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2015 Views

맑은 물, 맑은 공기 그리고 사람과 함께하는 - Hyundai Steel

맑은 물, 맑은 공기 그리고 사람과 함께하는 - Hyundai Steel

맑은 물, 맑은 공기 그리고 사람과 함께하는 - Hyundai Steel

SHOW MORE
SHOW LESS
  • No tags were found...

Create successful ePaper yourself

Turn your PDF publications into a flip-book with our unique Google optimized e-Paper software.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의 넋두리가 담긴 소리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에서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고 정선의 산세를 평했다.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정선을 둘러싼 산세가 보통이 아님을 이 문장 하나로 알수 있다. 실제로 정선은 전체 면적의 85퍼센트가 산악지대다. 서쪽으로 청옥산과 가리왕산, 북쪽으로 노추산과 석병산, 동쪽으로 중봉산과 두타산, 남쪽으로 두위봉과 함백산이 우뚝 서 있다. 타 군과 경계 지점에 있는 산들이 이러하고, 그 안으로도 비봉산, 반론산, 각희산, 지억산, 민둥산, 노목산 등이 결코 평지를 허락하지 않으며 솟아 있다. 이들산은 서로 만나 골짜기를 이룬다. 송천, 임계천, 골지천, 동천, 회동천, 의림천 등은 그렇게 다른 이름으로 흐르다가결국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세상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의구한 산과 물. 그것은 정선의 전부나 다름없었다.단지 관조자인 우리에게야 더없이 서정적인 풍경으로 다가오는 자연이지만, 대대로 이곳에 깃들어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그러했을까. 산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고, 나무를 베어 한양으로 보내고, 줄배 외에 강을 건널 수단이 전무하고,입을 앙다물며 꼬박 반나절 고개를 넘어야 장에 갈 수 있었던 이들에게는 야속하기만 한 자연이었다. 이는 까마득한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멀게는 50년, 가깝게는 10년 전에도 펼쳐졌던 광경이다. 아우라지에서 만난 장석배(67) 씨는 “1960년대 초반까지 뗏목을 이용해 나무를 서울로 올려 보냈다”고 기억했다. 농사가 다 끝나는 겨울에 나무를 베어 강변에 쌓아두었다가 봄이 되어 강물이 불어나면 뗏목을 띄웠다는 것이다. 아우라지는 골지천과 송천이 합류되는곳으로 두 물이 ‘어우러진다’고 해서 유래한 지명이다. 그 아우라지에서 정선아리랑의 대표 곡조가 탄생했다.“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정선에서 아리랑이 최초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왕조를 섬기던 문신들이 정선에 숨어 살면서 불사이군의 충심을 노래하던 시조가 서민들에게 구전되면서 정선 특유의 아리랑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선아리랑의 특징은 노래가사가 모두 다르다는 것에 있다. 현재 채록된 것만 2,000수가 넘는데, 그것은 가창자마다 새롭게 가사를 지어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다양하지만 자연을 소재로 삼으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 단연 많다. 정선아리랑은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이 풀어낸 한의 소리인 것이다.0101 메밀꽃은 9월이 절정인데 벌써 소금처럼 하얀 꽃이 맺혔다.02 서울로 목재를 실어 나르던 남한강 천 리 물길의 시작이었던 아우라지 강변을 오가는 줄배. 익숙한 솜씨로 줄을 끌어 당기는 사공 뒤로 보이는 반나마 물에 잠긴 돌다리가 정겹다.03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록된 정선아리랑 중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기리는 노래의 주인공인 아우라지 처녀상. 두 물길이 만나 합수머리를 이루는 모래톱에 서 있다.04 정선은 찰옥수수로 유명한데, 다른 산지보다 일교차가 커 맛이 더 달고 차지다. 7월 중순에 첫 수확을 한다.02 04애환의 고갯길에서 보는 가슴 뛰는 풍경아우라지의 물은 흐르고 흐르다가 정선읍 즈음에 이르러 동강이라는 이름으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동강은 귤암리를 지나 가수리에서 지장천을 업었다. 가수리는 정선의 동강권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다. ‘물을 더한다’고 해서 가수리( 加 水 里 )지만, 마을 사람들은 ‘물이 아름답다’해서 가수리( 佳 水 里 )라고 불렀다. 동쪽으로 절벽처럼 거의 수직으로 뻗다시피 한 병방치가 있고, 동강이 서쪽으로 이리저리 휘돌며 내려온다. 지장천은 남서진하다 가수리에서 소멸한다. 이 지장천의 합류 지점에 마을의 쉼터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700살은 좋이 넘었을 이 느티나무 아래서 주민들이 모여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가마솥에 옥수수를 삶아 나눠먹기도 하고,평상에서 늘어지게 한숨 자기도 했다.걱정이라고는 하나 없어 보이는 마을이지만, 지금의 여유를 맛보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서야 강을 오가던 줄배가 사라지고 다리가 놓였으며, 1979년에 읍내로 통하는 평지길이 생기기 전까지 비가 오나눈이 오나 걸어서 병방치를 넘어 다녀야 했다. 특히 아이가 아픈 날이면, 조바심으로 후들거리는 걸음걸이로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병방치는 해발 861미터의 고개로 ‘뱅뱅 돌아간다’고 해서 이곳 사람들은 ‘뱅뱅이재’라고 불렀다. 새벽에 떠나더라도 읍내에 도착하면 한낮이 될 정도로 길이 가팔랐다.033233

Hooray! Your file is uploaded and ready to be published.

Saved successfully!

Ooh no, something went w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