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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영적 이야기

왕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흥분하고 미쳐서 날뛰는 군중들의 잔악무도한 행동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하고자 갈망하는 그들은 왕을 처형함으로 한층 더 자극되었다. 그리고 왕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자들도 오래지 않아서 왕의 뒤를 이어 단두대로 끌려갔다. 혁명을 반대하는 것으로 혐의를 받은 자들은 다 살육되었다. 감옥들은 만원이 되었는데 한 때는 20만 명 이상의 검거자들이 수용되었다. 국내의 각 도시에 무서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혁명주의자들의 한 당이 다른 당과 싸우므로 프랑스는 드디어 하나의 커다란 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서로 싸우는 군중들의 분노와 격정은 온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파리에서는 소동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시민들은 여러 당파로 나누어져서 피차에 서로 물고 뜯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였다.” 온 나라가 이와 같은 참상을 당한 외에도 구라파의 열강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황폐케 하는 전쟁에 휘말려 들었다. “나라는 거의 파멸 상태에 이르렀고, 군인들은 급료의 지불이 지연됨으로 소동하였고, 파리 시민들은 굶어 죽어갔으며, 각 지방들은 비적들로 말미암아 황폐되었고, 문화는 무정부 상태와 백성들의 방종으로 거의 사라질 지경까지 되었다.”

왕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흥분하고 미쳐서 날뛰는 군중들의 잔악무도한 행동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하고자 갈망하는 그들은 왕을 처형함으로 한층 더 자극되었다. 그리고 왕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자들도 오래지 않아서 왕의 뒤를 이어 단두대로 끌려갔다. 혁명을 반대하는 것으로 혐의를 받은 자들은 다 살육되었다. 감옥들은 만원이 되었는데 한 때는 20만 명 이상의 검거자들이 수용되었다. 국내의 각 도시에 무서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혁명주의자들의 한 당이 다른 당과 싸우므로 프랑스는 드디어 하나의 커다란 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서로 싸우는 군중들의 분노와 격정은 온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파리에서는 소동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시민들은 여러 당파로 나누어져서 피차에 서로 물고 뜯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였다.” 온 나라가 이와 같은 참상을 당한 외에도 구라파의 열강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황폐케 하는 전쟁에 휘말려 들었다. “나라는 거의 파멸 상태에 이르렀고, 군인들은 급료의 지불이 지연됨으로 소동하였고, 파리 시민들은 굶어 죽어갔으며, 각 지방들은 비적들로 말미암아 황폐되었고, 문화는 무정부 상태와 백성들의 방종으로 거의 사라질 지경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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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strong>도시</strong> <strong>영적</strong> <strong>이야기</strong><br />

있었다. 일세기 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나라에까지 퍼져간 빛은 스코틀랜드에서 밝히<br />

빛났다. 아일랜드로부터 경건한 콜룸바 (Columba) 와 그의 동역자들이 와서 각처에 흩어져 있는<br />

신도들을 적막한 아이오나 섬으로 모았다. 그리하여 그 섬은 그들의 선교 사업의 중심지가<br />

되었다. 그 전도자들 중에 성경상 안식일을 준수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진리가<br />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아이오나 섬에 한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그 곳에서부터 스코틀랜드와<br />

영국은 물론이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에까지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br />

그러나 로마는 영국을 주시하고, 그것을 자기의 패권 아래 넣으려고 결심하였다. 6 세기에<br />

법왕교의 선교사들은 이교도인 색슨족을 개종시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교만한 야만인들의<br />

환심을 사서 수천 명을 로마교의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br />

나갈 때 법왕교의 승려들과 개종자들은 순수한 그리스도인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양자<br />

간에는 현저한 대조가 나타났다. 전자는 법왕교의 미신과 허세와 교만을 나타내는 반면에<br />

후자는 단순하고 겸손하며, 품성과 신조와 행동 등이 모두 성경과 부합됨을 보여 주었다. 법왕의<br />

사절들은 이 그리스도교회들에게 법왕의 최상권을 인정하라고 강요하였다.<br />

그러나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온유한 태도로, 그들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기를 열망하고<br />

있지만 법왕이 교회에서 최상권을 가질 자격이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피차에<br />

대하는 것과 같은 겸손으로 그에게 대할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사절들은 로마의 법왕에게<br />

충성을 표시하게 하고자 계속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거만한 사절들의<br />

태도에 놀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주를 인정할 수 없노라고 확고하게 대답하였다.<br />

그러자 법왕교의 정체는 나타났다. 로마교의 지도자는 “너희가 평화를 가져오는 형제들을<br />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희는 필경 전쟁을 가져오는 원수를 맞이하고야 말 것이다. 너희가<br />

색슨족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일에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결국 그들에게서<br />

죽음의 매를 맞고야 말 것이다” (J.H.Merle D’Aubigne, History of the Reformation of the<br />

Sixteenth Century, b17, ch1) 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근거 없는 위협이 아니었다. 전쟁과 음모와<br />

기만 등의 온갖 수단이 성경상 신앙을 가진 그 증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마침내 영국의<br />

교회들은 파괴되거나 법왕권에 굴복당하고 말았다.<br />

로마의 관할 밖에 있는 나라들에는 여러 세기 동안 법왕교의 부패에 전혀 감염되지 아니한<br />

그리스도인 단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교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br />

그러한 오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표준으로 생각하고 성경에<br />

있는 진리의 대부분을 고수해 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믿고 십계명 중의 넷째<br />

계명의 안식일을 지켰다. 이러한 믿음과 생활을 유지해 온 교회들이 중앙아프리카와 아시아의<br />

아르메니아 족속들 사이에도 있었다. 법왕권의 침입을 저항한 자들 중에서 “왈덴스”<br />

(Waldenses) 인들이 최선봉에 섰다. 그들은 법왕의 지위가 확립되어 있는 바로 그 나라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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