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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mmins Magazine - 2014 Spring Vol 78

Cummins

Cummins Lounge 세상 만나다 글과 사진. 도대석(커민스코리아 이사) 따뜻한 정이 넘치는 한국으로 돌아 오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다 일생에 꼭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인 미국생활. 미국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진 지 꽤 오랜 기간이 지나 거의 포기할 때쯤 찾아온 미국 본사에서 2년간의 근무기회…. 한국 OEM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했던 나는 본사 근무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다시없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본사에서 한국 Off-highway OEM의 Global Account 일을 맡으며, 현대중공업과 커민스 사이의 엔진조인트벤처 계약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내가 입국한 2012년 초 당시 커민스는 신규사원을 많이 뽑아 본사가 있는 콜럼버스에 아파트를 구하지 못하고, 인디애나폴리스 근처 그린우드라는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린우드는 백인이 95% 이상 사는 곳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낯선 느낌뿐만 아니라 영어를 못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걱정이 많았던 아들은 부족한 영어에도 다행히 초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2년 내내 별걱정 없이 학교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미국 교육시스템에 따라 중등과정과 고등과정을 모두 다니게 된 딸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한국 생활 대신 이방인으로서 미국인들과 접하다 보니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자기중심 사고에서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8+29 미국에서의 업무는 열심히 일하던 한국 직원들에게는 비교적 어렵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낯선 환경이나 문화는 본사 직원들이 같은 동료로서 서로 존중하며 흔쾌히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영어는 여전히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지만, 동료들의 충고와 도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본사의 멘토링과 매달 보스와의 1:1 미팅, 관련 중역과의 1:1 미팅 등은 나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미국 직원들은 일할 때는 집중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회의록도 그 자리에서 끝을 내려고 하기 때문에 단기집중력이 많이 필요하다. 많은 회의를 소화해 내다보니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대신 저녁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국보다 일찍 퇴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야근 시 저녁을 먹을 곳도 마땅히 없긴 했지만…. 점심시간마다 전 직원을 위한 세미나나 모임이 자주 이루어졌는데 기억나는 것이있다. 톰 라인버거 회장님 등 경영진과의 독서토론회, 각 부문을 맡고 있는 중역들의 분기별 비즈니스 업데이트, 신사업 소개, 다양성(Diversity), 사회봉사 등과 연관된 세미나 등 유익한 세미나들이 이루어져 점심시간을 자꾸 조절해야 했다. 미국생활 중 어려웠던 점은 점심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던 점인데, 싸고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었던 한국에 비해 메뉴가 많지 않아 처음에는 햄버거, 피자, 치킨을 돌아가며 먹어야 했고 이후에는 샐러드나 미국 남부식 덮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값진 경험, 2년간의 미국생활 미국 사회는 봉사하는 사회라 할 정도로 회사 및 학교 등에서 행해지는 사회봉사 및 기부 행사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커민스에서 매년 행해지는 ‘파이 던지기’였다. 경매 형식으로 기부를 가장 많이 할 사람을 골라 평소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중역의 얼굴에 파이를 던질 기회를 주는 것이다. 파이를 맞고 환하게 웃는 매너는 기본이다. 미국은 넓은 나라다 보니 여행을 즐기고 이를 받쳐줄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쉽게 호텔을 정하고 찾을 수 있고, 장사가 될까 하는 지역까지 식당이나 쉼터가 적절히 있어 여행하기가 정말 좋았다. 문화적 차이나 생소한 시스템(병원 등) 때문에 여러 어려운 점은 있었지만, 본사에서 일하는 한국 동료들의 도움과 더불어 한국 주부들이 운영하는 웹 사이트들에서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 사회에 적응하고 생활하느라 2년이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주 업무인 한국 OEM과의 관계 및 한국시장상황을 잊지 않으려면 2년 기간이 적당하기도 한 것 같다. 미국에 있고 싶어하는 아들을 맛있는 한국 빵으로 간단히 꼬시면서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미국생활에서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역시 정이 많은 나라, 친구, 동료들이 기다려주는 한국에서 다시 생활하게 되어 기쁘다. 마지막으로 지난 2년간 낯선 곳에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