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호 2024년 3월 15일 B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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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 COLUMN KOREA TOWN NEWS • MAR 15 2024<br />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br />
박인애<br />
시인, 수필가<br />
그리움을 삭이는 방식<br />
Apple 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파친<br />
코’ 시즌1에서 주인공 선자는 어머니와 함<br />
께 자기 하숙집에 손님으로 왔던 전도사 이<br />
삭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br />
유부남인 줄 모르고 사랑해서 한수의 아<br />
이를 임신해 미혼모가 될 처지에 놓인 선자<br />
의 사연을 우연히 듣게 된 이삭은 그녀에게<br />
청혼하고, 목사님의 기도로 부부의 연을 맺<br />
는다. 선자는 이삭과 함께 어머니와 정든<br />
고향을 떠나 일본 이쿠노쿠에 있는 형 요셉<br />
의 집에서 살게 된다.<br />
어느 날, 몸이 무거운 선자가 늦잠을 자고<br />
일어나 보니 형님이 선자의 빨래를 해 널고<br />
있었다. 고향의 냄새가 담긴 옷으로 그리움<br />
을 달래던 선자는 옷을 빨아서 냄새가 다<br />
없어졌다며 서럽게 운다.<br />
선자가 형님에게 이렇게 아린 게 언제쯤<br />
끝나게 되냐고 묻자, 참는 법을 배우게 될<br />
거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움은 사<br />
라지거나 끝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꾹꾹 눌<br />
러 참는 법을 익혀가는 거였다. 노력해도 통<br />
제되지 않는 게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다.<br />
이국에서 그리움을 끌어안고 살아가는<br />
두 여인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선자의<br />
아림이 내 아픔으로 다가왔다.<br />
딸 친구 중에 고향이 인디아인 아이가 있<br />
다. 그 친구가 보낸 사진을 보고 뭉클했던<br />
적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br />
을 실제로 보아서인지 잊히지 않는다.<br />
사진 속엔 자주색 블라우스가 벽에 걸려<br />
있었다. 옷에 초점이 맞춰진 사진이라 방안<br />
에 놓인 살림이 선명하게 부각되진 않았으<br />
나, 부유해 보이진 않았다. 그 친구의 엄마<br />
는 돌아가셨다. 아빠는 엄마가 즐겨 입던<br />
블라우스를 일 년째 벽에 걸어 놓고 냄새를<br />
맡으며 그리움을 달랬다.<br />
그런데 홍수가 났다. 천장에서 비가 새는<br />
바람에 옷이 젖어서 어쩔 수 없이 빨게 되<br />
었는데, 엄마 냄새가 사라져서 아빠가 슬<br />
퍼한다는 사연을 사진과 함께 전해왔던 것<br />
이다.<br />
죽은 아내의 옷 냄새를 맡으며 그리움을<br />
달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br />
아내를 두고도 바람을 피우거나, 아내가 죽<br />
으면 화장실에 가서 웃는 남편이 있다는 혼<br />
탁한 세상에 살다 보니 아내 냄새가 사라진<br />
옷을 끌어안고 우는 남편이 인간문화재처<br />
럼 느껴진 건 지도 모르겠다.<br />
친정어머니가 48살의 짧은 생을 마치고<br />
세상을 떠났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br />
았다”라는 표현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br />
지 체험했었다.<br />
부지런했던 어머니는 빨랫줄에 널어 둔<br />
빨래를 밤이슬이 내리도록 걷지 못했고, 늦<br />
둥이 아들이 걱정되어 눈을 뜬 채 숨을 거<br />
뒀다. 동네 어른들이 엄마가 쓰던 옷가지와<br />
물건을 태우라고 하셨다. 그래야 훌훌 편히<br />
갈 수 있다고.<br />
장의사 소각장에서 태워 준다고 하여 챙<br />
겨다 주긴 했지만, 다 주진 못했다. 나 역시<br />
엄마의 옷을 빨지 않은 채 오랫동안 끌어안<br />
고 살았다. 엄마 냄새는 그리움을 달래고<br />
삭이는 통로가 되어주었다.<br />
누구나 가슴 속에 그리움이란 우물을 묻<br />
고 산다. 때로는 퍼 담고, 때로는 퍼 올리며<br />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리움의 수위를 조절<br />
하며 사는 거다.<br />
부재나 상실에서 오는 그리움은 인력으<br />
로 다스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애써 누르<br />
고 또 누르며 삭여야 한다. 그래서 때론 망<br />
각이라는 기능이 감사하다. 상실의 아픔을<br />
매순간 기억한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기<br />
어려울 것이다.<br />
그리움을 달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br />
누군가는 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추억하<br />
고, 누군가는 유품을 어루만지고, 누군가는<br />
옷에 남은 체취를 맡으며 숨통을 연다. 산<br />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br />
지인은 마음이 힘들거나 그리울 때면 아<br />
침 일찍 남편 산소에 들러 푸념을 늘어놓<br />
곤 한다. 나 혼자 놔두고 거기 편히 누워<br />
있으니 좋냐고 통박을 주고, 속풀이도 하<br />
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와 하루를 시<br />
작한다.<br />
심성보 시인은 그의 시 「그리움이란」<br />
마지막 연에서 이렇게 노래했다.<br />
“그리움이란<br />
누군가에겐 행복의 사랑으로 다가오는<br />
기쁨이지만<br />
또 누군가에겐 떠난 사람 뒤에 오는<br />
슬픔의 얼굴을 가진<br />
차가운 비수 같은 것일 테지”라고.<br />
내 그리움은 어느 쪽일까? 이 세상 어<br />
딘 가에 내가 그리워서 그리움을 삭이는<br />
이가 있을까? 근간 여러 지인이 세상을<br />
떠났다.<br />
그때마다 삶과 죽음, 인연에 관해 생각하<br />
게 된다.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눈을 뜨면<br />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들, 차마 떼어내지 못<br />
해 끌어안고 산다.<br />
그리움이란, 고통이기도 하지만, 산 자가<br />
누리는 축복이기도 하다. 어쩌면 삭이지 않<br />
아도 좋을 그리움이 나를 살게 하는 건지<br />
도 모르겠다.<br />
그런 그리움이라면 끌어안아야 하지 않<br />
을까.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br />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