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mmins Magazine 2015 Summer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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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역사가 화석처럼 박힌 곳<br />
‘도성의 둘레는 40리인데, 이를 하루 만에 두루 돌면서<br />
성 안팎의 꽃과 버들 감상하는 것을 좋은 구경거리로 여겼다. 이른 새벽에 오르기 시작하면 해 질 무렵에<br />
다 마치게 되는데, 산길이 험하여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br />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이 쓴 세시풍속지 의 한 대목으로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놀이문화 중 하나였던<br />
‘순성( 巡 城 )’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루 만에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순성놀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계절을 몸소 느끼며, 자연과<br />
벗하기에 제격이었다. 순성놀이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1392년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의 조선 건국에 있었다. 태조는<br />
새로운 국가의 뿌리를 튼튼하게 다지고자 1394년 8월,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결정한다. 이어 백악 기슭의 명당자리에 궁궐을<br />
건립하고, 궁궐 좌측에는 왕실의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를, 우측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을 둠으로써 옛 전통과<br />
풍수지리, 유교적 이념을 겸비해 수도 한양을 건성한다. 궁궐과 종묘, 사직을 완성한 태조는 전쟁을 대비하고, 사람들의 출입통제<br />
및 도적 방지 등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1396년 한양을 에워싼 도성을 축조하기 시작한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내사산(북악산,<br />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사대문( 四 大 門 )인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과 사소문( 四 小 門 )인 혜화문, 광희문, 창의문,<br />
소의문을 연결하는 한양도성 축조를 위해 전국에서 약 20만 명의 백성이 동원된다. 1422년 세종(재위 1418~1450) 때에<br />
이르러서는 32만 명의 백성을 동원해 한양도성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토성을 모두 석성으로 다시 쌓는 작업을 진행한다.<br />
1704년 숙종(재위 1674~1720)은 취약한 부분을 튼튼하게 고쳤고, 영조(재위 1724~1776)는 동쪽 성곽에 적을 쉽게 방어하고<br />
감시할 수 있는 치성( 雉 城 )을 쌓았다. 태조로부터 시작된 한양도성 축성은 조선의 여러 왕을 거치는 동안 수리와 증·개축 과정을<br />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게 되었다. 도성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은 고종(재위 1863~1907)에 이르러서도<br />
다르지 않아, 1899년 돈의문-청량리 구간에 최초로 전차를 개통하면서 성벽을 훼손하지 않고 선로를 내기 위해 궤도를 성문<br />
안으로 지나게 한다. 그러나 1907년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당한 직후, 일본의 압력에 의해 설치된 성벽처리위원회에<br />
의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고, 1945년 해방과 1950년 6·25전쟁 이후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도성의 존재가치가<br />
사라짐으로써 1970년대에 들어 30% 가까이 소실되는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br />
서울 시민과의 재회<br />
한양도성이 점차 제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무렵이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서울 세검정 일대까지 잠입한<br />
1·21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국민의 안보의식 강화를 앞세워 도성 복원을 적극 추진한다. 1975년부터 19<strong>82</strong>년까지 광희문,<br />
숙정문을 포함한 9.8km의 성벽이 복원되었으며,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성곽길의 70%에 달하는 구간을 보존했다. 600여 년<br />
역사의 풍파 속에서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자리를 지켰던 한양도성은 비록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지는 못했지만,<br />
한 시대를 지켜온 늠름한 기세를 여전히 품고 있었다.<br />
한양도성은 전체 6개 구간으로 나뉜다. 창의문에서 혜화문까지를 잇는 4.7km 구간인 백악구간은 한양도성의 기점이기도<br />
하거니와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되었다가 2007년 시민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축조 시기별로 성돌의 모양을<br />
관찰할 수 있는 낙산 구간은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이어진다. 흥인지문에서 다시 장충체육관을 잇는 1.8km의 흥인지문<br />
구간과 백범광장을 지나는 남산 구간, 성벽이 가장 많이 훼손된 숭례문 구간을 비롯해 치마바위, 선바위, 기차바위 등 다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