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7.2013 Aufrufe

장은수 - 한국브레히트학회

장은수 - 한국브레히트학회

장은수 - 한국브레히트학회

MEHR ANZEIGEN
WENIGER ANZEIGEN

Sie wollen auch ein ePaper? Erhöhen Sie die Reichweite Ihrer Titel.

YUMPU macht aus Druck-PDFs automatisch weboptimierte ePaper, die Google liebt.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br />

1. 들어가는 말<br />

<strong>장은수</strong>(한국외대)<br />

현대 독일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책 읽어주는<br />

남자 1)는 1995년 스위스 디오게네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1997년에 나온 문고판<br />

은 100만부 이상이 팔려 독일 문학계에서도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br />

슐링크는 이 작품 덕에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이미 40여개국에서 외국어로 번역<br />

되었고, 독일 고등학교의 교재에 일부가 수록될 정도로 본격적인 카논문학으로 자리<br />

잡았다. 우리 말 번역은 2004년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3)<br />

2008년 헐리우드 감독 스티븐 달드리 Steven Daldry가 영화로 만들어 대대적인 성공<br />

을 거두자 그 바람을 타고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br />

그동안 독일과 미국의 학계에서 이 소설과 영화에 대해서는 많은 논문과 저서들이<br />

쏟아져 나왔는데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도 몇 편의 주목할 만한 연구논문들이 발<br />

표되었다. 4) 논문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 학계의 연구에서는 수치감이나 죄책<br />

* 이 논문은 2011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내 학술연구비지원에 의해 작성된 것임.<br />

1) Bernhard Schlink: Der Vorleser. Zürich: Diogenes 1995.<br />

이하 본문 텍스트 인용시 출처 표기는 (V 5)처럼 괄호 속에 쪽수만 기입한다.<br />

2) Vgl. Felicitas von Lovenberg: Bernhard Schlink. Der Vorleser. In: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br />

9.4.2002, S. 47.<br />

영어판은 97년에 번역되었는데 오프라 윈프리 Oprah Winfrey 쇼의 ‘북클럽’에 초빙된 것이 큰 반<br />

향을 일으킨 덕분에 미국에서도 100만부 이상이 팔렸고 독일 소설로는 처음으로 ‘뉴욕타임즈’ 지<br />

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프랑스에서는 99년에 번역되어 50만부 이상이 팔렸다.<br />

3) 베른하르트 슐링크 저/ 김재혁 옮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이레 2004.<br />

이 논문에서 본문 텍스트 인용시 우리 말 번역은 이 책을 참조했음.<br />

4) 이홍경: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에 나타난 과거 극복의 문제, 실린 곳: 독<br />

일어문학 27집 (2004), 137-156쪽. 이홍경: 트라우마를 남긴 사랑 -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


12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감 등, 작품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심리적 양상들을 논하거나 홀로코스트의 과거청산<br />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 슐링크의 시각에 대해 의견이 찬반양<br />

론으로 갈려있는 상황이다.<br />

슐링크는 독일 문학계에서 비교적 쉽고 빠르게 읽히는 작가로 손꼽힌다. 누구나<br />

관심 있어 할 파격적인 주제, 각 장마다 짧은 호흡으로 포인트를 두어 전개되는 스토<br />

리, 독일어 수업시간에 어학 학습용으로 추천될 정도로 일상적이고 명료한 문장 등은<br />

그의 책을 한번 잡으면 끝까지 단숨에 읽어나가게 만든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Die<br />

gordische Schleife(1988), 그리고 젤프의 법 Selbs Justiz(1987), 젤프의 기만 Selbs<br />

Betrug(1992), 젤프의 살인 Selbs Mord(2001)을 연속 발표해 ‘젤프 삼부작’의 작가<br />

로 이름을 굳힌 슐링크는 추리소설 작가답게 독자에게 쉽게 접근하는 편이다.<br />

하지만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의 이야기 배경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1인칭 화<br />

자’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수많은 질문과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대<br />

답은 유보적인 경우가 많다. 이 연구는 슐링크의 소설이 지닌 소통전략을 ‘담론적 글<br />

쓰기 Schreiben als Diskurs’로 보는데서 출발한다. 이런 글쓰기 전략을 통해 소설의<br />

주인공이 아닌 또 다른 “책 읽어주는 남자” 슐링크가 우리에게 어떻게 자기 세대의<br />

담론으로서 ‘책’을 전달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br />

2. 홀로코스트 라이트 Holocaust Lite? 5)<br />

슐링크의 작품들을 초창기부터 꾸준히 소개해 온 독일 저널리스트 폴커 하게<br />

Volker Hage는 2002년 Spiegel 지에 “총체적 의혹 아래 Unter Generalverdacht” 6)라는<br />

주는 남자의 정신분석학적 고찰, 실린 곳: 독일문학 93집 (2005), 124-143쪽. 서용좌: 길항작용에<br />

서 정체성 추구로 - 하인리히 뵐의 어느 광대의 견해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br />

자에서 세대 간의 문제, 독일문학 108집 (2008), 120-143쪽. 곽정연: 묵인하고 방관하는 자, 그는<br />

죄인인가? -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와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에 나타난 죄책감. 독<br />

일어문학 48 (2010), 2-21쪽.<br />

5) Donahue, William Collins: Holocaust Lite. Bernhard Schlinks “NS-Romane” und ihre Verfilmungen.<br />

Bielefeld: Aithesis 2011.<br />

6) Volker Hage: Unter Generalverdacht. Kulturkritiker rüsten zu einer bizarren Literaturdebatte:<br />

Verharmlosen erfolgreiche Bücher wie Günter Grass' Novelle “Im Krebsgang” oder Bernhard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29<br />

야릇한 제목의 논평을 기고했다. “비평가들이 신랄한 문학논쟁을 벼르고 있다.<br />

Kulturkritiker rüsten zu einer bizarren Literaturdebatte”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은 슐링<br />

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에 쏟아진 비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는 당시 쥐<br />

트도이체차이퉁 지에 빌리 빙클러 Willi Winkler를 비롯한 몇몇 비평가들이 연속적으<br />

로 기고한 슐링크 비판에 대한 반박문이었다. 빙클러는 당시 발표된 슐링크의 단편집<br />

사랑의 도피 Liebesflucht 7)의 영국출판 소식으로 유대계 평론가들 사이에 불붙었던<br />

책 읽어주는 남자 성토대회를 신나게 보도했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이 작품을 “홀<br />

로코스트 키치 Holo-Kitsch”, “혐오적 abscheulich” 8)이라고 폄하했고, 노폴크 Norfolk<br />

는 “아주 나쁜 책 ein so schlechtes Buch”, 9) 아들러 Adler는 심지어 “역사왜곡<br />

Geschichtsverfälschung” 10)이라고 판정했다.<br />

특히 사학자나 문화학자들이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경우가 많았<br />

다. 홀로코스트 사학자 오머 바르토프 Omer Bartov는 2000년 희생자로서의 독일<br />

Germany as Victim 이라는 논문에서 이 소설이 유대인 희생자들에 대한 얘기는 별로<br />

다루지 않고, 오히려 한나를 희생자로 조명하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화자<br />

미하엘 역시 “희생자의 희생자 ein Opfer des Opfers” 11)로 만드는 왜곡된 시각을 보<br />

인다고 비판했다. 이 책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역사적 범죄<br />

를 사랑얘기로 포장해 독일인의 죄상을 축소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코카 콜<br />

라 라이트’를 만들어내듯, 심각한 ‘홀로코스트’ 문제를 가벼운 버전의 “홀로코스트<br />

Schlinks Roman “Der Vorleser” die Schuld der Deutschen an Holocaust und Zweitem Weltkrieg?<br />

Der Spiegel 2002/15, S. 179-181.<br />

7) Bernhard Schlink: Liebesflucht. Zürich: Diogenes 2000.<br />

우리말 번역판은 “다른 남자”라는 제목으로 2004년 출판되었다.<br />

8) Willi Winkler: Vorlesen, Duschen, Durcharbeiten. Schlechter Stil, unaufrichtige Bilder: England<br />

begreift nicht mehr, was es an Bernhard Schlinks Bestseller “Der Vorleser” fand. In: Süddeutsche<br />

Zeitung 75. Literatur 30.03.2002, S. 16.<br />

9) Jeremy Adler: Die Kunst, Mitleid mit den Mördern zu erzwingen Einspruch gegen ein Erfolgsbuch:<br />

Bernhard Schlinks “Der Vorleser” betreibt sentimentale Geschichtsfälschung. In: Süddeutsche<br />

Zeitung. 92. Literatur 20.04.2002, S. 18.<br />

10) Lawrence Norfolk: Die Sehnsucht nach einer ungeschehenen Geschichte. Warum Bernhard<br />

Schlinks Roman “Der Vorleser” ein so schlechtes Buch ist und allein sein Erfolg einen tieferen<br />

Sinn hat. Süddeutsche Zeitung. 98. Literatur 27.04.2002, S. 16.<br />

11) Omer Bartov: Germany as Victim. In: New German Critique 80 (2000), S. 29-40.


13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라이트 Holocaust Lite” 12)로 만들고 있으며 독일인들이 오히려 희생자인 양 호도하려<br />

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13)<br />

이때까지 홀로코스트문학이라고 하면 68학생운동의 비판적 시각에서 “가해자-부<br />

모 Täter-Väter” 세대를 겨냥한 기록문학과 자전문학이 중심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br />

아우슈비츠 전범재판을 소재로 한 페터 바이스 Peter Weiss의 수사 Die Ermittlung<br />

(1965)나 하이나 키프하르트 Heinar Kipphardt의 오펜하이머 사건 In der Sache J.<br />

Robert Oppenheimer(1964)처럼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고발하는 작품들이 대표적인<br />

예였다.<br />

그런데 90년대 들어서면서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영화에서<br />

는 스필버그 감독의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31<br />

Junge mit den blutigen Schuhen(1995), 란스마이어의 Christoph Ransmayr의 죽음의<br />

키타라 Morbus Kitahara(1995), 그리고 나중에 나온 귄터 그라스 Günter Grass의 게<br />

걸음으로 가다 Im Krebsgang(2002)가 있다. 이들은 모두 나치의 희생자인 유대인들<br />

의 고난사보다는 전쟁과 나치범죄의 역사에 휘말린 독일인 자신들의 이야기에 관심<br />

을 돌리고 있다. 독일인이 역사의 범죄자요 가해자로서 터부시하던 문제를 건드리며<br />

시각의 전환을 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홀로코스트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과거청<br />

산이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쪽에서는 당연히 우려와 비판의 목소<br />

리가 높았다. 폴커 하게는 앞서 언급했던 슈피겔 지 기고문에서 바로 이런 비난을 그<br />

대로 가져다 쓰면서 동시에 아래와 같이 물음표를 찍었다.<br />

귄터 그라스의 노벨레 “게 걸음으로 가다”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br />

자” 같은 성공작들이 홀로코스트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저지른 독일인들의 죄과를 무마시<br />

키는가?<br />

Verharmlosen erfolgreiche Bücher wie Günter Grass' Novelle “Im Krebsgang” oder Bernhard<br />

Schlinks Roman “Der Vorleser” die Schuld der Deutschen an Holocaust und Zweitem<br />

Weltkrieg? 14)<br />

물론 폴커 하게의 대답은 이미 질문 속에 암시되어 있었다. 그는 반세기가 지난<br />

지금 아직도 가해자-피해자논쟁에 붙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독일이 자초한 재난의<br />

역사에 다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문학은 작가의 개인적인 상<br />

처와 트라우마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는 디터 포르테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br />

3. 68세대의 자성적 담론<br />

3.1. 소설의 이중적 구조<br />

이 소설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치시대 유대인수용소 감시원으로 활동했던 여<br />

14) Hage, Volker: Unter Generalverdacht. A.a.O., S. 179.


13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주인공 때문에 출간 시부터 홀로코스트 문제가 쟁점이 되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br />

미하엘과 Michael 한나 Hanna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독일 나치범죄 역사와 과거청산<br />

문제를 배경으로 한 죄와 책임에 대한 역사적 담론으로 전개된다.<br />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58년 가을 급작스런 황달에 걸려 구토를 일으키며 쓰<br />

러진 소년 미하엘을 전차 검표원인 한나가 집 앞에서 발견해 깨끗이 씻겨주고 집까<br />

지 데려다 준다. 부유한 집안의 소년 미하엘은 신분과 세대를 달리하는 한나에게 강<br />

하게 끌려 한나를 다시 찾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전차 검표원이었던 한<br />

나는 문맹임을 숨기고 고등학생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책 읽어주기<br />

Vorlesen를 매개로 한 한나와 미하엘의 만남은 가히 제의적이라 할 수 있는 틀 속에<br />

서 진행된다. 사랑을 나누기 전에 먼저 책을 읽어줘야 하는 독특한 관계로 맺어진 두<br />

연인은 때로는 문학적 스승과 제자, 가슴으로 품어주는 어머니와 아들의 다양한 모습<br />

으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가족도 이름도 모른 채 만난 한나의 과거는 소년에게 의문<br />

투성이고 비밀스럽지만 그럴수록 더욱 그녀에게 이끌린다. 사춘기 소년의 충동적 정<br />

열과 욕망, 서투른 접근을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주는 한나는 미하엘이 학교공부에 충<br />

실하도록 독려도 하며 그가 자신감 있는 남성으로 성장해가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br />

하지만 사회의 통념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를 숨겨야 하는 미하엘은 수치심과 양심의<br />

가책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나가 떠나 버린다.<br />

그런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미하엘이 나치전범재판의<br />

방청객으로 참석하게 되고 그 자리에 피고로 불려나온 한나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부<br />

터이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맡은 일을 충실히 해냈던 한나는 지멘스 사에서 사무직<br />

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포기하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감시<br />

원으로 자원했었다. 사무직 일을 맡게 되면 그녀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br />

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우슈비츠를 택한 것은 문맹인 사실을 밝히지 않고<br />

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을 지<br />

키려고 그녀는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임무를 수행하고 재판장에서는 읽지도 못<br />

한 보고서를 자기가 썼다고 거짓자백한다. 그 결과 수용소의 유대인 이송 중 교회에<br />

화재가 났을 때 그 안에 갇힌 유대인들을 모두 불타죽게 한 책임자라는 혐의까지 받<br />

는다. 자신의 문맹을 숨기기 위해 무모하리만치 필사적으로 애쓰는 그녀를 보며 미하<br />

엘은 또 다시 고뇌에 빠진다. 성인이 되어서도 한나를 잊은 적이 없던 미하엘은 법정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33<br />

에 선 한나를 보며 그리움에 앞서 동정과 연민, 그리고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밝힐<br />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혼란스러워 한다.<br />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은 한나는 18년 동안 수감되고, 그녀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br />

못하는 미하엘은 죄책감과 원망, 그리움으로 괴로워하다가 그녀에게 책을 읽은 녹음<br />

테이프를 보내는 것으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한다. 한편 한나는 미하엘의 테이프를 활<br />

용해 글을 깨우치고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큐와 문학작품을 읽으며 마치 수도사처럼<br />

수감생활을 한다. 마침내 사면을 받고 출옥하게 된 한나를 미하엘이 찾아가지만 그날<br />

아침 자살했음을 알게 된다. 미하엘은 그녀가 남긴 유산을 ‘문맹퇴치를 위한 유대인<br />

연맹’ 앞으로 송금한다.<br />

이 소설의 배경은 한나로 대표되는 나치전범 제 1세대와 미하엘이 속한 전후세대,<br />

즉 전쟁 전후 태어나 68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제 2세대의 삶을 교차시킨다. 심각한 독<br />

일 역사문제를 비정상적인 사랑이야기로 포장해 통속화시켰다는 비난을 낳게 한 이<br />

묘한 접목은 이 소설의 독특한 전략이기도 하다. 사실 이 두 세대의 교차되는 삶을<br />

통해 조명되는 이야기 구조는 생각보다 복합적인 담론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역사<br />

적 사건에 대한 집단죄책감 Kollektivschuld을 논하는 문제를 지극히 개인적인 책임이<br />

문제시되는 사적이고 내밀한 연인관계와 연루시켜 구체화시킴으로써 사회역사의식이<br />

란 공적 담론을 지극히 사적이고 실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든다.<br />

사랑의 이야기로 본다면 한나와 미하엘이 각각 남녀주인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br />

이야기는 1인칭 화자이기도 한 미하엘의 시각에서 서술되고 그의 인생을 회고하는<br />

형식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은 또다시 여러 장의 짧은<br />

에피소드와 핵심주제가 있는 이야기들로 세분된다.<br />

제 2부에서 진행되는 재판심리과정을 중앙에 놓고 보면 제 1부는 재판 전 연인으<br />

로 만난 두 주인공의 이야기, 제 3부는 재판 후 재회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나뉘어<br />

져 이야기의 중심에 한나와 그녀의 나치과거가 포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br />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 1부는 화자가 17살의 고등학생 시절 36살의 한나를 만나 1<br />

년 반 동안 이어졌던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 2부는 한나가 유대인 수용소 감시원으로<br />

활동하던 과거 상이 드러나는 전범재판과정이, 3부는 대학을 졸업한 뒤 법률사학자<br />

로 활동하던 미하엘이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난 뒤 무기징역을 살던 한나와 재회하고<br />

그녀가 출감 직후 자살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하게 되기


13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까지의 내용이 전개된다.<br />

이야기의 시간적 틀을 보면 51세의 미하엘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연대기<br />

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그가 15살이 되던 해인 1958년부터 글을 쓰고<br />

있는 소설 속 현재 1994년까지 37년간의 삶이 연대기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br />

제 2부의 재판과정에서 미하엘이 한나를 만나기 전의 과거가 다루어지기 때문에 이<br />

야기가 서술되는 시간 Erzählte Zeit은 한나가 나치친위대에 근무하게 된 1943년까지<br />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미하엘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성장소<br />

설 내지 교양소설로 규정하고 그가 성장해서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으로서 이 작<br />

품을 해석하는 연구도 있다. 15) 미하엘이 신체적으로 성장하고 나이 들어가는 전기를<br />

다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고전적인 의미의 성장소설로 보기는 어렵다. 심리<br />

적인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미하엘의 전기를 보아도 그<br />

렇고, 그런 전기의 기술보다는 이를 소재로 자기 성찰과 담론에 주력하는 소설 전개<br />

방식으로 볼 때도 그렇다. 이야기의 초점이 독일의 나치시대범죄에 대한 과거청산보<br />

다는 이에 대한 논의를 바라보는 68세대의 입장과 담론 쪽에 더 큰 비중이 실려 있<br />

기 때문이다.<br />

3.2. 세대 알레고리로서의 한나와 미하엘<br />

한나와 미하엘의 독특한 개인사는 이 소설의 거대담론과 연결시켜 알레고리적으<br />

로 해석할 수 있다. 한나는 나치범죄의 당사자로서 ‘가해자세대 Tätergeneration’인 제<br />

1세대에 대한 알레고리로, 그리고 미하엘은 끔찍한 역사를 치른 후속세대인 제 2세<br />

대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용한다.<br />

이 소설에서 특히 한나라는 인물은 구체적인 성격 Charakter을 구현하기보다는 유<br />

형 Typus에 가까울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다. 그녀의 이력 역시 지극히 간단히 서술<br />

되어 있다. 한나는 글을 읽지 못하고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계급이다. 그녀는 가난<br />

하지만 청결하고 근면한 독일노동자의 전형이다. 투박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단순<br />

15) Achim Geisenhanslüke: Bildung ist Macht. Überlegungen zum Sozialisierungsprozeß in Bernhard<br />

Schlinks Roman der Vorleser.<br />

Aus: www.emu.dk/gym/fag/ty/foreningen/schlink_meddelelser_168.doc.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35<br />

히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그녀가 나치친위대의 감시원으로 들어갔던 것은 먹고살기<br />

위해서였다.<br />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은 미하엘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문맹이었던<br />

그녀는 미하엘을 통해 책의 세계를 접하게 되고, 동경과 호기심을 자극받는다. 한나<br />

가 미하엘을 만났을 때 자신이 문맹임을 솔직히 고백하고 그에게 글을 배웠더라면<br />

아마도 두 사람의 비극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맹은 그녀가 평생을 은<br />

폐해 온 콤플렉스이기에 이를 발설하고 인정하는 데는 엄청난 심리적 극복이 필요했<br />

다. 결국 문맹에 대한 수치심은 그녀가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감시인으로 자원하고 교<br />

회 화재 시에도 직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명목 아래 무비판적으로 수백명을 죽게<br />

방치하는 엄청난 과오를 범하게 만든다.<br />

그녀가 평생의 거짓말로 남에게 숨겨온 콤플렉스라는 측면에서 보면 문맹은 나치<br />

참상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동참하게 되었던 전범 세대에게서 관찰되는 일종의<br />

열등의식에 대한 메타포로 해석할 수 있다. 16) 한나의 경우처럼 자신이 지닌 결점을<br />

드러내지 않으려는 억압기제가 강한 집단의 경우 이를 지키려는 과잉반응이 냉정함<br />

과 폭력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해석은 더 설득력을 얻는다.<br />

그리고 미하엘이 말하는 것처럼 한나의 문맹을 계몽주의적 전통에서 바라보는 ‘무<br />

지’와 ‘미성숙’상태로, 그리고 문자를 터득함으로써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계몽적 발<br />

걸음을 띠게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7) 이런 입장은 아도르노가 칸트적 의미의<br />

계몽을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로 들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선<br />

택에 오성을 사용할 능력과 용기를 발휘하면 어리석은 결과를 피할 수 있고, 이런 과<br />

정을 문명화 Entbarbarisierung라고 보았다. 18)<br />

16) Vgl. William Collins Donahue: Illusions of Subtlety: Bernhard Schlink's Der Vorleser and the<br />

Moral Limits of Holocaust Fiction. In: German Life and Letters 54 (1/ 2001), S. 65.<br />

“Hanna's handicap functions as apliable metaphor for a more general state of deprivation that is<br />

meant to explain why some people turn to evil.”<br />

17) Vgl. Bernhard Schlink: Der Vorleser. A.a.O., S. 178.<br />

“Analphabetismus ist Unmündigkeit. Indem Hanna den Mut gehabt hatte, lesen und schreiben zu<br />

lernen, hatte sie den Schritt aus der Unmündigkeit zur Mündigkeit getan, einen aufklärerischen<br />

Schritt.”<br />

18) Th. W. Adorno: Erziehung - wozu? In: Ders.: Erziehung zur Mündigkeit, Vorträge und Gespräche<br />

mit Helmut Becker 1959-1969. Hrsg. v. Gerd Kadelbach. Frankfurt a.M.: Suhrkamp 1970. S. 107.


13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한편 지극히 평범한 노동자 한나가 나치 범죄에 무비판적으로 연루되는 과정을 통<br />

해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만행을 초래한 것은 그들이 악마같은 괴물이었기<br />

때문이 아니라고 미하엘은 말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죄질을 경미하게 보자는 것은 아<br />

니다. 중요한 것은 한나의 경우처럼 엄중한 심판 아래 처단해야 할 나치시대의 ‘가해<br />

자들’이 그들을 비난하는 후세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사실이다. 19)<br />

여기에서 역사가 전하는 경고의 메세지는 더욱 당황스럽고 복합적인 국면을 보인<br />

다. 홀로코스트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그 원인과 성격이 규명되지 않는<br />

한 ‘가해자’인 그들을 비난하고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 과거에 자행됐던 오류를 또다<br />

시 반복하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하엘은 나치과거를 트라우<br />

마처럼 경험한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가 아직도 일종의 ‘마취상태 Betäubtsein’에서<br />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런 마취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br />

과거에 갑작스럽게 떠난 여인에 대한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미<br />

하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br />

미하엘은 제 2세대 중에서도 전형적인 엘리트이다. 그는 정치적 노선을 분명히 하<br />

는 적극적인 행동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고민하고 주저하는 지식인세대를 상징한다.<br />

비판적 의식은 견지하되 행동력이 부족한 이 시대의 햄릿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br />

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최고의 지성인이 되었지만, 그의 사생활은 지극히 메말라<br />

있다. 철학을 전공한 아버지를 만나려면 면담시간을 신청해야 할 정도로 가족의 따스<br />

함이나 끈끈한 정이 결여되어 있다.<br />

미하엘은 좁게 보면 제발트 Winfried Georg Sebald가 말한 “시대고향 Zeitheimat” 20)<br />

19) 이와 유사한 관찰에 대해서는 한나 아렌트 저/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6,<br />

389-391쪽 참조. 여기서 아렌트는 나치전범 아이히만이 놀랍게도 악마같은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br />

평범하다는데 주목한다. 그가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자율적으로 판<br />

단하고 직무를 수행할 사고능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그의 경<br />

우를 진단한다.<br />

20) Volker Hage: Zeitheimat. Ein Gesespräch mit Winfried G. Sebald. In: Akzente 50 (2003), S. 35-50.<br />

1999년 제발트는 공중폭격전과 문학 Luftkrieg und Literatur이란 책에 흥미로운 주장을 펼쳐 한<br />

동안 열띤 문학논쟁이 지속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의 지적은 그가 태었났던 제2차대전 말기에<br />

연합군의 ‘공중폭격전’으로 온통 폐허더미가 되었던 독일의 참상과 그 시기의 삶을 다루고 있는<br />

독일인들의 문학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독일과거에 대한 문학논쟁이 본격화되었는<br />

데 그와 입장을 달리하는 뤼츨러 P. M. Lützeler, 폴커 하게 등이 반론을 폈고 하게는 제발트와의<br />

논쟁을 거친 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두 권의 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다.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37<br />

을 가진 세대에 속한다. 1944년생인 제발트는 1944년부터 50년 사이 제 2차 세계대<br />

전 전후의 극적인 환경에서 태어난 세대는 출생지가 어디인지보다는 전후참상의 트<br />

라우마를 함께 한 체험과 기억 때문에 동향인처럼 동질감을 느낀다며 이들에게는<br />

“시대고향”이 고향이라고 말했다.<br />

1943년생인 미하엘도 이런 “시대고향”을 지닌 68세대에 속한다. 종전 시에 출생한<br />

68세대는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고 정치적 연대의식이 남달랐던 세대이다. 소설의 제<br />

2부 초반까지만 해도 미하엘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분란을 일으키는 세대<br />

ruhestörende Generation”(V 88)로서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젊은 세대로서<br />

그 소속감이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br />

탐문조사! 과거탐문조사! 우리 세미나 수강생들은 스스로를 과거탐문조사의 최전방 전위대<br />

로 여겼다.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고 공기를, 바람을 몰아 붙여 우리 사회가 끔찍한<br />

과거 위에 쌓이게 놔두었던 먼지를 바람에 날려버렸다.<br />

Aufarbeitung! Aufarbeitung der Vergangenheit! Wir Studenten des Seminars sahen uns als<br />

Avantgarde der Aufarbeitung. Wir rissen die Fenster auf, ließen die Luft herein, den Wind,<br />

der endlich Staub aufwirbelte, den die Gesellschaft über die Furchtbarkeiten der<br />

Vergangenheit hatte sinken lassen. (V 87)<br />

즉 법학과에서 소급처벌금지법과 관련해 나치과거 세미나를 수강하던 68세대 학<br />

생들은 아버지 세대에게 “수치스러움 Scham”의 판정을 내렸다. 그들을 고발한 내용<br />

은 1945년 이후에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나치범죄자의 존재<br />

를 묵인했다는 것이었다. 재판장에서 피고로 앉아있는 나치범죄자들은 “나쁜”사람들<br />

이고 자신들은 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신념을 갖고 이들을 냉<br />

정히 단죄했다. 이들이 느끼던 집단적인 동질감은 자신들을 “강제수용소 세미나생들<br />

Wir vom KZ-Seminar”(V 88) 이라고 부를 정도로 강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아버<br />

지세대를 단죄하면서 자신들을 유대인 희생자와 동일시하게 되는 심리작용이다. 지<br />

그리드 바이겔 Sigrid Weigel은 가족을 소재로 한 세대연구에서 68세대가 보여주는<br />

이런 속성이 지니고 있는 이중적인 면을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 21) 즉, 나치전범세<br />

21) Sigrid Weigel: Familienbande. In: Ulrike Jureit/ Michael Wildt (Hrsg.): Generationen. Hamburg:


138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대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갈등과정에서 아들세대인 제 2세대는 자신들을 ‘가해자 아<br />

버지’의 희생자로 느끼면서 역사상의 희생자인 유대인과 같은 위치로 자리매김한다.<br />

아들세대가 희생자로 전면에 부각되면서 역사상의 실제적인 희생자가 또다시 묻혀버<br />

리는 우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br />

세미나에 참석하는 동안 수강생들과 일심동체의 소속감을 가졌던 미하엘은 한나<br />

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부모세대를 유죄판결하는 자기 세대의 모습에 대해<br />

회의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미하엘이 비난하고 정죄해야 할 대상은 혈육의 운명적 고<br />

리로 맺혀진 부모세대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사랑했던 연인이었기에 그의 고민<br />

과 딜레마는 더욱 크다. ‘가해자’세대를 유죄판결하기 이전에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br />

싶지만(V 151) 설명이 안 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자기<br />

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그는 범죄세대에서 단지 몇 사람이 판결을<br />

받아 형을 사는 정도에 그치고, 제 2세대인 자신들이 어째서 경악과 수치와 죄책감으<br />

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를 토로한다. 22)<br />

한나의 재판이 종결되고 난 뒤 제 3부의 이야기는 미하엘이 학업을 끝내고 사법관<br />

시보로 활동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화자는 베트남 반전운동과 대학개혁을 이슈로 한<br />

데모로 이어졌던 학생운동의 원동력이 나치과거와의 대결에서 비롯된 아버지세대와<br />

의 세대간 갈등에 있었다고 해석한다. 자신의 세대에 대해 공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br />

면 훨씬 좋았으리라 아쉬워하면서도 여기에 적극 동참할 수 없었던 이유를 그는 이<br />

Hamburger Edition 2005, S. 29.<br />

“Stand der Aufbruch und Protest 1968 unter anderem unter dem Titel eines Generationskonflikts, so<br />

wurde die ältere Generation der Kreigsteilnehmer explizit mit ihrer Position als Täter konfrontiert.<br />

/.../ Dadurch, daß sich in dieser Literatur die Rhetorik von Angriff und Anklage der Söhne (und<br />

Töchter) gegen die Eltern richtete, führte diese Konstellation zu einem in historischer Hinsicht<br />

prekären Effekt: Indem sich die Kinder selbst als Opfer der Täter-Väter begreifen, sind sie an die<br />

Stelle der realen Opfer der NS-Geschichte getreten und haben auf diese Weise zur wiederholten<br />

Verdrängung der historischen Opfer beigetragen.”<br />

22) Vgl. Bernhard Schlink: Der Vorleser. A.a.O., S. 99-100.<br />

“Zugleich frage ich mich und habe mich schon damals zu fragen begonnen: Was sollte und soll<br />

meine Generation der Nachlebenden eigentlich mit den Informationen über die Fuchtbarkeiten der<br />

Vernichtung der Juden anfangen? Wir sollen nicht meinen, begreifen zu können, was unbegreiflich<br />

ist, dürfen nicht nachfragen, weil der Nachfragende die Furchtbarkeiten, auch wenn er sie nicht in<br />

Frage stellt, doch zum Gegenstande der Kommunikation macht und nicht als etwas wahrnimmt, vor<br />

dem er nur in Entsetzen, Schaum und Schuld verstummen kann.”


렇게 밝힌다.<br />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39<br />

하지만 그 의기양양한 독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어떻게 사람이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br />

면서 동시에 그렇게 독선을 과시할 수 있는가? 부모로부터의 결별은, 부모에 대한 사랑 때<br />

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저지른 죄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큰 소리로 덮어줄 단<br />

순한 수사요, 잡음이요, 소음이었던가?<br />

Aber woher kam die auftrumpfende Selbstgerechtigkeit, die mir bei ihnen so oft begegnete?<br />

Wie kann man Schuld und Scham empfinden und zugleich selbstgerecht auftrumpfen? War<br />

die Absetzung von den Eltern nur Rhetorik, Geräusch, Lärm, die übertönen sollten, daß mit<br />

der Liebe zu den Eltern die Verstrickung in deren Schuld unwiderruflich eingetreten war? (V<br />

162f.)<br />

화자 미하엘이 여기서 68세대의 독선적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작가 슐링<br />

크가 이와 관련된 주제에 대한 인터뷰에서 밝힌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우슈비<br />

츠 유대인수용소 해방 60주년을 기념해 독일 주간지 슈테른 지와 가진 인터뷰에서<br />

슐링크는 “우리가 오늘도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Müssen wir uns heute noch<br />

schuldig fühlen?” 23)라는 질문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제 3제국에<br />

서 범죄를 짓거나 범죄를 방치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치<br />

전범의 희생자들이며 이들이 죽었을 경우에는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br />

자식세대 역시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br />

제 3제국시대에 죄를 짓거나 아니면 짓게 내버려둠으로써 죄과가 있는 사람은 죄책감을 가<br />

져야 한다. 누가 그를 용서하고 죄를 면할 수 있겠는가? 용서할 수 있는 자는 희생자들뿐이<br />

며, 희생자들이 죽은 경우에는 아무도 가해자의 죄를 면할 수 없다. [.....] 후손들도 그들이<br />

부모와 결별하지 않고 그로 인해 죄에 대한 책임이 있는 한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br />

Wer im 'Dritten Reich' schuldig geworden ist, indem er Unrecht getan hat oder hat<br />

geschehen lassen, bleibt schuldig – wer sollte ihm vergeben und die Schuld von ihm<br />

genommen haben? Vergeben können nur die Opfer, und wenn die Opfer tot sind, kann<br />

23) Bernhard Schlink: Müssen wir uns heute noch schuldig fühlen? In: Stern. 27.01.2005.<br />

http://www.stern.de/politik/deutschland/auschwitz-muessen-wir-uns-heute-noch-schuldig-fuehlen-53575<br />

0.html.


14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niemand die Schuld von den Tätern nehmen. /.../ Auch die Generation der Kinder bleibt<br />

schuldig, soweit sie dadurch schuldig geworden ist, dass sie mit der Generation der Väter<br />

nicht gebrochen hat. 24)<br />

4. 담론적 글쓰기<br />

이 소설 마지막에 한나가 출소 당일 새벽 자살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br />

지 않다. 한나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달려간 미하엘은 그녀의 책꽂이에서 프리모 레비,<br />

엘리 비젤, 타데우스츠 보롭스키, 장 아메리 등 유대인 작가들의 글과 루돌프 회스의<br />

자서전을 발견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강제수용소에 대한 학술지와 한나 아렌트<br />

Hannah Arendt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보고서가 있었다는<br />

사실이다. 출소 전 감옥에서 그녀가 집중적으로 탐독한 책들이 홀로코스트의 만행을<br />

고발하는 다큐와 문학작품들이었음을 생각할 때 속죄행위로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br />

는 가설도 가능하다. 과연 글을 겨우 깨우쳤던 한나가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었을지<br />

그 개연성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책을 통해 나치과거사를 알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이<br />

엿보이는 대목이다.<br />

한편 한나를 배반했었다는 죄책감과 그녀가 죽은 이유가 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br />

른다고 자책하던 미하엘은 그의 과거 행위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회<br />

의에 대한 상당 부분은 내적독백으로 이루어져 있고 성찰적 요소가 강하다. 한편 그<br />

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과 자기성찰적 명제들은 독자에게 말을 걸어와 미하엘과는<br />

거리를 갖고 자신의 입장을 정립하도록 유도한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주제에 대<br />

해 독자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br />

그리고 1인칭 화자 ‘나’의 행동과 시각에 대해 작가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보<br />

는데 따라, 즉 독자가 화자의 시각을 작가의 시각으로 보느냐, 아니면 비판적인 시각<br />

으로 조명한다고 보느냐에 따라서도 작품 해석에 차이가 난다.<br />

작품의 담론적 성격은 딜레마에 빠진 화자가 결론을 유보한 채 보여주는 ‘양가성<br />

Ambivalenz’ 내지는 ‘애매모호성 Ambiguität’에서도 두드러진다. 이 또한 보는 이의<br />

24) Ebda.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낳도록 부추기고 있다.<br />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41<br />

1인칭 화자이기도 한 미하엘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된 동기가 과거로부터<br />

벗어나기 위함이라면서 글쓰기 행위 자체에 대한 담론으로 독자들에게 또다시 말을<br />

건다. 그러면서 그가 과거 이야기를 기억해내 정작 글로 완성하기까지는 10년을 묵<br />

혀두어야 했다고 토로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1인칭 화자는 이야기의 사실성에 무게<br />

를 싣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그동안 생각해 낸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글<br />

로 써 낸 것은 하나뿐이니 이게 바로 진짜라고 주장한다.(V 205) 그렇게 함으로써 그<br />

가 쓴 이야기가 과거를 기억해 있는 그대로 옮긴 보고서나 다큐가 아니라 이야기를<br />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소설’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br />

5. 나가는 말<br />

그런데 슐링크의 이 소설은 자칫 자서전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1인칭 화자<br />

미하엘처럼 법학자이면서 글을 쓰는 작가는 그보다 한 살 어리고 그가 51세에 발표<br />

한 소설 속 화자도 51세로 소설을 끝맺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자서전도 아니고 자전<br />

적 소설도 아닌 허구이고 화자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자가 작가라고<br />

혼동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슐링크의 담론적 글쓰기방식 때문이다. 화자가 질문<br />

을 던지고 나서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논리를 펴나가지만 답변은 유보하는 식으로 독<br />

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도 그동안 화자가 자신과 독<br />

자에게 던졌던 질문의 총정리처럼 시작된다.<br />

모든 것을 뒤로 하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나가 죽은 후 처음 몇 년 동안 나는 혹시 내<br />

가 그녀를 부인하고 배반한 것은 아닌지, 혹시 내가 그녀에게 무언가 빚을 진 것은 아닌지,<br />

혹시 그녀를 사랑한 까닭에 죄를 지은 것은 아닌지, 혹시 진작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했어<br />

야 했던 것은 아닌지, 또 그 방법은 어때야 했는지 하는 해묵은 질문들 때문에 괴로워했다.<br />

가끔 나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br />

Inzwischen liegt das alles zehn Jahre zurück. In den ersten Jahren nach Hannas Tod haben<br />

mich die alten Fragen gequält, ob ich sie verleugnet und verraten habe, ob ich ihr etwas<br />

schuldig geblieben bin, ob ich schuldig geworden bin, indem ich sie geliebt habe, ob ich


14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und wie ich mich von ihr hätte lossagen, ob loslösen müssen. Manchmal habe ich mich<br />

gefragt, ob ich für ihren Tod verantwortlich bin.(V 205)<br />

슐링크는 지난 2009년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차이퉁 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소<br />

설을 제 3제국에 대해 색다른 소설을 쓰려고 했느냐는 질문에 “우리 세대에 대해 쓰<br />

고 싶었다.” 25)고 답했다. 한나와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쓰<br />

는 미하엘처럼 슐링크는 68세대가 아버지세대를 비난하면서도 자신들은 정작 스스로<br />

책임지고 행동하지 못했다는 작가의 자성적 세대담론을 펼치고 있다. 여기서 궁극적<br />

으로 조명되고 있는 것은 아버지를 나치세대라고 비난하며 결별을 고했던 독일 제 2<br />

세대 역시 그들과 다름없이 여전히 “책임”과 “행동”을 유보하는 마취상태에 빠져 있<br />

다는 점이다. 그런 유보적 태도가 나치과거청산은 고사하고 우선 자기 부모와 애인처<br />

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죄책감을 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br />

게 슐링크는 과거청산 문제를 역사적 차원을 넘어 오늘을 사는 세대의 실존적인 문<br />

제로까지 확대시킨다. 소설은 미하엘의 입을 빌어 “내가 한 행동과 하지 않은 행동<br />

그리고 그녀가 나를 힘들게 한 행동 - 그것이 이제 바로 내 인생”(V 205)이라고 말<br />

한다. “나중의 것에서도 늘 이전 것을 만나게 im Späteren immer Früheres”(V 206)<br />

되듯 과거는 과거로 단절되지 않고 현재에도 계속 남아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역사<br />

를 기억하는 작업은 비단 홀로코스트 시대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미하엘과 슐<br />

링크가 속한 제 2세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후속 세대들에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이<br />

기 때문이다.<br />

25) Andreas Kilb: Herr Schlink, ist der Vorleser die Geschichte? In: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br />

20.02.2009.<br />

http://www.faz.net/aktuell/feuilleton/buecher/im-gespraech-bernhard-schlink-herr-schlink-ist-der-vorleser<br />

-geschichte-1100720.html.<br />

“Ich wollte über meine Generation schreiben. Ich habe kein Holocaust-Buch geschrieben - dass ich<br />

es getan hätte, ist noch eine krasse Fehldeutung. Ich habe ein Buch über meine Generation im<br />

Verhältnis zur Elterngeneration und zu dem, was die Elterngeneration gemacht hat, geschrieben.”


참고문헌<br />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43<br />

곽정연: 묵인하고 방관하는 자, 그는 죄인인가? -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와<br />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에 나타난 죄책감. 독일어문학 48 (2010), 2-21쪽.<br />

서용좌: 길항작용에서 정체성 추구로 - 하인리히 뵐의 어느 광대의 견해와 베른<br />

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세대 간의 문제, 독일문학 108집<br />

(2008), 120-143쪽.<br />

이홍경: 트라우마를 남긴 사랑 -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의 정신<br />

분석학적 고찰, 실린 곳: 독일문학 93집 (2005), 124-143쪽.<br />

이홍경: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에 나타난 과거 극복의 문제,<br />

실린 곳: 독일어문학 27집 (2004), 137-156쪽.<br />

한나 아렌트 저/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6.<br />

Adler, Jeremy: Die Kunst, Mitleid mit den Mördern zu erzwingen Einspruch gegen ein<br />

Erfolgsbuch: Bernhard Schlinks “Der Vorleser” betreibt sentimentale Geschichts-<br />

fälschung. In: Süddeutsche Zeitung. 92. Literatur 20.04.2002, S. 18.<br />

Adorno, Th. W: Erziehung zur Mündigkeit. Vorträge und Gespräche mit Helmut Becker<br />

1959-1969. Hrsg. v. Gerd Kadelbach. Frankfurt a.M.: Suhrkamp 1970.<br />

Bartov, Ome : Germany as Victim. In: New German Critique 80 (2000), S. 29-40.<br />

Bierich, Nora:, Kulturpornografie, Holo-Kitsch und Revisionismus–Der Vorleser kommt<br />

ins Kino. In: Zeitgeschichte-online. Februar 2009.<br />

http://www.zeitgeschichteonline.de/zol/portals/_rainbow/documents/pdf/bierich_vorl<br />

eser.pdf.<br />

Donahue, William Collins: Holocaust Lite. Bernhard Schlinks “NS-Romane” und ihre<br />

Verfilmungen. Bielefeld: Aithesis 2011.<br />

Hage, Volker: Unter Generalverdacht. Kulturkritiker rüsten zu einer bizarren<br />

Literaturdebatte: Verharmlosen erfolgreiche Bücher wie Günter Grass’' Novelle<br />

“Im Krebsgang” oder Bernhard Schlinks Roman “Der Vorleser” die Schuld der<br />

Deutschen an Holocaust und Zweitem Weltkrieg? Der Spiegel 15/ 2002, S.<br />

179-181.


14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Kilb, Andreas: Herr Schlink, ist der Vorleser die Geschichte? In: Frankfurter Allgemeine<br />

Zeitung, 20.02.2009.<br />

http://www.faz.net/aktuell/feuilleton/buecher/im-gespraech-bernhard-schlink-herr-schlin<br />

k-ist-der-vorleser-geschichte-1100720.html.<br />

Jureit, Ulrike/ Wildt, Michael (Hrsg.): Generationen. Hamburg: Hamburger Edition 2005.<br />

Köster, Juliane: Der Vorleser. Oldenbourg Interpretationen. Bd. 98. München: Oldenburg<br />

2000.<br />

Lovenberg, Felicitas von: Bernhard Schlink. Der Vorleser. In: Frankfurter Allgemeine<br />

Zeitung 9.4.2002.<br />

Metz, Joseph: “Truth Is a Woman”: Post-Holocaust Narrative, Postmodernism, and the<br />

Gender of Fascism in Bernhard Schlink's Der Vorleser. In: The German<br />

Quarterly Bd.77. 3/ 2004. S. 300-323.<br />

Norfolk, Lawrence: Die Sehnsucht nach einer ungeschehenen Geschichte: Warum<br />

Bernhard Schlinks Roman “Der Vorleser” ein so schlechtes Buch ist und allein<br />

sein Erfolg einen tieferen Sinn hat. In: Süddeutsche Zeitung 27.04.2002.<br />

Ostermann, Micha: Aporien des Erinnerns: Bernhard Schlinks Roman Der Vorleser.<br />

Bochum: Dolega 2004.<br />

Schlink, Bernhard: Der Vorleser. Zürich: Diogenes 1995.<br />

Schlink, Bernhard: Ich lebe in Geschichten. Spiegel-Gespräch zwischen Volker Hage und<br />

Bernhard Schlink. In: Der Spiege 4/ 2000, S.180-183.<br />

Schlink, Bernhard: Müssen wir uns heute noch schuldig fühlen? In: Stern 27.01.2005.<br />

Winkler, Willi: Vorlesen, Duschen, Durcharbeiten. Schlechter Stil, unaufrichtige Bilder:<br />

England begreift nicht mehr, was es an Bernhard Schlinks Bestseller “Der<br />

Vorleser” fand. In: Süddeutsche Zeitung 75. Literatur 30.03.2002.<br />

Zarusky, Jürgen: Betäubung einer Vergangenheit Bernhard Schlinks Roman “Der<br />

Vorleser” (1995). Epos Zeitgeschichte, S. 133-152.


Zusammenfassung<br />

세대담론으로 읽는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45<br />

Der Generationendiskurs im Roman Bernhard Schlinks Der Vorleser<br />

Jang, Eun-Soo (HUFS)<br />

Bernhard Schlinks Roman Der Vorleser aus dem Jahre 1995 gehört zu den<br />

erfolgreichsten Werken der deutschen Gegenwartsliteratur. Der Roman erscheint auf<br />

den ersten Blick wie eine trivale Liebesgeschichte. Die von Scham und Schuld<br />

beladene Liebesbeziehung zwischen Hanna und Michael stellt allegorisch den Umgang<br />

der Deutschen mit dem Nationalsozialismus sowie dem Holocaust dar.<br />

Michael gehört zu der 68er Generation, die sich von ihrer Täter-Väter-Generation<br />

radikal verabschiedete und sie wegen der Nazivergangenheit anklagte. Der Roman<br />

zeigt, dass er genauso wenig seine Geschichte mit der Naziverbrecherin Hanna<br />

loswerden kann, wie er die deutsche Vergangenheit im Dritten Reich als abgetan und<br />

bewältigt erklären kann. Denn es besteht auch die Gefahr für die zweite Generation,<br />

die Vergangenheit des Holocausts zu verdrängen, indem sie sich von den Tätern<br />

distanziert und an die Stelle der eigentlichen Opfer zu treten versucht.<br />

Der Erzählerperspektive, von Selbstreflexion und Ambivalenz gekennzeichnet, gibt<br />

aber keine eindeutige Antwort, sondern lädt den Leser zu einem Diskurs über den<br />

Umgang der Nachgeborenen mit der Nazivergangenheit ein.<br />

Der Roman ist nicht bloß eine Geschichte der zweiten Generation, die versucht,<br />

ihre Vergangenheit zu bewältigen. Es ist vielmehr ein Diskurs eines 68ers, der sich<br />

mit der Frage nach der 'political correctness' und dem verantwortlichen Handeln seiner<br />

eigenen Generation selbstkritisch auseinandersetzt.


14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br />

Keyword<br />

(한글/독일어)<br />

나치과거청산<br />

Vergangenheitsbewältigung<br />

책 읽어주는 남자<br />

Vorleser<br />

슐링크<br />

Schlink<br />

⋅필자 E-Mail: jaes@hufs.ac.kr (<strong>장은수</strong>)<br />

홀로코스트<br />

Holocaust<br />

더 리더<br />

The Reader<br />

⋅투고일: 2011년 12월 30일/ 심사일: 2012년 1월 15일/ 심사완료일: 2012년 1월 31일

Hurra! Ihre Datei wurde hochgeladen und ist bereit für die Veröffentlichung.

Erfolgreich gespeichert!

Leider ist etwas schief gelauf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