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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선교교회 창립 50주년 특별호-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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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50주년 축하메시지ㅣ

동양선교교회 50주년을 맞이하여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이 축하메시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와 함께 한 증인들의 축하메시지를 소개합니다.

나의 인생의 황금기는

동양선교교회에서

이중용 목사

前 동양선교교회 교육목사,

아리조나 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1998-2004)

나는 인생의 노른자를 동양선교교회에서 보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가슴이

뛰는 한 늙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을 2세 교육을 위해

정말 가슴 뛰며 살았습니다.

돈은 걱정 말고 무슨 일이든 시도해보라는 고 임동선 목사님의 격려 말씀에 고무돼 밤낮없이 일했습니

다. 당시 풀러 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을 공부하고 있던 나는 OMC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성장모델의 판

을 짰습니다. 3개 한인일간지에 광고를 내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목표가 없으면 성장도 없다”는 풀러신

학교 피터 웨그너 교수의 말을 금과옥조로 삼았습니다. 1974년 당시엔 주일학생 수가 적었습니다. 100

명을 1차 목표로 세우고 매년 200명씩 늘려나갔습니다. 한인타운을 이 잡듯이 뒤지며 어린이들에 전도

했고, 헌신할만한 일꾼들을 세워 신학교에 보냈습니다. 여기저기 세미나에도 참석시키고 이름난 미국

교회의 교육 프로그램도 견학시켰습니다.

소문이 점점 퍼지면서 어린이들이 몰려왔습니다. 여름성경학교가 제일 큰 대목이었습니다. 선착순 등록

자 1,500명에게 예쁜 T셔츠를 준다는 신문광고를 내면 매주 400-500씩 몰려왔습니다. 이들에게 OMC

주일학교에 출석하도록 초대편지를 보내면 매주 평균 100여명이 등록했습니다. 첫 교육관 건물(가구

점)을 구입했을 때는 교사들과 함께 신바람이 났었습니다. 당혹스런 기억도 있습니다. 여름성경학교 교

사팀 200여명이 교회 옆 삼원가든 식당에서 매일저녁 식사하기로 계약했습니다. 한달 후 계산하러 갔다

가 기절할 뻔했습니다. 엄청나게 나온 식사비를 교회에 청구했다가는 쫓겨날 판이었습니다. 밤잠 못 자

며 고민하다가 교육부장님(유문규 장로)을 찾아가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난감하셨을 장로님이 뜻밖에

“목사님, 제가 반을 부담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나머지 반을

해결하기 위해 배종년 권사님(당시 다운타운에서 봉제업 운영)께 사정했습니다. 권사님 역시 “알겠습니

다. 제가 해결해드리지요. 하나님이 그런데 쓰라고 물질 주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라며 선뜻 호응해주

셨습니다. 그날 밤부터 다리 뻗고 잘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말미에 가슴에 남는 30여명을 거명했습니다. 나도 OMC 15년을 회상하면 가슴에 남

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밤늦게까지 심방하시고 교회에 들리셔서 교사들 일하는 모습을 보시고 “저녁이

나 먹었느냐”면서 100달러짜리 한 장을 쥐어주시던 임 목사님(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직장보다, 학교보다 더 즐겁게 봉사했던 수많은 교사들. 주일학교

부흥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가르쳤던 전도사님들, 장로님들 모두 보고 싶은

얼굴들입니다. 옛날의 교육부 사역자들과 간혹 만나면 지금도 얘기합니다.

“그때가 우리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18 창립 50주년 특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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