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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영적 이야기

왕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흥분하고 미쳐서 날뛰는 군중들의 잔악무도한 행동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하고자 갈망하는 그들은 왕을 처형함으로 한층 더 자극되었다. 그리고 왕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자들도 오래지 않아서 왕의 뒤를 이어 단두대로 끌려갔다. 혁명을 반대하는 것으로 혐의를 받은 자들은 다 살육되었다. 감옥들은 만원이 되었는데 한 때는 20만 명 이상의 검거자들이 수용되었다. 국내의 각 도시에 무서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혁명주의자들의 한 당이 다른 당과 싸우므로 프랑스는 드디어 하나의 커다란 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서로 싸우는 군중들의 분노와 격정은 온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파리에서는 소동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시민들은 여러 당파로 나누어져서 피차에 서로 물고 뜯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였다.” 온 나라가 이와 같은 참상을 당한 외에도 구라파의 열강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황폐케 하는 전쟁에 휘말려 들었다. “나라는 거의 파멸 상태에 이르렀고, 군인들은 급료의 지불이 지연됨으로 소동하였고, 파리 시민들은 굶어 죽어갔으며, 각 지방들은 비적들로 말미암아 황폐되었고, 문화는 무정부 상태와 백성들의 방종으로 거의 사라질 지경까지 되었다.”

왕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흥분하고 미쳐서 날뛰는 군중들의 잔악무도한 행동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하고자 갈망하는 그들은 왕을 처형함으로 한층 더 자극되었다. 그리고 왕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자들도 오래지 않아서 왕의 뒤를 이어 단두대로 끌려갔다. 혁명을 반대하는 것으로 혐의를 받은 자들은 다 살육되었다. 감옥들은 만원이 되었는데 한 때는 20만 명 이상의 검거자들이 수용되었다. 국내의 각 도시에 무서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혁명주의자들의 한 당이 다른 당과 싸우므로 프랑스는 드디어 하나의 커다란 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서로 싸우는 군중들의 분노와 격정은 온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파리에서는 소동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시민들은 여러 당파로 나누어져서 피차에 서로 물고 뜯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였다.” 온 나라가 이와 같은 참상을 당한 외에도 구라파의 열강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황폐케 하는 전쟁에 휘말려 들었다. “나라는 거의 파멸 상태에 이르렀고, 군인들은 급료의 지불이 지연됨으로 소동하였고, 파리 시민들은 굶어 죽어갔으며, 각 지방들은 비적들로 말미암아 황폐되었고, 문화는 무정부 상태와 백성들의 방종으로 거의 사라질 지경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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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strong>도시</strong> <strong>영적</strong> <strong>이야기</strong><br />

유대군은 세스티우스와 그의 군대를 추격하여 그들을 전멸시킬 듯한 맹렬한 세력으로<br />

뒤에서 공격하였다. 그러므로 로마군은 후퇴하는 데 많은 곤란을 겪었다. 유대군들은 거의<br />

아무런 손실 없이 전쟁을 끝내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br />

그러나 외관상으로 승리한 듯한 이 일이 그들에게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이 사건이 로마인들에<br />

대한 그들의 고집스런 반항심을 더욱 굳게 하였고 멸망 받을 운명에 놓여 있는 성을 더욱 신속히<br />

비참한 재앙 가운데 빠지게 하였다.<br />

예루살렘이 티투스로 말미암아 재차 포위되었을 때에 당한 재난은 실로 끔찍스러웠다. 그<br />

도성은 유월절에 포위를 당했는데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성 안에 모여 있었다. 잘 보존하기만<br />

하였더라면 주민들이 몇 년 동안 넉넉히 먹을 수 있었을 저장된 식량은 불목한 당파 간의 질투와<br />

복수로 이미 없어져 버렸고 지금은 온갖 심한 기아에 빠지게 되었다. 밀 한 되의 값이 한<br />

달란트나 되었다. 사람들은 기아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그들의 가죽 허리띠와 신발과 방패<br />

뚜껑을 씹기까지 하였다. 많은 백성들은 들에서 자라는 식물을 뜯어오고자 밤중에 몰래 성벽을<br />

넘어갔다. 그러나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잔인한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설혹<br />

안전하게 돌아온 사람들이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거두어 온 것들을 도둑맞거나 빼앗기기<br />

일쑤였다. 심지어 궁핍에 빠진 사람들이 감추어 두었을지도 모르는 조금밖에 안 되는 최후의<br />

양식을 빼앗기 위하여 세력 있는 사람들은 가장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다. 그들 중에는 식량을<br />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위하여 저장해 두려는 생각에서 만행을 행하는 일이 적지<br />

않았다.<br />

무수한 사람들이 기근과 온역으로 죽었다. 혈연적인 애정은 사라진 듯하였다. 남편은<br />

아내의 것을, 아내는 남편의 것을 도둑질하였다. 늙은 부모의 입에서 음식을 빼앗는 자식들도<br />

볼 수 있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 (사 49:15) 느냐는 선지자의 질문에 대한<br />

답이 멸망 받을 그 도성에서 나왔다. 그것은 곧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br />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애 4:10) 는 대답이었다. 또한 1400 년 전에 선지자가<br />

다음과 같이 예언한 경고도 이루어졌다.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br />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그 다리<br />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br />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신 28:56, 57).<br />

로마의 장군들은 유대인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여 그들의 항복을 얻어내려고 하였다.<br />

그리하여 그들은 사로잡은 유대인 중 저항하는 자는 채찍으로 때리고 고문한 후에 그를<br />

예루살렘 성벽 앞으로 끌어내어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자의 수는 날마다<br />

몇백 명에 달하였다. 이 두려운 일은 계속되어 마침내 여호사밧 골짜기와 갈바리 언덕은 온통<br />

십자가가 난립하여 그 사이를 걸어 다니기도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일찍이 빌라도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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