의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한다.<br />

한 배우(김철영 분)가 신문기사의 내용을 주제로 관객들과 자유로운 즉흥 대화를<br />

이어가던 중 그의 아내(김아라나 분)가 연극 초대권을 얻었다며 호들갑을 떨고 등장<br />

하는 것으로 공연은 자연스럽게 본 공연으로 이어진다. 극장에 가기 위해 외출을 준<br />

비하면서 아직 귀가하지 않은 아들에게 메모를 남기려다 아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br />

부부의 황당한 상황을 보여주는 첫 장면은 극장에 갈 때 의 일부를 사용한 것이다.<br />

극장에 갈 때 는 소시민 부부가 우연히 고급문화 경험의 기회를 얻게 되었으나 그<br />

런 일이 낯설기만 한 남편이 외출준비를 끊임없이 방해하고, 마지막에는 부부가 초대<br />

권의 공연일자까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 드러나면서 법석을 떨었던 외출준비<br />

가 다 허사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통해 고급문화에 대한 소시민의 허위적 욕망을 풍<br />

자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은 이 텍스트에서 부부가 아들의 이름을 잊고<br />

옆집 여자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코믹한 상황과 메모를 쓰면서 비상식적인 문장을 써<br />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만 이용한다. 이로써 극장에 갈 때 의 본질적인 주제가 드러나<br />

지는 못하지만 공연의 시작에 가벼운 웃음으로 관객을 편하게 무대에 집중시키고, 다<br />

른 한편으로 단절된 가족관계라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인식시킨다는 점에서 각색의<br />

의미를 찾을 수 있다.<br />

이어지는 장면은 발렌틴의 소품 웃기는 연애편지 전문을 이용한다. 이 텍스트는<br />

‘쓰다’라는 동사의 여러 변형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반복으로 인한 희극성을 언어로<br />

22) 김효: 코메디와 코믹, 실린 곳: 외국문학연구, 5집, 1999, 6쪽 참조.


13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표출하는 독특한 텍스트로 발렌틴의 언어적 재능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오동식은<br />

여기에 기발한 배우의 움직임과 살아 움직이는 사물을 결합하여 볼거리를 연출한다.<br />

몇 가지 마술을 선보이던 연기자(이승헌)가 입고 있던 긴 검은 색 코트와 중절모를<br />

스탠드 옷걸이에 건다. 연기자는 옷을 털다가 옷걸이에 걸려있는 코트에 다시 한 쪽<br />

팔을 넣는다. 옷걸이 위에 걸려있는 중절모와 한쪽 팔을 넣은 코트로 인해 마치 중절<br />

모에 코트를 입은 사내가 연기자를 뒤에서 안고 있는 형상이 연출된다. 연기자는 코<br />

트에 넣은 팔과 나머지 신체를 각기 따로 움직여 마치 두 사람인 듯한 움직임을 완<br />

벽하게 연기하고, 코트를 입은 사내에게 안긴 남자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편지를<br />

읽는다. 왜 편지를 쓰지 않느냐고 하소연하는 내용과 반복되는 ‘쓰다’의 변형 문장,<br />

그리고 동성애의 이미지, 살아 움직이는 코트의 절묘한 조합은 그로테스크를 통한 희<br />

극성의 발현이다. 익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게 나타나고 전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br />

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함께 합쳐질 때, 즉 개연성이 없는 부분들이 하나로 결합되는<br />

일종의 과장 형태가 나타날 때 그로테스크가 생겨난다. 23) 본래는 사물일 뿐인 중절<br />

모에 코트를 입은 사내의 강요로 사람이 편지를 읽게 되는 상황처럼 사물이 인간보<br />

다 우위를 점하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 이를 통해 발생하는 당혹감은 웃음을 유발<br />

하고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든<br />

다. 24)<br />

이후의 무대는 변두리극장 1막에 해당한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원전의 악단<br />

원 발렌틴의 역할을 공연에서는 세 광대가 나누어 맡는다는 점이다. 딴지거는 광대<br />

(홍민수 분), 게으른 광대(김철영 분), 어설픈 광대(오동석 분)가 이들로, 이들은 원전<br />

의 인물 발렌틴이 보여주는 중요한 속성을 대표하고 있다. 이는 연출자의 인물 분석<br />

이 치밀했음을 증명한다. 변두리극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자와 발렌틴의 대립<br />

23) Vgl. James K. Feibleman: Der Sinn des Komischen, in: Wesen und Formen des Komischen im<br />

Drama, hrsg. v. Reinhold Grimm u. Klaus L. Berghahn, Darmstadt 1975, S. 80.<br />

24) 그로테스크는 카를 발렌틴의 텍스트가 가진 희극성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로테스크의 희<br />

극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텍스트로는 광대 듀엣 또는 미친 보면대 Das Clownduett oder die<br />

verrückten Notenständer (1919/1936)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키가 커지거나 돌아가 버리는 등, 살<br />

아 움직이는 보면대를 쫓아다녀야 하는 연주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사물에 끌려 다니고 사물이<br />

인간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는 그로테스크한 상<br />

황을 묘사한다.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39<br />

구도로서, 발렌틴의 상식을 벗어나는 시비에 의한 질서 깨기와 교묘한 지휘자 모욕<br />

주기를 통해 지휘자의 태도로 상징되는 사회의 획일성, 경직성, 권위 등 고착화한 모<br />

든 것을 비꼬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발렌틴의 행위는 철저하게 오케스트라<br />

의 공연을 방해하는 것으로 변두리극장은 “방해받은 공연의 공연 die Aufführung<br />

der verhinderten Aufführung” 25)을 보여준다. 에서 발렌틴 역할을 나누<br />

어 연기하는 세 광대는 자신들의 성격에 맞게 발렌틴의 방해 행위들을 특유의 연기<br />

로 구현한다. 세 광대는 시종일관 천연덕스럽고 뻔뻔하게 지휘자(지휘하는 광대, 이<br />

승헌)에 맞서고 그를 곤혹스럽게 만든다.<br />

예를 들어 딴지거는 광대의 방해 행위 중 하나를 보자. 지휘자가 연주를 시작하려<br />

하자 그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연주를 중단시킨다.<br />

이승헌: [...] 이제 시작합시다.<br />

홍민수: 쉬자고요?<br />

이승헌: 뭘 쉬어? 지금 시작하려고 하는데 뭘 쉬어? 누가 지금 쉬자고 그랬어요?<br />

홍민수: 방금 이제 쉬자고 안하셨습니까?<br />

이승헌: 난 - 이제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이제 쉬자고 한 게 아니라, 쉬자는 말은 당신이 했죠.<br />

홍민수: 내가 쉬자고 했나?<br />

이승헌: 물론이지 - 난 시작하자고 했고!<br />

홍민수: 아, 그게 쉬자는 말로 들렸구나! 26)<br />

25) Nachwort, in: SW, Bd, 5, S 534.<br />

26) 오동식 각색, 공연대본, 5쪽.<br />

원전: Kapellmeister: [...] jetzt fangen wir an -<br />

Valentin: Pause????<br />

Kapellmeister: Was Pause - Wie kommen denn Sie jetzt auf Pause - Wer hat denn jetzt ein Wort<br />

von einer Pause gesagt?<br />

Valentin: Haben nicht Sie grad Pause gesagt?<br />

Kapellmeister: Ich - - Ich hab ja gar nicht dran gedacht an eine Pause - Sie haben grad g’sagt Pause<br />

-<br />

Valentin: Ich hab’s g’sagt?<br />

Kapellmeister: Natürlich - grad im Moment haben Sie’s g’sagt -<br />

Valentin: Drum, ich habs ja ghört!!!<br />

(SW, Bd. 5, S. 13.)


14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연주하기 싫은 게으른 광대는 이때를 이용해 재채기를 할 시간을 달라며 또 연주<br />

를 중단시키고 정작 시간을 주자 재채기가 안 나온다며 지휘자를 황당하게 만든다.<br />

어설픈 광대는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가 끝났음에도 마지막에 한 박자를 늦게 불고는<br />

남들 보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난 거라는 이유로 지휘자의 화를 돋운다. 막이 망가<br />

져 제대로 올라가지 않자 막을 “바로잡아 줄 사람” 27)을 찾아보라는 지휘자의 말에<br />

막에 연결된 줄을 똑바로 ‘바로잡고’ 서는 어설픈 광대는 그 어설픈 성격을 그대로<br />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의도된 게으름의 행위이고 의도된 어설픔<br />

이다. 광대들의 이 같은 행위는 질서와 규칙을 벗어나는 일탈과 위반의 행위이다. 관<br />

객은 그 행위의 의도를 알고 있고 오히려 포용하고 있음을 웃음으로 표현한다. 희극<br />

에서 일탈과 위반은 저항의 양식이며 희극의 실존적 의미라 할 수 있는 즐거움을 가<br />

져다주기 때문이다. 28)<br />

전쟁에 관한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 , 예쁜 말로 싸우기 , 제본공 바닝거 , 세<br />

텍스트가 각각 독립된 막간극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막간극인 전쟁에 관한 아들과<br />

아버지의 대화 는 제목에도 나타나듯이 순진한 어린 아이와 어른의 대화로 순수한<br />

아이의 시각을 통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모순을 비판한다. 전쟁이 위험하다는 것<br />

을 모두 알고 있고, 그러니 모든 노동자들이 총을 만들지 않기로 단결하면 평화가 올<br />

거라는 열 살짜리 아이의 순진한 생각은 마지막에 노동자들은 절대 단결하지 않는다<br />

는 결론에 이르러 반전되면서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는 또한 자신들이 만드<br />

는 무기가 모두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군수공장<br />

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우매함, 그리고 그와 같은 모순을 만들어내는 야만적인<br />

인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다. 공연에서는 이 장면을 게으른 광대와 딴지거<br />

는 광대가 악기를 손질하며 연기한다. 배가 나오고 덩치가 큰 게으른 광대가 아들 역<br />

을 맡고 딴지거는 광대가 아버지 역을 맡아 천연덕스러운 대화를 이어간다. 덩치 큰<br />

어른의 입에서 어린 아이의 언어가 나옴으로써 발생하는 부조화와 신경질적이면서도<br />

꼬박꼬박 답하는 딴지거는 광대가 보여주는 난감한 아버지의 연기는 그 무거운 주제<br />

를 웃음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br />

예쁜 말로 싸우기 는 부부 싸움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의 대화이다. 이 텍<br />

27) 오동식 각색, 공연대본, 6쪽.<br />

28) 박근서: 코미디. 웃음과 행복의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스북스, 2006, 129쪽 이하 참조.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41<br />

스트는 언제나 혼란과 뒤얽힘의 중요한 원인으로 언어를 이용하는 발렌틴의 기법이<br />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표적인 텍스트에 속한다. 부부 사이에 겉으로 드러나는 말 자체<br />

는 애교와 정감이 넘치는 어조이지만 정작 내용은 두 사람 간의 반목과 증오로 가득<br />

하다. 사랑의 어조와 미움의 내용이 충돌하며 희극적 상황이 만들어지고, 동시에 언<br />

어의 의미와 소통 기능은 질문의 대상이 된다. 아내 역의 춤추는 광대(배미향 분)와<br />

남편 역의 딴지거는 광대는 언어 자체가 가진 한계와 불합리의 상황을 과장의 연기<br />

로 재현한다. 과장은 어떤 단점을 폭로하여 웃음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효과적인 기<br />

법이다. 29) 폭로의 대상이 과장을 통해 더욱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부부는 실제 감정<br />

과 그에 반하는 말의 어조가 만들어내는 불합리를 참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에 그냥<br />

감정대로 대놓고 말하기로 한다. 공연은 이 마지막 장면을 원작보다 훨씬 심한, 외모<br />

비하의 저속어로 처리한다.<br />

홍민수: [...] 이렇게 계속 화나게 만드는 좋은 말이 무슨 소용이야? 그러지 말고 그냥 차라<br />

리 너절한 말을 대놓고 하자구!<br />

배미향: 좋아, 이 쟁반대가리!<br />

홍민수: 탁구공은 뱉고 씨부리지?<br />

배미향: 하이바 좀 벗고 얘기하지?<br />

홍민수: 광대뼈로 등산가도 되겄어?<br />

배미향: 야! 이거 보기 드문 숏다리네? 30)<br />

이 같은 각색은 이 공연 형식으로 차용한 소극의 성격을 강화한다.<br />

소극의 언어가 갖는 특성 중 저속한 표현과 공격적인 농담은 민중과 밀착된 공연예<br />

술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31) 눈치를 보지 않는 거침없는 말투는 자유로<br />

29) 블라지미르 쁘로쁘, 정막래 옮김: 희극성과 웃음, 나남, 2010, 124쪽 참조.<br />

30) 오동식 각색, 공연대본, 13쪽.<br />

원전: Er : [...] Wozu immer diese aufregenden Schmeicheleien? Sagen wir uns doch lieber in aller<br />

Ruhe die Gemeinheiten direkt ins Gesicht!<br />

Sie : Ja, Du saudummer Kerl, da hast recht! Da bin ich sofort damit einverstanden!<br />

Er : Na also, Du Rindviech, du depperts! Siehst, es geht auch so!<br />

(SW, Bd. 4, Dialoge, S. 104.)<br />

31) 유기환 외: 웃음과 소극의 시학, 위의 논문, 230쪽 참조.


14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움과 솔직함의 표현이며 관객과의 친밀감을 높이고, 평소 언어사용에 있어서 감정의<br />

절제를 유지해야 하는 관객들에게 긴장해소와 함께 대리만족을 가능하도록 해 주기<br />

때문이다.<br />

세 번째 막간극은 제본공 바닝거 를 원작 그대로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이름을<br />

배우 이름으로 바꾸고 원작의 회사 이름을 우리식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제본업자인<br />

오동석은 대기업 월산건설로부터 하청 받은 책 제본이 다 되어 이를 어떻게 전달해<br />

야 할지 회사에 전화한다. 그러나 전화를 받는 사람은 담당이 아니라며 계속 다른 사<br />

람에게 전화를 돌려준다. 아홉 번이나 되풀이되는 전화 돌리기로 오동석은 용건을 아<br />

홉 번이나 똑같이 말해야 하며 결국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전화의 미로 속을 헤매<br />

는 오동석의 모습은 조직 사회의 시스템에서 드러나는 갑과 을의 계급관계, 상황에<br />

지배당하고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인간의 현실을 강하게 상징한다. 또한 전화는 현대<br />

사회에서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는 기술과 기계의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같은 억압<br />

구조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오동석은 그저 “돼지 같은 자식들, 더러운 놈들!” 32)이<br />

라 욕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어설픈 광대, 오동석은 이 장면을 뭔가 모자<br />

란 듯한 표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바라보며 연기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관객<br />

을 향한 연기는 카바레의 기본적인 연기방식이다. 여기에서 관객은 카바레티스트 오<br />

동석의 대화 파트너로서 현대 사회구조에 대한 자신의 사회적 입장과 관점을 재인식<br />

하게 된다. 이 막간극은 “기술만능주의와 관료주의에 폭행당한 세계의 기본경험에<br />

대한 희비극적 비유 das tragikomische Gleichnis einer Grunderfahrung in der<br />

technokratisch- bürokratisch verwalteten Welt” 33)로서 연극 속의 작은 솔로 카바레로<br />

기능한다.<br />

이후 장면들은 변두리극장의 2막에 해당되나 장면의 순서는 원작과 달리 바뀌<br />

어 있다. 그러나 원작 자체가 줄거리가 없는 에피소드의 연결 구조이기 때문에 장면<br />

의 순서가 바뀌어도 공연의 흐름에는 무리가 없다. 지휘자와 연주자들 간의 대립, 연<br />

주자들의 공연 방해 행위는 계속된다. 팀파니를 옮기라는 지휘자의 말에 딴지거는 광<br />

대와 게으른 광대는 팀파니를 드는 방향을 놓고 다투고, 게으른 광대는 팀파니를 옮<br />

긴 후 뒤돌아서자마자 서서 잠들기까지 한다. 딴지거는 광대는 지휘하는 대로 연주하<br />

32) 오동식 각색, 공연대본, 15쪽.<br />

33) Monika Dimpfl: Karl Valentin, München 2007, S. 277.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43<br />

라는 지휘자에게 그건 허튼 짓이라며 딴지를 걸고, 어설픈 광대는 악보가 눕혀져 있<br />

다는 이유로 거의 옆으로 누운 자세로 연주하여 지휘자를 분노하게 만든다. 2막의 장<br />

면들은 막간극 이전의 장면들과 마찬가지로 지휘자와 연주자들 간의 끊임없는 대립<br />

과 충돌을 보여준다. 지휘자를 통해 구현되는 모든 경직성과 획일성, 억압적인 권위<br />

주의, 명예욕에 유연함과 솔직함, 단순함이 대립한다. 고착화된 질서와 당연히 정상<br />

이라 간주되는 것에 의도적인 질서 깨기와 비정상의 논리가 뚜렷하게 맞서는 대비의<br />

구조가 더욱 분명해지고 강화된다. 모욕당하고 기만당하며 바보로 전락하는 지휘자<br />

에게 가해지는 관객의 웃음은 부족하고 모자란 인간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징벌의<br />

웃음이고 지휘자를 기만하는 연주자들의 의도된 비상식적, 비정상적 행위는 저항과<br />

공격 행위로서 정당화된다. 연주자를 연기하는 세 광대들에겐 그에 대한 관객의 피드<br />

백으로서 대리만족을 표현하는 관용의 웃음과 박수가 주어진다. 이 같은 원작이 가지<br />

고 있는 웃음 이외에 공연은 소극의 통속성을 기반으로 한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br />

원작에는 없는 것으로, 여가수(배미향)는 원래 예정되어 있던 노래의 가사를 잊어 공<br />

연을 지속할 수 없게 되자 지휘자에게 다른 곡을 하겠다고 제안한다. 여가수는 이란 노래를 시작하고, 이 노래는 남성과의 이중창이라며 남성 파트를 지<br />

휘자에게 떠넘긴다. 지휘자는 당황해 하면서도 여가수와 함께 노래하고 두 사람이 안<br />

고 춤추는 상황으로 발전한다. 이 장면은 앞서 언급한 지휘자 아내의 출현 장면과 자<br />

연스럽게 연결된다. 지휘자와 여가수의 춤, 그리고 지휘자의 아내가 지휘자를 벌하는<br />

과정에서 여가수와 벌이는 몸싸움, 지휘자 아내의 주먹에 맞고 쓰러지는 세 광대와<br />

지휘자가 보여주는 슬랩스틱 형식의 연기는 몸의 표현이다. 정신보다는 육체와 물질,<br />

이성보다는 감정이 희극성의 기본 토대임 34)을 상기할 때 이 장면들은 관객들의 즐거<br />

움 강화를 목표로 한 적극적 연출의 결과이다.<br />

세 광대의 공연 방해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휘자는 거의 강압적으로 빠른 곡의 연<br />

주를 끌어내고 광기와 다름없는 지휘에 따라 음악은 점차 엄청난 빠르기와 소음에<br />

가까운 큰 소리로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 순간에 무대가 무너진다. 폐허와 다름없는<br />

무너진 무대에 쓰러졌던 모든 배우들이 천천히 일어서고 다시 연주가 시작된다. 그<br />

전까지 대립과 충돌로 채워졌던 무대를 이제 조화로운 음악이 채운다. 이 마지막 장<br />

34) Vgl. Luis Farré: Das Komische, in: Wesen und Formen des Komischen im Drama, a.a.O., S. 192ff.


14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면은 원작에 없는 것으로, 획일적이고 경직된 사회, 모든 것이 무너진 인간 사회에<br />

대한 절망에 맞서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와 희망으로 읽힌다. 연출자 오<br />

동식은 폐허와 같은 삭막한 현대사회가 연극을 통해 조화의 세계로 개선되길 희망한<br />

다. 이는 물론 발렌틴이 보고 있는 부조화와 모순의 세계를 통해 연출자가 관객에게<br />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개선을 필요로 하는 사회의 상황 자체를<br />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열어둠으로써 문제 상황을 더욱 강하게 드러나게 하고, 사회<br />

발전에 대한 인식을 관객 스스로 갖도록 유도함으로써 더욱 적극적인 관객의 참여를<br />

이끌어내는 발렌틴의 본래 의도를 염두에 둔다면 마지막에 덧붙인 각색 장면은 사족<br />

으로 보인다. 조화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은 이미 극의 진행 과정에서 관객이 충분히<br />

인식하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br />

5. 맺는 말<br />

오동식 연출의 은 20세기 초반 독일 대중예술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br />

였음에도 우리 학계나 연극계가 주목하지 못했던 카를 발렌틴의 작품을 처음 소개했<br />

다는 의미를 갖는 동시에 수준 높은 희극을 만나기 힘든 한국 연극계에 즐거움과 진<br />

지한 비판 정신이 함께 하는 고차원의 희극 공연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br />

가 크다. 연극 평론가 이경미는 이 만들어내는 웃음은 작위적이고 어이<br />

없는 개그류의 웃음과 그 차원이 본질적으로 다르며, 온갖 경직된 사고를 경고하고<br />

폭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평한다. 35) 이 이<br />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발렌틴의 텍스트가 가진 높은 수준의 희극<br />

성이 그 첫째라 할 것이다. 공연 텍스트로 사용된 여섯 편의 텍스트는 모두 시공간을<br />

넘어 우리의 세계, 우리의 사고를 뒤집으면서 우리의 현실이 질문해야 할 대상임을<br />

지적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연출자 오동식은 이 텍스트를 소극과 카바레트의 형<br />

식으로 담아낸다. 과장과 희화를 적절히 섞은 광대들의 연기는 몸을 통한 희극성의<br />

35) 이경미: 현실의 변두리에서 현실을 비웃다. , 실린 곳: Webzine arko, vol. 200,<br />

http;//webzine.arko.or.kr/sub3/content_4154.jsp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45<br />

강화로 이어지고, 관객을 대화상대로 한 카바레트 형식은 카바레트가 본래 언어와 공<br />

격의 예술인만큼 발렌틴의 기발한 언어를 살려내고 관객의 비판 정신을 일깨우는데<br />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서 공연이 가진 또 다른 의미는 한국에<br />

존재하지 않는 공연예술 장르인 카바레트의 수용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소극<br />

장이 발전한 우리 연극계의 상황, 빠른 변화 속에서 문제점 또한 다양하게 드러나는<br />

우리의 사회-정치 상황, 무대가 전달하는 비판적 기호를 풀어내는 정신적 행위를 즐<br />

거움으로 수용할 줄 하는 지적 관객의 저변이 넓다는 점, 그리고 상업적 오락물로 치<br />

부되는 개그 공연을 철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고급 희극으로 끌어 올려야 할 필<br />

요성 등, 우리 연극계는 카바레트를 생산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마련되<br />

어 있다. 은 카를 발렌틴의 텍스트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진지한 웃음<br />

으로 담아낸 성공적인 번역극이며 표현 형식에 있어서도 우리 공연예술의 다양화에<br />

기여하는 적극적 시도의 좋은 예로 남을 것이다.<br />

참고문헌<br />

1차 문헌<br />

공연 녹화 DVD (연희단거리패 제공)<br />

오동식 각색, 공연대본, 2011. (미출간, 연희단거리패 제공)<br />

카를 발렌틴, <strong>정민영</strong> 옮김: 변두리 극장, 지만지, 2011.<br />

Karl Valentin: Sämtliche Werke in 9 Bänden, Bd. 5. Stücke, hrsg. v. Manfred Faust u.<br />

a., München 2007.<br />

Karl Valentin: Sämtliche Werke in 9 Bänden, Bd. 4, Dialoge, hrsg. v. Manfred Faust u.<br />

2차 문헌<br />

a., München 2007.<br />

김효: 코메디와 코믹, 실린 곳: 외국문학연구, 5집, 1999, 1-20쪽.<br />

박근서: 코미디. 웃음과 행복의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스북스, 2006.


14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공연프로그램, 2011.<br />

블라지미르 쁘로쁘, 정막래 옮김: 희극성과 웃음, 나남, 2010.<br />

유기환 외: 웃음과 소극(笑劇)의 시학, 실린 곳: 한국프랑스학논집, 제 46집, 2004,<br />

219-244쪽.<br />

이경미: 현실의 변두리에서 현실을 비웃다. , 실린 곳: Webzine arko,<br />

vol. 200, http;//webzine.arko.or.kr/sub3/content_4154.jsp<br />

<strong>정민영</strong>: 독일어권 카바레 연구(2) - 카바레의 구성과 기능, 실린 곳: 브레히트와 현<br />

대연극, 13집, 2005, 219-237쪽.<br />

<strong>정민영</strong>: 예술로서의 대중오락 - 칼 발렌틴의 희극성, 실린 곳: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24집, 2011, 239-261쪽.<br />

Budzinski, Klaus: Das Kabarett, Düsseldorf 1985.<br />

Brockhaus Wahrig Deutsches Wörterbuch in 6 Bänden, Bd. 6, Stuttgart 1984.<br />

Damm, Babara: „Es ist schon alles gesagt! Nur noch nicht von allen!“ Die<br />

Wortakrobatik des Karl Valentin, in: Im Prozeß der Kultur, hrsg. v. Frank<br />

Madro u. Alexander Schutz, Hamburg 2008, S. 18-34.<br />

Dimpfl, Monika: Karl Valentin, München 2007.<br />

Luis Farré: Das Komische, in: Wesen und Formen des Komischen im Drama, hrsg. v.<br />

Reinhold Grimm u. Klaus L. Berghahn, Darmstadt 1975, S. 190-205.<br />

Feibleman, James K.: Der Sinn des Komischen, in: Wesen und Formen des Komischen<br />

im Drama, hrsg. v. Reinhold Grimm u. Klaus L. Berghahn, Darmstadt 1975, S.<br />

77-92.<br />

Fleischer, Michael: Eine Theorie des Kabaretts, Bochum 1989.<br />

Hauff, Axel: Die Katastrophen des Karl Valentin, Berlin 1978.<br />

Pemsel, Klaus: Karl Valentin. Volksverbunden - falsch verbunden? (Triumph des<br />

Unwillens), in: Karl Valentin: Volkssänger? Dadaist? Ausstellungskatalog,<br />

München 1982, S. 54-69.<br />

Riedner, Ursula Renate: „Theater in der Vorstadt“ von Karl Valentin und Liesl Karlstadt.<br />

Überlegung zur Analyse von Komik vor dem Hintergrund ihrer interkulturellen<br />

Vermittlung. in: Materialien Deutsch als Fremdsprache, H. 70, Regensburg 2003,


S. 136-147.<br />

Zeyringer, Klaus: Die Komik Karl Valentins, Frankfurt am Main 1984.<br />

Zusammenfassung<br />

Karl Valentin auf der koreanischen Bühne<br />

-Dong Sik Ohs Theater in der Vorstadt<br />

한국무대의 카를 발렌틴 147<br />

Chung, Minyoung (HUFS)<br />

Karl Valentin ist ein wichtiger Komiker, Kabarettist, und Stückeschreiber, der im<br />

Bereich der deutschen Massenunterhaltung in der ersten Hälfte des 20. Jahrhunderts<br />

eine große Rolle gespielt hat. Trotzdem wurde seine künstlerische Tätigkeit bisher<br />

noch nicht in der koreanischen Theaterwelt konkret vorgestellt. Erst 2011 wurde ein<br />

Übersetzungsbuch mit seinen 22 Stücken in Korea veröffentlicht, und die das<br />

koreanische Theater vertretende Theatertruppe STT (Street Theatre Troup) richtete bald<br />

darauf ihre Aufmerksamkeit auf seine Texte. Sie brachte Theater in der Vorstadt<br />

zusammen mit weiteren fünf Stücken, und zwar Theaterbesuch, Ein komischer<br />

Liebesbrief, Vater und Sohn über den Krieg, Streit mit schönen Worten und<br />

Buchbinder Wanninger auf die Bühne (Übersetzung: Minyoung Chung, Regie: Dong<br />

Sik Oh, 24. Dezember 2011 bis 22. Januar 2012, Guerilla Theater Seoul). Die zwei<br />

Texte Theaterbesuch und Ein komischer Liebesbrief wurden als Prolog und die<br />

anderen drei Texte Vater und Sohn über den Krieg, Streit mit schönen Worten und<br />

Buchbinder Wanninger als Zwischenspiele benutzt.<br />

Der Regisseur Dong Sik Oh inszenierte Theater in der Vorstadt als ein Widerstand


14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gegen die genormte, steif gewordene gegenwärtige Gesellschaft. Drei Clowns, und<br />

zwar der alles störende Clown, der faule Clown und der dumme Clown, die die<br />

eigentlichen Rollen des Musikers Valentin geteilt spielen, setzen sich mit dem<br />

Kapellmeister dauernd unlogisch auseinander und verhindern die Vorstellung. Ihre<br />

Verhinderungstaten sind nichts anderes als ein Kampf gegen die Autorität. Und in<br />

Bezug auf die Ausdrucksform ist es von besonderer Bedeutung, dass die Aufführung<br />

die Form des Kabaretts und der Farce rezipiert. Dadurch wurde die Komik bei Karl<br />

Valentin verstärkt und vor allem erstmals die Möglichkeit der Rezeption des Kabaretts,<br />

das es als Darstellungskunst in Korea nicht gibt, geschaffen. In der Situation der<br />

koreanischen Theaterwelt, wo man eine gute Komödie mit hohem Niveau noch selten<br />

antrifft, kann die Aufführung Theater in der Vorstadt ein produktiver Versuch sein,<br />

zur Vielfältigkeit der koreanischen Darstellungskunst beizutragen.<br />

Keyword<br />

(한글/독일어)<br />

카를 발렌틴<br />

Karl Valentin<br />

희극<br />

Komödie<br />

∙ 필자 E-Mail: dramaturgie@hufs.ac.kr (<strong>정민영</strong>)<br />

변두리극장<br />

Theater in der Vorstadt<br />

카바레트<br />

Kabarett<br />

∙ 투고일: 2012년 6월 29일/ 심사일: 2012년 7월 14일/ 심사완료일: 2012년 7월 31일<br />

대중오락<br />

Massenunterhaltung<br />

소극<br />

Fa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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