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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문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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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화와</strong> <strong>문화읽기</strong><br />

들어가는 말<br />

김숙희 (동덕여대)<br />

1927년 초 개봉된 프리츠 랑 감독(1890-1976)의 무성영화 에<br />

는 언제나 ‘사이언스-픽션-영화의 선구’ ‘원형 사이언스 픽션 필름’ ‘공상과학-느<br />

와르-재해영화 der Science-Fiction-Noir-Katastrophenfilm의 원형’ 같은 수식어가<br />

따라 붙는다. (1982년, 리들리 스콧감독)같은 후대의 영화가 이<br />

작품을 인용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정의는 틀림없는 사실이겠<br />

으나, 그러나 는 공상과학적 미래를 다룬 것이기 이전에 오히려<br />

제작 당시의 독일 문화를 광범위하게 반영하고 있는 영화이다. <br />

는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사회적 혼란을 시각적 영상으로 옮겨 놓은<br />

것이며, 바이마르 <strong>영화와</strong> 문화 자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즉 당시 독일 문화의 편<br />

람으로 읽을 수 있다. 1) 표현주의 영화의 기본서로 꼽히는


는 이 영화의 대본에서 자신의 패스티시(혼성모방)기술을 십분 발휘했다. 그녀<br />

는 노동자들의 지하세계라든지 인조인간(로봇) 창조 등을 표현하기 위하여 웰즈<br />

H. G. Wells의


시의 유럽적 사고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규명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건축은<br />

이 영화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미래도시’의 기호이며, 여기서 미래도시<br />

의 건축은 특히 당시의 산업관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br />

시대문화의 편람 독일적 블록버스터<br />

복식 회화 조각 무용 등 아방가르드의 집합체<br />

미래파적인 대도시 모습, 앞뒤로 또 아래위로 힘차게 왔다갔다 움직이는 거대<br />

한 피스톤 - 마치 입체파 회화처럼 둘의 교차를 보여주는 시작 장면부터 영화<br />

는 조형 예술적으로 당시의 아방가르드 스타일을 따른다. 5) 영화<br />

는 그 도상학에 있어 당시의 시대정신은 물론 베스트셀러 문학과 패션 등을 수<br />

없이 차용한다. 건축학적 디자인과 그<br />

계도(系圖)는 물론, 회화, 그래픽, 조<br />

각, 박물관 전시물, 패션 액사서리, 북-<br />

디자인, 상업미술에 대한 직접적인 암<br />

시들이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다.<br />

영화에서 인상적인 신중의 하나인<br />

십자가 장면 (주인공 프레더가 지하<br />

기계실에서 노동자를 대신해 대형 시<br />

계모양의 기계 앞에 지쳐 쓰러지는 장<br />

면)은 슈미트 Kurt Schmidt(1901-1991)<br />

의 구성주의 스케치에서 따온 것으로<br />

보이며(사진 1), 영화에서 로봇 마스<br />

크 6)(사진 2의 위)의 모델로 사용된 것<br />

5) Vgl. Ebd., S. 21ff.<br />

6) 인조인간 마리아를 만든 사람은 조형물 담당 발터 슐쩨-미텐도르프 Walter Schulze-Mittendorf<br />

이다.


은 오스카 슐렘머 Oskar Schlemmer(1888-1943) 7)의<br />

발레 스케치 ‘여성 무용수 Female Dancer’(1922-23)<br />

와 ‘노랑과 검은 색 마스크 Maske in Gelb und<br />

Schwarz’(1923)(사진 2의 아래), 그리고 루돌프 벨<br />

링 Rudolf Belling(1892-1972) 8)의 ‘황동 두상 Kopf<br />

in Messing’(1924)이었다. 의상 담당 엔네 빌콤<br />

Aenne Willkomm이 만들어낸 밤의 숙녀들이 입었<br />

던 몇몇 의상 역시 오스카 슐렘머의 바우하우스<br />

컬렉션에서 취한 것이며, 영화의 전체적인 의상도<br />

미래주의적이 아닌 당시의 것이거나 전통적인 것<br />

이었다. 영화에서 쓰인 언어와 가치 체계 역시 일<br />

반적으로 통용되던 1920년대의 것이었다. 사악한<br />

과학자 로트방의 집은 순수한 고딕식 판타지인 것<br />

만이 아니라 표현주의 건축가 오토 바르트닝 Otto<br />

Bartning(1883-1959)이 어느 강철그룹 사장을 위해<br />

1923-1925년 작센 주(짜이파우 Zeipau)에 지은 빌<br />

라를 본뜬 것이었다.(사진3) 9) 심지어 도시 메트로폴리스의 주인인 조 프레더슨<br />

의 사무실 탁자를 장식한 유리 조형물은 당시 유행하던 페터 베렌스 Peter<br />

Behrens(1868-1940) 10)의 작품 모델이었다. 11) 또 영화 후반부에서 프레더가 인조<br />

인간 로봇을 아버지 프레더슨이 안고 있는 장면을 보고 이 여성을 실제의 마리<br />

아로 오해하고 앓아누웠을 때, 병상에서 그가 읽고 있던 것은 아발룬 출판사<br />

Avalun-Verlag 에서 바로 얼마 전에 나온, 당시 유행하던 묵시록에 관한 책


랑 감독 자신의 전작을 암시하는 장면<br />

들도 많다. 두 주인공 프레더와 마리아가<br />

처음 만나는 ‘영원의 정원 Ewige Gärten’<br />

장면에 나오는 지하 종유석은 그의 전작<br />

에 나왔던 알베리히 동굴의<br />

것과 동일한데, 두 장면 모두 베를린의<br />

대극장 Großes Schauspielhaus에 있는 한<br />

스 푈치히 Hans Poelzig(1869-1936) 13)의<br />

주랑들을 본 딴 것이었다. 14) 또 ‘영원의<br />

정원’은 1909년 피도 Fido라는 화가가 그<br />

린 어느 유겐트슈틸 잡지의 표지와 닮아<br />

있다고도 하며, 표현주의 화가 게르트 볼<br />

하임 Gert Wollheim(1894-1974)의 그림에<br />

서 따왔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인조인간<br />

인 가짜 마리아가 치솟아 올라오는, 김이<br />

나는 보석-마녀 솥은 랑 감독의 에서 돌로 굳어졌다가 소생<br />

한 난쟁이들에 의해 니벨룽엔의 보물 궤<br />

짝이 운반되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br />

영화에서는 무릎 꿇은 흑인 노예들에 의<br />

해 떠받쳐졌다. 지하도시의 아스팔트를 뚫고 솟구치는 물은 에서 용(龍)의 치명적인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와 동일한 모습으로 촬영<br />

되었다. 15)<br />

12) Vgl. Ebd.<br />

13) 화가, 건축가, 무대미술가. 표현주의 건축 및 신즉물주의에 기여했다.<br />

14) Vgl. Thomas Elsaesser, a.a.O., S. 26. 당시 비평가들은 이 장면이 너무 낯익어서 언급할 필<br />

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한다.<br />

15) Vgl. Ebd., S. 29.


몹 신과 춤<br />

노동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몹-신 Massenszene에서는 저명한 표현주의 연출가<br />

막스 라인하르트 Max Reinhardt가 인용되었으며, 애원하면서 두 손을 쳐드는 엑<br />

스트라들을 연출한 선행자로는<br />

피스카토르 Erwin Piscator의 언<br />

어합창단이 지적되기도 한다.<br />

(사진 4) 16) 그러나 영화 속에 표<br />

현된 안무는 연극에서의 인용보<br />

다는 당시의 무용 문화를 그대<br />

로 암시한다. 매리 위그먼 Mary<br />

Wigman(1886-1973) 17)이 1920년<br />

부터 댄스학교에서 가르친 격정<br />

적인 포즈와 기이한 손동작, 인위적인 손가락들의 움직임, 그리스 조각을 지향<br />

하는 이사도라 던컨 Isadora Duncan(1877-1927)의 포즈, 비젠탈 Wiesental18) 자매<br />

의 황홀하게 내뻗은 두 팔, 지배(남성적/위)와 복종(여성적/아래)의 미학화된 수<br />

직적 지형도, 댄스 그룹의 운동 - 이 모든 것이 무성영화 가 전<br />

개하는 감정의 토픽들 속에서 재연되었다. 특히 도피 장면과 위협장면의 드라마<br />

투르기는 무용의 포즈와 리듬에 의지했다. 급하게 앞서가다가 물러나 ‘마비된<br />

듯한 포즈’를 취한다든가, 머물다가 급작스럽게 ‘미친 듯 선회’ 하는 동작 등은<br />

-무대 위에서의 무용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는 관객들에게 인간영혼의 격정<br />

적인 움직임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19) 영화가 보여주는 풍부한 표정의 제스처와<br />

움직임의 형체들은 당시 현대무용이 보여준 새로운 상징적 신체 표현들을 인용<br />

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영화에서의 그 같은 유추가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했기<br />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대중의 장식 Das Ornament der Masse’이라는 저 유명한<br />

16) Lotte H. Eisner, ibid., p. 223.<br />

17) 독일 무용가, 안무가. 표현무용 Ausdrucktanz을 신독일무용으로서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br />

들었다.<br />

18) 빈에서 활동했던 자매무용가. 클림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동작 등에 영향을 주었다.<br />

19) Vgl. Karin Bruns, a.a.O., S. 65.


테제를 제시했던 사람은 크라카우어 Siegfried Kracauer뿐만은 아니었다. 20) 홍수<br />

로부터의 집단 도피 신, 기계실 장면에서의 노동자 집단과 거대한 기계들의 리<br />

뷰 식 연출, 도입부 ‘영원의 정원’에서 프레더와 여인 사이에 벌어지는 숨바꼭질<br />

놀이, 노동자들 앞에 선 기계 요부 마리아의 유혹 신 및 이와 병행하여 연출된<br />

그녀의 춤 신 등 - 춤을 인용한 장면들은 영화 전체 드라마투르기의 포기할 수<br />

없는 구성요소이다. 특히 요부 로봇 마리아의 춤 장면은 다중 렌즈의 도움을 받<br />

아 최면적인 유혹 기술로 시각화되면서 관객의 욕망을 일깨우고 감각을 도취시<br />

킨다. 수평으로는 시속 12km, 수직으로는 시속 8km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카<br />

메라의 기능은 관객들에게 스크린이라는 무대에서 떠다니는 육체 움직임의 ‘도<br />

취’를 선사했다. 21)<br />

이처럼 당시의 조형예술, 회화 및 공예품 그리고 무용 등에서 따온 아방가르<br />

드적 악센트는, 할리우드와 구별되면서 어디서나 인식 가능한 독일적 ‘디자이너<br />

블록버스터’의 원형을 제시하고자 했던 이 영화 팀의 노력을 그대로 보여준<br />

다. 22) 는, 그 플롯이 제작당시의 시점에서 100년 후의 미래로 설<br />

정돼 있지만, 영화 곳곳에 1920년대 당시의 문화와 예술이 수없이 스며들어가<br />

있다. 이 영화는 랑 감독의 필모그래피(작품목록)에서 중심이 되는 작품일 뿐만<br />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20년대 말 독일의 정신 묘사도’이며 ‘바이마르 문화의<br />

상징’인 것이다. 23) 영화는 이렇게 오늘날의 후세대에게 80여 년 전의 다양한 문<br />

화적 기억을 불러내어 접촉시킨다.<br />

20) 예를 들어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지 FAZ의 한 비평가는 기계센터에서의 신체 연출을<br />

두고 “매리 위그맨으로 부터 배워 익힌 동작들”이라고 논평했다.<br />

21) Vgl. Karin Bruns, a.a.O, S. 65f. und Sabine Hake, Film in Deutschland, Reinbek bei<br />

Hamburg 2004, S. 72. 특히 이 영화의 집단 안무는 랑 감독의 깊은 비관적 세계관을 반영<br />

한다고 지적되기도 한다.<br />

22) Vgl. Thomas Elsaesser, a.a.O., S. 29. 는 원래 (1920)이나 (1923)이 해외에서 거두었던 흥행 성공을 의식하고 제작된 것이<br />

었다. 독일적 ‘디자이너 블록버스터’란 표현은 독일적 특성을 지닌 할리우드식의 대형 블<br />

록버스터를 만들려는 원래의 기획 의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미국과 영국 등<br />

지에서의 흥행에 참패했지만.<br />

23) Vgl. Ebd., S. 21 und 102.


메트로폴리스 와 건축<br />

1) 신즉물주의와 표현주의 건축<br />

영화는 지상의 부유 계층과 지하의 노동계층으로 분리되어 주민들이 살고 있<br />

는 2026년의 도시 메트로폴리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에서 감<br />

독이 불가항력적인 현대사회의 상징으로 스크린에 재현해 놓은 것은 무엇보다<br />

도 건축이었다. 랑 감독의 모든 영화에는 건축과 시각 언어, 그래픽 기술이 적절<br />

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특히 는 도시와 고층 건축의 관계를 영화<br />

기술적으로 지침이 될 만큼 거장답게 표현해 내고 있다. 24) 관객을 압도하는 도<br />

입부의 대도시 기호들 -‘새로운 바벨탑’이라고도 불리는 도시 중앙의 거대한 고<br />

24) 감독 자신 한때 건축학도였으며, 그의 부친 역시 건축가였다. 영화의 건축물들은 케텔후트<br />

Erich Kettelhut, 훈테 Otto Hunte, 폴브레히트 Karl Vollbrecht 가 담당했으며, 지상의 미래<br />

도시는 쉬프탄이 고안해낸, 거울을 이용한 특별한 방식으로 촬영되었다. Vgl. Walter<br />

Prigge/ Frank Herterich, Skyline: Zeichen der Stadt. Moderner und Postmoderner Städtebau,


층빌딩을 비롯한 마천루들과 거리들의 협곡 위에 놓인 고속도로, 그 위를 달리<br />

거나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비행기들(사진 5)-은 시각적으로 매혹적인 몽타주에<br />

의해, 카메라 움직임의 테크닉에 의해, 그리고 영상 공간들의 시각적 질서에 의<br />

해 강화된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이 건축물들은 랑 감독<br />

이 이 영화의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대도시 뉴욕의 풍경을 암시한다. 25)<br />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이 대도시 풍경에서는 독일 공작 연맹 Deutscher<br />

Werkbund(DWB) 26)이나 당시의 바우하우스 Bauhaus로 대표되는 기능주의 건축<br />

의 징후를 읽어내게 된다. 19세기말에 처음 등장한 기능주의 건축은 “형태는 기<br />

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는 영국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 Louis Sullivan<br />

의 말에서, 또, “하나의 집은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한 하나의 기계”라는 르 코<br />

르뷔지에 Le Corbusier(1887-1965)의 진술에서 그 본질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불<br />

필요한 장식을 없애고 실용성을 중시한 이 건축사조는 현대건축에 지대한 영향<br />

을 미쳤다. 27) 형태와 기능이 통일돼야 한다는 기능주의 이론은 독일에서는 ‘즉<br />

물성과 목적 형태 Sachlichkeit und Zweckform’라는 슬로건 아래 독일 공작 연맹<br />

의 창설과 함께 비로소 예술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일차대전 후 표현<br />

주의를 거친 후에 ‘신건축 Neues Bauen’, ‘바우하우스 스타일 Bauhausstil’ 혹은<br />

‘신즉물주의 Neue Sachlichkeit’라는 개념 아래 형상화 원칙으로서 주목을 받았<br />

다. 28) ‘말하는 건축 sprechende Architektur’이라는 표현이 나타내 주듯이, 실제로<br />

건축은 항상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제반 상황을 반영하며, 영화 건축은 실제<br />

in: Klaus R. Scherpe(Hg.), Die Unwirklichkeit der Städte, Reinbek bei Hamburg 1988, S. 304.<br />

25) 랑 감독과 제작자 폼머 Erich Pommer는 의 홍보를 위해 1924년 10월 뉴욕을<br />

방문했다.<br />

26) 약칭 DWB. 1896년 독일정부로부터 영국에 파견되어 그곳의 도시 계획과 주택 정책을 연<br />

구하고 독일정부에 보고했던 건축가 무테지우스 Hermann Muthesius(1861-1927)는 영국 건<br />

축의 절제성과 기능주의에 매료되어 귀국 후 1907년 10월 페터 베렌스 등 열두 명의 미술<br />

가와 열두 명의 기업인을 끌어 모아 뮌헨에서 독일공작 연맹(DWB)을 만든다. DWB는 “예<br />

술가, 건축가, 기업가 그리고 해당분야 관계자들의 경제 문화적인 연합체”였다. 바우하우<br />

스의 그로피우스도 1912년 이 단체에 가담, 조직과 정책 수립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br />

다. 프랭크 휘트포드(이대일 옮김), 같은 책, 19-22쪽 참조.<br />

27) Gerald Eager, functionalism, in: Michael Payne(Ed.), A Dichtionary of Cultural and Critical<br />

Theory, Blackwell Publishers 2001, p. 211.<br />

28) Vgl. http://lexikon.meyers.de/


건축과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1920년대의 화면은 바우하우스, 르 코<br />

르뷔지에 등에 의해 각인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9)<br />

그러나 영화 에 당시의 신즉물주의와 상통하는 기능적이고<br />

현대적인 스타일의 건축물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과 함께 표현주의 건축<br />

스타일도 함께 등장한다. 이 도시의 주인인 프레더슨이 설계 건축한 지상도시<br />

고층 건물들의 규범적 형태 개념과 마리아의 설교에 등장하는 새로운 바벨탑이<br />

축조적 신즉물주의 미학에 연결된다면, 인조인간을 제작하는 로트방의 집과 고<br />

딕식 성당은 후자를 대표한다. 30) 그리고 두 사조의 건축 스타일의 갈등은 이 영<br />

화가 제작되기 직전 독일 건축계를 달구었던 논쟁의 토픽이기도 했으며, 독일공<br />

작연맹 내의 ‘이념적 분열’과도 관계가 있었다. 전자 즉 신즉물주의 미학이 ‘규<br />

범적 형식의 집합적 수용(유형화)’을 나타낸다면, 후자, 즉 표현주의 미학은 개<br />

별적이고도 표현적인 ‘예술 의지 Kunstwollen’‘를 나타낸다. ‘유형적인 것’과 ‘예<br />

술 의지’ 사이의 분리는 보링거 Wilhelm Worringer(1881-1965) 31)가 논문 추상과<br />

감정이입 Abstraktion und Einfühlung (1908)에서 제시한 모델의 두 관점을 반영<br />

하는 것이다. 32) 신즉물주의적인 규범적 유형 개념에 중심이 된 것은 ‘축조 대상<br />

(對象)’의 관념이었다. 그것은 ‘건축 용어의 기본 단위로서 기능하는, 더 이상 단<br />

순화(축소)할 수 없는 건축 요소’를 말한다. 독일공작연맹의 창설자로 규범적 유<br />

형을 대표했던 저명 건축가 헤르만 무테지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본질적으로 건<br />

축은 유형적인 쪽으로 향해 가며, 유형은 특별한 것을 버리고 질서를 수립한다.<br />

이와는 달리 ‘형상화하려는 예술의지’는 축조상의 원칙보다 비축조적 원칙, 즉<br />

유기적 원칙에 따라 발생한다. 신즉물주의가 테크놀로지의 합리주의적, 기능주<br />

의적 관념에 기초한 추상미학을 긍정하는 경향을 보였다면(테크노놀지화된 미<br />

학), 표현주의는 분석적인 테크놀로지를 영성화된 전체론적 미학에 종속시키려<br />

고 시도했다.(미학화된 테크놀로지). 33)<br />

29) Vgl. Marion Müller, Architektur/ Bauten, in: Thomas Koebner(Hg.), Reclams Sachlexikon<br />

des Films, Stuttgar 2007, S. 26.<br />

30) R. L. Rutzsky, The Mediation of Technology and Gender, in: Michael Minden and Holger<br />

Bachmann(Ed.), Fritz Lang's Metropolis, Camden House 2000, p. 228.<br />

31) 독일 표현주의를 이념적으로 정초하는데 기여했던 미술사가.<br />

32) 보링거는 추상적 유형으로 향해가는 경향에 반대하여 감정이입의 개념을 제시하고 보급했다.


표현주의 건축은, 1차 대전 이후 1920년대<br />

말에 이르기까지의 건축물들에 해당하는, 거<br />

의 유일하게 독일적인 현상이다. ‘표현주의<br />

건축’이라는 명칭은 1913년 아돌프 베네<br />

Adolf Behne(1885-1948) 34)가 잡지


(1861-1925)가 스위스의 도르나흐에 세운 괴테아눔 Goetheanum 역시 위대한 표<br />

현주의 건축 조형물이다. 40) 하지만 무엇보다도 표현주의 건축의 경향이 가장 모<br />

범적으로 나타난 것은 1914년 독일공작연맹의 쾰른 전시회를 위해 디자인된 브<br />

루노 타우트의 ‘유리 누각 Glass<br />

Pavillon’ 일 것이다. 파울 셰르바르트<br />

Paul Scheerbart(1863-1914) 41)의 소설


기적’ 형태를 지향하는 이것들은 영화에서는 억압된 것으로 나타나는 건축학적<br />

요소들이다. 신즉물주의의 규범적 형태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이 건축물들은 불<br />

규칙적이다. 이들의 커브지고 비 병렬적인 선(線)들, 비(非) 유클리드적 기하학<br />

등은 자연적 소재(나무와 돌)의 건축을 암시하며, 유기적 성격은 이 건축물들의<br />

인테리어에서, 그늘지고 불규칙적인 마리아의 동굴 및 로트방의 집 안에서 특히<br />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질(膣)을 연상시키는(vaginal) 이 어두운 공간은 비밀<br />

스럽고 불가사의하다. 이들은 지상의 주인 프레더슨의 감시로부터 벗어나서, 기<br />

술적으로 합리화된 기능적 세계에 짓눌려 억압당한 어떤 힘을 감추고 있는 듯이<br />

보인다. 이 힘은 이 구조물들이 지닌 영적인 것, 종교적인 것, 혹은 마법적인 것<br />

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46) 특히 영화에서는 촬영되지 않고 소설에만 나오는<br />

프레더슨 어머니의 집도 여기에 해당된다. 프레더슨 어머니의 집은 규범적이고<br />

기능적인 형태들에서 벗어나면서도 로트방의 집이나 고딕 건축이 지닌 불가사<br />

의한 연상에 가담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되는 유기적인 관계로 전적으로 단순하<br />

고 친밀해 보인다. 47) 하지만 이는 고향스타일 Heimatstil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br />

건축 스타일의 완벽한 범례로서 너무나 쉽게 ‘피와 흙 Blut und Boden’이라는 나<br />

치의 수사학과 연결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혐의에서 벗어나기<br />

힘들다 하겠다. 48)<br />

영화에서의 표현주의적인 건축물과 연결하여 정리해 보면, 현대도시가 아무<br />

리 합리화되고 기능적, 축조적인 현대 건축물들로 이뤄져 있다 해도, 도시에는<br />

이에서 벗어나는 영역들(예를 들어 마리아가 설교하는 지하 동굴)이 있는 것이<br />

며, 이 감춰진 영역이 불러내는 것은 합리화된 기술적 모더니티에 의해 억압당<br />

45) 물론 로트방의 집은, 그 내부 한쪽에는 인조인간 마리아를 만들어내는 초과학적인 기계장<br />

치들을 갖추고 있지만, 그러나 납치된 실제 마리아를 찾으러 들어간 프레드가 아무리 애써<br />

도 그녀를 찾지 못할 정도로 불규칙적이고 비축조적이다. 그 외형적인 모습은 말할 것도<br />

없이 기능주의 건축물과 대조되는 ‘고딕식’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br />

46) R. L. Rutsky, ibid., p. 229-230.<br />

47) Vgl. Thea von Harbou, Metropolis, Frankfurt a.M./ Berlin/ Wien 1984, S. 123. 소설에서 이<br />

집은 “호두나무로 그늘이 진, 초가지붕의 1층짜리 농가 마당에는 백합과 접시꽃이 가득<br />

하고, 스위트피와 양귀비와 한련이 가득하고.”라고 묘사돼 있다. 소설에서 프레더슨은 어<br />

머니 집의 정원을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의 옥상에 옮겨 하늘정원을 만든다.<br />

48) R. L. Rutsky, ibid., p. 229.


한 무시무시한 요소들, 마력적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49) 지하도시 노동자들의 폭<br />

력적인 분출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한다.<br />

2) 파놉티콘으로서의 지상도시<br />

에서 지상 도시의 건축은, 이미 언급 했듯이, 기능성을 중시하<br />

는 추상적이고 축조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 건물들에는 표준화되고 합리화된<br />

질서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 있으며, 이는 명확하게 타자를 억압하는 역할과<br />

연결된다. 이같은 경향은 무엇보다도 도시 메트로폴리스의 주인인 프레더슨의<br />

사무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메트로폴리스의 머리(腦)’이자 주인공 프레더의<br />

아버지인 프레더슨은 거의 초인적, 아니 비인간적인 합리성과 효용성의 인물로<br />

제시된다. 그는 엄격한 합리적 기능적 라인에 따라 그의 ‘유토피아적’ 기술도시<br />

를 디자인하고 건축했다. 그의 사무실은 화상전화와 자동문 등 하이테크를 자랑<br />

하며, 그는 감시 모니터를 통해 지하 기계실에서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동작을<br />

남김없이 볼 수 있다. 공리적이고 실용적인 프레더슨의 이 사무실 디자인에는<br />

편리함뿐만 아니라 엄격한 통제의 시스템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버튼 하나를<br />

누름으로써 24시간 원할 때면 언제나 지하 기계실의 노동자들을 감시할 수 있는<br />

이곳의 통제 시스템은 글자 그대로 벤담적인 파놉티콘을 연상시킨다. 영국의 공<br />

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 Jeremy Behtham(1748-1832)은 1791년 당시 망원경과<br />

비슷한 광학기구에 붙여지던 ‘파놉티콘 panopticon’ 50)이라는 용어를 자신이 설계<br />

한 원형감옥 -혹은 ‘일망 감시장치’- 에다 적용했다. 원형감옥은 그 중앙 감시탑<br />

에서 간수가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는 구조<br />

로, 한쪽은 상대를 24시간 볼 수 있으나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51) 이러한 건<br />

축적 장치는 권력을 자동적인 것으로 만들며, 그 권력의 근원은 어떤 인격 속에<br />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 표면, 빛, 시선 등의 구분 속에, 그리고 개개인들이 포착<br />

되는 장치 속에 존재한다. 즉 여기에는 비대칭과 불균형, 그리고 차이를 보장해<br />

주는 장치가 있을 뿐이다. 파놉티콘의 이 같은 비대칭적 시선의 확장은 감시의<br />

49) ibid.<br />

50) 그리스어로 Pan(all)+Opticon(seeing), 즉 ‘다 본다’는 뜻.<br />

51) 홍성욱, 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 2005, 22-25쪽 참조.


원리를 체화하여 이를 새로운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만들어 버린다. 52) 영화 에 나타난 프레더슨 사무실의 감시구조는 원형이 아니지만 파놉티<br />

콘의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그것은 ‘보편적 명료화’를 추구하는 통치 권력의<br />

전형이자 메커니즘이다. 53)<br />

영화에서 지상도시는, 그곳에 살고 있는 부자와 그 자제들이 스포츠와 밤의<br />

환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 도시 자체는 녹색의 자연도 야외도 없는 억<br />

압적인 공간으로 제시된다. 영화 개봉당시 H.G. 웰즈가 지적했던 것 역시 미래<br />

도시가 교외로 뻗어가지 않고 수직으로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영화에서<br />

재현된 전방위적 감시체계에 근거한 수직의 철저한 위계 구조 시스템은, 사회<br />

정치적으로는 ‘과학적 관리(경영)’ 시스템과 연결된다. ‘과학적 관리’ 시스템이란<br />

산업공학의 기초를 세운 미국의 프레데릭 테일러 Frederick W. Tayler(1856-1915)<br />

가 고안하고 헨리 포드 Henry Ford(1863-1947)가 실용화한 경영시스템을 말한다.<br />

다시 말해 영화 속의 도시 메트로폴리스는, 좀 과장된 것이긴 해도, 이미 당시에<br />

확고하게 미국 문화 속에 뿌리내린 산업도시의 표현으로서 구상된 것이었다. 54)<br />

산업조직과 노동관리<br />

산경 産經 복합체 메트로폴리스 산업조직과 관리<br />

도시 메트로폴리스의 성격을 살펴보면 여기에는 20세기 초 산업조직 논쟁에<br />

서 중요하게 취급됐던 ‘과학적 관리와 협동’ 이라는 테마가 암시돼 있다. 55) 영화<br />

속의 도시 메트로폴리스는 단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산업-수<br />

반-도시 city-cum-industry 혹은 법인 도시-국가 corporate city-state이다. 56) 거대한<br />

52) 미셸 푸코(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1996, 298쪽 참조.<br />

53) 제임스 도널드, 도시, 영화: 현대적 공간들. 실린 곳: 크리스 젠크스(이호준 옮김), 시각문화,<br />

예영 커뮤니케이션 2004, 141쪽 참조.<br />

54) Ludmilla Jordanova, Science, Machines, and Gender, in: Michael Minden and Holger<br />

Bachmann(ed.), ibid., p. 179.<br />

55) Ibid.


정치 경제 산업(政經産) 복합체로 엄격하게 수직 분할된 이곳에서 지하 노동자<br />

들은 ‘착취당하는 몸’을 가진 ‘얼굴 없는 집단’이다.<br />

그렇다면 테일러주의라고도 불리는 과학적 관리는 파놉티콘적 감시체계 및<br />

공장 노동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철강 산업과 기계<br />

산업이 부상하고 작업장 규모가 커짐과 함께 공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었다.<br />

자본가와 관리자가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는커녕, 작업을 통제하<br />

기도 어려워졌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했던 것이 미국에서 나온 테<br />

일러주의와 포드주의이다. 기계 산업 같은 새로운 분야에서 숙련노동자를 통제<br />

하기 위한 방편으로 개발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의 핵심은 기계 표준화와 시<br />

간-동작 분석을 통해 숙련노동을 단순 노동의 조합으로 분해하고, 이를 기반으<br />

로 목표 과업과 임금체계를 새롭게 세워, 노동자가 최고 효율을 올리면 임금은<br />

인상되지만 최저 효율에 못 미치면 해고되는 것이었다. 테일러는 숙련 노동자들<br />

을 유심히 관찰, 노동자가 자기 작업 분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기본 동작들을 정<br />

확하게 구분하여 가장 빠른 동작 연결방식을 선택했으며, 스톱워치 stop watch를<br />

도입하여 -스톱워치는 테일러주의의 상징물이었다- 각각의 기본 동작에 소요되<br />

는 최소의 ‘단위 시간’을 산정했고, 그렇게 합성된 시간들을 표준삼아 작업을 재<br />

구성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는 1883년 실제 생산에 적용되어, 1895년부터<br />

는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57) 테일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 방법이 능률(효율성)<br />

과 생산성을 대폭 증가시켰다고 주장했다. “선철을 다루는 노동은 ( ) 극히 조<br />

야하고 초보적이어서 ( ) 지능 있는 고릴라를 훈련시켜 인간보다 더 능률적인<br />

선철 주물공으로 만들 수 있다 ( )” 58)는 테일러의 진술에는 이 시스템의 핵심<br />

이 나타나 있다. 영화 에는 ‘덜 ‘인간적’인 사람이 ‘더 나은 노동<br />

자’가 된다는 테일러의 말이 지닌 함축성이, 좀 과장되긴 하지만, 분명하게 재현<br />

56) Ibid. p. 174.<br />

57) 스티븐 컨(박성관 옮김),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휴머니스트 2004, 290-291쪽/<br />

홍성욱, 파놉티콘, 책세상 2005, 67쪽 참조. 당시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은 테일러주의라기<br />

보다 이를 기반으로 한 포디즘이었다. 헨리 포드사의 하이랜드 파크 Highland Park 공장에<br />

1913년 도입된 어셈블리 라인과 컨베이어 벨트는 테일러리즘의 새로운 경영원리를 기계로<br />

구현한 것이었다.<br />

58) Ludmilla Jordanova, ibid., p. 190.


돼 있다. 영화에서 지하 노동자들의 노동은 프레더슨의 사무실에 표현된 파놉티<br />

콘적 감시체계에 남김없이 포착되며, 이 같은 노동의 재현에는 테일러리즘이 추<br />

구했던 인간의 ‘노동과정에의 추종’과 ‘시간의 독재’라는 관점이 분명하게 암시<br />

돼 있다. 그리고 테일러리즘은 포디즘과 더불어 바로 1920년대 당시 독일 사회<br />

에 새롭게 받아들여졌던 산업 방식이었다.<br />

테일러주의의 조직 차트에서 보이는 구조는 영화에서 프레더슨을 ‘머리’로 하<br />

는 삼각형으로 재현된다. 59) -모든 것을 이끌어나가는 수장인 프레더슨 역시 인<br />

간 정신과 감정을 결여한 (예를 들면 비서의 해고) 가혹하고 기계적인 인간으로<br />

나타난다. 이 시스템 안에서 노동자들은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합리성에 자신을<br />

끼워 맞춰야 한다.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일하는 지하도시는 어떤 시선도 열린<br />

하늘로 이어지지 않고, 높은 천정으로만 이어지는, 측정 불가능한 동굴 속에 자<br />

리 잡고 있다. 랑 감독은 촬영장의 설치물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지하 감옥의 판<br />

타지를 예시함으로써, 노동 노예들이 겪는 고통과 억압을 탁월하게 시각적으로<br />

재현해 내었다. 60) 이 어두운 지하공간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은 철저히 신체적으<br />

로 표현된다.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칙칙한 색깔의 옷을 입고 교대시간에 맞춰<br />

빽빽이 늘어선 대열을 이루며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일하러 왔다 갔다 한<br />

다. 메트로폴리스 대다수 주민의 삶의 총체를 재현해 주는 것은 동일하게 반복<br />

되는 요소들의 기계적인 조정이다. 일렬행진으로 혹은 기하학적 대형으로, 정확<br />

히 기계처럼 기능하는 노동자들 - 개인적 정체성을 상실한 이들은 도시 메트로<br />

폴리스의 하부를 떠받치는 무수한 ‘손(手)들’이다. 이 인간들의 기계화가 나타내<br />

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 혹은 정치적 집단으로서의 자기 소외이다. 철<br />

저하게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 손들은 뇌(도시 지배층)의 유토피아적 기획<br />

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61) 이들이 시계 모양의 기계 위에서 다이얼로<br />

보여 질 때, 그들의 신체는 하나의 시계바늘이다. 이들은 생활기능을 상실한 무<br />

59) 테일러의 책


생물처럼, 흡사 죽은 것처럼 비치며, 마치 정신과 감정이 배제된 로봇이나 좀비<br />

zombie처럼 나타난다. 이들의 몸은 테일러리즘의 목표인 물리적 효율성을 쫓아<br />

가느라 무감각하게 뒤쳐져있다. 메트로폴리스에서의 교대 노동시간은 10시간으<br />

로, 이에 맞춰 공장 및 프레더슨의 사무실에는 숫자가 10까지만 그려진 별도의<br />

시계들이 걸려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노동자들의 교대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br />

울리면서 숫자 10의 대형 시계가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든지, 한 노동자의 자리<br />

를 대신한 프레더가 다루는 거대한 계기판이 숫자 10의 대형 시계로 변하는 장<br />

면 등은 - 그는 “아버지, 10시간이 이렇게 긴가요!”라고 울부짖으며 기계 앞에<br />

쓰러진다- 노동자들이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타임 스케줄에 고정되어 있음을 확<br />

연하게 보여준다. 이는 이 영화가 시간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던 테일러주의와 분<br />

명하게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하겠다.<br />

그러나 영화에서의 노동관리에 테일러리즘의 핵심관점이 모두 해당되는 것은<br />

아니다. 테일러리즘의 또 다른 핵심인 ‘경영층과 엔지니어 전문 지식층의 협력’<br />

및 ‘일(노동)에 대한 보상’의 관점은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는 인간의 ‘노동과정<br />

에의 추종’과 ‘시간의 독재’라는 관점만을 포착하여 산업적 비인간성의 느낌을<br />

강조한다. 62) 영화는 지상도시 주민들의 삶은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은<br />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스포츠를 즐기고, 클럽에서 밤의 환락을 쫓는다. 이들이<br />

요시바라 클럽에서 로봇 마리아의 춤에 유혹당해 그녀를 차지하려고 무수한 손<br />

들을 내뻗는 장면은 지상 주민들의 호화로운 삶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영화는<br />

노동자들이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이들이 지하 공장에서 어떤 물건<br />

을 만드는지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단지 끊임없이 김이 솟구치고 피스톤이 돌아<br />

가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모습만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의 노동이 에너지와 관련<br />

되는 것임을 암시할 뿐이다. 또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도 숙련 기술보다는<br />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다. 이들은 김이 나는 뜨거운 환경에서 일하다가 산업재해<br />

로 죽어 나간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테일러리즘의 과학적 경영이 만들어내고자<br />

했던 현대 노동자라기보다는 죽어가는 노예에 가깝다. 사실상 테일러주의의 과<br />

학적 관리는 당시 산업노동에 낙관적 전망을 가져다준 것이었으며, 만약 창시자<br />

62) Ludmilla Jordanova, ibid., p. 181.


가 생각했던 대로 작동되었더라면, 기업들에게 이상적인 방법이 되었을 것이다.<br />

그러나 테일러리즘의 역사는 노동력의 저항이라는 조건아래서, 그리고 원래의<br />

구상이 다소 삭제되면서 이어져 왔으며, 랑 감독은 이를 더욱 과장하여 디스토<br />

피아적으로 그려낸 것이라 하겠다. 63)<br />

테일러리즘과 아메리카니즘<br />

독일에서 테일러리즘의 부상(浮上)은 당시의 아메리카니즘과 연결된다. 바이<br />

마르 공화국 당시 대시민계층의 일부는 ‘선량한 유럽인’ 구상에 계속 집착했지<br />

만, 1923-24년경 진보적 중산층 일부 그리고 지식인들과 노조 지도자들은 독일<br />

미래 발전의 결정적인 모범으로서 미국을 내세우는 데로 기울어졌다. 사람들은<br />

미국을 실용주의의 나라, 사실숭배의 나라, 냉정하게 계획된, 철저하게 합리화<br />

된, 그리하여 그들의 생활수준이 세계 모든 나라를 능가하는 업적 사회로 보았<br />

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상류사회의 고루함을 벗어던진, 그리하여 개화된 대중문<br />

화와 함께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눈앞에 본다고 믿었다. 1920년대 중반 독일<br />

에서의 아메리카니즘은 1차 대전 후의 다우-플랜 Dawes-Plan 및 이와 연결된 달<br />

러 숭배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전후 세계 최강국으로 나타나 -원튼 원치 않든-<br />

모든 서방 산업국들의 정치 사회 문화적 모범으로 솟아오른 산업 최강자에 대<br />

한, 공포가 뒤섞인 경탄이었다. -물론 아메리카니즘의 반대편에는 소련에 대한<br />

숭배가 마주하고 있었음을 잊지말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경제적인 고<br />

려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거론된 표어가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이었다. 이 방식은<br />

공장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 전용돼, 중소기업과 사무실에서도 펀치카드 시스템<br />

Hollerith-System과 기계 부기 그리고 통계에 따른 고객 파악 등을 통해 신속하면<br />

서도 훨씬 많은 능률을 올릴 수 있었다.<br />

특히 1923년 번역 출간된 헨리 포드의 자서전


들이 찾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이 문명적 즉물성 테제의 첫 번째 요구는 모든<br />

기술적인 것, 기계적인 것 그리고 조직된 것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였다. 이는 극<br />

단적인 기술 숭배나 기계에 대한 맹목적 열광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사<br />

람들은 기술 현상들에 대해 열린 태도를 취했으며, 발명가나 엔지니어에게서 휴<br />

머니즘의 선구자를 보았다. 테일러리즘이 비판받고 있는 바, 과학적 관리에는<br />

분명 기계적인 노동이 초래하는 비인간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지만, 당시의 독일<br />

사회는 이를 산업 성장과 능률향상을 위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받아들였다. 말하<br />

자면 영화 에 재현된 노동은 테일러리즘에 들어있는 이 비판적<br />

인 요소를 극대화시켜 철저하게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낸 것이라 하겠다.<br />

이처럼 실재를 반어적으로 영화에 끌어들인 것은 기능주의 건축에도 해당된<br />

다. 실제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회적 생활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도시 건축이<br />

기획되고 그 인프라구조가 형성된 것은 19세기 말 이후였다. 이처럼 ‘새로운 건<br />

축 Neues Bauen’과 ‘새로운 주거 Neues Wohnen’를 위한 건축학적 단초들은 이미<br />

형성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새로운 차원에서 실행될 수 있었던 것은 1920년대<br />

기능주의에 기반한 주택건축 캠페인에 의해서였다. 이들의 건축미학은 장식을<br />

삼가는 의식적인 신중함과 감정배제에도 불구하고,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어<br />

로에 등 그들의 미학을 완벽하고 우아하게 구사할 줄 아는 몇몇 빼어난 대표자<br />

들에 의해 빛을 발했다. 64) 그러나 이 건축의 특별한 유의미성은 데사우 Dessau<br />

의 바우하우스 학교 같은 천재적인 건축물들이 아니라, 수많은 소형 주택단지들<br />

의 건축에서, 그리고 일상적 업적과 보다 높은 사회적 목적을 위해 이 건축물들<br />

의 유용성을 중시한 데서 찾아야할 것이다. 1927년 완공된 슈투트가르트 근처의<br />

바이쎈호프주거단지 Weißenhofsiedlung는 많이 인용되는 그리고 논쟁이 많았던<br />

‘새로운 주거형태’의 범례였다. 65) 사회적 주거 건축의 기획 속에서 새로운 기능<br />

주의 미학은 건강한 주거 및 건설비용의 절감 노력과 연결되었다. 하지만 이는<br />

부분적으로, 개인적-사적 삶의 표현을 협소하게 만들어버리는 역효과를 낳기도<br />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주거 공간 이념의 근저에는, 수혜자들인 노동계층에서 아<br />

직 완벽하게 관철되지는 않은 핵가족 생활규범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66)<br />

64) Vgl. John Willet, Explosion der Mitte, München 1981, S. 124.<br />

65) Vgl. Ebd.


맺는 말<br />

지금까지 필자는 랑 감독의 영화 에 1920년대의 독일문화가<br />

명시적 묵시적으로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 특히 건축과 산업관리의 측면을 중심<br />

으로 살펴보았다. 이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눈에 드러나는, 그리하여 영화<br />

전체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장악하는 거대한 도시 건축물들과 지하의 극심한 노<br />

동, 즉 지상의 파놉티콘적 감시와 감시당하는 지하 노동자 집단의 삶이 당시 바<br />

이마르 독일 문화의 어떤 측면과 연결돼 있는지를 짚어본 것이다. 그리하여 이<br />

것들이 바이마르의 기능주의 건축 및 테일러리즘의 과학적 관리와 연결됨을 지<br />

적하고, 이 분야에 대한 영화의 재현이 당시의 실재를 비판적으로 전용하고 있<br />

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물론 랑 감독이 당시의 테일러리즘이나 새로운 주거<br />

건축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재현했을 리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또 예술로서의<br />

영화의 본질과 관계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이 만들어지던 당시의<br />

관점에서 다큐멘터리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그 시대<br />

의 문화를 읽어내는 것 또한 영화 독해의 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단 시대의 문<br />

화를 읽어낸다는 일에 치중함으로써 이 영화가 지닌 미학적 측면이나, 다른 많<br />

은 관점들(이데올로기적인 관점, 테크닉 혹은 테크놀로지의 관점. 인조인간 로봇<br />

과 섹슈얼리티의 관점 등)을 놓치고 만 점은 앞으로 보충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br />

각한다.<br />

Frits Langs Metropolis 2 DVD Set, Universum-Fim AG(UFA) 1925/26/ 2003<br />

Friedrich-Wilhelm-Murnau-Stiftung.<br />

66) Vgl. Detlev J.K.Peukert, Die Weimarer Republik, Frankfurt a.M. 1987, S. 181. 또 실용적임<br />

에 틀림없는 가전제품들의 설치는 그때까지 당초문양과 키치적 설비에서 맛보았던 주부들<br />

의 미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쉬움도 낳았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 같은 관점들을<br />

찾아보기 어렵다.


von Harbou, Thea, Metropolis, Frankfurt a.M./Berlin/Wien:Ulstein 1984.<br />

미셸 푸코(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2(10쇄).<br />

스티븐 컨(박성관 옮김),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휴머니스트 2004.<br />

제임스 도널드, 도시, 영화: 현대적 공간들. 실린 곳: 크리스 젠크스(이호준 옮김), 시각<br />

문화, 예영 커뮤니케이션 2004, 131-160쪽.<br />

프랭크 휘트포드(이대일 옮김), 바우하우스, 시공사 2002(초판 3쇄).<br />

하요 뒤히팅(최정윤 옮김), 어떻게 이해할까? 표현주의, 미술문화 2007.<br />

홍성욱, 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 2005(8쇄).<br />

Bachmann, Holger, Introduction. The Production and Contemporary Reception of<br />

Metropolis, in: Michael Minden and Holger Bachmann(Ed.), Fritz Lang's<br />

Metropolis, Camden House 2000. p. 3-46.<br />

Berr, Marie-Anne, Technik und Körper, Berlin: Dietrich Reimer Verlag 1990.<br />

Bruns, Karin, Kinomythen 1920-1945, Stuttgart/Weimar: Metzler 1995.<br />

Eager, Gerald, functionalism, in: Michael Payne(Ed.), A Dichtionary of Cultural and<br />

Critical Theory, Blackwell Publishers 2001.<br />

Eisner. Lotte H., Fritz Lang, Da Capo Press 1976.<br />

Diese., The Haunted Scree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2. paperback).<br />

Elsaesser, Thomas, Metropolis. Der Filmklassiker von Fritz Lang, Hamburg/Wien:<br />

Europa Verlag 2001.<br />

Hake, Sabine, Film in Deutschland. Geschichte und Geschichten seit 1895, Reinbek bei<br />

Hamburg: Rowohlt 2004.<br />

Jordanova, Ludmilla, Science, Machines, and Gender, in: Michael Minden and Holger<br />

Bachmann(ed.), Fritz Lang's Metropolis. Camden House 2000, p. 173-197.<br />

Müller, Marion, Architektur/ Bauten, in: Thomas Koebner(Hg.), Reclams Sachlexikon<br />

des Films, Stuttgart: Philipp Reclam 2007(2.Aufl.).<br />

Peukert, Detlev J.K., Die Weimarer Republik, Frankfurt a.M.: Suhrkamp 1987.<br />

Prigge, Walter/ Frank Herterich, Skyline: Zeichen der Stadt. Moderner und Postmoderner<br />

Städtebau. in: Klaus R. Scherpe(Hg.), Die Unwirklichkeit der Städte, Reinbek<br />

bei Hamburg: Rowohlt 1988.<br />

Rutzsky, R. L., The Mediation of Technology and Gender, in: Michael Minden/ Holger<br />

Bachmann(Ed.), Fritz Lang's Metropolis. Camden House 2000, p. 217-246.<br />

Willet, John, Explosion der Mitte, München 1981.


Wie ein Film die Kultur der Zeit widerspiegelt:<br />

Fritz Langs Film Metropolis, der im Jahre 1927 in Berlin Premiere hatte, gilt als<br />

der Vorläufer des Sciencefictiongenres in der Filmgeschichte. Dass Metropolis einen<br />

Blick in die Zukunft wirft, ist richtig. Mehr trifft aber wahrscheinlich zu, dass<br />

Metropolis umfangreich die damaligen kulturellen Züge Deutschlands widerspiegelt.<br />

Daher meine These: Der Film Metropolis setzt die komplizierte und verwirrte Lage<br />

der Weimarer Republik in den zwanziger Jahren auf der Leinwand um, und man<br />

kann den Film sehen als ein Kompendium der damaligen deutschen Kultur. Ich habe<br />

ausführlich darzustellen versucht, wie der Film Wesenszüge der Ikonographie,<br />

Malerei, Graphik, Plastik, Mode, angewandten Kunst und Literatur der kulturellen<br />

Szene des damaligen Deutschland verwendet. Dann habe ich erklärt, wie der Film<br />

sich speziell auf Aspekte der damaligen Architektur und Arbeitswelt (oder des<br />

industriellen Managements) bezieht.<br />

Der Film zeigt sowohl die expressionistische wie die neusachliche Architektur, so<br />

wie sie in Wirklichkeit vorkamen. Die gigantischen, modernen Wolkenkratzer in der<br />

Eingangsszene stellen die typische Architektur der neuen Sachlichkeit dar.<br />

Funktionalismus gilt hier als das wichtigste Prinzip. Dagegen stehen das Haus des<br />

bösen Wissenschaftlers Rotwang, die Katakombe Marias und die gotische Kathedrale<br />

für eine expressionistische, organische Architektur. Wenn Ersteres im Film<br />

Modernität symbolisiert, wird Letzteres als etwas Altertümliches visualisiert. Ich habe<br />

analysiert, wie sich die expressionistischen und neusachlichen architektonischen Züge<br />

im Film auf die damalige Architektur-Wirklichkeit beziehen. Danach habe ich auf die<br />

Tatsache aufmerksam gemacht, dass das moderne funktionalistische Büro des


Besitzers der Stadt Metropolis die Züge eines Panoptikums hat. Denn er kann durch<br />

die automatische Leinwand die Arbeitsplätze der Unterstadt unbemerkt sehen. So<br />

kann er beobachten, wo die Masse der Arbeiter wie leblose Zombies geschunden<br />

werden. Ich habe darauf hingewiesen, dass diese Arbeitsgestaltung mit dem<br />

Taylorismus der zwanziger Jahre in Beziehung steht. Im Film werden besonders zwei<br />

Aspekte betont: das strikte Zeit-Einhalten (die Diktatur der Zeit) und das unbedingte<br />

Folgen des Arbeitsprozesses. Außerdem habe ich erwähnt, dass der Taylorismus in<br />

der Tat von dem damaligen Amerikanismus in Deutschland beeinflusst worden 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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