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연예 vol.1159_12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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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enews@usa.net <strong>주간연예</strong> 87<br />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이 벽<br />
에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br />
는다. 그리고 나를 아니 우리를 조용<br />
히 바라본다. 가기 싫어서일까 아니면<br />
떠나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 곧<br />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내가<br />
떠난다는 것을 기억하거라.”라고 말해<br />
주는 것일까? 어찌 보면 새침한 듯, 어<br />
찌 보면 아련한 듯, 벽에 붙어 애잔한<br />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저 녀석은 지<br />
금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이제 저 머<br />
나먼 곳으로 영영 떠날 이 한 세월이<br />
아쉬워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br />
다. 한도 많고 탈도 많다지만, 올해는<br />
너무 많은 사건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br />
헤집어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br />
세월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려고 준<br />
비하고 있었다. 아픔이라기보단 절망<br />
이었고, 슬픔이라기보단 가슴 치며 통<br />
곡해야 할 일이었다. 기막힌 한 역사가<br />
이루어진 한 해였다. 그것도 남의 것이<br />
아닌 바로 나의 것이었고 우리의 것이<br />
예진회가 만난 형제들<br />
예진회 대표 • 박춘선<br />
다 가져 가 주십시오<br />
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한숨 한 번 제<br />
대로 쉬어보지도 못한 채, 기막힌 역<br />
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세월이 가<br />
면 잊힐 거야,’ ‘언젠가는 잊을 것이야.’<br />
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이 사건을 우<br />
리가 겪게 될 줄이야. 어느 누가 알 수<br />
있었으리. 그러나 누군가는 알고 있었<br />
다. 그것은 바로 저 벽에 걸려있는 달력<br />
이라는 녀석이 알고 있었으리라. 그리<br />
고 이제 제 할 일 다 했다고 함께 추억<br />
속으로 가버리려고 떡~하니 무게 잡고<br />
떠나려고 한다. 그래 가거라, 빨리 가거<br />
라, 어서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이 세<br />
상에 다시 오지 말아라.<br />
이 세상에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오면<br />
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큰 기쁨과 커다<br />
란 행복 그리고 즐거움이 가득한 날들<br />
을 보냈을까 생각하니 웃고 산 세월보<br />
다 늘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아온 날<br />
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무리 발버둥<br />
치며 바락바락 살아왔지만, 결국 우리<br />
가 머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밖에<br />
없었던 것 같다. 더 올라갈 곳도 더 내<br />
려갈 곳도 없는 적막강산 같은 우리의<br />
삶, 슬픈 사람은 옛날을 그리워하고 그<br />
래도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미소라<br />
도 지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인생살이인<br />
것 같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이민의<br />
길을 선택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br />
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 내가 왜<br />
이리 되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라<br />
는 여인의 눈가엔 젖은 눈물이 흥건히<br />
배어 있었다. “지금까지 내 집 없이 살<br />
아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다 이 나이에<br />
집도 없이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br />
라며 한숨짓는 그녀의 모습에서 삶에<br />
대한 힘겨움이 묻어나온다. 고작 살아<br />
야 백 년을 살기 힘든 인생이건만 바둥<br />
거리며 살아온 몇십 년의 삶이 행복이<br />
아닌 슬픔과 고통으로 머물러 버린 그<br />
녀의 모습에 내줄 수 있는 것은 겨우<br />
보이지 않는 한 조각도 안 되는 얄팍<br />
한 미소밖에 없었다. 가슴 저 밑바닥<br />
으로부터 서글픔으로 밀려든다. 하루<br />
를 보내며 우리는 몇 번이나 배가 터<br />
지도록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웃었으<br />
며 그 미소 속에 우리는 얼마나 큰 행<br />
복을 담았던가. 그러나 허허 대며 웃<br />
지는 못하더라도 가슴으로 밀려오는<br />
한 움큼의 슬픔을 뱉어낼 수만 있었<br />
어도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앉으나 서<br />
나 당신 생각이 아니라 앉으나 서나 걱<br />
정만 싸여가는 그들의 마음이 슬프기<br />
짝이 없다.<br />
“나이는 들었어도 무슨 일이라도 할<br />
수 있어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br />
것 같은데 아무도 그녀의 손을 잡아<br />
주는 이 없다. “어쩌다, 어찌하다 이렇<br />
게 되었는지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그<br />
렇다고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아가<br />
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정말 답이 없<br />
어요.”라는 그녀의 등만 어루만져 주<br />
는 내 손이 부끄럽다. 다시 돌아갈 수<br />
없는 지나온 세월, 다시 갈 수만 있다<br />
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수 있을 것도<br />
같건만. 그게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것<br />
도 아니니, 다시 또 대책 없이 떠나보<br />
내야만 하는 올 한 해도 그저 무심하<br />
기만 하다. “내년이라고 뭐가 또 달라<br />
지겠어요? 달라질 것도 아무것도 없어<br />
요.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 수밖에 뭐<br />
가 더 있겠어요.”라는 그녀는 ‘이 세상<br />
살이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라고 했다.<br />
신부님께서 “예수님은 이천 년 전부<br />
터 오셨고 작년에도 오셨고 올해에도<br />
오시고 또 내년에도 오실 텐데 뭐 그<br />
리 새로울 게 있겠는지요?”라고 말씀<br />
하셨다. 하긴 매년 오시는 아기 예수님<br />
이 오셨다가 가시고 또 오셨다가 가신<br />
들 우리 삶이 뭐 그리 달라질게. 무에<br />
있을까마는, 그래도 험난한 이 세상에<br />
우리를 구원해 주실 예수님이라도 자<br />
꾸 찾아오시니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br />
라도 되지 않을까? 그런 말씀을 듣다<br />
보니 오래전 한국의 어떤 식당 벽에 쓰<br />
여 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어제도 오<br />
셨더니 오늘도 오셨구려, 내일도 오신<br />
다면 얼마나 즐거우리.” 힘들었던 올해<br />
의 모든 어려움을 예수님께서 다시 또<br />
다 짊어지고 가시고 정말 아픔 없는 새<br />
해를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br />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