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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인간학적 유물론 - 한국뷔히너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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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발터</strong> <strong>벤야민의</strong>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br />

. 들어가며<br />

최성만 (이화여대)<br />

요즘 글로벌 시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물결이 휩쓸어가며 한국 사회에<br />

도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백여 년 전 카프카의 작품들이 그로테스크하면<br />

서 수수께끼 같은 모습으로 묘사했던 불안한 공간과 시간이 한편으로 더 이상<br />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의미에서 마치 우리 시대의<br />

그것들처럼 느껴진다. 그로 하여금 그 해결을 내다볼 수 없으면서 붙들게 만든<br />

삶과 세계의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변형된 형태로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리<br />

라 추측해 본다.<br />

최근의 담론들을 살펴보아도 이런 문제 지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br />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가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해방적으로 제시한 분열증적<br />

욕망의 정치학에서든, 푸코가 행한 권력에 대한 분석과 근대적 인간의 사라짐에<br />

대한 진단에서든, 데리다가


마르크스주의와의 차이에도 해당한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하기에 <strong>벤야민의</strong> ‘인<br />

간학적 <strong>유물론</strong>’에 관한 구상은 특히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와 유물<br />

론에 대한 사유를 풍부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갱신하는 데<br />

중요한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는 사상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벤<br />

야민은 모든 역사적 순간에는 “전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여 전혀 새로운 해답<br />

을 얻을 기회”(I/3, 1231)가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벤야민<br />

이 여전히 유효한가, 그의 사상은 현재성이 있는가라고 묻기보다 우리가 살고<br />

있는 현재가 충분히 현재적인가, 아니 그 현재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인식이 충<br />

분히 현재적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4)<br />

. 초현실주의 에세이와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br />

벤야민이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초현실주의 에<br />

세이에서였다. 5) 그렇기 때문에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에 대한 그의 구상을 추적하자<br />

면 초현실주의 에세이를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벤야민은 엘뤼아르의 시<br />


을 고백한다. 8) 그리고 그 뒤에


의식”으로 옮겨 모더니티에 대한 구제비평을 시도한다. 즉 그는 19세기 자본주<br />

의적 현대를 고대와 현대, 신화와 역사의 변증법적 이미지로서 재현한다. “자본<br />

주의는 꿈을 동반한 새로운 잠이 유럽에 덮쳤고 그 잠 속에서 신화적 힘들이 부<br />

활했던 일종의 자연현상이었다.”(V/1, 494) 벤야민이 이처럼 19세기를 신화적 꿈<br />

의 세계에 침잠시키는 이유는 현재를 잠에서 깨어난 각성의 순간, 즉 위기를 감<br />

지하는 “지금 시간”으로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14) 이로써 그는 19세기를 박물관<br />

적 지식으로 보존하는 문화사의 대상에서 건져내어 역사를 정치적 주체적으로<br />

전유(專有)하기 위해 “깨어나기의 정신분석 Psychoanalyse des Erwachens” 15)을 시<br />

도하는 것이다.<br />

즉 19세기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 비판은 19세기의 역학주의나<br />

기계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19세기의 마취적인 역사주의, 그것의 마스크 중독<br />

증에 대한 비판이다. 그 마스크 중독증 속에 바로 진정한 역사적 실존의 신호가 숨<br />

어있으며 이 신호를 최초로 포착한 자들이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이 신호를 해독<br />

(解讀)하는 것이 이 연구의 과제이다. 그리고 초현실주의의 혁명적이고 <strong>유물론</strong>적인<br />

토대야말로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진정한 역사적 실존의 신호 속에서 19세기가 자<br />

신의 경제적 토대를 최고도로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히 보장해 주고 있다.(K 1a, 6<br />

= V/1, 493쪽 이하)<br />

여기서 알 수 있듯이 19세기의 ‘원사’를 발굴하려는 <strong>벤야민의</strong> 고고학적 프로<br />

그램은 비록 실험적인 성격을 띨지라도 이처럼 초현실주의적 경험과 방법에서<br />

영감을 얻은 것이다. 19세기를 그것이 계속 빠져있는 ‘역사주의’라는 꿈과 마취<br />

에서 깨어나게 할 초현실주의적 <strong>유물론</strong>이라는 각성제는 과거에 대한 인식을 ‘변<br />

증법적 이미지’로 만드는 데서 그 효능을 발휘하게 된다.<br />

14) 스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V/1, 491)이라고 특징지은 이러한 꿈과 깨어남의 변증법은<br />

벤야민에서 또 다른 핵심적 모티브인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에 비견된다. 대도시 베를린에<br />

서 보낸 유년기를 회상하는 성인 벤야민은 기억의 순간을 읽음, 인식, 깨어남의 순간으로<br />

서술한다.(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이 역사적으로 행해온 역할이 프랑스에서는 집단에 비중이 있<br />

었던 반면 독일에서는 개인에 비중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독일에서<br />

는 ‘관념론’ 철학과 대적해야하는 상황 때문에 더 날카롭게 부각되었다고 말한<br />

다.<br />

그러나 벤야민에게서 이런 산발적인 언술 이외에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에 관한<br />

체계적인 사고를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17)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의 계보에 언급<br />

된 사상가와 작가들에 대한 구체적 언급들도 찾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br />

학적 <strong>유물론</strong>’이 그의 역사적 <strong>유물론</strong>의 방법을 특징짓는다면, 우리는 그것의 요<br />

소들을 그의 중, 후기 저작 전체에서 추출할 수밖에 없다.<br />

우선 우리는 ‘인간학’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벤야민이 전승된 <strong>유물론</strong>에서 이<br />

루어져 온 ‘인간’에 대한 이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마르<br />

크스에서 진보의 이론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에서 진보는 생산력의 전개 양상<br />

으로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그 생산력에는 인간 내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속<br />

한다. 이로써 기준에 대한 물음은 되밀린다.”(I/3, 1239) 여기서 벤야민이 마르크<br />

스에게서 ‘인간’의 요소가 제대로 또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고 하는 비판은<br />

무슨 의미일까?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가


독서에 관해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환각제 도취에 관한 제 아무리<br />

열정적인 연구도, 사유의 범속한 각성이 환각제 도취에 관해 가르쳐 주는 것의 절반<br />

만큼도 (그 자체가 고도의 마취제인) 사유에 관해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독서하<br />

는 자, 사유하는 자, 기다리는 자, 거리산보자 flâneur는 아편 복용자, 몽상가, 도취된<br />

자와 마찬가지로 각성한 자들의 유형들이다. 그것도 후자의 사람들보다 더 범속한<br />

자들이다. (II/1, 307)<br />

벤야민은 이러한 ‘범속한 각성’의 개념에서 표현되고 있는 <strong>유물론</strong>적이고 인간<br />

학적인 영감을 나중에 개인에서 집단의 차원으로 전용하여 망각 속에 묻힌 19세<br />

기의 꿈으로부터 깨어남의 “성좌”를 읽어내고자 한다. 즉 ‘범속한 각성’은


언급하면서 “범속한 각성”이 어떻게 혁명적 실천과 연계되는지를 고도로 압축<br />

된 문장들로 서술한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범속한 각성’이 친숙하게 만드는<br />

“이미지 공간”에서 열려야만 가능하고, 또한 이때 “이미지 공간”은 “신체 공간”<br />

과 상호 침투해야만 한다.<br />

염세주의를 조직한다는 것은 정치에서 도덕적 메타포를 추방하는 일, 정치적 행동<br />

의 공간에서 100 퍼센트의 이미지 공간 Bildraum을 발견하는 일 이외의 다른 것을<br />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미지 공간은 정관적으로는 kontemplativ 전혀 측정할 수<br />

없다. ( ) 위트에서, 욕지거리 속에서, 오해 속에서, 그리고 어떤 한 행동이 스스로<br />

이미지를 자신으로부터 밖에 내세우고 그 이미지 자체가 되며, 그것을 자신 속으로<br />

잡아채고 물어뜯는 곳 어디서나, 가까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의 눈으로 바라보는<br />

곳 어디서나, 이렇게 찾았던 이미지 공간이 열리는 법이다. 그 이미지 공간은 ‘안락<br />

한 방’이라는 게 없는, 보편적이고 완전한 현재성 Aktualität의 세계이며, 한 마디로<br />

정치적 <strong>유물론</strong>과 신체적 피조물이 내적 인간, 영혼 Psyche, 개인 또는 우리가 그것들<br />

에게서 비난하고자 하는 그 밖의 것을, 변증법적 정의(正義)에 따라, 그리하여 어느<br />

부분도 그것에서 찢겨 나가지 않은 채로 있지 않도록, 서로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br />

럼에도 아니 바로 그와 같은 변증법적 파괴 뒤에 그 공간은 여전히 이미지 공<br />

간이며, 더 구체적으로 말해 신체 공간 Leibraum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소용<br />

이 없고 이러한 고백을 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포크트와 부하린 식의 형<br />

이상학적 <strong>유물론</strong>은 초현실주의자들의 경험이 입증하고 그 이전에는 헤벨, 뷔히너,<br />

니체, 랭보의 경험이 입증한 것과 같은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으로 단절 없이 넘어갈 수<br />

없다. 잔재가 남는다. 집단 역시 신체적이다. 그리고 기술 속에서 그 집단에게 조직<br />

되는 자연 Physis은 그것의 정치적이고 객관적인 현실에 따라 볼 때 저 이미지 공간<br />

속에서만, 즉 범속한 각성이 우리를 친숙하게 만드는 그 이미지 공간에서만 생성될<br />

수 있다. 그 자연 속에서 신체와 이미지 공간이 서로 깊이 침투함으로써 모든 혁명<br />

적 긴장이 신체적인 집단적 신경감응 kollektive Innervation이 되고 집단의 모든 신체<br />

적 신경감응이 혁명적 방전(放電)이 되어야만 비로소, 현실은 공산당 선언이 요구하<br />

는 것처럼 그 자체를 능가하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 공산당<br />

선언이 오늘날에 내리는 지령을 파악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br />

없이 그들의 얼굴표정을, 매 분 60초 동안 째깍거리는 자명종의 숫자판과 맞바꾸며<br />

짓고 있다.(II/1, 309 f., 강조는 필자.)<br />

이 구절에 <strong>벤야민의</strong>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의 구상을 이루는 핵심개념들이 집약되<br />

어 있다. 그것은 ‘범속한 각성’과 관련된 ‘이미지 공간’과 ‘신체 공간’의 상호침<br />

투만이 아니라 ‘현재성’, ‘집단적 신경감응’과 같은 것들이다. <strong>벤야민의</strong> 역사철학<br />

에 따르면


이처럼 벤야민에게서 역사의 진정한 이미지는 1)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br />

라진다는 점, 그것도 2)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다는 점, 3) 지금껏 읽힌 적이 없이<br />

‘인식가능성의 현재’에 처음 나타난다는 점, 4) 변증법적 구조를 갖는다는 점 등<br />

을 특징으로 한다. 벤야민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그의 생애 전체가 작은 이<br />

미지들로 눈앞을 휙 스쳐지나간다고 하는 말을 종종 인용한다. 또한 그는 프루<br />

스트의 ‘무의지적 기억’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리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br />

우리 자신의 이미지라고 해석한다.(II/3, 1064)<br />

초현실주의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문화사에서 폐기되고 망각된 것, 낡아버<br />

린 것, 일상적인 것, 진부한 것, 망가지고 초라한 것으로부터 현재의 이미지를<br />

읽어내고자 한 <strong>벤야민의</strong> 구제비평적 읽기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처한 것과 같은<br />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II/1, 213)라고 요약할 수 있<br />

다.<br />

. 신체 공간<br />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가 열리는 공간은 ‘신체 공간’과 상호 침투한다. 무엇보<br />

다 ‘신경감응’이 그 두 공간을 매개한다. 그는 초현실주의 운동이 개별 작품들은<br />

주목할 만한 것을 내놓지 못했다 하더라도 무엇보다 “심미적인 것을 분쇄”한 점,<br />

그를 통해 예술을 “한편으로 생리적-인간적인 것, 동물적-인간적인 것에 연계시<br />

키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인 것에 연계시킨 점”을 높이 평가한다.(II/3, 1023)<br />

초현실주의는 예술을 생리학과 정치학으로 분할시켰고, 부르주아적 자율적 정신<br />

을 해체시켜 신체적 피조물과 정치적 실천의 주체로 갈라놓았다. 즉 앞서 인용<br />

했듯이 초현실주의에서는 “정치적 <strong>유물론</strong>과 신체적 피조물이 내적 인간, 영혼<br />

Psyche, 개인 또는 우리가 그것들에게서 비난하고자 하는 그 밖의 것을, 변증법<br />

적 정의(正義)에 따라 ( ) 공유한다.” 그에 따라 초현실주의적 경험은 바로 부르<br />

주아 휴머니즘의 전통이 펼쳐놓은 “의미”, “정신”, “자아”, “도덕”의 감옥에 갇혀<br />

있는 신체를 해방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도취”의 경험을 통해 가능해진<br />

다. 이 때 “도취의 변증법” 또는 상반된 의미를 갖는 도취의 두 유형에 주목할<br />

필요가 있다. ‘도취’는 그것이 개인에 한정될 경우 공동체로부터 고립시키는 작<br />

용을 한다. 그에 반해 벤야민이 초현실주의적 경험으로 부각시키는 도취는


혀 외부 현실의 소외에 대한 보상만을 추구하는 부르주아 “상자 인간 Etui<br />

Mensch”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작업에서 시작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벤야민이<br />

파악한 초현실주의가 나아갈 방향은 그가 다른 곳에서 강조한 파괴적 성격 , 24)<br />

그리고 경험과 빈곤 에서 강조한 “긍정적 야만성 positives Barbarentum”의 구상<br />

에 정확하게 조응한다. 카를 크라우스의 “비인간 Unmensch” 역시 같은 맥락에서<br />

거짓된 휴머니즘을 파괴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유리 문화”를 옹<br />

호하는 쉐르바르트 P. Scheerbart, “새로운 천사”를 그린 클레 P. Klee, “장식”이라<br />

는 용을 퇴치하기 위해 싸우는 로스 A. Loos도 벤야민에 따르면 같은 방향에서<br />

작업하는 파괴적 구원자들의 부류에 속한다.(II/1, 366 f.)<br />

한편 여기서 공동체와 연계된 ‘도취’의 경험이 암시해 주고 있듯이 우리가 벤<br />

야민이 말하는 ‘신체 공간’을 다루면서 유의할 점들이 있다. 첫째로 그가 형이상<br />

학적이고 추상적인 <strong>유물론</strong>을 극복하기 위해 ‘<strong>인간학적</strong> <strong>유물론</strong>’을 맞세우면서 구<br />

체성과 신체성을 강조할 때 이 신체는 개인의 신체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역사적<br />

으로 형성되어야 할 집단의 신체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는 집단적 신체에 관<br />

한 성찰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논하는 추상적 ‘물질’ 개념에 충격을 가하고 구<br />

체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는 이 문제를 역사적 <strong>유물론</strong>의 중심적 문제로 제기<br />

한다.<br />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가 반드시 구체성을 희생시킨 대가로 얻어져야만<br />

하는가? 아니면 상승된 구체성을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을 수행하는 일과 결합시키는<br />

것이 어떤 방식을 통해 가능한가? 이 방식의 첫 단계는 몽타주의 원칙을 역사로 넘<br />

겨받는 일이 될 것이다.(N 2, 6 = V/1, 574)<br />

여기서 벤야민은 역사적 <strong>유물론</strong>의 시각에서 역사를 구성할 때 “문학적 몽타<br />

주” 방식을 택함으로써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 몽타주의<br />

대상이 될 자료들은 경제적 토대가 ‘표현’된 문화의 현상들, 꿈의 현상들이다.<br />

그리고 이 꿈의 이미지 속에서 ‘신체 공간’과 ‘이미지 공간’이 상호 침투한다.<br />

린 곳:


단은 기술에서 도구를 취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제2의 기술’이라고 칭하는 이<br />

기술은, ‘제1의 기술’이 인간의 자연 지배에 목표를 뒀던 것과는 달리, “자연과<br />

인류의 어울림”에 목표를 둔다. 그리고 이 ‘제2의 기술’은 “사회의 근원적 힘들<br />

을 제압하는 일이 자연의 근원적 힘들과의 유희를 가능케 할 전제가 되는 체제”<br />

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혁명이 일어나 “인류의 상태가 ‘제2의 기술’이 가능케<br />

한 새로운 생산력에 적응하게 되어야만” 인간이 “그 도구에 봉사하는 일에 노예<br />

화되는 대신 그 도구를 통하여 해방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VII/1, 360<br />

f.) 즉 벤야민에서 기술은 혁명을 위한 필수적 도구이면서, 그와 동시에 기술을<br />

“자연과 인류의 어울림”이라는 (유토피아적) 목표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또<br />

다시 “사회적 근원적 힘들을 제압하는 일”이 전제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기술<br />

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대신 파괴와 노예화의 도구로 전락하고, 그 예를 우<br />

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과 억압, 환경 파괴 등을 진보의 대가로서 치러온<br />

자본주의 산업화의 역사에서, 그리고 특히 그러한 “기술의 잘못된 수용”을 극명<br />

하게 드러낸 전쟁에서 익히 경험해 왔다. 26) ‘대중기만으로서의 계몽’이라는 역<br />

기능을 수행하는 “문화산업”에 투입되는 기술도 물론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br />

것이다.<br />

이처럼 집단과 기술과 정치적 실천(혁명)의 상호 맞물림 관계가 <strong>벤야민의</strong> ‘인<br />

간학적 <strong>유물론</strong>’의 뼈대를 이룬다. 중요한 것은 벤야민이 자신의 이러한 구상을<br />

마르크스의 생각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br />

점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점을 확인한다. 그는 마르<br />

크스가


대상은 바로 기술과 대중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대중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왜<br />

대중을 그토록 중시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그 이유는 모더니티 이래 사<br />

회의 모든 영역에서 대중의 존재야말로 실제로 역사를 움직여 온 힘이었기 때문<br />

이다. 또한 역사를 되돌아보면 제아무리 그럴듯한 혁명론도 그 혁명을 수행할<br />

주체에 대한 물음 앞에서 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정<br />

치적 아방가르드로 이해했던 벤야민은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어떤 사상가들보다<br />

더 대중의 존재와 속성에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실제로 보들레르에 대한 연구<br />

를 비롯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이나 ‘꿈꾸는 집단’ 등 그의 연구의 많은<br />

부분이 대중이라는 현상에 쏠려있다. “대중들의 삶은 예전부터 역사의 얼굴에<br />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들이 의식적으로, 그리고 마치 이 얼<br />

굴의 안면근육으로서 그 얼굴의 표정을 표현하게 된 것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br />

다.”(I/3, 1041) 이 대중이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보들레르의 시대였다.<br />

거리산보자 보들레르에게 이 대중은 시인이 그것을 통해 대도시 파리를 바라본<br />

“움직이는 베일”이었으며 계급이나 신분이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은 “무정형”의<br />

덩어리였다. 그러나 시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이 대중이라는 “가상”과 “환영”<br />

은 이 시대가 빚어낸 환영들 중의 하나였다. 28)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br />

제정기의 파리 에서 벤야민은 이러한 대중이란 근본적으로 사적 이해관계의 우<br />

연을 통한 사적 개인들의 집중화 현상일 따름이고, 또 이처럼 시장에 모여든 소<br />

비대중이 바로 전체주의 국가들에 의해 조작되는 대중이라는 점을 꿰뚫어본다.<br />

하나의 거리, 하나의 화재, 하나의 교통사고는 그 자체가 계급적으로 전혀 규정되어<br />

있지 않은 사람들을 집합시킨다. 그들은 구체적인 집합들로 나타나긴 하지만 자신<br />

들의 사적인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는 추상적이다. 그들의<br />

모델은 자신들의 사적인 이해에 관련하여 ‘공통의 사태’를 둘러싸고 시장에 모여드<br />

는 고객이다. 이들 집합들은 흔히 통계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집합들은 이들이<br />

지닌 본래 괴물 같은 측면, 즉 자신들의 사적 이해관계의 우연을 통해 사적 개인들<br />

28) 벤야민에 따르면 거리산보자에게 대중이 갖는 기능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대<br />

중은 거리산보자 앞에 자신을 베일처럼 드리운다. 그것은 고립된 자의 최신 환각제이다.<br />

둘째로, 대중은 개인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것은 추방당한 자의 최신 피난처인 것<br />

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은 도시의 미로 중에서 가장 새롭고 가장 탐색하기 어려운 미로이<br />

다.”(


적 ‘소비대중’이 전체주의 국가가 주조하는 정치적 ‘민족공동체’라는 이데올로<br />

기에 흡수되는 역사적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런 역사적 현실에 직면하여<br />

그는


고지현:


konzentriert, jenem Begriff, der dann von hier aus seine konstruktive Karriere durch<br />

die Passagenarbeit antritt. Die profane Erleuchtung wird also übertragen auf die<br />

“Urgeschichte des 19. Jahrhunderts”, um die es in der Passagenarbeit geht, und<br />

entwickelt sich zum dialektischen erkenntnistheoretischen Modell für “Traum und<br />

Erwachen” sowie “Vergessen und Erinnern.”<br />

Die Durchdringung von Bild- und Leibraum, die laut Benjamin der profanen<br />

Erleuchtung vertraut ist, macht nun die Bedingung dafür aus, dass “alle revolutionäre<br />

Spannung leibliche kollektive Innervation, alle leiblichen Innervationen des Kollektivs<br />

revolutionäre Entladung werden.” Mit dem Leib ist also bei Benjamin nicht der<br />

einzelner Individuen gemeint, sondern vielmehr ein kollektiver, der sich mittels der<br />

Technik organisiert und die Rolle übernimmt, den Leib und die Psyche des sich<br />

autonom dünkenden bürgerlichen Subjekts aufzusprengen. Aufgesprengt werden auch<br />

Begriffe und Vorstellungen wie Innerlichkeit, Ich, Sinn sowie andere aus der<br />

humanistischen Tradition, die am Fetisch des Schöpferischen festhalten, sich im<br />

Gebietsdenken des Ästhetischen verharren und am Ende für die falsche Rezeption der<br />

Technik verantwortlich gemacht werden. Benjamins avantgardistische Forderung nach<br />

dem destruktiven Charakter, dem “positiven Barbarentum”(Erfahrung und Armut) und<br />

dem “Unmensch”(Karl Kraus) wird von hier aus verständlich. Das sind allesamt<br />

Denkfiguren, die es sich zur Aufgabe machen, zugunsten des realen Humanismus die<br />

muffigen Bestände des alten Menschen zu vernichten.<br />

Was die Masse anbetrifft, so gilt es freilich, das Kollektivum, das Benjamin für<br />

die Revolution als “kollektive Innervation” einfordert, von jenen Massierungen der<br />

Leute zu unterscheiden, deren Modell die sich auf dem Markt zufällig formierende<br />

Kundenmasse ist, und die als das Objekt der Manipulation der totalitären Staaten<br />

fungiert haben. Und keiner kann doch behaupten, heute in der postmodernen<br />

Consumer Society sei totalitäre Macht endgültig gebannt.<br />

Benjamins Konzeption des anthropologischen Materialismus enthält m. E.<br />

denkwürdige Motive, aus denen für die Erneuerung des gesellschaftskritischen<br />

Denkens und der materialistischen Erkenntnistheorie auch heute wichtige Aufschlüsse<br />

zu ziehen s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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