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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enews@usa.net <strong>주간연예</strong> 89<br />
미주트레킹 : 홀로 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5<br />
짧은 길 그러나 긴 여운, Lion's Head Trail (2)<br />
Pioneer Ridge Trail. 국도인 Knik River Road<br />
의 4마일 지점에 아담한 주차 공간이 있고 게<br />
시판에는 이 트레일에 대한 특징과 준비 사항을 적<br />
어놓고 등산 지도도 비치해 두고 있습니다. 1900미<br />
터 정상에 오르면 동편으로는 Mt. Marcus Baker의<br />
Knik 빙하가 남쪽으로는 Eklutna and Whiteout 빙<br />
하를 품고 있는 Bold Peak가 장엄하게 펼쳐지는데<br />
10km의 길을 걸어 1500 미터를 올라야 다다를 수 있<br />
는 힘든 길입니다. 맑고 밝은 날이나 접근이 가능하고<br />
산마루가 시작되는 1600미터 높이의 Upper Pioneer<br />
ridge 까지만도 1200미터의 고도를 올려야만 하는<br />
결코 녹록치 않은 트레킹입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비<br />
가 오는 날이면 목숨을 저당잡혀 놓아야 하는 등정<br />
길. 그래도 일단은 우의 착용하고 완전 무장해서 올<br />
라갑니다. 가다보면 비가 그칠 수도 있고 예쁜 풍경하<br />
나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저비리<br />
지 않고 말입니다. 길은 초반부터 4,50도의 각도를 유<br />
지한 채 시련에 들게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땅만 보고<br />
올라갑니다. 이따금 흘깃 옆으로 보지만 여전히 숲에<br />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다 수풀 사이<br />
로 터진 공간이 나와도 풍경은 자욱한 비안개에 가렸<br />
고... 슬슬 회의적인 생각이 떠오릅니다. 죽어라고 이<br />
비탈길을 목숨 걸어놓고 올라가야 할 이유도 명분도<br />
없습니다. 길은 외길이고 오르면 되지만 아무런 비경<br />
도 감흥도 얻지 못할 것을 알면서 고집할 필요는 있<br />
을까! 자학을 하면서 쾌락을 얻는 세디스트도 아니<br />
고 고행을 자처한 수도자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렇게<br />
생각이 들자 미련없이 하산을 합니다. 씰데없이 오르<br />
기도 많이 올랐습니다.<br />
하산하는데도 엄청 시간이 걸립니다. 비가 오지 않는<br />
지역으로의 이동을 구상하면서...<br />
앵커리지에서 시작해 동부로 난 Glenn Highway<br />
를 타고 달립니다. Lion’s Head Trail을 오르기 위<br />
해 가는데 Caribou Creek을 건너기 바로 전 언덕위<br />
의 106마일 지점에 위치해 있으니 비집고 들어간 지<br />
점이 40마일 지점이라 한시간 반 정도 달리면 됩니<br />
다. Palmer라는 동부 군사도시로 달리는 이 길은 예<br />
사롭지가 않습니다. Matanuska River을 거슬러 올<br />
라가는 협곡 삼백 킬로미터는 웅장한 풍경을 펼쳐놓<br />
아 달리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해 비록 혼자임에서 '<br />
정말 멋있다. 그쟈?'하면서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네게<br />
됩니다. 그 압도적인 장대한 풍경의 이어달림에 차창<br />
을 열고 달리면서도 정차해서도 열심히 찍어 댑니다.<br />
황으로 덮인 계곡과 산 허리에 전나무들이 가끔 퍼져<br />
있고 그 위로는 설봉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그런 풍경<br />
이 계속 다른 구도로 몇시간 동안 변화를 주니 그 묘<br />
하고도 이색적인 풍경에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들고 맙<br />
니다. 마침내 트레일 시작점에 도착했고 이웃 칼리부<br />
크릭 피크닉 장소에서 가볍게 점심상 차려 먹고 산행<br />
을 시작합니다.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감동이 큰 코<br />
스로 소개되는데 350미터를 정신줄 놓고 오르면 한<br />
시간 만에 정점에 도달할수 있습니다. 우선 첫관문을<br />
통과해야 하는데 이 땅이 AT&T 전화회사 소유라 형<br />
식적이지만 바리케이트에 붙여놓은 경고판의 전화번<br />
호로 연락해서 허가를 받도록 해 놓았습니다.<br />
몇명이 왔고 얼마나 머무를<br />
것인지 물어옵니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이 첩첩 산중<br />
에 전화가 터지고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 했더니 이 기<br />
지 덕분이었습니다. 돌무더기를 모아 등산 시작점을<br />
알려놓은 지점에서 시작해 둥글게 봉긋 솟은 암산을<br />
단숨에 에둘러 오르면 천길 낭떠러지가 발아래 섬뜩<br />
하게 깎아 내리고 더욱더 깊어진 계곡에는 강물이 도<br />
도히 흘러갑니다. 그 뒤에 비스듬히 길게 누워 게으르<br />
게 흐르는 Matanuska 빙하가 시선을 압도하는데 고<br />
작 해발 400미터도 되지 않는 이곳에 저렇게 거대한<br />
빙하지역이 형성되어 있으니 이 지역의 평균 온도를<br />
가히 짐작 할수도 있겠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언제 어<br />
느새 솟아 올라왔는지 Talkeetna 산맥의 산군이 만<br />
년설을 덮고 반가운 인사를 보냅니다. 발 아래는 호<br />
크와 독수리의 비상도 보이니 마치 나는 지금 비행기<br />
를 타고 있는 착각이 들어 팔을 비스듬히 하고 날개<br />
짓을 해봅니다. 비가 조금 섞인 바람이 불어와 얼굴<br />
을 때려도 이 자족의 행복이 가득한 지금은 전혀 차<br />
갑게 느껴지지가 않고 정신을 맑게 하고 더위와 땀을<br />
식혀주는 청량제 같습니다. 오늘 비록 파이어니어 릿<br />
지는 등정하지 못했어도 열심히 달려와 마주 대한 사<br />
자머리 산이 들려주는 알래스카 산들의 전설을 들으<br />
며 한동안 이 장대한 풍경의 기억이 흐려질까 미동도<br />
없이 한없이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뺨에는 고<br />
인 빗물인지 눈물 인지 모르게 흘러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