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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uar Magazine 03/2017 – Korean

Der Zukunftsforscher Ian Pearson studierte Mathematik und Physik und arbeitete als Raketenwissenschaftler. 2007 gründete er die Futurizon Consultancy und berät seitdem Firmen bezüglich Zukunftstr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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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데이비스는 무엇이 재즈의 정수인지 정의했고,<br />

자신이 내렸던 정의를 새롭게 재정의했다. 타이트한 의복,<br />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괴짜 스타일 연주, 그리고 자동차에<br />

대한 열정은 그를 20세기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br />

WORDS: Richard Williams<br />

ILLUSTRATION: Gregory Gilbert-Lodge<br />

PHOTOGRAPHY: REDFERNS<br />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청중에게<br />

등을 보였고, 그러면 청중은 그에게 더<br />

매료되었다. 이를테면 존 콜트레인<br />

(John Coltrane), 키쓰 자렛(Keith Jarrett) 같은<br />

동료 연주자가 청중에게 이야기하는 동안엔, 무대를<br />

완전히 떠나기도 했다. 그의 논리는 분명했다. 자신이<br />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할 때만 청중들이 자신을<br />

바라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청중들에<br />

대한 예의라는 것. 그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청중들은<br />

음악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는,<br />

자기식대로의 가정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br />

당연하게도 아이러니는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을<br />

때조차도 청중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는<br />

것이다. 왜냐면 그의 존재 자체가, 심지어 그의<br />

침묵까지도 음악에, 또 재즈 전체에 활기를<br />

불어넣었으니까.<br />

1960 년대 후반 몇 해 동안, 그의 앨범들에는<br />

모두 “마일스 데이비스가 세운, 음악의 이정표<br />

(Directions in Music, by Miles Davies)”라는<br />

태그가 붙어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건방지거나<br />

오만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표현은 사실 진실의<br />

표현일 뿐이었다. 그때도 그는 세 번째로 재즈의<br />

역사를 바꾸고 있었으니까. 아니 네 번째였던가?<br />

그렇게 그가 먼저 길을 내면 다른 이들은 그를<br />

따라갔다.<br />

마일스 데이비스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br />

의 견습생으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비밥<br />

(bebop)의 복잡한 언어를 마스터했는데, 그러나 곧<br />

그 떠들썩함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기질에 더 맞는<br />

스타일을 선호하게 된다. 즉 톤에서 좀 더 쿨하고,<br />

노래와 더 잘 어울리는, 그러면서도 결연한 초연성은<br />

유지하는 스타일 말이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그에게<br />

모이기 시작했고, 이 연대는 계속되었다. 1959년<br />

재즈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앨범이었던 를 그리고 이듬해에는<br />

자신의 음악적 소울 메이트였던 길 에반스(Gil Evans)<br />

와 함께 구상한 오스케스트라 곡 를 출시하며, 데이비스는<br />

자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가<br />

초기 에피소드에 등장한 건<br />

이상할 것도 없다. 실제 세계의 돈 드래퍼(매드 맨의<br />

캐릭터)들이 숭배했던 건 단지 그의 음악이 아니라<br />

그의 스타일 그 자체였으니까.<br />

당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외모를 개발했던<br />

재즈 뮤지션들은 한 두 명이 아니었지만 (특히 비밥<br />

연주자들의 베레모, 주트 복장, 손으로 직접 그린<br />

넥타이) 데이비스의 슬림 피팅과 매끈한 스포츠<br />

카들은(재규어 XJ-S도 그 중 하나) 할렘을 넘어서<br />

보다 유럽적인 성향으로의 변모를 뜻했고, 그가<br />

만들어낸 소리의 절제감과 세련미에 대한 완벽한<br />

보완처럼 보였다. 그의 자동차들은 그의 연장이었고,<br />

대중보다 한발 앞선 움직임이었다. 데이비스 퀸텟<br />

멤버로 활약했던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은<br />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움직이는 방식, 걷는<br />

스타일, 연주할 때 서 있던 자세, 그의 호른과<br />

자동차들에서 뿜어져 나오던 것, 이 모든 것이<br />

스타일리쉬했고, 그의 페르소나(persona)의<br />

일부였죠.” 데이비스가 늘씬한 XJ-S를 선택한 건<br />

전혀 놀랍지 않다. XJ-S 자체가 틀에 박히지 않은,<br />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위대한 퍼포머이므로.<br />

그는 같은 패턴의 사운드와 스타일을 고수한 채<br />

수익을 올리며 남은 생을 유유자적할 수도 있었다.<br />

하지만 치료 불가능한, 쉴 줄 모르는 창조 열망이<br />

그의 영혼을 지배했다. 1960년대 중반 그는 여러<br />

차세대 뮤지션들을 모집했고, 그들을 재즈 역사상<br />

가장 격하게 창의적인 소그룹으로 길러냈다.<br />

1960년대가 끝나갈 무렵, 데이비스는 제임스<br />

브라운(James Brown)과 지미 핸드릭스(Jimi<br />

Hendrix)의 음악을 듣고는, 그들을 추종하는 젊은<br />

팬들을 부러워하며 핀스트라이프 슈트와 발라드와<br />

결별했고, 아일 오브 와이트(the Isle of Wight)에<br />

결집한 60만 록 팬들 앞에서 연주했다. 생애 마지막<br />

20년 동안엔 부침이 있었지만, 1991년 65세의<br />

나이로 사망하자,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제시해온<br />

방향을 재즈가 다시금 회복하는 데는 꽤나 많은<br />

시간이 필요했다.<br />

위대한 연주자. 세련되고 우아하며<br />

틀에 박히지 않은 -매끈한 재규어<br />

XJ-S와 소유자 마일스 데이비스의<br />

앞선 스타일 감각과의 화음은 전혀<br />

놀랍지 않다.<br />

THE JAGUAR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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