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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배운다 - SGI-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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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strong>SGI</strong>-<strong>USA</strong>필수 교학시험(2)한국어 교재


차 례(I)(II)필수교학 시험 안내교학의 중요성에 대한 이케다 <strong>SGI</strong> 회장 지도(III)(IV)(V)(VI)불법( 佛 法 )용어A. 일념삼천B. 색심불이C. 의정불이이케다 <strong>SGI</strong> 회장 강의 승리의 경전 ‘어서( 御 書 )’에서 배운다A. ‘선시초’ (2) 에서 발췌B. ‘묘미쓰상인어소식’에서 발췌C. ‘소야전답서’에서 발췌불법( 佛 法 )의 역사A. 석존의 생애B. 법화경C. 대승불교와 법화경D. 니치렌 대성인과 법화경E. 말법시대 법화경 수행소카 스피릿A. 소카 스피릿 교재 ‘개혁이 시작되다’ 제 1장 ‘석존과 제바달다’B. 소카 스피릿 교재 ‘개혁이 시작되다’ 제 2장 ‘오노승의 배반’2


필수교학시험에 관한 안내*교재- 리빙부디즘에 연재된 지난 이케다 회장선생님 교학강의 내용 및 과거 역시 리빙부디즘에 연재된바 있는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진수 (The Essentials of Nichiren Buddhism)” 내용, 그리고<strong>SGI</strong>교학부가 기획 중인 새로운 불법 교재 내용으로 매년 소개될 내용들.*자격- 기초교학시험을 통과한 회원 누구나*시행요령- 2011년부터 매년. 3년간 세차례에 걸쳐 교학시험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1회는 2011년, 2회는 2012년, 3회는 2013년. 그 후, 다시 3년간 반복적으로 세차례에 걸친 교학시험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올해 2012년은 2회째입니다.)- 교학시험은 매년 수준이 다르거나,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언제든지 응시 가능. 따라서 기초교학시험을 통과한 회원은 누구라도, 그 다음해부터 교학시험 응시가 가능3


교학의 중요성에 관한이케다 <strong>SGI</strong>회장지도4


다음의 글은 신 인간혁명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본 소설에서 신이치 야마모토는 이케다<strong>SGI</strong> 회장입니다.이날 오후에는 로스앤젤레스 지부의 교학 시험을 실시했다. 시험은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 두 장소로 나누어 실시하여, 임용과 승격 시험을 합쳐 250명이 응시했다. 모든 시험은 면접 시험이었다.야마모토 신이치는 로스앤젤레스의 시험장인 일본어 학교에서 수험생을 격려했다.“수고 많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왜 어려운 교학을 하는지, 제목을 불러서 공덕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라고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올바른 신앙에는 대공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반드시 난도 있습니다. 그때 교학이 없으면 신심에 의심을 하게 됩니다.”“전시 중 군부 정부의 탄압에 의해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이 체포되셨을 때, 당시 간부들은 모두 퇴전했습니다.교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교학을 체득하고 있으면 왜 올바른 신앙에 난이 나오는지, 어떻게 하면 일생성불을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불법을 말할 경우도 어째서 대성인의 불법이 위대한지, 올바른 종교란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로 조리 있게 말하고 납득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어서1361쪽)고 ‘행’과 함께 ‘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신이치는 교학 연찬의 의의를 알기 쉽게 말하고 이렇게 격려했다. “학회에서 실시하는 교학 시험은 여러분이 더욱더 교학을 연찬해 가도록 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생 동안 교학을 연찬해 가자는 결의를 다지는 것입니다. 또 아울러 시험을 통해 배운 것을 일언일구라도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 목표로 해야 할 것은 신심의 합격자이고 행복의 합격자입니다.”“그런데 오늘 시험은 내가 직접 담당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시험을 담당하면 금방 마음이 약해져서 모두 합격시켜 버릴것 같습니다.”“오늘은 자녀분을 데려오신 분도 많이 계신 것 같은데, 여러분이 시험을 보시는 동안 제가 아이들과 놀아 주겠습니다. 아무쪼록 안심하시고 지금까지 쌓아 온 실력을 발휘해 시험을 치러 주십시오.” 신이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시험장 안은훈훈한 분위기에 감싸였다. (신인간혁명 7권, 148-150쪽)교학은 현실이라는 복잡하고 거친 바다에서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항로를 제시하는 나침반이 된다. 불법을 사회에 여는‘본문의 시대’에 활동하기 위해서는 교학이라는 확고한 궤도를 확립하는 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신인간혁명 9권, 29쪽)역사적인 장거를 이룬다고 해도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결코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착실하면서 누구도 보지 않는작업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그 전진을 거듭 쌓는 것이 시대를 전환하는 힘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미래의장거를 위해 묵묵히 학업에 힘써 주십시오. 또 불법이라는 생명의 대철학을 배워서 자기 삶의 골격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신인간혁명 14권, 338쪽)본디 스승은 모든 사람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느꼈다면 나도 그 사명을 조금은 완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5


공부도 혼자 하면 모르는 문제에 부딪쳐서 막혀 버리거나 한쪽으로 쏠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좋은 선생님께 배우면 알기쉽고, 하고 싶은 마음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또 기본도 견고하게 배울 수 있고 능률적인 학습법도 터득할 수 있습니다.(신인간혁명 16권, 56-57쪽)우리는 최고의 불법을 수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호소하기 위해서라도 교양은 중요합니다. 날마다 공부해야합니다. 평생 공부해야 합니다.(신인간혁명 16권, 113쪽)교학을 탐구하여 한 사람 한사람이 최고의 불법 철학자가 되기 바랍니다. 나아가 모두 평등하게 사이좋은 친구로 서로격려하고 함께 지켜 주면서 명랑하게 전진하기 바랍니다. (신인간혁명 16권, 158쪽)신이치는 호소했다. “대성인은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어서1361쪽)고 말씀하셨습니다. ‘행학’에서 ‘행’은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실천입니다. ‘학’은 불법 철리를 배우고이념을 심화하는 일입니다. 이 두가지는 차의 양 바퀴와 같은 관계입니다.”“새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힘써 교학을 연찬하고 불법 이념을 깊이 연구해야만 합니다. 올해(1973년)가 그 대생명 철학 운동의 기점입니다. 교학이라는 이념이 없는 실천은, 사회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채 자기만족으로 끝나고 맙니다. 또 실천이 따르지 않는 교학은 관념의 유희일 뿐 현실 사회를 변혁하는 힘이 되지 못합니다.”창가학회가 세계적으로 광선유포를 확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어디까지나 어서를 근본으로 확고한 이념을 지니고, 올바른궤도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그 불법 철리를 시대정신으로 삼고자 스스로 선두에서 교학의 심화를 도모하고 더불어 사회에 널리 알리겠다고 다짐했다.신이치는 신년 근행회에서 “교학을 연찬하는 목적은 광선유포이며 자신의 인간혁명에 있다.” 고 말하고 이 1년의 승리를강조했다. “승패의 대부분은 출발에서 결정됩니다. 나는 학회가 만대까지 번영할 수 있도록 새로운 마음으로 학회의 초석을 처음부터 다시 견고하게 구축하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투쟁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이 1년, 각자가 어떠한 형태로든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진보하는 1년’을 만들어 주기 바랍니다.”(신 인간혁명 17권 10-12쪽)도다 회장은 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래서 야마모토 신이치는 제1부대 멤버를 투쟁하고 배우는 진정한 도다의 제자로 훈련해 사회의 위대한 리더로 육성하리라 결의했다.광선유포의 투장으로 육성하려면 불법을 크게 확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학 실력을 쌓는 것은 필수 불가결이다.그래서 그는 스스로 어서 강의를 하고 아울러 교학부장이나 청년부장도 강의를 담당하게 했다. 모두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실력 있는 선배 간부를 초빙해 최고로 촉발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려고 고심했다.나아가 모두가 습득하는 교학 과제로 법화경 경문이나 니치렌 불법의 법리에 관한 것 등, 교학의 기본 120항목을 정했다. 그밖에 부대에서 독자적으로 교학 시험과 변론 대회도 기획했다. (신 인간혁명 17권 269쪽)6


다른 편집장이 바로 질문하였다. “선생님은 전국통신원대회에서 세이쿄신문사의 정신은 ‘강성하면서도 올바른 신심’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습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신이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답했다. “어서라는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신심 본연의 자세에 대한 근본을 제시한 어서를 심간에 새겨서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어떤 형식이라도 좋으니 견실하게 어서를 배독해야 합니다. 사상을 심화하고 신심을 확립하려면 이 길밖에 없습니다.어서는 우리의 신심과 삶의 규범이며 근본입니다. 학회는 어서를 근본으로 했기 때문에 대성인께 직결하고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 어서연찬을 등한시하면 톱니바퀴가 기축에서 빠진 것처럼 헛바퀴만 돌 뿐입니다.”신이치는 말을 이었다. “흔들리는 사회의 물결에 농락당하면 시대의 행방을 올바르게 판별할 수도 변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심의 눈을 열어 자신의 경애를 높이면 모든 것을 손바닥 보듯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불법에서 설하는‘출세간’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출세간’이라고 해서 단지 ‘세간’에서 격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신심에 의해 경애혁명해야 생생유전하는 세간의 천차만별한 일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서를 근본으로 하여 신심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모두 자신을 연마해야 합니다.”이러한 신이치의 지도를 받고 세이쿄신문사에서는 조회시간 등에 어서를 연찬하게 되었다. (신 인간혁명 18권, 80-83쪽) •7


불법( 佛 法 ) 용어• 일념삼천• 색심불이• 의정불이8


일념삼천( 一 念 三 千 )불법 용어인 ‘일념삼천’은 범부가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성불을 하는 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가능한가를 설명할 수 있는 니치렌 불법의 철학적 틀이 되는 개념이다.니치렌 대성인은 모든 중생이 스스로 성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깨달은 최고의 생명을 신앙의 본존인 어본존으로 도현하셨다. 이 어본존의 의의를 설명하는 철학적 기반이 바로 ‘일념삼천’의 법리이다.법화경에서 설하는 일체중생의 성불 원리를 중국의 천태대사가 에서 체계화하여 설명한 법리이다.‘일념’은 우리의 순간순간의 생명을 뜻한다. 우리 생명 현상의 여러 모습 중 한 단면에 비유할 수 있다. 천태대사는 한순간의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을 삼천세계로 나타내었다. ‘삼천’은 십계호구와 십여시, 삼세간을 모두 합한 말이다.1) 십계호구십계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열가지 생명 상태/경애를 말한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보면,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수라계, 인계, 천계, 성문계, 연각계, 보살계, 불계의 열 가지 생명 경애이다.이들 열 가지 생명 경애는 십계의 모든 중생에게 빠짐없이 갖춰져 있으며, 한 순간에 십계 중 한 생명 경애가 나타난다.니치렌 불법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모든 중생이 부처의 성불 가능성 또는 불계의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각 십계는 다른 십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을 ‘십계호구’라고 한다.법화경 외의 경전에서는 십계를 분별하고, 각 단계는 다른 경애와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았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은일생 동안에 특정 한 생명 단계에 살아간다고 보았다. 여러 번의 생사를 거듭하면서 점진적으로 생명 상태를 향상해가면서 결국엔 성불할 수 있다고 여겼다. 십계호구는 인간 변혁의 가능성을 열고 위와 같은 관점의 한계를 완전히 부수었다.현재 이 순간 우리 생명이 십계 중 어느 경애에 있든지 간에 우리는 다른 잠재해 있는 생명 단계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명확해진다. 그리고 이런 변혁은 현재의 일생 동안 완성될 수 있다. 이것이 십계호구의 중요한 의의이다.‘일념삼천’을 구성하는 것으로, 한 생명의 경애가 다른 십계를 포함하므로 십계 호구는 ‘백계’가 된다.2) 십여시( 十 如 是 )십여시는 생명의 10가지 성질과 기능이며, 생명이 십계 중 어느 경애에 있든지 공통적으로 생명이 표현되는 모습이다.지옥계에 있는 사람과 불계에 있는 사람들은 보기에는 다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십여시는 공통적이다.법화경 방편품 제2에 “소위 제법의 여시상( 如 是 相 ), 여시성( 如 是 性 ), 여시체( 如 是 體 ), 여시력( 如 是 力 ), 여시작( 如 是 作 ),여시인( 如 是 因 ), 여시연( 如 是 緣 ), 여시과( 如 是 果 ), 여시보( 如 是 報 ), 여시본말구경등( 如 是 本 末 究 竟 等 )이니라.”고 있다.이 부분은 매일하는 근행의 다음 구절에 해당한다. “유이부쓰요부쓰. 나이노쿠진. 쇼호짓소. 쇼이 쇼호. 뇨제소. 뇨제쇼.뇨제타이. 뇨제리키. 뇨제사. 뇨제인. 뇨제엔. 뇨제카. 뇨제호. 뇨제혼맛쿠쿄토.”십여시의 각 상태를 간단히 설명하면 (1) 여시상 - 표면에 나타난 형태, 모습, 행동거지. (2) 여시성 - 외적으로 구별할 수 없는 성질, 성분. (3) 여시체 - 본체, 근본의 체. 상( 相 ), 성( 性 ), 체( 體 ) 의 3여시( 三 如 是 )는 제법의 본체를 나타낸다.다음 6여시는 특히 인과의 법칙에 관련해 생명의 기능면을 나타내고 있다. (4) 여시력- 안에 숨겨진 힘. 잠재적 능력.(5) 여시작 - 밖으로 나타난 작용. 힘이 현현하여 동작으로 된 것. (6) 여시인 - 과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 생명에잠재되어 있음. (7) 여시연 - 내외적으로 인을 돕는 보조적인 원인. (8) 여시과 – 인으로 발생한 결과. (9) 여시보 - 과가 형태로 나타난 것. (10) 여시본말구경등 - 본(여시상)과 말(여시보)이 궁극적으로 동등하다는 것. 그리고 상( 相 )에서 보( 報 )에 이르는 9여시는 일관하여 통합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9


본말구경은 어느 한 순간에 십계의 한 생명상태가 첫3여시(생명의 실체면)로 나타나며 일관하여 그 순간에 나머지 7여시(생명의 기능면)의 각 모습으로 나타난다.더 깊게 여시상을 살펴보면, 니치렌 대성인은 본말구경은 한 순간 우리 생명이 어떤 경애에 있든지 상관 없이 모든 십여시는 묘법의 표현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니치렌 대성인께서 명확히 말씀하시기를 “이 십여시( 十 如 是 )라 함은묘호렌게쿄( 妙 法 蓮 華 經 )이니라.”(어서 415쪽)라고.이케다 <strong>SGI</strong> 회장은 “남묘호렌게쿄는 우주의 근본법이다. 끊임없이 십계의 경애로 나타나는 생명으로 표현되는 우주의근본법이 남묘호렌게쿄이다.” 어본존의 중앙에 써 있는 남묘호렌게쿄와 양쪽에 적힌 십계는 제법을 의미한다. 일념삼천에 따라, 한 순간의 생명은 바로 실상이며 삼천의 세계는 제법에 해당된다고 하셨다.이케다 회장은 “구계의 중생으로 어본존에게 기원할 때, 우리의 일상 생활은 남묘호렌게쿄로 비추어져 제법실상을 나타낸다. 니치렌 대성인은 ‘십계( 十 界 )의 중생( 衆 生 )은 남김없이 제법실상( 諸 法 實 相 )의 부처’ (어서 830쪽)라고 하셨다.지옥계이든 인계이든 우리의 생명은 남묘호렌게쿄, 즉 실상으로서 빛난다.”고 결론을 내리셨다.3) 삼세간( 三 世 間 )‘삼세간’이란 세가지 측면으로 생명을 보는 법을 의미한다; 개인의 세계, 중생의 생명 전체로서의 경애의 차별의 세계,중생이 살아가는 국토의 세계. 세가지 세계를 오음세간, 중생세간, 국토세간이라고 부른다.‘간’이란 차별 간격이 있는 것을 말하며, 삼세간은 어떻게 십계의 차이가 생명의 다른 3종의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밝힌것이다.오음세간은 오중세간이라고도 하며, 오음 즉 다섯개의 요소란 색( 色 ), 수( 受 ), 상( 想 ), 행( 行 ), 식( 識 )이며 생명 존재의구성요소이다. 오음이 중생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색( 色 )’: 물질적 요소. ‘수( 受 )’: 외계의 사상( 事 象 )을 여섯개의 감각기관 눈, 귀, 코, 혀,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작용. ‘상( 想 )’ : 상념( 想 念 )하는 것. ‘행( 行 )’ : 상념( 想 念 )에의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것. ‘식( 識 )’ : 사려( 思 慮 ), 분별( 分 別 )하는 정신의 작용. 요약하면, 사람의 마음과 몸은 오음세간그 자체이며, 각 구성요소의 기능은 사람이 느끼는 생명 상태에 따라 변한다.하나의 개체로서의 인간, 집합적인 사회로서의 인간이 중생세간을 구성한다. 그래서, 중생세간이란 그 속에 있는 개인 뿐아니라 십계가 나타나는 인간 중생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국토는 십계의 중생이 살고 있는 장소를 말하며, 세간이란 차별을 나타낸다. 즉 국토세간은 십계의 중생이 살고 있는 장소에 각각 차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개인과 집단이 살아가는 국토나 환경은 ‘국토세간’이다. 니치렌 대성인은“정토( 淨 土 )라 하고 예토( 穢 土 )라 함도 토( 土 )에 둘의 차이가 없으며, 오직 우리들의 마음의 선악에 의한다고 쓰여 있다.” (어서 384쪽)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중생의 생명 경애가 향상되면, 환경도 그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일념’과 ‘삼천’의 연결천태대사는 마하지관( 摩 訶 止 觀 ) 제오( 第 五 )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대저 일심( 一 心 )에 십법계( 十 法 界 )를 갖추고 일법계( 一 法 界 )에 또 십법계( 十 法 界 )를 갖추면 백법계( 百 法 界 )이며, 일계( 一 界 )에 삼십종( 三 十 種 )의 세간( 世 間 )을 갖추면 백법계( 百 法 界 )에 즉 삼천종( 三 千 種 )의 세간( 世 間 )을 갖춤이라. 이 삼천( 三 千 )은 일념( 一 念 )의 마음에 있으니 만약 마음이 없으면 불가( 不 可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즉( 卽 ) 삼천( 三 千 )을 갖춤이라, 내지 그러므로 칭( 稱 )하되 불가사의경( 不 可 思 議 境 )이라 하며, 뜻이 여기에 있느니라」(어서 238쪽)천태대사는 여기서 우리 각각의 생명은 삼세간에 있어 십계호구에 의해 각 순간 삼천세계를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즉,한 순간의 생명은 삼천세계를 포함하며, 동시에 그 생명은 삼천세계에 편만하다.즉, ‘일념삼천’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 매 순간 우리 생명은 전 우주의 현상, 실상을 포함한다. 둘째, 매 순간의 우리 생명은 전 우주에 편만하여 우주를 가득 채운다. 즉, 우리 생명 그 자체는 무한대로 열린 광대한 가능성을 지10


닌다.이 법리는 어떻게 생명이 작용하는가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색심불이, 의정불이, 일생성불, 즉신성불과 같은 중요한 불교 법리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리므로, 일념삼천의 법리는 무한한 희망의 니치렌 불법 철학의 기본이다.•11


색심불이( 色 心 不 二 )불법에서는 육체와 마음, 그리고 물질적, 정신적인 것을 묘법의 당체로 본다.서양에서는 마음과 육체를 ‘ 심신( 心 身 ) 분리’ 로 보는 이원론 ( 二 元 論 )적인 사고방식이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는데,18세기 프랑스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마음이 육체(물질)와 상호작용은 하지만 독립된 별개로 보았다.이와 반대되는 견해가 마음과 육체를 물질적 현상으로 보는 유물론인데 이 후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이 현대과학과의학이다. 즉 두뇌와 신경계의 물질적 변화에 따라 감정 상태가 바뀌기 때문에 두뇌에 물질적 손상을 입을 경우 정신적, 감정적 기능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적 또는 심리학적인 상태가 면역시스템에 영향을 끼쳐 질병 회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과학분야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 결론은 유물론이 모든 생명체를 지적 수준이 높은 기계나 화학적 과정 정도로만 여겨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불법에서 볼 때 이러한 관점들은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 법화경에서는 ‘색심불이 ( 色 心 不 二 )’의 원리를 강조하는데색( 色 )은 측정되고 볼 수있는 형태를 가진 것이고 심( 心 )은 사고( 思 考 ), 의도 혹은 정신 등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불이( 不 二 )는 ‘둘이 아니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를 말한다. 즉 육체와 마음, 형태와 정신은 별개처럼 보이지만 각기 파헤치고 들어가면 결국 이 모두는 일체의 생명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다.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남묘호렌게쿄의 나무( 南 無 )란 범어(산스크리트어)이며 귀명( 歸 命 )이라고 하였다. “귀( 歸 )란 우리들의 색법( 色 法 )이고 명( 命 )이란 우리들의 심법( 心 法 )이며 색심불이임을 일극( 一 極 )이라고 하느니라.”(어서 708쪽).불법에서는 육체와 마음을 이원론처럼 분리된 당체로 보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물질적 현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불법에서는 삼라만상 모든 것에 물질적, 정신적 양면이 있다고 보는데 즉 묘법의 당체인 것이다.생명의 영원성에 근거한 남묘호렌게쿄의 법리에서 본다면 마음과 육체는 생명의 묘체인 것이다. 어서에 “자신의 생각을소리로 나타내는 일이 있으므로 마음이 소리로 나타나니 마음은 심법( 心 法 ), 소리는 색법( 色 法 ) (중략) 소리를 듣고 마음을 알게 되니 색법( 色 法 )이 심법( 心 法 )을 나타내느니라.” (목회이상개안지사( 目 繪 二 像 開 眼 之 事 ), 어서469쪽)타인을 위해 제목을 하게 되면(마음), 우리의 말이나 행동(육체)이 상대방의 기분(마음)을 호전시킬 수 있어, 상대방은신체 건강면에서도 말과 행동면에서도(육체)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이케다 회장은 “ 이것이 색심불이의 훌륭한 예입니다. 몇 마디의 진심어린 격려가 병든 사람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칠수 있는 것입니다.” (2005년 12월 17일자, 세이쿄신문 3쪽)어성훈에 또한 “남에게 물품을 베푸는 사람은 남의 색( 色 )을 더 하게 하고 힘이 생기게 하며 목숨을 이어주느니라.”(의식( 衣 食 )어서, 어서 1302쪽) 라고 있다.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내면이 평화롭고 만족스러우며(마음), 약동적인 생명력으로 타인에게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행동(육체)을 하는 사람인데 타인을 위한 색심( 色 心 )의 기원, 대화, 행동을 해 나갈 때 우리 자신도 동시에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2


의정불이( 依 正 不 二 )대부분의 서양 종교에서는 생명은 절대적인 창조자의 산물이며, 거대한 짜여진 환경 속에 놓여진 산물이라고 보았다. 과학은 무정( 無 情 )의 환경으로부터 생명이 나타났다고 설명한다.불법은 생명과 환경, 사람과 환경의 관계를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관점으로 본다. 생명은 맞는 원인과 환경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생명(정보, 正 報 )이 탄생하고 존재하는 장소를 환경(의보, 依 報 )이라고 부른다. 의보의의미는 주변에서 둘러싸고 있는 것이며, 정보는 의보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의보라면 가족, 지역사회, 직장 그리고 인간과 모든 생명이 존재하는 자연 환경도 포함된다. 정보와 의보는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고, 서로에게 깊은영향을 주고 받는다.인간은 수만 개의 동식물들이 풍부한 세상 속에 함께 존재하며, 우리를 둘러싼 물, 공기, 식물, 동물에 의존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을 낳고 인간이 성장해가는 환경은 그 이름 그대로 ‘대자연’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인간의 몸은 환경과동일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몸의 액체는 바닷물의 구성과 유사하다.우리가 환경에 의존하고 매우 유사하다는 점은 불법의 교학 의정불이가 상식적으로 설득력 있게 한다. 그러나 불교의 관점은 단지 구성요소, 같은 성분적인 공통점 이상의 것을 표현한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정보, 正 報 )와 환경(의보, 依 報 )이 가지는 공통된 점을 본다. 그것은 바로 우주 자체의 생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묘법, 제법의 실상이다.과학은 생명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생명이 환경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반면, 불법은 왜 그런가 하는 이유를 밝힌다. 왜냐하면, 환경 그 자체는 살아있는 것이며, 또한 우주 그 자체는 생명의 잠재력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중국의 말에서 비롯된 ‘불이( 不 二 )’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는 ‘둘이면서 둘이 아닌’이라는 뜻이다. 그냥 보면,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환경은 분별되고 독립적인 개체이다. 자연스럽게 분별하여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체의 관점 또는법화경의 제법실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의보와 정보는 하나이며 동일하다.대성인께서는「대저 시방( 十 方 )은 의보이고, 중생은 정보이니라. 의보는 그림자와 같고 정보는 체( 體 )와 같으니라. 신( 身 )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으며 또 정보는 의보로써 이를 만드느니라.」(어서 918쪽) 라고하셨다.사람들의 생명이 비뚤어지고 안정되어 있지 않을 때, 환경–사회, 생태계, 해양, 대기, 지리–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의보와 정보의 관계는 한번 정해지고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환경와 우리의 관계는 역동적이며 살아 움직인다. 환경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또한 우리도 환경을 변화시킨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중생의 마음이 더러워지면토( 土 )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토( 土 )도 청정하다고 해서 정토( 淨 土 )라 하고 예토( 穢 土 )라 함도 토( 土 )에 둘의차이가 없으며 오직 우리들의 마음의 선악에 의한다고 쓰였도다.”(어서 384쪽)라고 하셨다.오늘날의 지구적 환경의 상태를 살펴본다면, 인간에 의해 비롯된 수많은 문제들을 쉽게 열거할 수 있고, 더군다나 그 중일부는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천연자원의 고갈, 삼림 벌채, 수질 오염, 공기오염,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 증가, 수많은 희귀 동물의 멸종, 환경의 독소를 증가시키는 지구 오존층 파괴,낮아지는 해양 산소 수치, 핵/방사능 오염 등의 문제들이 있다.의정 불이의 원리에 따라서, 무질서한 환경은 탁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의 산물이다. 반대로, 탁한 환경은 그 환경에서살아가는 생명의 몸, 마음, 가슴을 어둡게 만든다. 이런 계속되는 자연의 파괴는 생명의 본성과 가치를 감사할 줄 모르는인간의 무지에 기인한다.궁극적으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인류의 의지를 합한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류 전체 의지의 변화는 한 사람 각자의 문제 인식과 내적 결의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단 변화의 의지를 갖고 용기있게 실천하는 단 한 사람에서부터 시작된다.13


불법 교학에서 ‘생명 경애’라는 말은 우리의 내면의 정신/감정의 상태를 묘사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하지만, 생명경애는 사실상 우리의 내적, 외적 환경의 전체 모습을 뜻한다. 우리의 외모, 마음의 틀, 정신, 가슴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 가족, 직장의 모습, 지역에서의 역할 등의 조화 즉 우리의 환경도 포함하는 의미이다. 즉 생명 경애는 우리자신과 환경의 상태를 나타낸다.자신과 환경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외적인 환경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내적으로 인간주의를 개발하고 풍부하게 하는 가치를 알게 된다. 배타적으로 자신의 내면이나 외면만을 본다면 영원히 제자리걸음만할 뿐이다. <strong>SGI</strong> 운동의 목적은 개인의 인생과 생명에 긍정적인 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자가 환경을 보다 좋게 변화시키기 위해 지혜를 갖고 노력해 간다. 소설 인간 혁명의 머리말에서 “한 사람의 인간에 있어서의 위대한인간혁명은 이윽고 한 나라의 숙명전환도 성취하고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전환도 가능하게 한다.”(viii쪽)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각자 자신 내면의 변화 추구의 결의가 반드시 환경의 변혁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 불법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서 일하면서 항상 자신을 향상시키겠다는 순수한 결의를 하는 것이다. 불자로서, 우리의 강하고 지속적인 기원 속에 자신과 환경에 보다 나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타인도 같이 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을 것임에 틀림없다. •14


이케다 <strong>SGI</strong> 회장 강의“승리의 경전 ‘어서’에서배운다” 중에서• ‘선시초’ (2)에서 발췌• ‘묘미쓰상인어소식’에서 발췌• ‘소야전답서’에서 발췌15


제17 회 이케다 <strong>SGI</strong> 회장 강의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선시초 (2)인간승리의 찬가!민중불법의 시대가 개막본문 선시초 264쪽 14행-265쪽 2행지금 말법에 들어와서 이백여세( 二 百 餘 歲 ), 대집경( 大 集 經 )의 어아법중( 於 我 法 中 ), 투쟁언송( 鬪 爭 言 訟 ), 백법은몰( 百 法隱 沒 )의 시( 時 )에 해당됐느니라. 불어( 佛 語 )가 진실이라면 틀림없이 일염부제( 一 閻 浮 提 )에 투쟁( 鬪 爭 )이 일어날 시절( 時 節 )이로다. (중략) 투쟁견고( 鬪 諍 堅 固 )의 불어( 佛 語 )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으며, 마치 이것은 대해( 大 海 )의 조수( 潮水 )가 시( 時 )를 어기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이것을 가지고 생각컨대 대집경의 백법은몰의 시에 이어 법화경( 法 華 經 )의대백법( 大 白 法 )이 일본국 및 일염부제에 광선유포( 廣 宣 流 布 )된다는 것도 의심이 없을 것이로다.[현대어역]지금 말법에 들어와서 200여년이 되었다. 대집경에 있는 ‘우리 법 속에서 투쟁언송하고 백법은몰하리라.’는 때에 해당한다. 이 부처의 말씀이 진실이라면 틀림없이 일염부제에 투쟁이 일어날 시절이다. (중략) 투쟁견고라는 부처의 말씀은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대해의 조수가 때를 어기지 않고 밀물이 되고 썰물이 되는 이치와 같다. 이런 사실에서 생각하면 대집경에서 말하는 백법은몰의 때에 이어 법화경의 대백법이 일본국을 비롯해 일염부제에 광선유포되는것도 의심하면 안 된다.‘말법’을 어떻게 파악하는가니치렌불법의 초점 중 하나는 “ ‘말법’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입니다. ‘말법’은 정( 正 ), 상( 像 ), 말( 末 )의 삼시( 三 時 ) 중하나이며, 부처가 입멸한 후에 찾아 온다는 ‘법멸( 法 滅 )의 시대’, 즉 불법이 멸하는 시대입니다.여러 경전에서 정, 상, 말의 삼시를 설했는데, 각 시대의 특색은 교( 敎 ,부처의 가르침), 행( 行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수행하는 것), 증( 証 , 수행의 성과)에 따라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부처가 입멸한 후, 우선 교, 행, 증 모든 면에서불법을 바르게 유지한 ‘정법’ 시대가 있습니다. 다음에 교와 행을 유지하고 있으나 증을 득할 수 없게 되어 불법이 점차적으로 유명무실하게 되는 ‘상법’시대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끝으로 교법은 남아 있어도, 행과 증을 잃은 법멸의 때인‘말법’에 이릅니다. 이것이 정, 상, 말 삼시의 양상입니다.이 어서에서는 말법의 중생을 구하는 사람( 人 )과 법( 法 )을 밝히기 위해 정, 상, 말 삼시의 홍경 순서(법화경홍경사< 法 華經 弘 經 史 >)를 두 번에 걸쳐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서술(어서 260쪽 13행-266쪽 14행)하신 부분을 보면,정상말의 추세는 만인성불을 원하는 불의( 佛 意 )를 망각한 일과 되살린 일의 역사라고 배독할 수 있습니다. 부처가 설한가르침의 본질을 잃은 여러 세력이 확대되어 혼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부처의 진의를 깨달은 지자( 智 者 )가 나타나 올바16


른 법의( 法 義 )를 선양합니다. 그러나 또 본질을 잃고, 다시 새로운 지자가 나타나 더욱 선명하게 진의를 밝힙니다. 그것은 가짜 불제자가 만연해서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시대적 흐름에 대해 진정한 불제자가 홀로 일어서서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싸워서 사람들을 구하고 권토중래( 捲 土 重 來 )의 투쟁을 펼치는 역사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관에서 볼 때,법멸하는 악세인 말법에는 부처가 지닌 진의 를 즉시 밝히는 가장 뛰어난 법을 설하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성인 재세 당시 종교계는 중생의 ‘기근’이 뒤떨어짐으로써, 알기 쉬운 법도 이해하지 못하는 악기( 惡 機 )와 열기( 劣 機 )의사람들이 뛰어난 묘법 등은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호넨이 세운 전수염불( 專 修 念 佛 )의 신앙은 중생이 지닌 기근에 편중해서 세웠습니다. 즉 악기와 열기인 말법의 중생에게는 자력( 自 力 )으로 깨달음을 얻는 수행은 부적합하기에 아미타불의 절대적인 타력( 他 力 , 본원력< 本 願 力 >)으로 죽은 후에 서방극락정토에 왕생( 往 生 )하는 방법 이외에는 구할 수 없다는 신앙입니다.‘기근’을 중심으로 말법의 중생을 구하는 사고방식은 언뜻 보기에 민중을 중요시하는 자세로 보일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민중을 ‘악기’ 혹은 ‘열기’라고 하는 한편,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에서 동떨어진절대적 구제자인 불보살( 佛 菩 薩 )이라고 합니다.스승인 부처와 제자인 중생을 분단해서 고정적으로 차별합니다. 그런 승려와 성직자는 자신을 부처와 민중 사이에 두고,부처의 권위를 믿고 혹은 오만하게, 혹은 교묘하게 민중을 지배했습니다. 이에 대해 니치렌대성인은 우선 교주인 석존의진의를 중히 여기셨습니다. 중생에 맞춘 수타의( 隨 墮 意 )를 기본으로 한 방편의 가르침이 아니라, 석존의 궁극적인 진의를 밝히는 수자의( 隨 自 意 )의 법화경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셨습니다.미혹에 빠진 사람들이 원하는 수타의의 가르침이 아니라, 부처의 깨달음을 중심으로 꼭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법을 부여해야 한다고 갈파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말법이라는 ‘때’의 문제에 대해, 중생의 기근에서 생각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있는 ‘법’이 무엇인지를 탐구하셨습니다.그 결론이 바로 법화경의 중요한 법인 남묘호렌게쿄( 南 無 妙 法 蓮 華 經 )입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말법을 법화경에서 석존이 내다보고 예언한 ‘법화경 광선유포의 때’ ‘일염부제 광선유포의 때’로 인식하셨습니다. 즉 “만인은 본래 보살이다.” “만인에게 성불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설하는 법화경이므로 말법에 충만한 악기와 열기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묘법을 기본으로 함으로써 ‘진정한 민중승리’ ‘인간찬가’의 시대로서 말법의 ‘때’라는 의의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법화경이 설하는 말법은 ‘절망의 말세’가 아니라 ‘희망의 변혁기’입니다.말법은 ‘세계 광선유포의 때’어서에서 말법은 법화경의 대백법( 大 白 法 )이 전 세계에 광선유포되는 ‘때’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대집경의 ‘오개( 五 箇 )의오백세( 五 百 歲 )’라는 설에는, 제오( 第 五 )의 오백세인 말법의 특징을 ‘투쟁언송( 鬪 爭 言 訟 ). 백법은몰( 百 法 隱 沒 )’ 혹은 ‘백법은몰. 투쟁견고’라고 밝혔습니다.결국 석존의 가르침 속에서 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나므로 정법( 正 法 )이 은몰하고, 문란해진 불법( 佛 法 )이 사회에 만연해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시대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대집경의 말대로 한다면 말법은 전혀 희망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대집경에서 설하는 불의( 佛 意 )는 법화경을 통해 밝혀집니다. 법화경 약왕품 제23에 “내가 멸도한 뒤, 후 오백세 중에,염부제에 광선유포해서 (악마, 마민 등에게) 단절함이 없을지어다.” (법화경601쪽, 취의)라고 설했습니다.참으로 투쟁언송, 백법은몰이라는 법멸이 위기를 맞는 ‘제오의 오백세’는 법화경이 ‘염부제’에 광선유포되어야 할 ‘때’를말합니다. 다시 말해 ‘세계 광선유포의 때’입니다. 약왕품에는 “악마, 마민 등이 광선유포를 단절하게 하면 안 된다.”고있습니다.말법에 맞이하는 세계 광선유포의 때에는 모든 마성( 魔 性 )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명하신 말씀입니다. 법멸의 말법을 만인성불, 세계 광선유포의 때로 바꾸는 힘은 이 ‘마성과 싸우는 법화경 행자’의 실천에 있습니다. 대성인 자신이 모든 마성과 싸워서 이겨 세계 광선유포의 원류( 源 流 )를 여는 법화경 행자의 실천을 현실 속에서 불석신명으로 해내셨습니다.그 사실을 에서 강력히 선언하셨습니다. ‘만인성불’이라고 하지만 말만으로는 한 사람도 성불할 수 없습니다. 이념과 이상에 그치면 ‘광선유포를 향한 전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법화경의 이념과 이상을 상세히 아는 선각자가 그17


이상과 이념의 실현을 방해하는 장벽을 하나하나 극복하는 ‘행동’을 자진해서 취합니다. 그때 비로소 광선유포가 한 걸음 전진합니다. 이 일보전진이 이념과 현실 간의 무한한 거리를 넘는, 소위 ‘필사적인 비약’입니다. 이 ‘필사적인 비약’을이루어 낸 승자만이 ‘법화경의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 즉 ‘법화경 행자’입니다.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자신을 ‘일염부제 제일의 법화경 행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만인성불’ ‘세계 광선유포’의기반을 불석신명의 실천으로 확립했다는 명확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니치렌대성인의 대투쟁으로 민중이 미혹에 빠져 괴로워하는 악세 말법에서 만인이 성불하고 입정안국을 실현하는 세계 광선유포의 ‘때’로 크게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18


제22회 이케다 <strong>SGI</strong>회장 강의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묘미쓰상인어소식( 妙 密 上 人 御 消 息 )‘홀로 서다’ -그것이 ‘창립’의 마음본문 묘미쓰상인어소식 1239 쪽 18 행-1240 쪽 2 행지금 니치렌( 日 蓮 )은 그렇지가 않다. 이금당( 已 今 當 )의 경문( 經 文 )을 깊게 지키고, 일경( 一 經 )의 간심( 肝 心 )인 제목( 題 目 )을 나도 부르고 남에게도 권( 勸 )하니, 삼밭 속의 쑥, 먹줄 친 나무가 자체( 自 體 )는 곧지 않더라도, 자연히 곧아지는 것과 같다. 경( 經 )과 여( 如 )히 부르므로 구부러진 마음이 없으니, 마땅히 알지니라. 부처의 마음이 우리들의 몸에 들어 오시지 않으면 부르기 어려우니라.현대어역지금 (제종의 원조들은 다른 경을 근본으로 법화경을 읽는데) 니치렌은 그렇지가 않다. 니치렌은 법화경의 ‘이금당’ 경문을 깊게 지키고 법화경의 간심인 제목을 나도 부르고 남에게도 권하고 있다. 마치 삼밭 속에 자란 쑥과 먹줄 친 나무가 자체는 굽었어도 자연히곧아지는 이치와 같다. 법화경의 가르침대로 제목을 부르므로 조금도 구부러진 마음이 없다. 부처의 마음이 우리 몸에 들어오시지 않으면 제목을 부르지 못한다고 알아야 한다.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실천을 관철대성인은 어떻게 스스로 ‘때’를 알고 ‘법’을 알아 법화경의 제목을 넓히는 말법유포의 ‘최초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가요. 대성인은그 열쇠로서 ‘경문 그대로’ 올곧게 실천하는 ‘여설수행( 如 說 修 行 )’의 중요성을 이 성훈에서 가르치십니다. 니치렌대성인의 행동은 인사( 人 師 )와 논사( 論 師 )를 따르지 않고 일관해서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여설의 실천이셨습니다.이에 비해서 제종( 諸 宗 )의 원조( 元 祖 )들은 자종( 自 宗 )의 의경( 依 經 )을 스승으로 삼고 법화경을 읽었기 때문에 법화경의 본의( 本 義 )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즉 이전경의 눈으로 법화경을 이해하려 해도 십계호구와 일념삼천을 바탕으로 하는 만인성불이라는 법화경의 진수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법화경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니치렌대성인은 그러한 제종의 원조들과 달리 “이금당( 已 今 當 )의 경문을 깊게 지키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이 곧 일대성교( 一 代 聖 敎 )의 진수라는 가르침대로 법화경의 제목을 자신도 부르고 남에게도 홍통했다고 씌어 있습니다. 여기서 대성인은 경문을 믿고 경문대로 실천하도록 강조하셨습니다.구부러진 쑥 줄기가 마 속에서 곧게 자라듯이, 벤 나무로 재목( 材 木 )을 만들 때 먹줄이 있으면 직선을 목재 표면에 그을 수 있듯이‘경( 經 )과 여( 如 )히’ 창제하면 석존의 진의를 왜곡하는 마음, 구부리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가르치십니다. “부처의 마음이 우리들의 몸에 들어 오시지 않으면 부르기 어려우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중요한 글월입니다. 방편품에 ‘정직사방편( 正 直 捨 方 便 )’이라고 씌어 있듯이, 법화경은 부처가 정직하게 방편설을 버리고 오로지 성불의 길을 곧바로 설한 경전입니다.그리고 수량품에 ‘질직의유연( 質 直 意 柔 軟 ) 일심욕견불( 一 心 欲 見 佛 ) 부자석신명( 不 自 惜 身 命 )’이라고 씌어 있듯이 중생이 아견( 我 見 )과 사지( 邪 智 )등의 집착을 버리고 정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자신을 아끼지 않고 일심으로 부처를 구도한다면 말법이라도 법화경을 믿는 사람의 몸에 부처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대성인은 부처가 부처의 마음을 그대로 설한 법화경을 똑바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상행보살이 허공회 의식에서 석존이 한 금언( 金 言 )인 직설( 直 說 )을 듣고 부촉을 받았을 때처럼,19


묘호렌게쿄 오자라는 ‘법’의 의의도 광선유포의 때라는 ‘말법’의 의의도 스스로 각지하셨습니다.법화경을 경문대로 실천하면 반드시 대난이 일어난다고 경문에 엄연히 씌어 있습니다. 법사품의 ‘유다원질( 猶 多 怨 嫉 ) 황멸도후( 況 滅度 後 )’, 안락행품의 ‘일체세간다원난신( 一 切 世 間 多 怨 難 信 )’, 권지품의 ‘삼류강적( 三 類 强 敵 )’등, 대성인은 경문대로 대난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석존의 경문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대성인이 증명하신 일이 됩니다.대성인은 그것을 “이들 경문은 니치렌이 일본국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다만 부처의 말씀만 있고 그 의( 義 )가 허망하게 되리라.” (어서1240 쪽)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창가학회가 이런 대성인에게 직결해 성훈을 증명했습니다. 창가학회는 80 년 동안 ‘대성인 직결’ ‘어서근본’의 신심으로 올곧게 싸워 이겨냈습니다. 그러므로 니치렌대성인 불법을 올바르게 광선유포해 세계 192 개국으로 넓혀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마키구치 선생님은 “니치렌불법을 근세에 형성된 단가( 檀 家 )제도라는 사원 신앙에 가두면 안 된다. 세계로 열린 민중불법을 확립해야 한다.”며 대성인 재세 당시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치를 창조하는 생활법으로서 불법을 소생시켜현실의 실증을 중시하면서 광선유포를 향한 신심을 되살리셨습니다. 게다가 마키구치 선생님은 방법엄계( 謗 法 嚴 戒 )의 신심을 준엄하게 관철하며 전시( 戰 時 )중에는 종문이 ‘신찰을 받도록’요청하자 단호하게 거부하셨습니다. 대성인 정통의 신심을 계승한 엄숙한 용단이었습니다.도다 선생님도 어서를 심간에 물들여 지용보살의 자각 그대로 광선유포라는 서원에 일어서서 민중구제의 투쟁을 관철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의 제자인 나도 광선유포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존귀한 동지 여러분과 함께 일어섰습니다. 대성인이 어서에 쓰신대로 삼장사마, 특히 제육천의 마왕이 이끄는 군세와 싸워 삼류강적을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학회는 모두 승리했습니다. 창가학회가 현대에 대성인의 어서를 색독( 色 讀 )하고 증명했습니다. 창가학회는 니치렌불법을 이어받은유일한 불칙의 단체입니다. 창가학회가 80 년 동안 불석으로 여설수행한 역사는 학회의 정통성을 엄연히 증명합니다. •20


제24 회 이케다 <strong>SGI</strong> 회장 강의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소야전답서( 曾 谷 殿 答 書 )‘낭랑한 창제’로‘절대 승리의 길’을!본문 소야전답서 1060 쪽 4 행-8 행제경( 諸 經 )은 오미( 五 味 ), 법화경( 法 華 經 )은 오미의 주( 主 )라고 하는 법문은 본문( 本 門 )의 법문이로다. 이 법문( 法 問 )은 천태( 天 台 ) •묘락( 妙 樂 )이 대략 쓰셨지만 분명하지 않으므로 학자의 아는 바가 적도다. 이 석( 釋 )에 약논교지( 若 論 敎 旨 )라고 쓰여져 있음은, 법화경의 제목( 題 目 )을 교지라고 쓰셨느니라. 개권( 開 卷 )이라고 함은 오자( 五 字 ) 중의 화( 華 )의 일자( 一 字 )이며, 현원( 顯 遠 )이라고 쓰여져 있음은 오자 중의 연( 蓮 )의 일자이고, 독득묘명( 獨 得 妙 名 )이라고 쓰여져 있음은 묘( 妙 )의 일자이니라. 의재어차( 意 在 於 此 )라고 쓰여져 있음은, 법화경을 일대( 一 代 )의 의( 意 )라고 함은 제목이라고 쓰셨느니라. 이것으로써 알지어다. 법화경의 제목은 일체경( 一 切經 )의 혼( 魂 ), 일체경의 안목( 眼 目 )이니라.[현대어역]“제경은 오미, 법화경은 오미의 주이니라.”는 법문은 법화경 본문의 법문이다. 이 법문에 관해 천태대사와 묘락대사가 대략 썼다고하지만, 분명하지 않아서 알고 있는 학자가 적다. 묘락대사의 석( 釋 )에 나오는 “혹시 교지를 논하면”에서, 법화경의 제목을 ‘교지’라고 말했다. “법화는 개권현원을 가지고”의 ‘개권’은 오자( 五 字 )의 제목 중 ‘화( 華 )’의 일자( 一 字 )다. ‘현원’이라고 씌어 있음은 오자의제목 중’ 연( 蓮 )의 일자다. “홀로 묘( 妙 )한 이름을 받음”이라고 씌어 있음은 오자의 제목 중 ‘묘( 妙 )’의 일자다. “마음은 여기에 있다.”라고 씌어 있음은, 법화경이 일대( 一 代 )의 마음이라 함은 제목이라고 밝히셨다. 이것으로써 법화경의 제목은 일체경의 혼이고, 일체경의 안목이다.법화경이 ‘오미의 주( 主 )’이 어서는 제목의 공력( 功 力 )을 밝히기 위해 먼저, 법화경이 일체경의 정점에 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천태대사가 일체경의 승렬을 논하기 위해 사용한 ‘오미( 五 味 )’의 비유를 두 가지로 해석하셨습니다. 하나는, 제경을 오미로 나누어 무량의경( 無 量 義經 )과 법화경과 열반경( 涅 槃 經 )이 최고의 제호미( 醍 醐 味 )에 해당한다는 해석이고, 또 하나는 법화경을 오미 중에서 최상인 제호미로그치지 않고 ‘오미의 주’라고 더욱 깊이 해석하셨습니다.‘오미’는 우유를 정제( 精 製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다섯가지 맛입니다. 유미( 乳 味 )에서 시작해 5 단계로 정제해서 최고의 맛인 제호미에 이릅니다. 이 오미는 맛도 자양분도 약효도 다르지만, 모두 사람의 수명을 키웁니다. 이에 반해 ‘오미의 주’는 오미로 인해 양성되는 수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은 모든 중생을 성불시키는 최고의 역용( 力 用 )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미 중에서 제호미에비유하셨습니다.이는 중생의 생명을 양성하는 공덕의 면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해 법화경이 ‘오미의 주’라고 하면, 법화경이 오미로 양성된 중생의 생21


명에 나타나는 ‘불계( 佛 界 )의 생명’을 설하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경전이 됩니다. 그리고 법화경의 간심( 肝 心 )인 남묘호렌게쿄 제목이 일체의 제불을 부처로 만든 능생( 能 生 )의 근원법이고 ‘불계의 생명’입니다. 어서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법화경의 제목은 팔만성교( 八 萬 聖 敎 )의 간심이요 일체제불( 一 切 諸 佛 )의 안목인데.”(어서 940 쪽) “수량품( 壽 量 品 )의 간심인 남묘호렌게쿄야말로 시방삼세( 十 方 三 世 )의 제불의 어머니시니라.”(어서 1212 쪽) “삼세시방의 부처는 반드시 묘호렌게쿄의 오자( 五 字 )를 종( 種 )으로 해서 부처가 되시었다.”(어서 1072 쪽) “남묘호렌게쿄라고 함은 일대( 一 代 )의 간심일뿐더러 법화경의 심( 心 )이고 체( 體 )이고 구극( 究 極 )이니라.”(어서 1058 쪽) 참으로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은 ‘일체제불의 안목’ ‘시방삼세의 제불의 어머니’ ‘일체경의 안목’이고 ‘일대의 간심’ ‘법화경의 간심’ ‘본문수량품의 간심’ ‘수량품의 간요( 肝 要 )’이고, ‘불종( 佛 種 )이며’ ‘대양약( 大 良 藥 )’이고‘법체( 法 體 )’입니다.말법에 남묘호렌게쿄를 처음으로 깨달으시고 홍통하신 분이 니치렌대성인입니다. 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를 수지( 受 持 )한 묘법( 妙法 )의 당체( 當 體 )로서, 불석신명( 不 惜 身 命 )으로 말법만년의 광선유포를 위해 싸우고 모든 장마( 障 魔 )에 승리하셨습니다. 어본존은대성인의 부처의 생명을 한 폭의 만다라( 曼 茶 羅 )로 도현( 圖 顯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니치렌대성인의 생명이며 제불의 안목인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이 어본존을 대경( 對 境 )으로 삼아 부름으로써 우리 가슴속에 남묘호렌게쿄를 불러 일으켜 묘법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본존을 신수( 信 受 )하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러서 받들면, 나의 몸 즉 일념삼천( 一 念 三 千 )의 본존,연조성인( 蓮 祖 聖 人 )이니라.”(관심의본존초문단)입니다.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은 우리가 무명( 無 明 )의 어둠을 털어버리고 대성인과 똑같은 위대한 부처의 생명을 열어 나타낼 수 있는 궁극의법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부처의 자비와 지혜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내서 자타( 自 他 )가 함께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를구축할 수 있도록 민중구제의 요법( 要 法 )을 ‘제목의 신행( 信 行 )’으로 확립하셨습니다.법화경의 제목은 일체경의 안목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묘락대사의 석문( 釋 文 )에 따라 법화경이 ‘오미의 주’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우선 법화경 ‘교지( 敎 旨 , 가르침의취지)’ 다시 말해 가르침의 핵심이 묘호렌게쿄 오자의 제목에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묘락대사는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법문은 ‘개권( 開 卷 )’ ‘현원( 顯 遠 )’이라고 말했습니다.적문( 迹 門 )의 ‘개권현실( 開 權 顯 實 , 권을 열어 실을 나타내다)’과 ‘개근현원( 開 近 顯 遠 , 근을 열어 원을 나타내다)’입니다. ‘개권현실’은방편( 方 便 ,권)인 이전경에서 가르친 뜻과 한계를 명확하게 해서, 진실인 일불승( 一 佛 乘 ) 즉 일체중생을 성불시키는 묘법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전권교( 爾 前 權 敎 )가 방편(권)이라는 가장 큰 이유는 십계( 十 界 )의 차별, 특히 구계( 九 界 )와 불계( 佛 界 )의 차별을 설한 것에 있습니다.그런데 법화경 적문( 迹 門 )에서는 이승작불( 二 乘 作 佛 ), 악인성불( 惡 人 成 佛 ), 여인성불( 女 人 成 佛 )등을 설하고, 부처의 지혜와 공덕을구계의 생명에 나타낼 수 있다고 설합니다. 십계 차별이라는 방편을 없애고, 중생의 생명을 십계호구( 十 界 互 具 )라는 진실에서 보고있습니다. 이것이 ‘개권(권을 열다)’입니다.대성인은 이 ‘개권’은 묘호렌게쿄의 오자 중에 ‘게( 華 )’의 일자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렌게( 蓮 華 )’의 이자( 二 字 )를 성불( 成佛 )의 인과( 因 果 )에 맞추면 ‘게’는 인( 因 ), ‘렌( 蓮 )’은 과( 果 )에 해당합니다. 구계중생( 九 界 衆 生 )의 생명에 대한 방편을 털어내는 ‘개권’은 ‘게’에 해당합니다.다음에 ‘개근현원’은 이전( 爾 前 ) • 적문( 迹 門 )에서 석존은 금세에 처음으로 성불했다고 했으나, 법화경 본문 수량품에서 사실은 그렇지 않고 구원( 久 遠 )의 과거세에 성불한 구원실성( 久 遠 實 成 )의 부처라는 진실을 밝혔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진실한 불과( 佛 果 )인 구원실성의 부처는 구원 옛날에 성도( 成 道 )하고도 구계의 생명을 끊지 않고, 구계의 각종 모습을 나타내며 중생을 구하는 영원한 부처입니다. 이 진실한 불과를 밝힌 것이 ‘현원(구원을 나타내다)’이므로 묘호렌게쿄의 오자 중 ‘렌’에 해당합니다.이와 같이 제목의 오자에서 ‘렌게’의 이자( 二 字 )는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개권’과 ‘현원’의 법문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중생의 생명이 십계호구 • 인과구시( 因 果 俱 時 )의 ‘묘( 妙 )’를 몸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생의 생명에 묘리( 妙 理 ) • 묘용( 妙 用 )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제목의 오자 맨 앞에 ‘묘’자를 붙입니다. 요컨대 생명이 바로 묘호( 妙 法 )의 당체라는 사실을 밝힌 법화경 전체의 교지는 ‘묘호렌게쿄의 오자’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그리고 대성인은 이렇게 법화경의 뜻을 이해했을 때, ‘묘호렌게쿄의 오자’가 법화경의 핵심일 뿐 아니라 ‘일대( 一 代 )의 의( 意 )’ 즉 석존일대 가르침의 핵심, 불교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이 법화경은 십계호구 • 인과구시의 묘리 •22


묘용의 당체로서 중생생명의 진실을 밝히셨습니다. 법화경을 ‘오미의 주’라고 위치를 부여한 까닭은 오미로 인해 자라는 중생의 생명이 진실의 전체상( 全 體 像 ,십계호구 • 인과구시의 묘리 • 묘용의 당체)를 밝히는 경전이기 때문입니다.법화경의 제목은 단순히 한 경전의 제명( 題 名 )이 아닙니다. 우리 생명이 갖추고 있는 묘리 • 묘용을 표현하고 있으며, 만인성불( 萬 人成 佛 )을 위해 각종 가르침을 설한 부처의 ‘의( 意 )’에 해당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일체경의 혼’이고 ‘일체경의 안목’이라고결론 내리셨습니다. •23


불법( 佛 法 )의 역사• 석존의 생애• 법화경• 대승불교와 법화경• 니치렌 대성인과 법화경• 말법시대 법화경 수행24


석존의생애 탄생불교의 창시자인 석존의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입니다. 석존이라는 호칭은 ‘석가모니 세존( 석가족 출신의 존자)’의 약칭입니다. 석존은 현재 네팔 왕국의 인도 국경 부근에 위치한 가비라위 성 근처 룸비니라는 동산에서 정반왕과 마야 부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출생 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463년, 기원전 566년, 또 기원전 624년 등의 여러 설이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 재세 당시의 일본에서는 의 기록에 따라 석존의 입멸을 (기원전 949년)로 하는 설이 통설이었으며 대성인도 이 설을 택하셨습니다. 출가석존은 왕자로 태어나 물질적으로는 무엇하나 아쉬움이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총명하여 학문에 정통하였으며 뛰어난 용모에다 무술도 남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존은 진심으로 즐거워하거나 만족스러워하지 못했습니다.어느 날 석존이 성에서 외출하려고 할 때 동문에서 어느 한 노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문으로 나갈 때에는 병자를 만나고 서문으로 나갈 때는 죽은 사람을 보내는 행렬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석존은 인생의 무상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문을 나왔을 때 수행자를 만나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본원적인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수행의 길에 투신하겠노라고 결의했다고합니다.으로 향하여 근교 녹야원(프르가다바, 현재 사르나트)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실시했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5명의 수행자가 석존에게 귀의하여제자가 되었습니다. 석존인 이후로도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법을 넓히자고 권유, 스스로 솔선하여 홍교의 여행을 계속하였으며 생애에 걸쳐서 결코 안주하는 일이 없었습니다.석존에게는 능력면으로도 실천면으로도 뛰어난 제자가 많이 있었는데 지혜 제일의 사리불을 비롯한 그 대표를 ‘10대 제자’라고 불렀습니다.25


대난석존과 제자들이 정력적으로 홍교를 행함에 따라 왕과 유력한 상인 등도 귀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지금까지 그들의 귀의를 얻고 있던 자들을 비롯, 석존의 명성을 시기하는 자들이 나타났고 여러 가지로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생명까지 위협하는 박해를 가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석존이 받은 아홉의 커다란 난을 ‘구횡의 대난’이라고 합니다. 구횡의 대난에 대해서는 여러설이 있지만 석존의 사촌이자 제자인 제바달다(데바닷타)가 석존을 원망하여 기사굴산(영추산)에서 큰 돌을 떨어뜨려 석존을 살해하려고 했던 일, 아사세 왕이 술에 취한 코끼리를 풀어놓아 석존을 밟아 죽이게 하려고 했던 일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석존과 그 교단은 이와 같은 박해를 극복하며 홍교에 면려했습니다. 입멸이렇게 설법하기를 50년, 죽음을 눈앞에 둔 석존이 “나는 안팎으로 구별없이 모든 법을 설했다. 완전한 사람인 나 석존은 제자들에게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듯이 석존은 자신의 깨달음을 모두 다 설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기반으로 석존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태만하는 일 없이 근면하라”는 말을 마지막 가르침으로 하여 구시나 성(현재의 쿠시나가라)부근에서 80년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석존의 장례식은 생전의 가르침에 따라 출가자는 관여하지 않고 재가 사람들에 의해서만 실시되었습니다. •26


법화경이번 장에서는 석존 불법의 진수인 법화경에 대하여 개략적인 설명을 하면서 석존에서 니치렌 대성인에 이르기까지의, 법화경이 홍통되어 온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1) 법화경의 특색1) 석존의 ‘출세의 본회’법화경은 석존의 ‘출세의 본회’라고 할수 있는 경전입니다. 출세의 본회란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법화경에서는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 목적 즉 일대사의 인연은 일체중생을 성불시키는 것이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즉 방편품에서는 [제불 세존은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게 하여 청정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출현하였다. (통해-모든 부처 세존은 중생에게 부처의 지혜를 열게 하여 청정한 경애를 깨닫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고로 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이다)](개결167쪽)고 있습니다.또 마찬가지로 방편품에서 석존은 법화경을 설함으로써 자신이 과거부터 지니고 있던 서원을 성취하였다고 했습니다.그 서원이란 [일체중생을 나와 마찬가지로 하여, 다름이 없게 할지어다(통해-일체중생을 자신과 똑같은 부처로 하여 다르지 않게하고 싶다)](개결 176쪽)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법화경은 ‘일체중생의 성불’이라는 부처의 본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설해진 경전입니다.2) 모든 경전 중의 왕석존이 설한 수많은 가르침은 지금까지 많은 경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 법화경은 ‘경왕’ ‘제경(여러 경들)의 왕’으로서 여러경전 중에서도 최고봉입니다. 그 까닭은 다른 제경이 교법의 한쪽 측면만 설하는 것에 비해 법화경은 그러한 제경들이 ‘무엇을 위해’설해져 있느냐는 부처의 진의를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 부처의 진의란 ‘만인 성불’을 가리키며, 법화경은 만인 성불이 부처의 진의라고 설해 가는 가운데 보편적인 불계의 생명을 분명히 밝힙니다. 또한 법화경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계에 대한 믿음을 깊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법화경과 제경의 이러한 관계는 대강(기본적인 부분만을 떼낸 줄거리)과 강목(대략적인 줄거리와 자세한 조목)의 관계로 비유할 수있습니다. 즉 제경이 그물코라면 법화경은 모든 그물코를 움직이는 하나의 큰 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건물과 토대의 관계로도 비유할 수 있는데, 제경은 사람들의 마음을 성숙하게 만들어 법화경에 다다를 수 있게 만드는 가르침으로 법화경이라는 건물을 세우기 위한 토대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중생을 법화경으로써 불계에 이르게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3) 멸후를 위한 경전법화경은 석존 멸후의 중생을 위해 설해진 경전입니다. 만일 성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석존일대의 중생 구제만으로는 부족합니다.멸후의 중생을 위해 성불의 법을 나타내고 그것을 전하여 넓혀야 합니다. 법화경은 실로 멸후의 구제를 목표로 하여 그를 위한 법과사명 그리고 그 실천을 설한 것입니다.법화경에서, 부처가 깨달은 법인 동시에 만인을 구제하는 법인 ‘일승’을 설하는 것도 멸후를 위해서 입니다. 석존의 본지와 영원한불계의 생명을 밝히고 그 구제의 힘을 설하는 것도 멸후의 중생을 위한 것입니다. 또 허공회라는 법화경의 중심적인 의식은, 바로 멸후의 홍통을 지용의 보살에게 의탁하기 위한 의식입니다. 그리고 견보탑품 제 11에서는 육난구이, 권지품 제 13에서는 삼류의 강적등을 설하여 멸후에 이 경전을 넓히는 일의 존귀함과 어려움을 나타내 광선유포의 실천을 권하고 있습니다. (‘허공회’ 본문 93쪽, ‘지27


용의 보살’ 본문 112쪽, ‘육난구이’ 본문 93쪽, ‘삼류의 강적’ 본문 357쪽을 참조)(2) 법화경의 개요1) 원전과 한역법화경은 1 ~ 2세기경에 인도에서 편찬되었습니다. 법화경은 산스크리트라는 언어로 되어 있으며 많은 법화경 사본이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 중국에 전해진 법화경은 3세기에 한역되었습니다. 법화경의 한역에는 여섯종류가 있다고 합니다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세 가지뿐입니다.현존하는 세 가지 종류의 한역본은, (ᆨ) 축법호가 번역한 (3세기), (ᆫ) 구마라습이 번역한 (5세기), (ᆮ)사나굴다 달마급다가 같이 번역한 (7세기)입니다.그 중에서 구마라습(350~409년경)이 번역한 이 가장 뛰어난 명역으로서 유포되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도 이 만이 석존의 참뜻을 올바르게 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에는 [나습 1인만이 교주 석존의 경문에 사견의 말을 넣지 않은 사람입니다](어서 1007쪽)라는 말씀이 있습니다.2) 제명법화경의 제호인 ‘묘법연화경’은 산스크리트 원전에서는 ‘사다르마 푼다리카 수투라’라고 합니다. ‘사다르마’는 ‘올바른 법’, ‘푼다리카’는 ‘백련화’, ‘수투라’는 ‘경’이라는 뜻입니다. 구마라습은 이것을 ‘묘법연화경’이라고 번역했습니다.3) 28품과 개결 2경법화경은 28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방편품 제 2’나 ‘여래수량품 제 16’처럼 품의 명칭과 번호를 함께 부릅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3~4품씩을 한 권으로 하여 8권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또 중국의 천대 대사는 무량의경 1권을 법화경의 ‘개경’, 보현경 1권을 ‘결경’으로 하였습니다. 이 두가지를 합하여 ‘개결 2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법화경과 개결 2경을 합하여 ‘법화 3부경’이라고 합니다.4) 적문과 본문법화경 28품 중에, 서품 제 1부터 안락행품 제 14까지의 전반 14품을 ‘적문’이라고 하며, 종지용출품 제 15부터 보현보살권발품 제28까지의 후반 14품을 ‘본문’이라고 합니다. 적문의 중심이 되는 것은 방편품 제 2이며 본문의 중심은 여래수량품 제 16입니다.‘본’은 ‘본지’ 또는 ‘본체’라는 뜻이며, ‘적’은 ‘자취’ 또는 ‘그림자’라는 뜻으로 부처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본문의 부처인 구원실성의석존은 부처의 본체이기 때문에 본불이라고 하며 적문의 부처인 시성정각의 석존은 본체가 남긴 자취 또는 본체에서 투영하는 그림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적불이라고 합니다. 또 석존이 여러 경전에 설했다고 하는 여러 종류의 부처도 본불의 한쪽 면을 나타낸 적불에 해당합니다. 천태는, 본불은 하늘에 떠있는 달 즉 천월이며 적불은 여러 연못에 비추어 있는 달 그림자 즉 지월이라고 비유하였습니다.5) 이처삼회법화경 서품 제 1부터 견보탑품 제 11까지의 전반부는 영추산에서 실시된 설법의 모임(법회, 회좌)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견보탑품 제 11부터 촉루품 제 22까지의 중반부는 허공에서 실시된 법회를 그 배경으로 하며 마지막 약왕보살본사품 제 23부터 보현보살권발품 제 28까지는 다시 영추산에서 실시된 모임이 그 배경입니다.이와 같이 법화경의 설법은 영추산과 허공의 두 곳에서 실시되었으며, 법화는 3회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이처삼회’라고 합니다.28


또 3회의 법회는 순서대로 ‘전영추산’, ‘허공회’, ‘후영추산’ 이라고 합니다.6) 법화경의 대강법화경의 서품 제 1에서는 1만2천 명에 이르는 성문의 군중, 8만 명의 보살들을 비롯하여 다수의 인, 천, 용왕, 아수라 등이 영추산에모이고 석존이 삼매에 들어가 대지를 육종으로 흔드는 등, 여러 가지 서상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방편품 제 2에서는 석존이 삼매에서일어나 법화경의 설법을 시작, 석존은 모든 부처가 가르침을 설하는 근본 목적은 일체중생을 성불시키는 것에 있다고 밝힙니다.법화경 이전의 경들에서는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 등이 설해져 있지만 석존은 여기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도를 설한 것은 부처의 본의가 아니며 만인을 성불로 향하게 한다는 단지 하나의 도만이 부처의 진의임을 밝혔습니다. 만인을 성불로 향하게 하는 단지 하나의도를 ‘일승(단 하나뿐인 탈것을 뜻함: 탈것은 가르침을 비유한 말)’ 또는 ‘일불승(단 하나뿐인 ‘부처의 경애로 나르는 수레’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법화경 그 자체가 일승입니다.만인 성불의 길을 설하는 법화경을 일승 또는 일불승이라고 하는 것에 비해 법화경 이전의 여러 경에서 설하고 있는 성문도, 연각도,보살도의 세 가지를 삼승이라고 합니다. 또 부처가 제경에서 삼승을 설한 것은 일불승을 밝히기 위한 방편(수단)이라고 법화경에 설해져 있는데 이것을 천태는 ‘개삼현일(삼을 열어서 일을 나타낸다) 이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석존은 사리불의 성문들 일행을 비롯, 영추산에 모여 법화경을 듣고 신수한 일체의 사람들이 미래에 틀림없이 성불할 것이라고 명언하며 보증합니다. 이렇게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고 보증, 예언하는 것을 기별 또는 수기라고 합니다. 이처럼 법화경 적문에서는,법화경 이외의 경전에서 부정되었던 이승(성문과 연각)의 성불이 큰 골자를 이룹니다. 이승의 성불을 이승작불이라고도 합니다.허공회에 들어가면 석존의 입멸 후, 특히 말법에 법화경을 누가 홍통할 것인지를 테마로 드라마가 전개되고 멸후 법화경 홍통을 의탁하는 부촉의 의식이 실시됩니다. 먼저 견보탑품 제 11에서는 칠보로 장식된 거대한 보탑이 대지에서 솟아올라 공중에 떠오릅니다. 그보탑 안에 있던 다보여래가 법화경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어서 시방세계, 즉 모든 우주로부터 일체의 부처와 보살이 모여들어 보탑이 열리고 보탑 속에 석존과 다보여래가 나란히 앉습니다. 영추산에 있던 대중(설법의 청중)도 허공(공중)으로 떠오르자허공에서의 설법이 시작됩니다.여기서부터 석존의 멸후, 말법에 누가 법화경을 넓힐 것인지에 대해 설법이 계속됩니다. 견보탑품에서는 석존이 육난구이를 설하여보살들에게 멸후 홍경(경을 넓힘)의 맹세를 권유합니다.육난구이는 부처 멸후의 악세에 법화경을 넓히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며 홍경의 맹세를 권유하는 것입니다. 육난은, 멸후에 법화경을 (1) 잘 듣고 (2) 쓰고 (3) 읽고 (4) 한 사람을 위해 설하고 (5) 의의를 묻고 (6) 수지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구이는 예를 들어 수미산을 다른 무수한 불토에 던져 놓는 것, 대지를 발등에 두고 범천까지 올라가는 것, 마른 품을 등에 지고 대화 속에 들어가서 타지 않는 것, 갠지스 강의 모래 숫자만큼 많은 경전을 설하는 등, 보통이라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9가지 모두 멸후 악세에 법화경을 홍경하는 것보다 간단하다고 하는 것입니다.또 법화경에는 법화경 이전의 제경에서는 부정되었던 악인 성불 (제바달다의 성불)과 여인성불 (용녀의 성불)도 설해져 있습니다.이들에 의해 만인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시며 멸후 홍경을 권유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 허공회 회장에 있는 보살과성문들이 홍경을 맹세합니다. 특히 권지품 제 13에서는 보살들이 삼류의 강적을 극복하고 홍경해 갈 것을 맹세합니다 (‘삼류의 강적’에 대해서는 본문 357쪽 참조).그러나 석존은 법화경을 넓히겠다는 보살들을 만류하고 종지용출품 제 15에서 멸후 홍경을 담당할 사람으로서 자신이 과거부터 교화해 왔다는 무수한 보살을 대지 아래에서 나오게 합니다. 이들이 지용의 보살입니다.29


이 무수한 보살은 도저히 금생에서 성불하고 나서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석존이 교화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무수한 보살을 언제 어디서 교화했느냐는 사람들의 의문에 답하여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석존은 자신의 본래 경지를 밝힙니다. 즉 석존은 금생에서 처음으로 성불한 것이 아니라 오백진점겁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과거에 성불했으며, 그 이후 사바 세계(현실 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해 온, 장원한 수명을 가진 부처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실성의 부처를 신수하면 무량의 공덕이 있다고 설합니다. 또 석존의 과거세 모습인 불경보살의 실천을 통해 만인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믿고 사람들을 끝까지 존경해 가는 사람은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합니다. 이 불경보살의 실천은 법화경에서 설하는 보살행의 전형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여래신력품 제 21에서는 지용의 보살에게 불법의 일체를 의탁하여 멸후 홍경을 부촉하고 촉루품 제 22에서는 지용의 보살 이외의 보살도 포함한 일체의 보살에게 법화경 홍경을 권유하고 허공회가 끝납니다. 그 후 무대는 다시 영추산으로 돌아와, 영추산회가 시작됩니다. 약왕보살, 보현보살 등의 대보살과 제천선신이 석존 멸후, 법화경의 광선유포와 그 실천자인 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할 것을 맹세하고 법화경은 종료됩니다. 석존의 설법은 멸후에 법화경을넓히는 사람을 ‘마땅히 부처와 같이 존경해야 한다‘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3) 법화경의 주요법리‘1. 제법실상과 이승작불법화경의 전반 • 적문의 중심적인 법리는 ‘제법실상( 諸 法 實 相 )’과 ‘이승작불( 二 乘 作 佛 )’입니다.방편품에 설해진 ‘제법실상’이란, 상상하기도 힘든 부처의 깨달음을 굳이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제법( 諸 法 )’이란 이 현실 세계에서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든 현상’입니다. 지옥계부터 불계까지의 모든 생명도, 각각의생명이 사는 환경 세계도, 나아가 우주의 모든 현상도 모조리 제법에 포함됩니다. ‘실상( 實 相 )’이란 ‘구극의 진리’입니다. 단, 이 실상은 어딘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별세계에 있는 것이라든지 구체적인 ‘제법’에서 동떨어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니치렌 대성인은 제법실상에 대해서 “지옥에서부터 불계까지의 십계( 十 界 )의 중생과 그 환경 세계는 모두 妙 法 蓮 華 經 의 나타남이니라” (어서 1358쪽, 통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즉 십계의 어느 생명이라도 또 십계의 중생이 사는 어느 세계라도 그 참된 모습은 妙 法 蓮 華 經 가 나타난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제법실상입니다. 이 제법실상이 설해짐으로써 일체중생이 평등하게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거의 분명해졌습니다.이 평등한 성불의 가능성을 명시하기 위해 적문에서는, 법화경 이전의 경정에서 강하게 부정된 ‘이승작불(성문에 대한 수기)’이 가능하다고 특히 강조하였습니다. 이 적문의 가르침은 법화경 이외의 모든 경전과 비교한다면 성불관의 혁명을 초래할, 실로 획기적인 가르침입니다. 다른 경전에는, 지옥계에서 보살계까지의 구계는 어디까지나 미혹의 경얘이기 때문에 그 생명에서 떨어져야 부처가 될수 있다고 설해져 있는데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정도를 올라가면서 몇번이고 삶을 반복하여 수행을 거듭해야 한다는 역겁수행( 歷 劫 修 行 )이 필요하다고 설해져 있습니다.이와 같이 지옥계에서 보살계까지의 구계와 동떨어져 있는, 불계의 경애만을 추구해 가는 제경의 사고 방식은 제법실상과 상반되는것입니다.제법실상이 설해짐으로써 십계의 중생은 모두 묘법의 당체로서 평등하게 불계를 구족하는 것이 되며 그 불계를 열면 성불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2. 구원실성석존이 구원의 옛날에 성불했다는 것을 ‘구원실성( 久 遠 實 成 )’이라고 하며 이 구원실성의 부처야말로 석존의 본지라고 했습니다.이에 비해 석존이 과거세부터 기나긴 수행을 한 결과로 금세에 비로소 성불했다고 하는 ‘시성정각( 始 成 正 覺 )’의 부처관 • 석존관은임시의 모습이라 하여 부정되었습니다. 이전경과 법화경 적문에서는 석존이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수행한 끝에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으로 부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부처관 • 석존관을 ‘시성정각’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정각( 正 覺 : 부처30


의 올바른 깨다음)’을 성취했다는 뜻입니다.이 시성정각의 부처관에서는, 기나긴 과거부터의 수행 결과로 금세에서 성불한 부처는 이것으로써 완성에 이르렀기에 입멸 후에는전혀 다른 세계로 사라져 더 이상 현실 세계에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상을 동반합니다. 이 사고방식을 부정하는 것이 수량품의 구원실성입니다.3. 부처의 보살행수량품은, 구원실성의 부처가 구원의 옛날에 성불한 이래 사바 세계를 비롯하여 수많은 국토에서 여러 모습의 부처 • 보살로 나타나설법하여 중생을 교화해 왔다고 합니다. 또한 부처가 입멸하여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합니다.결국 모든 장소, 모든 형태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구원실성의 부처입니다. 그리고 이제껏 잠시도 이 활동을 멈춘 일이 없다고 설해져 있습니다.이와 같이 성불하여 어딘가 다른 세계로 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불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활동을 끝없이진행해 간다는 것이 수량품의 부처입니다.이렇게 해서 시성정각의 석존을 포함한, 다른 경전과 법화경 적문에 설해진 여러 종류의 부처는 모두 구원실성의 부처의 일면을 방편으로써 나타낸 것으로 요컨대 적( 迹 : 그림자)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수량품이, 시성정각의 석존은 일면의 모습( 迹 )이고 구원실성의 부처가 석존의 본지라고 밝힌 것을 천태 대사는 ‘발적현본( 發 迹 顯 本 : 적을 열어 본을 나타낸다)’이라고 했습니다.이 구원실성의 법리에서 중요한 점은 진실한 부처는 현실 세계(사바 세계)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모든 형태로 활동을 계속하는부처라는 점입니다.즉 진실한 불계의 생명은 현실 세계의 모든 국면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석존이 살아 있는 때만 부처가 이 세상에 있고 석존이 입멸하면 부처가 사라진다는 생각은 틀린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사라져 버리는 불계의 생명은 석존이 깨닫고 설해 나타 내려고 한 불계의 생명이 아닙니다.앞서 보았듯이 제법실상은 일체중생에게 불계의 생명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서 만인 성불의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는 법리입니다. 그리고 구원실성은 한 걸음 더 전진하여 석존 자신의 영원한 불계의 생명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지금까지 설명해 왔듯이 수량품은, 오백진점겁이라는 구원에 성도했다는 석존의 진실한 불과( 佛 果 : 본과( 本 果 ))를 밝혔습니다. 또 부처가 활동하는 국토가 사바 세계라고 하여 부처의 본국토( 本 國 土 )를 밝혔으며 또한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개결 500쪽)라고설하여 성도( 成 道 )하기 위한 근본 원인(본인( 本 因 ))으로 보살도의 수행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수량품에는 석존의본인, 본과, 본국토가 나타나 있습니다. 천태대사는 각각의 내용을 본인묘( 本 因 妙 ), 본과묘( 本 科 妙 ), 본국토묘( 本 國 土 妙 )로서 그들을합하여 나타냈는데 이것을 ‘삼묘합론( 三 妙 合 論 )’이라고 합니다.(4) 지용의 보살지용의 보살이란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 15에서 석존 멸후의 때, 이 경전을 홍교해 달라는 석존의 권유에 응하여 대지 밑에서 용출한수많은 보살을 말합니다.그 숫자는 육만항하사입니다. ‘항하사’란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알 숫자를 말합니다. 게다가 이 육만항하사의 보살은 각자 무수한 권속을 인솔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모습도 석존보다 휠씬 훌륭하고 품위 있다고 설해져 있습니다.또 지용의 보살은 구원실성의 석존이 구원부터 교화해 온 제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성불해서도 오백진점겁이라는 멀고 긴 시간 동안 현실 세계에서 중생 구제를 위해 계속해서 투쟁해 온, 구원실성의 석존을 스승으로 하여 스승과 같은 삶의 자세를 깊이 몸에 익혀온 사제불이의 제자라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다른 보살처럼 단순히 자신의 성불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로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지용의 보살은 상행( 上 行 ), 무변행( 無 變 行 ), 정행( 淨 行 ), 안립행( 安 立 行 )이라는 4명의 도사( 導 師 : 중생을 인도하는 스승)31


가 인솔하고 있습니다. 4명의 이름에는 모두 ‘행( 行 )’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제각기 현실 세계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자세를 나타낸다고 할 것입니다.석존은 여래신력품 제 21에서 상행보살로 대표되는 지용의 보살에게 여래의 모든 법과 신력 그리고 그 실천을 의탁하여 멸후의 홍법을 부촉합니다.이어서 촉루품 제 22에서는 모든 보살과 제천에게도 멸후의 홍법을 부촉하는데 신력품에서 거행된 지용의 보살에 대한 부촉을 별부촉( 別 付 囑 ), 촉루품에서 거행된 모든 보살에 대한 부촉을 총부촉( 總 付 囑 )이라고 합니다.이 부촉의 모습은 석존 멸후, 특히 악세 말법에 법화경을 홍통하는 주체자는 어디까지나 상행보살을 비롯한 지용의 보살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부촉대로 말법의 법화경 홍통의 선구자가 바로 니치렌 대성인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제법실상초’에는 “어떻게 하여서라도 이번에 신심을 다하여 법화경 행자로서 일관( 一 貫 )하고 끝까지 니치렌의 일문이 되어 나아기시라. 니치렌과 동의( 同 意 )란다면 지용의 보살이 아니겠느뇨. 지용의 보살로 정해진다면 석존의 구원( 久 遠 )의 제자라 함을 어찌 의심하리오” (어서 1360쪽)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을 신수하여 대성인 정신 그대로 광포의 실천에 힘쓰는 우리들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지용의 보살인 것입니다.(5) 불경보살불경보살( 不 輕 菩 薩 )이란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 20에 설해진 보살로 정확하게는 상불경보살이라고 하며 석존이 과거세에 수행했을때의 모습 중 하나입니다.불경보살은 위음왕불의 상법시대( 像 法 時 代 ) 말에 출현하여 “나는 깊이 그대들을 존경하며 절대로 경만하지 않노라.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해서 응당 작불함을 득하리라.” (나는 깊이 당신들을 존경하고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들은모두 보살도를 행하여 성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결 567쪽)라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예배하였습니다.이 말은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법화경의 뜻을 요약하여 나타낸 것이며 한문으로 보면 한자로 24문자이기 때문에, ‘24문자의법화경’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나타내고 있듯이 사람들을 결코 경시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불경보살이라고 합니다.예배행을 행한 불경보살은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악구매리당하고 장목, 와석으로 구타당하는 박해를 당합니다. 그러나불경보살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앞에 했던 말을 반복해서 설하였습니다. 그리고 불경품( 不 輕 品 )에 “기죄필이( 其 罪 畢 已 : 그죄를 이미마치고)” (개결 573쪽)라고 있듯이 이 실천으로 불경보살은 과거의 죄업을 모두 소멸시킬 수 있었습니다.더욱이 불경보살은 목숨이 끝나려 할 때 위음왕불이 설한 법화경을 허공에서 자세히 듣고 육근청정( 六 根 淸 淨 )의 공덕을 얻어 이백만억나유타 세( 歲 )까지 수명을 연장, 법화경을 계속 설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숨이 다한 후 다시 무량의 부처와 만나 그곳에서도 사중( 四 衆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대승불교와 법화경 불전 결집석존의 ‘8만4천 법장’이라고 하듯이 다양한 기회를 통하여 여러 갈래의 가르침을 설하였는데 석존의 멸후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올바르게 후세에 전하기 위해, 스승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모았습니다. 이것을 ‘불전결집’이라고 합니다. 제 1회 불전 결집은 석존 멸후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마하가섭을 중심으로 아난과 우바이 등 불제자들이 왕사성(라자그리하)에 모여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기억을 서로 확인하면서 실시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석존의 정신을 전하기 위해 경전을 결집. 편찬하려는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대승경전과 대승비불설론이렇게 하여 등의 소승경을 시작으로 하여 많은 경전이 편찬되었는데 보살의 이타행( 利 他 行 ) 등을 강조하는 대승 경전은기원전 2세기경부터 차례로 편찬되었습니다. 불법의 진수로서 ‘경왕( 經 王 )’으로 존중되어 온 이 현재의 형태로 편찬된 것은서기 1세기 또는 2세기경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같이 각 경전마다 편찬 시기에 격차가 있기 때문에 근세, 근대의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한때 대승의 여러 경전은 부처가 설한 것이 아니라는 설 이 제기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전의 성립과 교설에대한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먼저 성립된 소승 경전 중에도 대승 경전의 교설에 통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히려 대승의 교설쪽이 석존의 근본 사상과 정신을 올바르게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시간적으로 먼저 성립된 소승경전만이 불설( 佛 說 )이라는 견해는 부정되고 있으며 오히려 대승 경전의 편찬에 대해 석존의 근본 정신을 명확하게 한 불법의 ‘르네상스‘ 운동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즉 대승 사상은 석존의 깨달음과 그 가르침 속에 원초적인 형태로 이미 존재하고있는 것으로, 그것을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응하는 형태로 표현한 것이 대승경전이라고 할 것입니다. 보편적 법화경법화경도, 석존의 깨달음과 그에 입각한 석존의 올바른 가르침 그리고 석존 자신의부처로서의 삶의 자세를 더욱 깊이 파악하여, 그것을 시대에 맞게 새로이 소생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의 경전에는, 깨달음을 얻은 석존이 “나는 내가 깨달은 법을 스승으로하여 살아가겠다”는 맹세대로 끝까지 살아왔노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자신의 입멸 후 제자들에게는 “너 스스로를 너의 섬으로 삼고, 법을 너의 의지처로 삼아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섬이란 격류 속에서 한가운데에 있는 섬을 이르는 것으로 의지처를 뜻합니다. 자신이 깨달은 보편적인 진리를 스승으로 삼고 의지처로 삼아서 살아온 사람이 석존입니다. 그리고 석존은 똑같은 삶의자세를 멸후 중생에게도 권유한 것입니다. 법화경은 실로 그 깨달음의 법과 그 법을 근본으로 한 부처의 삶의 자세를 선명하게 설하여 새롭게 소생시킨 경전이라고 할 것입니다. 법화경에는 현재의 석존이 설한 법화경 외에도 과거의 부처가 설한 법화경도 등장합니다. 서품 제 1에는 일월등명불, 화성유품 제 7에는 대통지승불, 상불경보살품 제 20에는 위음왕불이 각각 과거의 부처로서 법화경을설했다고 합니다. 이들 부처가 설한 법화경은 형태나 길이가 각각 다르지만 보편적인 법을 설하여 그것을 체현한 부처의 삶의 자세를만인에게 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법화경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편적 법화경’이라고 합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석존의 28품 법화경과 천태의 ‘마하지관’, 당신의 남묘호렌게쿄를 어느 것이나 일념삼천이라는 보편적인 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도다 제2대 회장은 이 세가지를 각각 ‘정법 시대의 법화경’ ‘상법시대의 법화경’ ‘말법 시대의 법화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원원겁 이래 모든 부처가 깨달을 영원의 진리와 그것을 현실의 자신에게 체현하여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설하는 것이법화경인 것입니다. •33


니치렌 대성인과과 법화경니치렌 대성인은 법화경대로 실천하여 대난을 극복하고 묘법을 홍통한 당신 자신을 ‘법화경 행자’라고 부르시고 있습니다.법화경에는 석존 멸후에 법화경을 믿고 행하여 홍통하는 자는 수많은 박해를 받는다고 예언했습니다. 법화경 속에 설해진 박해의 내용은 다음 순서를 통해 알아 보겠습니다.유다원질•황멸도후법사품 제10에서는 “여래현재 유다원질. 황멸도후”라고 설합니다. 이구절은 “여래의 현재에도 역시 원질이 많다. 하물며 멸도 후에있어서랴”고 읽으며 “법화경을 설할 때에는 석존이 생존한 시대라고 해도 원질(원망, 질투)이 많다. 하물며 멸후의 시대에는 더 많은원질이 있다.”는 뜻입니다. 말법에서 이 경문에 설한 대로 석존의 재세시보다 더욱 격렬한 원질을 받은 사람은 니치렌 대성인 오직 한분뿐입니다. 대성인은 석존 재세 시의 박해를 예로 들며 그보다 더한 대난을 정법, 상법 시대의 용수, 천친, 천태, 전교는 아직 겪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며 말법의 시초에 대성인 오직 한 분만이 난을 받았다고 설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난을 받음으로써 석존의미래기(미래에 대해 쓰신 말씀)가 거짓이 아니었음이 증명됐기에 “니치렌이 말법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부처는 대망어의 사람이요,다보, 시방의 제불은 대허망의 증명이로다. 불멸 후 이천이백삼십여 년간 일염부제 내에서 부처의 말씀을 도운 사람은 단 니치렌 한사람이니라”(어서 1190쪽)고 말씀하십니다.육난구이견보탑품 제11에서는 멸후에 법화경을 수지하고 홍통하는 것이 어렵다고 강조합니다. 또, 보살들에게 석존 멸후에 법화경을 홍통하겠다는 맹세를 세울 것을 권합니다.육난( 六 難 )’은 멸후에 법화경을 설하고, 쓰고, 읽고, 한 사람을 위해 설하고, 의의를 묻고, 수지하는 것 이상 여섯 가지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이( 九 易 )’는 예를 들어 ‘수미산을 다른 무수한 불국토에 던지는 것’, ‘대지를 발톱 위에 놓고 범천까지 오르는 것’, ‘마른 풀을 짊어지고 큰 불 속에 뛰어들어도 전혀 타지 않는 것’,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경전을 설법하는 것’, ‘손에 허공을 쥐고돌아 다니는 것’등의 아홉 가지입니다. 여기서 구이의 예로 든 아홉 가지 사례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이지만 멸후 악세에 법화경을 홍통하는 여섯 가지 난에 비하면 그래도 쉬운 일이라고 설합니다.삼류강적또, 권지품 제13에서는 악세 말법 시대에 법화경을 홍통하는 사람에게는 속중, 도문, 참성의 세 종류의 증상만이 가하는 박해가 왕성하게 일어난다고 설합니다.첫째, ‘속중증상만’은 법화경 행자를 박해하는, 불법에 대해 아주 무지한 중생을 말합니다. 법화경 행자에게 악구매리를 퍼붓고 칼과몽둥이로 해를 입히는 일도 있다고 설해져 있습니다.둘째, ‘도문증상만’은 법화경 행자를 박해하는 비구(승려)를 가리킵니다. 사악한 지혜때문에 마음이 비뚤어져 있어 진실한 불법을 터득하지 못했음에도 모두 터득했다고 만심을 일으키고,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혀 정법을 수지하는 사람을 박해합니다.셋째, ‘참성증상만’의 ‘참성’은, ‘성자를 가장한다’는 뜻입니다. 평소에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며 성자처럼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고승이지만,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고 사악한 마음을 품어 법화경 행자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그 수법을 보면 국왕이나 대신( 大 臣 ) 같은 사람에게 법화경 행자를 사견의 사람이라고 하는 등 참언하여 권력자로 하여금 박해를 가하도록 합니다.대성인은 그야말로 이들 경문에서 설한 그대로 삼류 강적이 가하는 대난을 만나셨습니다. 특히 1260년에 〈입정안국론〉을 통해 당시의 권력자를 간효한 이후에는 ‘마쓰바가야쓰 법난’ ‘이즈유죄’와 같은 대난을 겪으셨고, 이후에도 ‘고마쓰바라 법난’ ‘다쓰노구치 법난’ ‘사도유죄’처럼 목숨을 위협하는 박해가 잠시도 끊이지 않는 일생이셨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이처럼 법화경을 홍통했다는 이유34


로 난을 만나는 것은 경문에서 밝힌 예언과 일치하기에 “니치렌은 일본 제일의 법화경의 행자라는 것은 결코 의심이 없으니”(어서284쪽), “니치렌은 염부 제일의 법화경의 행자이니라”(어서 266쪽)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법화경은 말법시대에 대성인의 출현과 그 행동을 예언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대성인이 이렇듯 법화경을 신독하셨기에, 법화경이 허언이 되지 않았고 석존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셈입니다.상행보살대성인이 이처럼 법화경을 몸으로 읽고, 더구나 대성인이 겪으신 난이 모두 법화경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대성인이 말법의법화경 행자라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석존 재세시에 말법 홍통의 부촉을 받은 상행보살에 해당한다는 것도 증명하고 있습니다.외용( 外 用 )은 ‘지용 보살 중 상수’, 상행 내증( 內 證 )은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여래’, 대성인은 외용(외면상의 모습-작용)에서는 석존에게 부촉받은 지용보살의 상수(최고의 도사)인 상행보살로서 행동하셨지만 내증(내심의 깨달음의 경애)에서는 다름아닌 ‘구원원초의 자수용보신여래’입니다. ‘구원원초’는,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에 석존이 진정으로 성불한 때라고 설한 오백진점겁의 당초를 말하며, 무시무종의 묘법을 자신의 생명 속에 꽃피우는 근원적인 성불의 때를 의미합니다. ‘자수용보신’은 자수용신이라고도 하며 영원하고 근원적인 무시무종의 묘법과 일체인 자신을 깨닫고, 그 지혜덕분에 묘법의 무한한 힘을 스스로 몸에 받아서 쓰는 부처의 몸을말합니다.대성인은 법화경 행자로서 거듭되는 대난을 극복하고, 1271년 9월 12일 다쓰노구치 법난 때 이 구원원초 자수용보신여래의 경애를당신의 흉중에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근원에 있는 부처의 생명을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으로서 도현 하셨습니다. 또, 대성인은말법에 법화경을 홍통 하지만 대성인이 홍통하신’법’은 석존이 남긴 법화경 28품이 아닙니다.“지금 말법에 들어가면 여경( 余 經 )도 법화경도 소용없으며 오직 남묘호렌게쿄이니라”(어서1546쪽)고 말씀하듯이, 대성인은 법화경의 간심(문저)인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나타내어 홍통하신 것입니다. 대성인이 말법의 어본불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35


말법시대 법화경 수행법화경의 목적은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성불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경문에서는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예언하고있습니다. 법화경 법사품 제 10에는 “‘여래현재 유다원질 황멸도후’(법화경개결 362쪽) 라고, 즉 석존의 재세시에도 이 경에 대한 원질이 많으니 석존 사후에는 얼마나 더하겠는가?”라는 뜻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말세라는 지금의 시대는 부처의 올바른 가르침이 묻히고 이를 유포하는 사람들이 공격을 당한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역사가 바로 이처럼 숭고한 목적에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증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역경을 상승의 원동력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비행기가 바람의 저항(양력)을 이용해 하늘 높이 날아오르듯이 말입니다. 불자들은 이처럼 어려움을 그들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는 기회로 보며 그들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여깁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법화경의 예언을 깨닫고 모든 난을 받아들이며 사람들이 그들 속에 내재한 불성을 깨우치도록 쉼없이 싸워 나가셨습니다. 그는 모든 난을 견디고 이겨내 법화경의 올바름을 입증했으며, 자신이 법화경의 자수용보신여래의 당체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의 창제행을 수립하고, 미래의 세대가 마침내 내재한 불성을용현할 수 있도록 어본존을 도현하셨습니다. 1271년 9월 12일 늦은 밤, 대성인은 가마쿠라에서 가까운 다쓰노구치라는 해안 처형장으로 끌려가셨습니다. 대성인은 죽음에 임박한 순간, 법화경을 위해 몸을 바칠 수 있게 된 기쁨을 표현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매우 밝은 빛을 띤 물체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고, 대성인을 참수하려던 병사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사도초, 어서 913쪽 참조) 니치렌 대성인은 “니치렌이라고 하는 자는 거년 9월 12일 자축의 시에 목이 잘렸느니라. 이는 혼백이 사도의 땅에 와서 다음 해의 설중에 써서 유연한 제자에게 보내니.”라고 쓰셨습니다. (개목초, 어서 223쪽) 비록 대성인은 살아남으셨지만, ‘참수’되었다고 쓰셨습니다.이것은 그때까지의 ‘자신’은 이제 끝났으며, 사도에 당도한 것은 불성을 깨우친 대성인의 ‘혼백’ 혹은 진정한 자아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난에 당당히 맞서 묘법을 유포하려는 맹세를 품고서 대성인은 임시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부처로서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적현본’하신 것입니다.지금 모습 그대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의 불법임시의 모습을 벗어던진 니치렌 대성인은 다른 사람이 되거나 무언가 특별한 존재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인의 원래 모습 그대로 부처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난을 이겨내며, 평범한 사람의 모습 그대로 타인의 행복을 위한 일을 지속해 나가셨습니다. 이케다 <strong>SGI</strong>회장은 “임시 방편의 모습을 벗고 진실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그 어떤 어려움도이겨내고, 무명을 없애고 모든 현상의 본질을 나타낼 수 있을 만큼의 확고한 자아를 수립했다는 뜻입니다.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더욱 강한 부처의 생명의 힘을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아를 수립하는 것이 바로 현세에 즉신성불하는 길입니다. 즉 곤경을 이겨내는 신심을 발휘함으로써, 우리의 생명에 갖추어진 인류애를 진심으로 닦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03년 2월, 리빙부디즘 41쪽) 니치렌 대성인의 승리의 인생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법화경의 인간주의 사상을 넓히기 위해 모든 역경을 견뎌내고 마침내 불도를 성취한 본보기를 보여 줍니다. 대성인은 법화경의 진실을 증명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법의 시대에 법화경의 가르침대로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우리 모두는 무한한 환희의 부처가 될 수 있다.니치렌 대성인은 ‘무한한 환희의 부처’라 불리는 깊은 성불의 경애를 체현하셨습니다. 바로 이와 똑같은 무한한 생명의 경애가 우리들모두에게 내재합니다. 이케다 회장은 이러한 생명 경애를 ‘밝고 제한이 없는 완전한 자유’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그것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자비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수반합니다. 그것은 마르지 않는 지혜와 정신적인 에너지 그리고 영원한 생명력으로 충만하며, 복운과 공덕으로 넘칩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들이 갖춘 마의 작용과 싸우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불타오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02년 5월, 리빙부디즘 44쪽) 니치렌 대성인은 그 혹독한 말세의 한복판에서 마치 진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처럼 그렇게 훌륭한 경애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대성인은 우리들도 그와 똑같은 영원한 부처의 생명경애를 만끽할 수 있도록 어본존을 도현해 주셨습니다. 대성인은 “니치렌( 日 蓮 )의 혼( 魂 )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36


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 御 意 )는 법화경( 法 華 經 )이며 니치렌( 日 蓮 )의 혼( 魂 )은 바로 남묘호렌게쿄( 南 無 妙 法 蓮 華 經 )이니라.”(교오전답서, 어서 1124쪽)라고 쓰셨습니다. 대성인은 모든 사람들이 부처로서 그들의 진정한 가능성을 깨닫고 실현할 수 있는명경으로써 어본존을 도현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중생을 성불시키겠다는 부처의 궁극의 대원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창가학회의 창립 회장이신 초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2대 도다 조세이, 그리고 3대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은 광선유포라는 대원의 맹서를 실현하기위해 격렬한 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훌륭한 전통을 남기셨습니다. <strong>SGI</strong>회원들은 바로이 대원의 맹서를 실현하기 위해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법화경의 훌륭한 모범으로서 날마다 활동을 통해 이러한법화경의 인본주의 사상을 다른 사람에게 넓히고 있습니다. •37


소카 스피릿• 소카 스피릿 교재 ‘개혁이 시작되다’제 1장 ‘석존과 제바달다’• 소카 스피릿 교재 ‘개혁이 시작되다’제 2장 ‘오노승의 배반’38


소카스피릿 교재 – “개혁이 시작되다(A Revolution Dawns)” (1)개혁이 시작되다 (1)제1장석존과 제바달다 – 선과 악약 2,500 여 년 전 인도에서 득도(불성을 깨달으신)하신 석존은, 그 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가 깨달은 바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처음으로 교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수많은 부처의 제자들 가운데 제바달다라는 그의 사촌이 있었습니다. 제바달다는 나중에 스스로의 약점에 져서 석존을 배반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제바달다)의 이야기에 대한 중요사항들입니다.제바달다는 석존의 목숨을 빼앗고 교단을 분열시키려고 획책한 최고의 악인이었습니다. 그것은 교만함과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제바달다는 3 가지 중요한 죄를 지었습니다.1. 교단에 파화합승( 破 和 合 僧 )을 일으킴.(그는500 명의 제자들이 교단을 떠나도록 속였습니다.)2. 부처에게 상해를 입힘.(그는 커다란 바위를 굴러 떨어뜨려 석존을 살해하려 하였고, 결국 불신출혈( 佛 身 出 血 )을 일으켰습니다.)3. 아라한 혹은 그 밖의 교단 회원들을 죽였습니다.(제바달다는 연화색 비구니를 때려 살해하였다.)제바달다품은 과거의 석존과 제바달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석존이 과거세에 왕이었을 때, 그는 왕위를 사임하고득도한 아사선인을 모셨습니다. 제바달다는 아사선인의 재탄입니다.제바달다품은 석존의 선( 善 )의 승리를 통해 악인도 성불(득도)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석존은 제바달다와 같은’선지식’덕분에 득도하고 널리 중생을 구제할 수 있었다고 밝히시면서, 비록 제바달다가 당시 지옥의 상태에 떨어졌지만, 미래 무량겁 후에 천왕여래가 된다고 예견했습니다. 석존은 제바달다 때문에 부처로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석존이 제바달다에게 이겼기 때문에, 제바달다의’악(마의 작용)’이 석존의 ‘선’을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바달다는 석존의 승리를 위한’선지식’이 된 것입니다. 반면, 만약 제바달다가 이 싸움에서 이겼다면, 제바달다는 결코 ‘선지식’이 될 수 없었을것입니다.만약 악(마)도 선을 드러내는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악의 전체가 그대로 선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불이입니다. 그러나 자연그대로 방치해 둔다고 하여 악이 선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과 싸우고 철저하게 승리해야 비로소 선악불이가 되는 것입니다.석존과 제바달다 - 선과 악(부처와 마)39


다음의 제바달다의 배신에 관한 이야기는 이케다<strong>SGI</strong> 회장과 <strong>SGI</strong> 교학부 간부들과의 대화를 모은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석존을 살해하기 위해 석존의 가장 뛰어난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제바달다는 암살자를 시켜 야생 코끼리를 풀어놓도록 하였습니다.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바위를 굴러 떨어뜨려 부처의 몸에 불신출혈을 일으켰으나 석존을 죽이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여타 부처에게나온 난과는 달리, 이 사건은 부처의 교단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게다가 반역자가 아사세 왕을 꾀어 석존을 제거하려 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사태였습니다. 그러나 법화경 ‘제바달다품 제12 장’에서는 심지어 이런 대악인 마저도 성불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가장 모순적인 일입니다. 제바달다는 석존보다 젊고 석존이 성도한 지 15 년 후에 출가한 것으로 보입니다.처음에 제바달다는 석존의 제자로서 수행에 힘쓰고 재능도 있었기 때문에 교단 안에서 점점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 후원자를 구하고자 아사세 왕에게 접근하고 석존을 대신해서 교단 전체를 통솔하자는 야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제바달다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팔만보장( 八 萬 寶 藏 )을 다 알고 있으며”(어서 1348 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만심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부처의 사촌이 부처의 자리를 노리다만년의 석존에게 제바달다는 교단의 통솔권을 자신에게 물려주기를 요구했습니다. 그 이유로 든 것이 석존의 노령( 老 齡 )입니다. 석존이 거부해도 그는 세 번이나 같은 요구를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석존은 제바달다의 면전에서 이를 힐책하였습니다.석존은 제바달다가 아사세 왕에게 아첨해 그 비호를 받고 있던 것을 가리키며 “남의 침을 먹는 자”라고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제바달다는 반역의 마음을 굳히고 교단을 떠났습니다. 석존은 즉각 남은 제자들에게 제바달다가 악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설파했습니다.이를 통해 단 한 사람의 제자도 제바달다에게 현혹되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악인은 명확하게 악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중간한 대응으로는 모두가 헤매고 맙니다.석존이 제바달다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힐책한 이유는 모두에게 무엇이 위태로운 것이었는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제바달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창피당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겸허한 제자의 마음이 없어졌던 것을나타냅니다.하찮은 자존심쪽이 구도심보다도 훨씬 앞서 버린 것입니다. 혹은 석존이 그에게 그 전부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주의를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꾸짖었을지도 모릅니다.석존에게 적대할 마음을 굳힌 제바달다는 그 후 아사세 왕을 부추겨 아버지 빈바사라 왕을 살해하게 하고 왕위에 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아사세 왕의 권력을 이용해 부처를 없애려고 온갖 책략을 꾸몄습니다. 그러나 그런 계획들은 전부 실패하고 맙니다.500 명의 부처의 제자들을 기만하다.제바달다는 석존의 교단을 파괴하려고도 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스승을 없애려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제자들을 분열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제바달다는 석존의 교단보다도 더욱 엄한 계율을 주장하여 그 점에서 석존을 능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바달다의주장에 속아 5 백 명이나 되는 불제자가 그를 따랐다고 합니다. 물론 이 사람들도 나중에 사리불과 목련이 깨우쳐 주자 석존에게 되돌아 옵니다.제바달다가 제시한 엄격한 계율은 분명 현혹할 만했을 것입니다.실제 그 계율은 매우 근엄하여 오히려 석존이 상대적으로 타락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바달다의 목적이었습니다. 분명 악인은 절대로 ‘나는 악인’이라는 표정은 짓지 않습니다.오히려 교묘한 지혜로 위장하여 자신이 다르게 보이도록 치장할 것입니다. 고행자가 많았던 당시이니 석존의 ‘중도’의 생활자세를 ‘타40


락했다’고 하기 쉬웠을 것입니다.다시 말해 제바달다는 석존보다 더욱 존경받고 싶다고 열망했습니다. 그는 질투심에서 바로 이와같은 그의 엄격한 계율을 내놓았던것입니다. 제바달다는 오로지 석존이 널리 존경받고 있다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는 석존의 내면의 투쟁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즉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들이 그들 자신의 생명의 보물을 각지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석존의 밤낮에 걸친 고민과 번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 이것을 볼 수 없었을까요? 분명 제바달다는 자신내부의 근원적인 생명의 투쟁을 포기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만일 우리가 우리 ‘내면의 악’을 자각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악에 물들고 맙니다. 그러한 점에서’선인’이란 ‘악과 싸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외부의 악과 싸움으로써 자신의 내면의 악을 정화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때때로 석존에게 있어 제바달다는 ‘악지식’이었습니다. 그는 석존을 살해하려 하고 파화합승 즉 정법의 교단을 분열시키기도 하고, 석존의 제자를 때려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석존은 그러나 이 대악인이 과거세에는 ‘선지식’이었다고 설했습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완전히 역전되고 있습니다.그 뿐만 아니라 불가사의하게도 제바달다가 과거세에는 석존의 스승이었다고 설해집니다. 이것도 악인이 부처의 스승이었다고 하는것이므로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악과 분리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석존이 그의 깨달음을 설하고 있는 제바달다품에 “내가 성불한 것은 모두 제바달다가 선지식이기 때문이니라.”(법화경 424 쪽)고 설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바달다가 아니었다면, 석존도 부처가 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중국의 천태대사도 법화현의 권 5에서“악에 의해 선이 있으며 악을 떠나서 선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악은 이는 선을 돕는다. 악이 없으면 또 선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은’실체’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관계’의 개념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인간을 처음부터 선인이나 악인으로 결정지을 수는 없습니다.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창가학회 초대 회장은 “선인도 대선에 반대하면 곧바로 대악에 떨어지고, 악인이라도 대악에 반대하면 곧바로대선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실상은 선악불이이며, 선도 악도 생명에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실천상으로는 법성을 근본으로 하고 선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불법은 승부입니다. 끝없는 투쟁입니다. 석존이 제바달다에게 이겼기 때문에 제바의 ‘악’이 석존의 ‘선’을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악에게 지면 제바가 선지식이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도다 회장은 명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제바달다는 석가 일대에 걸친 방법( 訪 法 )의 사람으로 모든 선의 뿌리를 자르려 했다. 그러므로 이전경에서는 ‘악이 없으면 현선을 나타낼 수 없다. 이런 고로 제바달다는 무수겁 이래 항상 석가와 함께 있으면서 석가는 불도를 행하고 제바는 비도을 행해 왔다. 그리하여 서로 계발해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악현선(악에 대해 선을 드러냄)이 끝나면 악의 전체는 즉 이는 선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선악불이, 사정일여( 邪正 一 如 ), 역즉시순(악연도 즉 이는 순연)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경에서는 아직 설해지지 않았던 오저의 뜻이다.” (도다 조세이어서강의 6 권, 360-361 쪽)악도 또한 선을 드러내는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악의 전체가 그대로 선이 됩니다. 바로 선악불이 입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 방치해둔다고 하여 악이 선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과 싸우고 철저하게 승리해야 비로소 선악불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바달다품의 ‘악인 성불’이란 석존에 의한 ‘선의 승리’의 위대한 증명입니다. 선악불이란 결코 선이나 악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악마저도 긍정하고 맙니다. 그것이 아니라 항상 ‘선’을 창조하고 악도 선으로 바꾸어 간다는 것이 법화경의 선악불이를 의미합니다. •41


소카스피릿 교재 – “개혁이 시작되다(A Revolution Dawns)” (2)개혁이 시작되다 (2)제2장오노승의 배반니치렌 대성인은 여섯 명의 제자승( 僧 )에게 사후( 死 後 ) 법의 홍통과 혈맥의 보존을 부촉하셨습니다. 여섯 명의 제자승 가운데, 닛코상인 만이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과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였습니다. 나머지 다섯 명의 제자들(오노승)은 스승인 니치렌 대성인의가르침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니치렌 불법이 여러 종파로 나뉘게 된 주요 원인입니다. 물론 이들이 주창하는 니치렌 불법은 그야말로 이름만 그렇게 불리울 뿐 진정한 대성인의 불법이 아닙니다. 이러한 오노승의 대성인에 대한 배신은닛코 상인의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어서 1601 – 9 쪽)와 “오인소파초( 五 人 所 破 抄 )” (어서 1610 – 16 쪽)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닛코 상인의 설명에 따르면, 오노승의 오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1) 그들은 대성인의 가름침이 천태종에 귀속되며 등교대사의 가르침에 따라 법화경을 유포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2) 그들은 이세, 이주산, 하코네, 쿠마노와 같은 지역의 신토사원을 방문했습니다.3) 그들은 법화경 베껴쓰기( 謄 寫 , 등사)를 적법한 수행의 방법으로 여기고 이를 장려했습니다.4) 그들은 제자들이 히에이산에 있는 천태종 본산을 방문하고 수계받는 것을 허용했습니다.5) 그들은 대성인이 어서를 당시의 일반어인 히라가나(일본어 음성문자)로 쓰신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이를 파기했습니다.6) 그들은 석존의 불상을 만들고 이를 본존으로 여겼습니다.7) 그들은 대성인이 도현하신 어본존을 경시하고 이를 석존 불상의 뒤에 배치하였으며, 복도에 남겨두거나 시체와 함께 묻기고 하고, 돈을 벌 목적으로 매매하기도 하였습니다.8) 그들은 권력의 탄압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 천태종과 손을 잡고 대성인을 배신하였습니다.오노승의 배신“이는 우리들이 사제의 길을 올바로 따름으로써 득도하는 가르침입니다. 만일 누군가 사제의 길을 벗어난다면, 비록 그가 같은 법화경을 신수하고 있다고 주장할 지라도, 그는 영겁의 고통의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 닛코 상인니치렌 대성인의 생은 묘법 홍통을 위한 노력으로 인해 초래된 끝없는 박해와 이에대한 극복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케다 회장은 이에대해 “대성인은 올바른 묘법의 가르침을 강력히 설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는 다른 종파의 수장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전경의 안락함에 빠져있던 그들에게 깊은 불편함을 초래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대성인에 대한 질투와 분노를 표출하게 된 것입니다.” (어서의 세계, 2 권, 2-3 쪽)석존이 그를 공격했던 마의 작용에 승리했던 것처럼 니치렌 대성인도 똑같이 자신에게 벌어진 마의 맹공을 격퇴하였습니다. 대성인은 “일일, 월월, 연년, 난이 거듭하느니라. 사소한 난은 부지기수이고 대난이 네번인데 … 또 제자, 단나도 모반자의 취급을 받았으며우연히 대성인의 법문을 들은 정도의 사람들도 중죄에 처하는 등 정말 가혹했습니다.” (WND-1, 240)라고 적고 있습니다.대성인이 돌아가신 후에도 그의 제자들은 권력과 타종의 권위자들에 의해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일부 대성인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견뎌야했던 것보다도 더한 것들이었습니다.42


대성인의 가르침에 대한 타협을 거부한 닛코상인니치렌 대성인의 사후( 死 後 ) 대성인께서 거주하셨던 미노부산 일대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지속되자, 닛코 상인은 그곳을 떠나 후지산근처에 불당을 건립하기로 했습니다. 후에 대석사 총본산이 건립된 곳이었습니다. 닛코 상인이 종조 니치렌 대성인의 묘지와 그곳에건립된 사원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미노부 지두의 비방과 오노승 가운데 한명인 밈부닛코(닛코 상인과 다른 한자명을쓰는 오노승의 한 명)의 배신 때문이었습니다. 지두였던 하키리 사네가와는 니치렌 대성인 불법을 수행하던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옳지 않은 수행과 믿음에 유혹되었습니다.이러한 오류에 대해 59 대 상인 니치코 호리(1867-1957)는 “최악의 오류는 그가 불상을 재건한 것이다.”(후지 학파에 대한 닛코상인의 자세한 설명, 1729 쪽- Detailed Account of Nikko Shonin of the Fuji School, p. 1729)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석존의 불상을 본존으로 하는 것은 어본존을 신심의 근본으로 하며 귀명의 궁극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니치렌 대성인의 가름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였습니다.지두 하키리의 행동의 위중함을 알았기에, 닛코 상인은 타협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사네가와는 닛코의 말을 듣기보다 오히려 그의잘못을 조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네가와의 궂은 비방 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닛코 상인은 영주 하라 답서(“Reply to Lord Hara”)를 통해 “이와 같은 일련의 일들은 [하키리]와 같은 사제승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왜곡된 승들의 잘못입니다.”라고 썼습니다.(ibid., p. 1733)이케다 회장 선생님은 “과연 대성인의 제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어서입니다. 우리가 신심의 근본으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원칙으로 한다면 모든 것은 명백해 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대성인은 엄하게 우리들을 훈계하셨습니다. ‘법화경의 대해의 지혜의 물을 받은 근원의 스승을 잊고, 다른 곳에 마음을 옮기면 반드시 윤희생사의 화가 되리라.’(WND-1, 747) 우리의 진정한 스승인 종조 대성인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신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2 대 닛코 상인은 스승 니치렌 대성인을 원불( 源 佛 )로 떠받들고 그의 가르침을 엄격히 지켰습니다.반면, 다른 오노승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잊고 그들의 충성심을 다른 곳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무턱대고 권력자에게 아부하기 위해 잘못된 가르침을 꾸며내었습니다. 그리고 속세의 매력에 굴복하였습니다.” (my Dear Friends in America, p. 164)미마사카보 답서(“Reply to Mimasaka-bo”)에서 닛코상인은 대성인의 어유명을 재차 확인하셨습니다. “미노부의 지주가 법에 위배할 시에는, 나는 결코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니” (Hennentai Nichiren Daishonin Gosho, p. 1729) 이러한 대성인의 마지막 지침을 따라, 불법의 혈맥을 지키기위해, 닛코 상인은 후지 지역으로 옮겨왔습니다.오노승의 이탈오노승 가운데, 니쑈(1221-1323)와 니치로(1245-1320)는 닛코 상인보다 먼저 니치렌 대성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닛코 상인은 하급승이었습니다. 닛코(1253-1314)와 닛초(1252-1317)는 닛코상인보다 나중에 대성인의 문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열에 있어 닛코 상인과 동급으로 스스로를 여겼습니다. 니치지(1250-?)는 닛코 상인의 지도로 승가에 입신하였습니다.그러나 그의 선배를 따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의 질투와 감정은 마침내 판단력을 어둡게 하여, 미노부 방문을 중단하고 그들 스스로의 가르침을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질투심 외에도, 대성인 불법에 대한 두려움과 무지가 또한 오노승들로 하여금 배신을 초래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43


대성인 사후, 막부 권력의 중심이었던 카마쿠라에 살았던 니쑈와 니치로는 권력으로부터 그들의 사원을 파괴하겠다는 협박과 같은억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천태종에 기반한 기원을 막부를 위해 올림으로써 이러한 곤경을 모면하였습니다. 난을 두려워하고 자신의안위와 사회적 지위를 위해 그들은 스승의 어유명을 저버리고 막부(권력)에 아첨하였던 것입니다.오노승의 불법에 대한 얄팍한 이해와 자기 본위의 신심은 대성인이 천태의 가르침에 기반한 법화경을 유포한 것으로 조장하였던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 닛코 상인은 “오인일동( 五 人 一 同 )으로 가로되, 니치렌성인의 법문은 천태종이라. 따라서 공소( 公 所 )에 올리는문서( 文 書 )에 가로되, 천태사문( 天 台 沙 門 )이라고 운운.” (어서 1601 쪽).그들은 또한 아랫승들이 히에이산 천태종 본산에서 계받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천태종에 더욱 분개하셨습니다. 전교대사의 경우 법화경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숭상했지만, 전교대사 사후 천태종의 가르침은 진언종의 난해함에 침식되었기 때문입니다.854 년 지카쿠는 천태종의 3 대 상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불경 가운데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을 최고의 가르침이며법화경은 두번째라고 가르쳤습니다. 전교대사가 수많은 난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수립한 법화경이 이른바 법적인 후계자에 의해완전히 무시된 것입니다. 당시를 풍미했던 종파를 예로들며, 가령 참선, 진언, 정토 등을 납득이 가도록 신빈성이 없음을 증명하신 니치렌 대성인은 이런 천태종과 지카쿠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가지 종파보다 더 사악한 것이 있으니, 이는 백, 천, 만, 억배 더믿기 어렵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WND-1, 569)니치렌 대성인이 천태종을 받아들이려는 오노승을 지켜보셨다면 간담이 서늘해지셨을 것입니다.겁쟁이들의 천태종으로의 피신니치렌 대성인 사후 몇 년만에, 오노승은 신심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285 년 니쑈는 막부에 천태종으로 개종하겠다는 진정서를보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니치렌 대성인의 제자가 아니였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니치로도 같은해에 유사한 진정서를 보냈습니다.닛초는 이케가미에 있는 혼몬사 사원을 거둘고, 닛코 상인이 있었던 미노부의 쿠온지 사원은 돕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닛초가 1285년 니치로와 함께 천태종으로 개종한 것으로 보입니다. 밈부닛코는 이러한 방법을 가책하지 않거나,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오노승에 동조하는 무리를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신토 및 정토종과 타협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심에 기반한 용기를가지는 대신 겁쟁이들로 전락하였습니다.오노승은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에 위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닛코 상인이 그들을 가책한다는 이유로 박해했습니다. 미노부파의승려들이 ‘니치렌종의 교리적인 역사’서에서 인지하듯이 오노승은 또한 불법의 수학( 修 學 )에 있어서 아무런 위업도 갖추지 못했습니다.그들은 신심이 약해졌을뿐만 아니라, 난을 두려워했고, 대성인이 염원했던 광선유포의 어유명도 잊어버리고, 대성인의 가르침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져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노승의 특징들이 바로 불교역사에서 불법을 배신한 자들로부터 흔히 발견되는 공통요소입니다.미노부의 쿠온사를 닛코상인에게 의탁하신 니치렌 대성인의 문헌(1282 년 코안 15 년 10 월 13 일자로 기술된)에 의하면, 대성인은“석존 50 년의 설법, 뱌쿠렌아사리 닛코에게 상승함. 미노부 산 구온사의 별당이 될지어다. 거역하는 재가 출가들의 무리는 비법( 非法 )의 중이 되는 것이니라.” (GZ, 160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노승은 닛코 상인을 반대하고 맹렬히 비방함으로써 그들 자신이바로 방법자들임을 증명한 것입니다.44


“사도초”에서 대성인은 불법을 올바르게 신수하지 못한 승을 따르는 제자들을 훈계하고 계십니다. “외도 악인은 여래의 정법을 파하기 어려우나 불제자등이 반드시 불법을 파하느니라. 사자신중의 충이 사자를 먹는다 등 운운.” (WND-1, 302)대성인의 예측은 대성인 사후 금방 밝혀졌습니다. “부처의 제자”라는 오노승은 바로 그 불단 내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파괴하려했습니다. 대성인이 불교의 역사를 통해 지적하셨듯이, 불교의 쇠퇴나 타락은 승들에 의해 비롯되었습니다. 특히 높은 지위의 승려들이 그러했습니다. 니치렌파의 승려들 역시 이러한 불교 역사의 형태와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후지종의 신심의 중단이후 거의 700 년간 후지종은 살아남기위해 고투했습니다. 막부의 권력과 타협한 다른 상인들에의해 설립된 종파들은 더 중심가에배치되어지고 호전되어 갔습니다. 대석사의 지리적인 고립과 오랜 기간 일부 부유한 시골 가문에 의해 운영되어온 전통은 좁고 지방적인 관념을 낳았습니다.그것은 보수적이고 시골의 생활관습에 중점을 두고 기존 이해 관계의 보호에 치중하였습니다. 후지종은 너무도 약해져 9 세대간 타종파로부터 예하를 보급해 올 정도였습니다. 이는 오직 한 예하로부터 다음 예하로 이어지는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의 유산, 혹은 오늘날 “살아있는 진수(근본)”의 전수라고 불리오는 대성인 불법의 개념의 기반을 완전히 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니치렌 대성인 가르침의 이해를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후지종의 신심은 중단되었습니다.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으신 분이 니치렌 불법의 “대재건”을 지휘하신 26 대 예하 니치간 상인이었습니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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