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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연예 vol.1218_0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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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br />

<strong>주간연예</strong><br />

e-mail: enews4989@gmail.com<br />

마이웨이 김연자<br />

재일 교포 전 남편과 이혼<br />

위자료 한 푼 못받아<br />

원조 한류 스타이자 일본을 사로잡은<br />

대형 가수 김연자. 지난 2017년 ‘아모<br />

르파티’로 역주행 인기를 누리는 동시에 남자<br />

친구의 존재를 고백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br />

고 있는 엔카의 여왕 김연자의 오뚜기 같은 인<br />

생 스토리가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에<br />

서 공개된다.<br />

195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김연자. 어<br />

려서부터 광주에서 노래 잘하는 소녀 신동으<br />

로 불렸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큰 가수로<br />

키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적<br />

극적인 후원에 14살 어린 나이에 무작정 상경<br />

했던 그녀는 고등학교 진학 후 1974년 TBC<br />

‘전국가요 신인스타쇼’에서 우승한다. 같은 해<br />

오아시스레코드에서 김학송이 작곡한 ‘말해줘<br />

요’로 데뷔하게 된다.<br />

이후 치열한 오디션을 본 끝에 1977년 일본<br />

진출에 성공한다. 그녀는 일본에서 이미자의<br />

곡을 개사한 ‘ 女 の 一 生 (여자의 일생)’를 발표<br />

하며 신예 스타로 떠올랐다.<br />

하지만 첫 일본 진출은 실패로 끝났다. 성공<br />

을 간절히 바랬지만 치열한 준비 없이 시작한<br />

일본 활동이었기에 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br />

도, 유창한 일본어도 보여줄 수 없었고 첫 일본<br />

진출 3년 만에 해고통보를 받게 된다. 다시 한<br />

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1981년 트로트 메들리<br />

‘노래의 꽃다발’로 무려 360만장의 앨범 판매<br />

고를 올리며 스타로 떠올랐다. 참고로 씨름판<br />

에서 ‘천하장사 만만세~’ 하며 구성지게 들리<br />

는 씨름의 노래도 이 시절 그녀가 부른 곡이다.<br />

이후 1988년 다시 일본 활동을 시작한 그녀<br />

는 당시 서울 올림픽 찬가였던 ‘아침의 나라에<br />

서’를 개사해 일본 오리콘 차트 엔카 부분 1위<br />

를 15번이나 기록하며 ‘엔카의 여왕’으로 등극<br />

한다. 특히 그녀는 일본 엔카 무대에서 기모노<br />

가 아니라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한복을 입고<br />

오르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반<br />

한 감정이 극대화 됐던 시기에도 한복을 입고<br />

무대에 올라 주변의 걱정을 산적도 있다”고 말<br />

한다. 실제로 방송에서 공개된 그녀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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