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s
2 weeks ago

Cummins Magazine 2015 Summer Vol 82

Cummins

Cummins Lounge Travel 같은 땅, 다른 시간 속을 함께 걸어가는 생 한양도성길 봄이 오면 따뜻한 대지의 기운에 온갖 식물들이 뿌리를 움직거린다. 봄바람은 사람의 발끝에도 전해져 걷지 않고서는 꿈틀대는 봄기운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하여 꽃처럼 어여쁜 운동화를 신고 “올봄엔 꼭 한번 걸어보리라” 다짐했던 한양도성길을 찾았다. 낙산, 흥인지문, 남산, 숭례문 등을 허리띠처럼 잇는 6개 구간, 18.627km에 형성된 한양도성은 600여 년간 서울의 중심을 단단히 품으며 도시의 변화를 고스란히 몸으로 기록해왔다. 글. 편집실 / 사진. 이도영 / 참고자료. 한양도성박물관

22 + 23 가슴 아픈 역사가 화석처럼 박힌 곳 ‘도성의 둘레는 40리인데, 이를 하루 만에 두루 돌면서 성 안팎의 꽃과 버들 감상하는 것을 좋은 구경거리로 여겼다. 이른 새벽에 오르기 시작하면 해 질 무렵에 다 마치게 되는데, 산길이 험하여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이 쓴 세시풍속지 의 한 대목으로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놀이문화 중 하나였던 ‘순성( 巡 城 )’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루 만에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순성놀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계절을 몸소 느끼며, 자연과 벗하기에 제격이었다. 순성놀이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1392년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의 조선 건국에 있었다. 태조는 새로운 국가의 뿌리를 튼튼하게 다지고자 1394년 8월,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결정한다. 이어 백악 기슭의 명당자리에 궁궐을 건립하고, 궁궐 좌측에는 왕실의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를, 우측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을 둠으로써 옛 전통과 풍수지리, 유교적 이념을 겸비해 수도 한양을 건성한다. 궁궐과 종묘, 사직을 완성한 태조는 전쟁을 대비하고, 사람들의 출입통제 및 도적 방지 등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1396년 한양을 에워싼 도성을 축조하기 시작한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내사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사대문( 四 大 門 )인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과 사소문( 四 小 門 )인 혜화문, 광희문, 창의문, 소의문을 연결하는 한양도성 축조를 위해 전국에서 약 20만 명의 백성이 동원된다. 1422년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이르러서는 32만 명의 백성을 동원해 한양도성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토성을 모두 석성으로 다시 쌓는 작업을 진행한다. 1704년 숙종(재위 1674~1720)은 취약한 부분을 튼튼하게 고쳤고, 영조(재위 1724~1776)는 동쪽 성곽에 적을 쉽게 방어하고 감시할 수 있는 치성( 雉 城 )을 쌓았다. 태조로부터 시작된 한양도성 축성은 조선의 여러 왕을 거치는 동안 수리와 증·개축 과정을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게 되었다. 도성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은 고종(재위 1863~1907)에 이르러서도 다르지 않아, 1899년 돈의문-청량리 구간에 최초로 전차를 개통하면서 성벽을 훼손하지 않고 선로를 내기 위해 궤도를 성문 안으로 지나게 한다. 그러나 1907년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당한 직후, 일본의 압력에 의해 설치된 성벽처리위원회에 의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고, 1945년 해방과 1950년 6·25전쟁 이후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도성의 존재가치가 사라짐으로써 1970년대에 들어 30% 가까이 소실되는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서울 시민과의 재회 한양도성이 점차 제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무렵이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서울 세검정 일대까지 잠입한 1·21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국민의 안보의식 강화를 앞세워 도성 복원을 적극 추진한다. 1975년부터 1982년까지 광희문, 숙정문을 포함한 9.8km의 성벽이 복원되었으며,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성곽길의 70%에 달하는 구간을 보존했다. 600여 년 역사의 풍파 속에서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자리를 지켰던 한양도성은 비록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한 시대를 지켜온 늠름한 기세를 여전히 품고 있었다. 한양도성은 전체 6개 구간으로 나뉜다. 창의문에서 혜화문까지를 잇는 4.7km 구간인 백악구간은 한양도성의 기점이기도 하거니와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되었다가 2007년 시민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축조 시기별로 성돌의 모양을 관찰할 수 있는 낙산 구간은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이어진다. 흥인지문에서 다시 장충체육관을 잇는 1.8km의 흥인지문 구간과 백범광장을 지나는 남산 구간, 성벽이 가장 많이 훼손된 숭례문 구간을 비롯해 치마바위, 선바위, 기차바위 등 다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