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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선교교회 창립 50주년 특별호-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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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50년의 발자취ㅣ

영적 성장과

지구촌을 향한 선교

(1990년대)

동양선교교회의 해외선교룰 향한 열정은 뜨거웠다. 90년 선교부 예산이 1백만달러가 넘었다. 남은

여생을 해외선교에 헌신했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던 임동선목사는 주위의 만류을 물리치고 90년 1월

65세로 은퇴했다. 임목사는 사임후에도 영적 영향력을 유지했다. 2대 목사는 당시 텍사스 휴스턴 한

인교회에서 사역하던 이병희 목사가 피택되었다. 명망있는 목회자였던 이병희 목사의 부임한 후에도

교회는 양적 성장은 계속하고, 해외 선교사들의 한시적 체류를 위해서 교회 주변 건물들을 매입했다.

교회는 윌드 미션대학교와 원로목사의 세계선교 비전를 적극 뒷받침했다. 그러나 부임 1년반만에 이

병희 목사가 사임했다.

남가주 한인 커뮤니티의 장자교회였던 동양선교교회는 한인사회의 아픔에도 늘 함께 했다. 92년

4.29 폭동으로 한인사회가 힘들어 할 때 동양선교교회가 커뮤티티 구호 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성금

모금에도 앞장서 성도들의 성금 30만달러를 기탁했다. 94년 노스리스 지진이 일어나 한인사회가 힘

들어 할 때도 교회도 구호 활동에 힘을 보탰다.

93년 12일 박광철 목사가 3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서울신학대학교수를 역임하고 서울 신길성결교

회에서 시무하다 OMC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박광철목사는 처음부터 의욕적인 목회를 했다. 교회

는 성장을 거듭했다. 94년 동양선교교회 재적 교인은 6천 5백명. 박목사는 LA 폭동과 지진의 악몽

에 시달리던 성도들을 위로하고 도전을 주는 주제의 강해설교를 주로 했다. 그는 전교인 성경공부를

실시했고,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했다. 영어에 능통했던 박목사는 GLASS (Great

LosAngeles Sunday School)집회에 주강사로 참석하는 등 대외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러나 박목사

는 98년 8월 동양선교교회를 사임하고, "죠이휄로쉽교회"를 개척했다. 그 이후 로고스 교회를 개척해

담임하고 있던 강준민 목사를 청빙했다.

창립 50주년 특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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